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내 혀가
작설이 되기를 바란 적이 있었으나
가난한 벗들의
침묵의 향기가 되기를 바란 적이 있었으나
우습도다.
땀 흘리지 않은 나의 혀여
이제는 작살이 나기를
작살이 나 기어가다가
길 위에 눈물이나 있으면 몇 방울 찍어 먹기를
달팽이를 만나면 큰절을 하고
쇠똥이나 있으면 핥아먹기를
저녁안개에 섞여 앞산에 어둠이 몰려오고
어머니가 허리 굽혀 군불을 땔 때
여물통에 들어가 죽음을 기다리기를
내 한때 내 혀가
진실의 향기가 되기를 바란 적이 있었으나

* * *

두 번째 찾아간 성남의 정형외과에는 예약하지 않고 가서 대기시간이 길었다.
엄마는 환자대기석에 앉아계시고 나는 조금 떨어진 일반석에 앉아 시집을 읽고 있었다.
정호승의 <나의 혀>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보고 있었다. 그러다 옆에서 폴짝 거리는 소리와
또 쪽쪽 거리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6살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앉아
서 기다리는 다리깁스를 한 엄마에게 뛰어올라 연신 입맞춤을 하는 소리였다. 아이는 나비처
럼 '폴짝' 뛰어올라 엄마의 입과 볼에 '쪽'소리를 내며 신나게 계속해서 뽀뽀한다. 하나의
놀이처럼 지칠 줄 모르는 아이와 엄마.

'엄마가 그렇게 좋아?'
..........................

대답없이 싱긋 웃더니 또다시 그 놀이에 열중이다. 엄마는 아이에게 병원에서 너무 정신없이
굴면 안 된다며 앉아있기를 권하지만 아이는 계속 서 있다. 그러자 엄마는 병원이 어떤 곳인
지 그럼 살펴보고 오라며 아이를 보낸다. 아이가 돌아오자 이번에는 환자들을 쳐다보기 시작
한다. 그리고는 나비처럼 양팔을 쭉 펴더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며 논다. 춤을 추듯 재미
있게 말이다. 아이가 너무도 귀여워서 계속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행동이 이해되었다. 아이
의 눈에는 병원의 환자들의 모습이 춤추듯 보였을지도 모른다. 다리에 깁스를 한 환자가 많으
니 자연스레 외발로 폴짝거리고 콩콩콩 뛰어가는 사람이 여러 명 보였다. 아이도 한발을 들어
폴짝이다가 다시 제자리에서 돌았다. 아이에게는 이 모든 것이 즐거운 놀이의 일부이다. 아이
엄마는 내내 웃어주고 있었다.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아이 덕으로 빨리도 지나갔다.
공공장소에서 마구 소리지르며 울거나, 산만하게 뛰어다니는 아이는 싫지만 저런 아이라면 얼
마나 예쁜지 모르겠다. 거침없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낯선 이에게도 웃어줄 수 있는 마음
을 가진 아이.

나도 어릴 때는 그런 아이였을까. 엄마에게 그런 웃음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엄마가 내게 웃음을 주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엄마의 앉은 뒷모습을 바라보니 죄송하다.
그래도 아시리라 생각한다. 사랑해, 엄마.

-4340.01.13.흙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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