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꽃밭
최인호 지음, 김점선 그림 / 열림원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최인호의 글. 그리고 김점선의 꽃그림. 원숙미 넘치는 두 예술가의 만남은 책표지처럼 화사한 기분좋음
이다. 참으로 잘 어우러져 이 책은 꽃으로 수놓아졌으며 삶에 애정을 가진 이들의 향기마저 느껴진다.
최인호 하면 유명작가로 그의 책을 읽지 않았어도 드라마, 영화의 원작이 그였던 것이 꽤 많아 익히
들어 보았을 것이다. 해신, 별들의 고향 등 이름만 들어도 인기가 많았던 작품들이다. 그런 그가 이 책
에서 산문형식을 빌어 재미있고도 마음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아프고 나더니 더 아름다워진 김점선의 꽃그림을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그의 작품
을 보고 예쁘다는 생각보다는 흥미롭고 시(詩)적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의 꽃그림은 하나하나
가 다 아름다웠다. 십자모양에서 피어나는 꽃은 그녀의 영혼에서 끌어내는 열정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작가의 꽃밭을 들여다보니 그의 일상과 생각부터 소중한 이들, 은사. 그리고 아내의 이야기가 살갑다.
특히나 인상적인 건 아내에 관한 이야기들. 아내의 현명함과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작가의 애틋함은 본
받을 만하다. 세월을 오래도록 견디며 서로 친구처럼 정을 쌓아오지 않은 젊은 작가였다면 이런 글이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의 불친절을 고치는 방법을 가르쳐줄까요?" (아내)
"그게 뭔데?" (작가)
"간단해요. 그건 내가 더 친절하게 그 사람을 대하는 거예요." (아내)
ㅡ 55쪽, 나는 왜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中
진정한 사랑이란 달콤한 시간뿐 아니라 씁쓸한 시간 또한 함께 지내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진정으로
서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오롯하게 이해하려면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그런 노력을
여러 해 이어온 세상 모든 노부부의 모습은 뒷모습만으로도 매우 아름답다.
또한, 산문의 특성답게 작가의 인간미가 느껴져서 읽는 내내 포근했다. 그뿐 아니라 작가의 정치에 관
한 생각이나 솔직함과 유모까지 도드라졌다. 갑자기 봄쯤에 읽었던 박완서 작가의 <호미>가 살짝 겹쳤다.
자연스레 내 꽃밭은 어떤 상태일지를 돌아보았다. 지금을 올곧게 보내야 미래의 어느 날에 내 삶을 돌
아보며 여유 있게 웃을 수 있을 텐데. 꽃만 가득인 거보다는 적당히 잡초도 나고 그늘도 있고 나비나 벌
도 쉬었다 가면 더 바랄 게 없겠다. 그러기 위해서 역시나 오늘을 살아야 한다.
모든 것을 아쉽지 않을 만큼 갖고 있다 하여도 마음에 꽃씨 하나 심을 자리가 없다면 얼마나 가난한가.
이제라도 꽃씨 혹은 자그마한 어떤 씨앗이라도 뿌리내릴 수 있도록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 내 심장에
흐르는 새빨간 피처럼 붉은 꽃잎이... 볼의 홍조처럼 발그레한 짙은 복숭앗빛 열매가 가득 여물어 타인
에게까지 그 향기를 날려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 꽃밭의 울타리부터 걷어치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