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저녁 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였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 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 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4340.09.07.쇠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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