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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살기 힘들다.’ 많은 한국인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실제로 그들의 호소는 엄살이 아니다. 통계에 따르면, 가구당 부채는 무려 3841만원이다. 전체 가구 빚이 640조원을 넘어섰는데, 지난해에 비해 벌써 9조원이나 증가한 수치다. 경제 성장률은 4%로 예상되는 가운데 물가는 5% 이상 인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어두운 그림자라 어른거린다. 하지만 시민들의 하소연이 엄살이 아님을 보여주는 더 중요한 지표가 있다. 바로 양극화 지수다. IMF직후 97년 0.0485에서 2004년 0.1032로 증가한 이후 떨어지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정권 시절, 평균 실업률은 3.6%에 불과했지만 체감 실업률은 무려 8%에 달했다. KDI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중산층 10명 중 한 명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한국의 빌게이츠 증가로 국가 평균 소득은 계속 증가하지만 나머지 시민들은 더욱 살기 힘들어지는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현상이 극명해지고 있다.
너무 힘들었던 국민들은 결국 이명박 후보를 선택했다. 거짓말을 하건, 위장전입을 하건, 과도하게 많은 재산을 갖고 있건 상관없이 경제 하나만 살리라는 게 국민들의 바람이었다. 물론 여기서 경제라 함은 거시적 경제 지표만이 아닌, 오히려 서민 개개인의 지갑 두께를 의미한다. 대통령도 국민들의 욕구를 모르지 않았던 것 같다. 선거 당시 홍보 영상에서 국밥 할머니의 입을 빌어 경제 살리기 운운한 것 보면 말이다. 하지만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분석에 따르면 불행하게도 국민의 선택은 완전히 잘못됐다. 아니 최악의 선택을 하고 만 것이다.
폴 크루그먼은 그의 신작 <미래를 말한다The Conscience or a Liberal(원제; 진보주의자의 양심)>에서 미국 사회의 양극화를 철저하게 분석한다. 현재 극심한 양극화의 원인은 무엇이며 해결책은 무엇인지를 약 100년에 걸친 미국의 정치경제적 역사를 통해 파헤친다. 결론적으로 그가 분석한 내용의 요지를 말하자면, 양극화 해소를 시장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정치경제학적인 방법론의 가치를 확인시켜준다. 그는 미국에서 소득 불평등이 완화되거나 약화된 데 있어 정권이나 연방의회권력의 변화, 즉 정치적 변화가 선행했음을 밝힘으로서 경제적 변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순수경제학적인 접근방법이 현상을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옮긴이의 말. P.10)
그렇다면 왜 양극화가 심해진 것일까? 사실 이에 대한 무수한 분석이 있다. 대표적인 분석이 기술 발전에 따른 소득 불균형론이다. 기술적으로 발달한 사회에서는 과거에 비해 숙련된 인력의 가치가 더 높아졌고 이들에게 더 높은 급여가 제공되었다는 것. 하지만 크루그먼에 따르면 이 논리를 뒷받침할 직접적이고 실증적인 근거는 없다고 말한다. 예전에 10명이 할 일을 1명이 할 수 있게 되면서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의미인데, 크루그먼은 이러한 분석은 소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나 규범, 정치권력과 같은 사회학 분야는 완전히 무시한 상태에서 그저 수요와 공급만으로 설명한, 불완전한 분석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양극화가 최소였던 60년대 미국에 초점을 맞춘다. 당시 양극화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미국의 경기가 호황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강력한 시장 개입주의 정책(뉴딜정책)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그는 말한다. 뉴딜정책의 효과는 미국 경제가 한창 호황 중이던 1920년대와 비교하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시기 정부는 시장에 어떠한 간섭도 보이지 않았고 소득 불평등은 극심했다. 그 결과 1920년대는 도금 시대(The Gilded Age)라는 악명을 얻게 됐다.
크루그먼은 양극화를 불러온 직접적인 근거는 오히려 시장이 아닌 시장 외적인 부분의 변화, 즉 제도와 사회규범이라고 말한다. 제도 중 대표적인 것이 노동조합이다. 전통적으로 미국 노동자의 힘은 강했다. 실제로 가장 평등했던 루즈벨트 대통령 시절 (크루그먼은 이 시기를 대압착시대(Great Compression)로 명명한다. 대공황(Great Depression)에 대응되는 용어로 대공황 직후 미국 사회의 소득 격차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는-소득 차이가 압착되었다는-의미다), 디트로이트에서 전미 자동차 노조는 GM과 역사적인 협상을 이끌어낸다. 그 결과 노동자의 권익은 크게 향상되었고, 경영진과 주주는 예전처럼 자신들의 급여를 자유롭게 인상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전후 경기호황이 끝나던 시절, GM의 CEO이었던 찰스 존슨은 현재의 화폐 가치로 환산하면 약 43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았다. 당시에는 호사가의 입방아에 오를 정도로 높은 액수였다. 하지만 현재 월마트의 리스콧 회장의 연봉은 2,300만 달러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기업의 CEO연봉과 비슷한 정도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전후 직후에는 강력한 노동조합이 무차별적인 임금 격차를 막을 수 있는 제도적 힘이 있었다.
더 나아가 당시 사회적 규범이 과도한 양극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반발을 통한 제지’와 같은 사회적 규범이 작동한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힘과 사회적 규범이 완전히 힘을 잃은 지금 불균형을 제한할 수 있는 힘의 붕괴로 노동자와 경영자의 소득 불균형은 점점 심해져 간다. (크루그먼은 실제로 CEO의 연봉 상승에는 경제적 요소보다 사회적 요소가 많음을 루시언 베드척 교수의 책 <성과와 무성한 보수>를 인용해 분석해낸다. 하나 더. 영국 BP사의 CEO연봉은 회사 규모가 반 정도인 미국 셰브런 사 CEO 연봉의 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아직까지 소득 불평등에 대한 사회적 규범이 작동하는 것이다.) 끝으로 크루그먼은 기술결정론자와 세계화론자들에게 반문한다. “기술발전과 세계화가 양극화의 원인이라면 미국의 양극화와 프랑스, 스웨덴의 양극화 정도가 왜 다르게 나타나냐?”고.
아쉽게도 현 정부의 정책은 1980년대 미국의 소득 불평등을 1920년대 도금 시대 수준으로 악화시킨 레이거노믹스와 상당히 닮아있다. 우선 기업들의 세금 감세를 추구한다. 기업들의 세금을 줄여주면, 기업들이 남는 돈으로 투자와 고용을 늘일 것이라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는 과도한 낙관에 근거한 발상이다. 세금 감면이 곧바로 고용과 투자로 이어질 것이란 보장이 없는데다, 부시의 감세 정책에서 알 수 없듯, 감세 효과는 경제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함이 드러났다. 반면 감세 정책 결과 세수가 줄어든 것은 물론이고 불평등은 심화된다. 현 정부는 가끔 시장주의 정책을 고수하다가도 답답한 마음에 시장에 엄청난 정부 간섭을 시도하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기도 한다. 물가 안정을 위한 52개 품목에 대한 관리(한 마디로 정부가 보고 있으니 함부로 올리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정책이나 추경예산 편성 요구 등이 대표적이다. 세계 경제의 악화만을 근거로 현 정권은 시장의 불완전한 작동에 마냥 손을 놓고 있다. 실제로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권이 들어섰지만 세계 경제의 불안으로 인해 고용이나 투자는 전혀 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제도적으로도 양극화 해소가 요원해보이기는 마찬가지. 친 기업적인 대통령의 등장으로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노조의 힘줄이기에 나섰다.(실제로 노동자들은 올해 사측의 태도가 돌변했다고 말한다. 아예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는 불성실한 회사도 급증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산층의 시대가 가능했던 미국의 1950-60년대는 전국 자동차 노조의 강력한 권한과 같은 사회 제도에 힘입었음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현 정권이 보이는 반 노동자적 접근은 결코 국민이 애초에 바랐던 ‘국밥 아주머니 지갑 불려주기’는 불가능 할 수밖에 없다. 동시에 현 정부는 복지 예산 증가에 병적인 민감함을 드러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할 초기, 그는 70년대식 빵 불리기 론을 내세웠다. 우선 기업들이 빵을 불려야 그 빵 부스러기들이 국민들에게도 떨어진다는 의미였다. 기업이 부유해져서 그 기업들이 많은 노동자를 고용해 수익을 분배하고 그 수익으로 또 다시 노동자들은 더 많은 소비를 하게 될 것이라는 원초적인 발상이 이명박 정부의 경제 살리기 모델이었다. 하지만 그 동안 서민들이 힘들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빵의 크기가 아닌, 빵을 나눠주는 기제에 문제가 원인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충분한 복지 예산은 국민들의 지갑을 최소한 도로 유지해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된다.
철저히 미국식 모델을 추구하는 한국. 때문에 크루그먼이 분석한 미국의 양극화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폴 크루그먼의 <미래를 말한다>를 읽고 난 더욱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예리한 분석에 의거하면 현 정부에게 양극화 해소를 기대하는 것은 그야말로 백일몽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우린 현실의 비루함을 억누르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난 허황된 꿈을 가져 본다. 이명박 대통령의 ‘빵불리기론’이 코끼리 뒷걸음질 하다가 쥐 잡는 방식처럼이라도 이뤄지길. 설령 크루그먼과 그에 동조한 내 주장이 헛소리 취급을 받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