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변풍경 - 박태원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0
박태원 지음, 장수익 엮음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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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로 만난 박태원의 또 다른 작품으로 이 책을 선택했다.
전작과는 다른 특징을 보이지만 구보 씨가 돌아다닌 서울을 잘 묘사했듯이 여기서는 천변풍경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청계천 빨래터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는 각 인물의 내면과 생활을 풍부
하게 보여준다. 지금의 복원된 청계천을 보노라면 과거의 청계천의 모습과는 다르겠지만 상상만으
로도 1930년대 서울의 청계천 풍경이 눈에 보듯 선하게 펼쳐진다. 때로는 시대를 잘 포착해낸 것이
조정래의 『 아리랑 』을 떠올리게도 했다. 많은 등장인물 그리고 하나로 연결되거나 스쳐 지나는
이들의 일상이 친근하다.

장편소설로 약간 두툼한 이 책은 재미있게 쓰여서 읽기에 편하다. 짧은 내용 그리고 여러 등장인물은
따로 혹은 함께 그 시대를 살고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닌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시
간, 공간 등에 따라 솜씨 있게 버무렸다. 한 이야기의 주변인이 다음 이야기에서는 중심으로 두드러지
는 등의 시도는 영화에서 드러나는 파노라마 같은 인상을 준다. 곧 모두가 주인공이다.

여전히 그와 그녀의 구별 없는 사용의 묘미와 지금을 사는 우리와도 동떨어져 있지 않는 모습이기에 낯
선 말투도 구수하게 들려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기미꼬와 하나꼬, 금순이 이야기였다. 각자
의 사연이 있고 한집에서 살게 되었으나 머지않아 하나꼬는 시집가고 금순이도 부친과 남동생을 극적
으로 만나게 된다. 그리고 기미꼬라는 인물은 지금으로 적용하면 씩씩한 독신주의자 정도가 되지 않을
까 싶다. 가장 따뜻했기에 이들의 이야기가 시선을 사로잡았을 것이다.

시골서 온 아이 창수가 전차도 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지금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지금도
지하철이 없는 지방에서 서울에 처음 오면 지하철 타기부터 익혀야 하니까 말이다. 일상적인 모습을 들
여다 보는 것은 재미있다. 그래도 다행하게도 그때보다 인식 같은 것이 더 진보해서 남편의 말에만 복
종하거나 하지 않으니 얼마나 그때보다 나은 세상인가. 그러나 그때처럼 훈훈한 정이 더러는 각박해진
도시화, 근대화로 거칠어졌음은 안타깝다. 사실 배경이 되는 1930년대도 이미 근대화의 물결 속에 있었
다. 누구를 위한 근대화였든 잘살고자 하는 마음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이래저래 소시민의 삶은 고단하
지만 세태소설로 탄생한 그들의 삶은 고단함, 즐거움이 함께 스며있다.

작가 박태원은 6.25 이후 월북했고 그래서인지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적어도 내가 학교를 다닐 때는 그
랬는데(지금은 그렇지는 않은 거 같다.) 늦게라도 접하게 되어 좋았다. 그의 역작 『 갑오농민전쟁 』은
권 수가 많아서 아직 읽어보지 못했지만 그 책까지 읽어보고 싶다. 그의 소설에서 나타나는 소시민의
애환과 일상풍경은 문학적으로도 필요하며 이 책의 경우는 재미도 있으니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시대
를 제대로 반영하는 작가야말로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구보의 친구가 그에게 말했었다. (소
설가 구보 씨의 하루에서) "좋은 소설을 쓰시오." 그 친구의 바람처럼 박태원은 좋은 소설을 썼다.
친구는 이상(李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만하면 되지 않았을까요, 이상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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