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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사 1
한승원 지음 / 열림원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글씨에 대한 굳은 신념. 그리고 인간 추사!
추사체로 학창시절 배웠던 추사 김정희의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두 권이지만 내게는 너무도 짧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수많은 역사 속 인물 중 제대로 알고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 것인가. 그리고 그
한 명조차도 왜곡되거나 이미지화되어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사 그렇더라도 그 속에서 각자가 찾
아낸 의미는 다를 것이다. 내게 추사 이야기는 가슴에 깊이 새겨졌다. 한승원 작가가 그려낸 그의 모습
은 너무도 인간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첫 장부터 글씨를 쓰고자 마음을 다잡으려 힘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봉은사 전각에 쓸 글씨
때문이었는데 이야기의 끝과도 연결된다. 판전(板殿)이라는 글을 쓰고자 그는 온정신을 기울였던 것이다.
그의 고뇌를 마주하며 '도대체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 게야?'라고 몇 번이나 자문(自問)해 보았는지 모른다.
살아간다는 것은, 화해 없는 영원한 싸움을 치르는 것이다. 싸움을 걸고 있는 모든 적의 얼굴은 비가시
적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ㅡ 450쪽.
나 또한 비가시적인 것들과 얼마나 싸워왔는지 모른다. 가끔은 그조차도 잊어버린다. 그런 순간은 이미
그것들에 지배당한 후였겠지만.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지 않고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순간의 편리한
게으름으로 삶을 낭비한 것이다. 추사의 모습은 딱 정신이 번쩍 드는 채찍이었다.
새삼스럽게 추사의 글씨를 찾아보게 되었는데 앞으로 꾸준히 추사관련 자료에 관심을 둘 거 같다. 그의
글을 마주하며 마음의 심지가 꺼져갈 때마다 온 마음을 모아 써간 그의 글씨처럼 꿋꿋해지고 싶다.
추사에게 글쓰기는 모든 것이자 그를 지탱하는 원동력이었다. 유배되어 제주도로 가는 뱃멀미 속에서
도 하늘을 보며 글씨 쓰는 생각에 집중했으며 지네에 물려 정신이 아득할 때도 글씨를 쓰며 이겨내었
다. 그러니 꿈에서조차 글씨가 선명하게 자리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추사라는 한 남자가 평생 글씨를 써오면서, 닳아져 못 쓰게 되어버린 몽당붓이 몇백 자루나 되는 줄 아
느냐? …… 천재는 없고 신을 향한 도전이 있을 뿐이다. 사람은 남자이건 여자이건 내 손으로 세상을 바
꾸어 놓겠다는 의지와 열정을 가져야 한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물의 흐름, 바람의 흐름을 바꾼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비추는 햇살의 색깔을 바꾼다는 것이다. (이하 생략) ㅡ 454쪽.
초의와의 우정. 그리고 인덕.
해붕, 초의와의 만남에서 오십대의 해봉 스님과의 토론 모습에서 거침없는 추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순간 초의는 서른 살 동갑의 추사를 옆에서 묵묵히 지켜본다. 초의와 추사의 우정은 유명하다. 재미
있게도 둘은 ㅊ으로 엮은 벗들이란 우스운 생각도 들었다. 거기다 추사의 여인인 초생까지 더하면 ㅊ이
세 명이지만 말이다. 첫 만남에서 추사와 초의는 이미 서로를 알아본다. 이들이 서로 얼싸안고 웃는 대
목에선 나도 기분이 좋았다. 진정한 벗과의 시간이란 얼마나 향기로운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초의가
끓여주던 차의 향기도 그러했을 것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온 정신을 일깨우던 차 한 모금. 정신을 나눌
수 있는 벗이 참으로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추사 김정희는 그저 천재로 한 시대를 풍미했거니 생각했는데 그야말로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진
풍파를 거친 이였다. 두 번의 유배를 당하는데 그 유명한 안동 김씨 세력 때문이었다. 추사는 암행어사
도 했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으며 무학대사의 비라 알려진 비석을 찾아가 그것이 신라 진흥왕의 순
수비임을 밝힌 사실도 알게 되었다. 글씨, 그림, 시가 다가 아니었다.
당시 시대가 드러나면서 정치, 문화뿐 아니라 양반과 상놈의 신분도 빠지지 않았다. 첩인 초생의 아들
로 태어난 서얼 자식 상우를 걱정하는 아비의 마음도 참으로 짠했다. 세파에 절대 굴복하지 않았던 그
는 두 번의 유배생활 기간에도 풍토병과 싸우면서 글씨 쓰고, 난을 치는 등 삶의 끈을 놓지 않았다.
추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인덕이 있었다. 물론 악연도 있었지만 오랜 유배기간 동안 그가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때마다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이었으리라. 중국에 가서 만난 이들도 그렇고 또한 이름 모를
수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은 것이다.
이 책은 확실히 인간적인 추사를 그리고 있다. 그래서 가끔은 추사와 작가가 혼연일체가 되어 깊은 연
못으로 나를 데려가는 거 같았다. 어디까지가 추사고 어디까지가 작가인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작가란 누군가의 정신이 깃든 순간이 오면 이를 놓치지 않고 글을 쓰며 그렇게 독자에게도 그 정신이
전해진다는 것! 나는 이 책에서 인간적인 추사로 끝나지 않고 그 정신을 본받고자 한다. 오랜만에 참 가
슴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