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 전예원세계문학선 셰익스피어 전집 14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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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셰익스피어의 이야기가 그렇듯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이야기도 오래전부터 영화 등을 통해 알고 있
었으나 책으로 읽는 것은 처음이었다.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클레오파트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검은 단발머리, 짙은 화장, 도도한 콧대 높은 여왕, 독사 그리고 비비안 리!
그녀만큼 클레오파트라에 잘 어울리는 역할은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클레오파트라의 이미지와 달라서 처음에는 싱겁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도도
하고 차가운 열정의 소유자로 카리스마 있는 여자로 생각했던 것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지금까지 그렇
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결국, 내가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 온 이미지
는 영화와 말로 전해지는 그녀의 콧대 높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미 만들어진 그녀의 이미지만
을 나는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한가지 내가 간과한 것은 아무리 영
웅이더라도 사람인 이상은 다양성이 공존한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역시 클레오파트라 하면 도도함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래서 인물 탐구가 필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그려진 클레오파트라는 도도함보다는 사랑에 빠진 여인인 동시에 교활한 기회주의자의 모습도
있으며 상대방 앞에서는 궁시렁거리면서도 온 힘을 다하는 열정적인 모습이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
품인 <로미오와 줄리엣>이 생각나는데 그들이 순수한 청춘의 사랑이었다면 이 작품은 풋풋함보다는
성인의 일반적 사랑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일반적 사랑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전
체적으로 사랑하는 이들이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같은 선택을 하지는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
다고 이들의 사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보다 순수하지 않다거나 성숙하다고만은 말하지 않겠다.

 내가 여기서 중점을 둔 것은 이들의 태도나 심리이다. 때로는 이해하지 못하고 싸우며 헐뜯기도 하는
과히 어울리는 한 쌍이다. 앤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두 인물의 갖가지 성격을 들여다 보는 것이 관건이었
다. 안토니는 영웅이며 용맹하고 호탕하며, 클레오파트라는 도도하고 지혜로우며 아름답다. 이들의 공
통점은 불같이 이글거린다는 것이다. 이들의 대사에서 때로는 용맹함과 사랑스러움을 느꼈다. 동시에
영웅이나 여왕이기보다 사랑에 빠진 남녀임을 볼 수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사랑을 택하고 기꺼이 죽는
모습에서 그녀의 고결함이 느껴졌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사랑을 선택하고 독사에게 물렸다고 생각
한 적이 없었다. 물론 클레오파트라에 대한 견해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로마인 이야기>를 참고
해도 될 것이다.

 남녀 간의 사랑에 환상을 품고 있는 나이가 지나서일까. 내게는 이들의 아옹다옹하는 모습이나 질투와
의심까지도 현실적으로 느껴져서 한 세기의 영웅보다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 영웅이라고 화내지 않는
다거나 미인은 이슬만 먹고산다는 식의 따분한 이야기는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집트의 이 억센 족쇄를 부숴 버리지 않는 한 사랑에 넋을 잃어 내 일신을 망치고 말 것 같다.
ㅡ 31쪽, 앤토니의 대사.



인간의 분별력이란 운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인가 보다. 외면이 내면을 질질 끌어 그만 운명이 곤
두박질하면 분별력도 맥을 못쓰는가 보군. 시저여, 당신은 앤토니의 분별력마저 정복하셨군!
ㅡ 127쪽, 이노바버스의 대사.



 앤토니가 말한 이집트의 이 억센 족쇄는 바로 클레오파트라이며 결국 그는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
이들의 사랑 이야기는 아름답게 느껴지기보다 처연하다고 느껴졌다. 여장부의 모습을 기대한 편견 때
문인지 생각만큼 집중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읽다 보면 늘 느끼지만 등장하는
여성들이 과히 만족스럽지는 않다. 시대가 다르기 때문일까? 그렇더라도 그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언어유희는 언제까지라도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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