베니스의 상인 - 전예원세계문학선 304, 셰익스피어전집 4 셰익스피어 전집 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학창시절에 인상깊게 읽었던 베니스의 상인을 다시 읽었다. 너무도 유명한 셰익스피어의 이 책은 특히
나 법정에서 판결받을 때의 장면이 눈에 선한 듯하여 잊을 수 없다. 참으로 통쾌한 장면이었는데 학생
때의 느낌과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그때는 유태인 상인 샤일록이 그렇게나 얄밉더니 지금은 가련하다
는 생각도 든다. 대사를 읽다 보면 법정에서도 샤일록을 상인이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라고 칭한다. 그것은 일종의 차별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된다. 문학은 현실
의 반영이라 했던가.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이 극을 통해 영국 시민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했을 것이
다. 왜냐하면, 당시 스페인 국왕에게 매수된 유대인이 영국 여왕을 독살하려 한 암살미수사건이 있었기
에 유대인 배척사상이 널리 자행되었다. 그래서 유대인 샤일록은 간사하게 그려져 있고 결국 심판을 받
는 내용이다. 그러나 당시 상황과 관계없이 탐욕쟁이에다 간사한 등장인물이 법정에서 지혜로운 심판
을 받는 모습은 독자에게도 시원함을 준다.

베니스의 상인 앤토니오는 친구를 위해 샤일록에게 돈을 빌리고 증서를 작성한다. 약속위반 시 1파운드
의 살점을 건 증서였다. 친구를 위해 이런 무시무시한 조건에도 응한 앤토니오와 반대로, 평소 샤일록
은 앤토니오의 사업방식을 못마땅해하던 차에 기회를 노린다. 그리고 결국 앤토니오의 배가 침몰하고
파산하자 기다렸다는 듯 증서에 쓴 내용을 들먹인다. 샤일록이란 인물은 <오셀로>의 이야고처럼 간교
한 동시에 또한 <오셀로>의 무어인처럼 차별받는 유색인종이다. 그의 외동딸은 앤토니오의 친구와 사
랑에 빠졌으니 셰익스피어의 여러 극처럼 곁가지 이야기로 맞물려 있다.

여주인공은 부유하고 돈 많은 포오셔로 극에서 지혜를 상징한다. 그녀가 바로 법정에서 판결했던 장본
인으로 남장을 했었다. 셰익스피어의 극에서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일관성이 유지되진 않다. 아무리 당
당하고 재치있고 현명해도 결국 시대가 추구했던 당시의 이상형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늘 이것이 나
는 불만이지만. 아무튼, 법정에서 포오셔가 말했던 유명한 대사를 아래에 옮긴다.


이 증서엔 피는 단 한 방울도 적혀 있지 않소. 여기에 명기되어 있는 말은 '살 1파운드'요.
증서대로 살은 1파운드만 떼어 가시오. 단 살을 떼어내면서 기독교도의 피를 한 방울이라도 흘린다면
그대의 토지와 재산은 베니스의 법률에 의하여 국가에 몰수당할 것이오.

ㅡ 121쪽, 4막.



통쾌한 답변이지만 역시 그 속에는 기독교도라는 말이 들어 있다. 유대인 샤일록이 예수쟁이라 비난하
는 기독교도. 그리고 반대로 기독교도들이 차별하는 유대인. 결국, 샤일록이 법정에서 패소했을 때는
측은하게 느껴졌다. 극에는 그의 퇴장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 머릿속에는 쓸쓸한 그의 퇴장모습이
그려졌다. 그래서 생각해보건데 셰익스피어는 과연 재담꾼이다. 분명히 시대상을 반영하여 적랄하게
유대인을 꼬집어내어 시원하게 해주면서도 법정에서 느껴지는 샤일록의 모습은 또한 사람이었다. 자꾸
그 등장인물을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 그가 의식적으로 만든 인물이건 아니건 간에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힘은 언어유희뿐 아니라 강렬한 등장인물도 한몫을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상적인 등장인물에 역시 샤일록도 빠질 수 없는 것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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