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몇 장의 편지를 쓰자
찬물에 머리를 감고
겨울을 나는 법을 이야기 하자
가난한 시인의 새벽노래 하나쯤 떠올리고
눅눅한 가슴에 꽃씨를 심자
얘야, 우린 너무
나쁜 습관처럼 살아왔어
아무리 빨리 달려가도
길은 끝나지 않는데
늘 채워두는 것 만큼 불쌍한 일이 어디 있어
이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생각해보자
큰 것만을 그리느라
소중한 작은 것들을 잃어온 건 아닌지
길은 길과 이어져 서로 만나고
작은 것들의 바로 곁에 큰 것이 서 있는데
우린 바보같이 먼데만 바라봤어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이 바로
온 세상을 만나는 일인데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온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데
우린 참 멍청했어
술잔에 흐르는 맑은 도랑에 대해
왜 이젠 아무도 말하지 않는거지

마주 앉을 시간마저 없었는걸
그래
얘야, 오늘은 우리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자
겨울이 오기 전에

[ 백창우, 겨울이 오기 전에 ]


그녀가 쓸쓸하고 외롭다고 한다.
무엇에도 정붙일 수 없을 만큼 허우적거려 이 가을마저 싫다고 한다.
그래서 내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
.
.
답장을 보냈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쓰라고.
그리울 때마다 썼다가 모아서 전해주라고...
그녀의 그리움의 대상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야말로 편지를 써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시인의 말처럼 겨울이 오기 전에 말이다.


- 4338.11.14. 달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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