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복 교수의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 2 - 세계의 와인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원복 교수는 이름이 브랜드다. 그가 책을 내면 전부 베스트셀러가 된다. 우리나라에 이만한 브랜드를 가진 소설가가 누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브랜드 파워의 시작은 스테디셀러 <먼나라 이웃나라>. <먼나라 이웃나라>의 성공에는 이원복 교수가 지니고 있는 브랜드 파워의 실체가 숨겨져 있다. 우선 그의 책은 쉽다. 특히 어렵고 딱딱한 내용을 쉽게 설명한다. 관련 내용에 대한 완벽한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능력이다. 여기에 이원복 교수 특유의 유쾌한 만화적 표현력이 어려운 주제가 갖고 있는 어깨의 힘을 한 번에 빼버린다. 또한 그가 다루는 영역은 상당히 광범위하다.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함께 경제문제를 다루기도 했으며 <현대문명진단>에선 사회학 고전을 쉽게 풀어 설명하기도 했다. 얼마 전에는 인문학의 정수인 철학, 신화, 종교를 다룬 <신의나라 인간의 나라> 시리즈를 내기도 했다.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원복 교수의 르네상스맨적 기질이 완벽히 구현된 특성이라 볼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 번쯤은 그의 책을 읽어보게 됐다.


이원복 브랜드의 파워를 고려할 때, 최근 와인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는 내가 이원복 교수가 쓴 와인 책을 선택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1권인 <와인의 세계>를 먼저 봤고 이후 한 달 정도 후에 2권 <세계의 와인>을 구입했다. 먼저 말해 둔다면 2권을 구입하게 만든 것은 분명 이원복 브랜드의 힘이었다. 1권 <와인의 세계>는 몹시 실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우선 딱딱한 내용도 만화처럼 쉽게 만들어버리는 이 교수의 전기밥솥 효과는 <와인의 세계>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만화책을 읽는건지, 두꺼운 와인 전문 서적을 읽는건지 분간이 잘 안 갔다. 사실 그는 전작에서 세부적인 재미 못지않게 전체의 흐름을 한 눈에 이해하게 도와주는 넓은 시야를 자랑했다. 하지만 <와인의 세계>에서는 설겁게 묶여서 조각조각 형태를 구성하는 짧은 소주제들로 구성되어 있다. 책을 읽어도 봉사가 코끼리 다리를 만지는 듯한 답답함은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와인이라는 주제가 워낙 방대했을 수도 있겠다. 다른 와인 서적과 비교하면 이원복 교수의 책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가 다뤘던 다른 주제들이 언제 한 번 가볍고 쉬운 적이 있었던가. 그가 브랜드 파워를 얻을 수 있었던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커다란 이야기를 한 입에 쏙 들어가도록 만들어 줬기 때문이었다.


2권을 보고 좀 더 큰 실망을 지울 수 없었다. 우선 1권과 겹치는 내용이 많았다. 예전 그의 책에서는 찾아 볼 수 없던 부분이다. 애초에 기획부터 덜 완벽했던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각 국가의 와인을 정리해 놓는 부분도 와인의 역사란 커다란 책을 그저 작게 요약만 해놓은 느낌이었다. 너무나 많은 백과사전식 지식들이 어수선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저자가 유럽에서 유학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유럽이 와인의 고장이란 판단 때문일까. 세계의 와인이라고 하기엔 최근 떠오르는 신대륙 와인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마치 신대륙 와인 설명 부분은 고등학교 국사 수업 시간에, 기말고사 범위에도 포함되지 않아 항상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지나간 현대사 부분을 보는 듯했다.


이원복 브랜드에 이처럼 뒤바뀐 평가를 하는 데는 독자의 변화도 한 몫했단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실용서적의 내용은 둘째 치더라도 백과사전식 정보 사이사이에 얼굴을 내미는 이념이 불편했다. 이미 중앙일보에 <세계사 산책>이란 이름으로 중앙일보 만평 수준의 정치색을 드러냈던 이원복 교수. 와인을 설명하면서도 부지불식간에 자유 무역 및 자율은 미덕이며 시장경제에 반하는 규제는 좋지 못하다는 인식을 끊임없이 강조한다. 정확히 지적할 수는 없겠지만 어찌 신대륙 지역 와인의 성장 이면에 탈규제만이 있었겠는가. 오히려 한 편으로는 유럽에서 와인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했기 때문에, 현재의 전통과 명성을 유지하는 이유가 된 것은 아닐까.


예전엔 쉽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철학에 관심이 있으면 일단 이원복 교수의 <신의나라 인간의 나라>를 읽어봐. 정말 대단한 책이야.” “애가 책을 잘 안 읽으면 일단 <먼나라 이웃나라>를 사줘요. 어느 순간에 얘가 나름 유식해질테니” 하지만 지금 난 와인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선뜻 이 책을 권하기 어렵다. 그가 예전에 비해 능력이 줄어들었던, 땀을 덜 흘렸던 간에 기존의 저작에 비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에 느꼈던 이원복 브랜드 광팬의 실망이 일시적이었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예전에 선배가 김탁환의 리심 2권을 읽고 이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2권 내용이 너무 루즈한게 출판사에서 강제로 3권을 요구한 게 아닌가 싶더라고.” 참으로 소설가에 대한 애정이 담긴 해석이다. 나도 그냥 애정이 담긴 음모론을 제기하고 싶다. “혹시 최근 불고 있는 와인 붐을 이용하기 위한 출판사의 과도하고 조급한 기획이 이원복 브랜드의 진가의 발휘를 방해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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