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작년 서울 국제도서전(SIBF 2006)에 갔다가 열린책들 부스에서 『향수』(반양장)를
다시 구입했다. 지금도 계속 읽히는 이 책은 이후 양장본이 나왔으며 표지도 아름다
운 여인사진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내게는 이 책의 새하얀 표지가 마음에 든다.
쥐스킨트의 소설에는 작가의 내면이 반영되었듯 이 작품도 마찬가지임을 새삼 느낀다.

진드기는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신의 은회색 몸체를 공처럼 말고 살아가는
작고 기분나쁜 벌레였다. 그는 제 몸에서 아무것도 빠져 나가지 않도록, 아무것도 발산되지 않도록 해
주는 매끄럽고 단단한 피부를 갖고 있다. 게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극히 작게 몸을 유지함으로써 어
느 누구한테도 발견되지 않고 어느 누구한테도 밟히지 않는다. 진드기는 홀로 몸을 동그랗게 말고 나
무에 웅크린 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단지 코로 냄새를 맡을 뿐이다. - 37쪽


주인공 그르누이의 상태를 말하고 있지만 작가도 그처럼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활발히 하지 않으며
폐쇄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물론 그의 지인들에게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또 아래의 글에서 보이듯
작가가 선택한 의사소통 방법은 그의 글이었다. 입으로 뱉어나오는 말을 포기하게 된 것은 그르누이나
작가나 매한가지라 생각한다.

냄새로 인지할 수 있는 세계의 풍부함과 언어의 빈곤함으로 인한 그 모든 이상한 불균형들로 인해서
그르누이 소년은 말의 의미를 포기하게 되었다. - 43쪽


18세기 유럽이 배경인데 그 시절을 그저 낭만적이고 격동적인 시대로만 여기는 것은 극히 일부일 뿐이
다. 그 시대는 온갖 냄새로 점철된 때였는데 쉽게 베르베르의 『나무』에서도 나오는 이야기 중 시간여
행이 가능해서 중세시대로 떠난 사람이 낭만이 아닌 온갖 오물 냄새와 비위생을 경험하는 모습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유럽문화와 향수역사의 관계를 생각하면 향수가 발전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 향수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을 갖는다. 주인공 그르누이의 욕망이자 이상추구이기 때문이다.
향기 없는 몸을 갖고 태어난 위험한 천재 그르누이는 온갖 향기를 분석하고 그것이 낙이다. 그러나 사
람들 속에서 나와서 동굴생활 중 자신의 향기 없는 몸을 의식하고 다시 끔찍하게도 싫은 사람들 속으로
향하게 된다. 내 세계에는 없는 그것을 갖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나 있다. 그러나 여기 사람의 사랑이나
기타의 감정은 전혀 모르며 향만이 전부인 그르누이는 위험한 욕망을 품게 되고 결국 성취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루게 된다. 사실 그 대가마저도 스스로 선택한 결과임을 볼 때 그는 천재적 능력이
지나친 나머지 그 이외의 것은 결핍이 상당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욕망을 채웠으나 회의감에 자신을 소
멸시킨다. 숭고하진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이상을 추구한 미치광이 천재였다.

그르누이가 만나게 된 사람들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모친은 그를 악취나는 생선 더미 속에 버렸는데 이미 태어남이 축복이 아니었으며 애초에 사랑이
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죽었다. 첫 번째 유모는 그가 냄새가 없다고 버렸으며, 두 번째 신부에서 세
번째 유모인 잔느 뷔시에게 맡겼는데 오히려 그녀가 그의 친 모친 같았다. 그리고 그의 성격과도 유사
하다. 네 번째 무두장이에서 다섯 번째 발디니 그리고 여섯째 후작과의 만남. 또 일곱째 아르뉠피 부인
과 드뤼요의 만남과 마지막의 리쉬까지. 그들은 평범한 이 들으며 어떤 이는 작은 소망을 갖고 있거나
반대로 거대한 욕망을 갖고도 있었는데 인간군상의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원하는 이상을 추구
하거나 근접했을 때 혹은 어이없는 일을 당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들은 모두 소멸한다.

유럽을 휩쓴 우울한 역사를 우리는 알고 있다. 전염병 페스트, 전쟁, 마녀사냥 등. 특히 엽기적이기까지
했던 야만성은 이 책에서도 드러나는데 바로 사형집행 날의 광경이 그것이다. 사람들의 행동은 너무도
추했는데 작가는 시대를 풍자한 동시에 조롱했다. 그 순간 그르누이가 모두를 향해 조롱적인 웃음을 날
린것처럼.

자신을 심판한 우울한 천재 그르누이가 쉬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이상추구를 위한 그의 열정 때문이
라고 생각한다.

꽃 중에서 가장 고귀한 꽃이라서 그런지 이 꽃들은 자신들의 영혼인 향기를 쉬게 내어 주려하지 않았
다. 때문에 향기를 얻으려면 그러한 특성에 걸맞는 방법으로 꽃을 달래 주어야만 했다. - 271쪽


이렇듯 그르누이는 꽃에 대한 열정과 관심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남다르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에 다
가서는 방법을 모르는 이였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으며 관심도 없었다. 모르면 생각조차 할 수 없으
니 그에게는 사람, 영혼, 사랑 이런 것은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이 향기라는 것을 알고 있었던 반면,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이 바로 <나>라
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자신들이 진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그들은 영원히 모를 것이다. - 375쪽


그르누이가 그의 모든 것이 향기임을 알고 추구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의 말처럼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나도 저들 중 하나가 되지 않으란 법은 없다. 열정이 때로 무모하더라도 그 열정을 앓아
보는 쪽을 선택하는데 의지를 싣겠다.

역시 쥐스킨트는 타고난 재량으로 장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지루함을 주지 않는다. 초자연적인 향기처
럼 독자를 끌어들이는데 다른 작품에서도 느낄 수 있는 인물의 내면상태가 흥미롭다. 심리적 묘사는
많은 대화말과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준다. 열정이 응축된 『향수』에서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를 덮으
며 내 몸의 향기는 어떻게 퍼져 나가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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