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꼬르뷔제의 손
앙드레 보겐스키 지음, 이상림 옮김 / 공간사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건축가 르 꼬르뷔제의 탄생 100년을 맞아 앙드레 보겐스키가 집필했다. 저자 역시 프랑스
건축가로 스무 살에 무작정 파리의 르 꼬르뷔제의 스튜디오를 찾아가 그와 대화를 나누고 그날로
그와 함께 일하게 된 인연을 갖은 사람이다. 그때부터 20년간 함께 일했으며 30년간 우정을 나누었
다.

 건축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 중 한 명이며 지금도 끊임없이 추종하는 사람이 많은 건축가가 바로
르 꼬르뷔제이다. 그만큼 현대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흔히 일컬어지는 주상복합건물의 아버지로
도 불린다.

 나는 르 꼬르뷔제의 건축물을 보아도 별다른 감흥은 없지만 어째서 이토록 사람들로 하여금 자꾸만 그
를 되새기게 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예전부터 그에 관한 책을 꼭 읽고 싶던 차에 이 책과 만났다. 그
러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의 건축물을 사진으로 만날 수도 없었으며 다만 그의 주변인이었던 사
람을 통해 그가 얼마나 건축에 몰두했었는지를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 건축가 르 꼬르뷔제이기보
다는 인간 르 꼬르뷔제를 만난 셈이다. 게다가 그역시도 지중해와 관련이 있었다. 지중해와 관련된 인
물만 보면 관심이 간다는 것이 우습지만 말이다. 그는 남프랑스 지중해에서 수영중 사망했다.


때가 되어 수면을 다시 높이기 위해 바다는 간조 때 낮게 내려간다.
새로운 시간은 새로운 국면, 새로운 주기, 새로운 교체를 맞이한다.
이때 우리는 삶의 한구석에 그대로 앉아 있으면 안 된다. (26쪽, 르 꼬르뷔제.)



행위의 결과는 행위의 질적 가치에 있다네.
우리 직업을 예로 들자면,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했을 때, 그 결정 자체는 결과의 가치나
우리가 작업할 때 우리 스스로에게 하게 되는 요구보다는 중요하지 않다네. 일을 잘 하고
자 하는 노력은 집을 지을 때와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형성하게 되어 있다네.
결과의 가치는 자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네. (31쪽, 르 꼬르뷔제.)



 끊임없이 고뇌하고 노력하는 그의 모습이 이어지며 생의 마지막까지 드로잉과 관찰, 아이디어를 수많
은 스케치북에 채웠다. Open Mind! 그의 모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열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어
쩌면 타고난 것이기보다 노력에 의한 것이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가 주의 깊게 지켜보던 동시대인 중 한 명인 피카소와의 만남에서 이들은 서로 배려하고 자신을 낮
추었다. 역시 통하는 것이 있었던 것일까. 특히 르 꼬르뷔제는 그림을 그리려고 했었다가 건축에 들어
섰기에 피카소에게 더 관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내성적이며 내면세계에 빠진 사람으로 자기방어적이었던 그의 건축물을 보노라면 왠지 적막하고 고독
한 현대인이 떠오른다. 그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답다고 찬사받는 빌라 사보아의 느낌도 별반 다르지 않
다. 기능이나 구조, 재료 등을 떠나 느낌만으로 말하는 것이다. 이런 것까지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일반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명의 창조적인 사람의 내면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의 열정이 부
럽기도 했다. 그에게는 건축이 있었다면 내게는 무엇이 있는 것일까….


건축은 다른 모든 예술처럼, 사유된 형태를 유형의 것으로 변화시킨다. 구체화된 생각인 것이다.
사유가 깊고 강할수록 건축적 형태는 더욱 아름답다. (80쪽, 앙드레 보겐스키.)



 책의 소제목은 주제끼리 이어져 있으며 르 꼬르뷔제의 손 사진도 볼 수 있었다. 불어판이 아닌 미국 출
판본을 번역해서인지 솔직히 재미는 없었다. 또 전문 번역가가 아닌 건축가가 번역을 했기에 건축에 관
심이 없는 일반인이 읽기에 지루할 수 있다. 그의 건축사진을 넣고 더불어 불어 전문 번역가가 원본을
함께 풀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책이다.

 그렇더라도 르 꼬르뷔제를 좋아한다면 손이 갈 수밖에 없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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