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장하준 교수가 또 책을 들고 나왔다. 여기서 '또' 란 의미는 '촘스키가 또 새로운 책을 냈다' 에 사용된 '또'와 비슷하다. 기존의 주장을 더욱 정교하게 포장해 들고 왔다는 의미다. 실제로 장하준 교수의 신작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전작 <사다리 걷어차기>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다리를 걷어차던 사람들이 나쁜 사마리아 인으로 바뀌었을 뿐, 그의 주장은 한결같다. 보호무역으로 성장한 선진국들이 국가 성장에 적합하지 않은 신자유주의 전략을 개발도상국에게 강요한다는 이야기. 하지만 <나쁜 사마리아인>은 보다 심도 있는 비판을 가한다. <사다리 걷어차기>의 주요 비판 근거가 역사적 사례였다면(영국도, 독일도, 미국도 초창기에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다양한 정책들을 전혀 따르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 이번에는 논리적인 이론을 근거로 신자유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사다리 걷어차기>가 장하준 교수 이론의 윤곽을 드러냈다면,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드러난 윤곽의 눈, 코, 입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장하준 교수가 지적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한계도 한 두 개가 아니다. 우선 신자유주의는 실제로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 말해 자유로운 경쟁이 이뤄질 만한 토대가 마련돼있지 않다. 장하준 교수는 이를 '기울어진 경기장' 이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관세 철폐의 경우 개발도상국의 타격이 훨씬 크다. (미국의 관세는 WTO 이후 7%에서 3%로 줄어들었다. 반면 인도는 71%에서 32%로 감소했다.) 지적재산권 보호 강화도 특허가 거의 없는 개발도상국에게 큰 이득이 없는 조항이다. (게다가 보호 기간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업규제가 완화되면서 선진국의 기업들은 활개를 치겠지만, 개발도상국은 활개 칠 기업조차 갖고 있지 않다. 금융자유화도 마찬가지다. 개발도상국으로 들어오는 금융자본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얘기하는 것만큼 경제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자본의 유동성 위험-외국 자본이 한 번에 빠져나갈 위험- 은 둘째치고, 외국인 직접투자의 경우도 인클레이브 시설투자-해당 지역 노동자들에게 단순 조립 업무만 맡기는 방식의 투자-로 인해 파급 효과가 미미한 경우가 많다.) 민영화도 국영화 오류의 해답이 될 수 없다. 독점 민영화 기업이나 정부의 보조를 받는 민영 기업의 경우 국영 기업의 모순을 그대로 지닐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민영화/국영화 구분의 소유 방식이 아니란 의미다. 공기업의 문제점은 민영화가 아닌 방식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공기업인 르노는 민간기업인 푸조-시트로엥과 직접 경쟁을 벌여 공기업의 폐해를 피할 수 있었다.)
이처럼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하지만 비판이 지나치게 강해서 일까. 논리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낙관적인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세계은행이 주장하는 재정균형강조가 지나치면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국가의 재정불균형은 국가 부도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 부도는 인근 국가의 경제 침체를 연쇄적으로 불러 온다. 때문에 재정불균형에 대한 경계는 엄격해야 한다.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선지자가 20년 재정 미래를 계산해, 당장의 재정 불균형을 14년 뒤의 재정 흑자로 채울 계획을 갖고 있다면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얼마나 많겠는가. 대부분 당장의 인기에 급급해 재정지출을 늘리고, 뚜렷한 대책 없이 부도를 맞은 경우가 그 동안 허다하지 않았던가. 또한 뛰어난 경영인이 국가 도움을 받아 설탕에서 번 돈으로 20년 째 적자를 보는 반도체 사업에 돈을 투자해 국가 기반 사업으로 발전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반도체에서 번 돈으로 자동차 산업에 돈을 투여해 10년 넘게 적자를 보다가, 영영 그 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뛰어나고 현명한 공무원들이라면 국가 주도 하에 현명한 경제 계획을 짜겠지만, 그렇지 못한 국가가 주도하는 사업의 결과는 너무 참혹하다. (우리나라도 공적 자금을 얼마나 낭비했던가.) 바꿔 말해 뛰어난 리더가 나타난다면 국가 주도의 경제 발전이 더 효과적일 수 있지만 무능한 리더가 이끄는 국가의 경우 그 국가의 경제 구성원들이 져야 할 짐이 너무 무겁다.
재벌 역시 마찬가지다. 당장은 재벌이 국가 경제 발전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한국에서 나타났듯, 재벌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져 사회 전체의 시스템을 뒤흔들기도 한다. 장교수의 주장대로라면 재벌의 원활한 경영활동을 위해 금산분리나 순환출자금지 등은 폐지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 소유자가 소수의 지분을 이용해 기업 전체를 지배하는 방식은 소유자가 유능한 경우에만 긍정적인 결과를 나을 수 있다. 반대의 경우 계열사 전체의 동시 몰락을 가져올 수 있다. (동시에 소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경우 경영권 불법 승계의 위험에도 언제나 노출되어 있다.) 6살짜리 아이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다려 줘야 한다는 주장(개발도상국이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는 보호무역을 인정하자는 이야기)도 맞다. 하지만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른다. 보조금을 무조건 부정할 수도 없지만 언제까지 인정해줘야 할지도 애매하다.(현재도 보조금 유예기간은 있다.) 이런 대목은 대안이 없는 비판 같다는 인상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만약 모든 국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폐지하고 보호무역을 펼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한국은 여전히 6.25의 폐허더미를 부여잡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외국 기업의 투자가 끊어지면 방글라데시의 한 소녀는 나이키 공장에서 신발 밑창을 붙여서 벌던 작은 돈도 그 나마 잃게 된다. 모든 국가가 무시무시한 관세를 붙이기 시작한다면, 독일 보다 베트남이 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보호무역주의로의 회귀가 신자유주의의 문제 해결의 답은 아니다. 장하준 교수도 신자유주의 비판을 통해 모두가 보호무역주의로 돌아가자고 말하진 않는다. 우선 장하준 교수는 선진국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파헤쳐 그들의 위선을 폭로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선진국에게 자신들이 사다리를 올라갔듯, 후발 주자들이 사다리에 올라올 동안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첫 번째 과정은 그의 날카로운 논리력으로 충분한 성과를 얻은 듯 하다. 하지만 두 번째 그의 메시지는 매우 정확하지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현실 세계에서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다. <나쁜 사마리아인>을 보고 나니, 현실의 모순을 보면서도 답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 더욱 마음만 답답해진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의 문제점은 이미 만천하에 공개됐다. 다만 이론의 허점을 현실 세계의 힘이 막고 있을 뿐이다. 실제로 허점은 쉽게 발견된다. 얼마 전 말라위의 식량난 극복 사례가 국제적으로 화제가 됐었다. 2년 전만 해도 인구의 1/3이 굶던 말라위가 옥수수 몇 십만 톤을 외국에 수출한 것이다. 방법은 간단했다. 정부가 보조금을 제공해 비료의 공급을 늘렸다. 하지만 세계은행은 이미 10여년 전, 두 차례에 걸쳐 말라위의 비료 보조금 정책을 폐지시켰다. 말라위는 옥수수가 아닌, 수익성 작물 생산에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비료 보조금 폐지로 비료 값은 폭등했고,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말라위의 농업생산량은 감소해갔다. 결국 최근 세계은행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미시간 주립대학은 최근 보고서에서 신자유주의가 그토록 경멸하는 보조금 정책이 성공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제프리 삭스 교수도 "지원을 한다고 나선 이들이 정부의 역할을 빼앗아 재앙이 닥쳤다" 며 세계은행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했다. 이런 사례는 찾으면 무수하게 나오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결코 개발도상국의 경제성장에는 적합한 방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