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계 - 중국의 4대 미녀
왕공상.진중안 지음, 심우 옮김 / ODbooks(오디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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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조금은 귀에 익었던 미인들을 기억해보라면 이렇다. 주지육림() 이란 말도 연못을 술로 채우고 놀던 주왕과 달기의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유흥행위에서 나왔다는 일화가 있는 여인, 중국 역사상 가장 음란하고 잔인한 대표적인 독부(毒婦)로 기록되었다던 주왕의 애첩 달기가 있다. 잘 웃지 않던 애희를 위하여  전시에나 올려야 했던 봉화를 올렸다는 주나라 유왕이 당황하던 신하들의 모습을 보고 포사가 웃자 좋아했다던 일화가 있는 또하나의 여인 포사가 있다.  하나라 걸왕을 꼼짝못하게 했고 비단이 찢어지는 소리를 즐겼다던 미인 말희가 있다. 또하나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우희.. 우미인이라고도 부르는 그녀는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를 위하여 최후의 연을 베풀었고 그 자리에서 자진하였다는 일화가 있는 여인이다. 우리에게는 패왕별희를 통하여 쉽게 다가오는 이름이기도 하다.  중국의 4대미녀라는 말을 들으면서 문득 떠오른 이름들이다. 그녀들이 과연 얼마나 미인이었을지는 잘 알지 못하겠지만 책장을 펼치면서 주요 인물소개 그림속에 나온 서시, 양귀비, 왕소군, 초선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달라진 미인의 조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의 소개글을 처음 보았을 때 그 여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재조명쯤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예견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물론 그 여인들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이야 당연하겠지만 일단은 그 여인들의 한많은 삶에 촛점이 맞춰진듯 보여진다. 여자로서, 한 여인으로써 단지 미인이라는 이유하나만으로 거부할 수 없었던 운명의 수레바퀴에 철저하게 뭉개져버렸던 그녀들의 일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왕의 비로 선택되어져 사랑을 받았든, 그렇지 못한 채 다른 여건속으로 말려들어갔든 그녀들이 꿈꾸었던 것은 오로지 한 남자의 사랑속에서 결실을 맺고 싶어했던 소박한 꿈이었을 뿐이라고 역설적인 대변을 해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랬을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않은 면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여인들의 싯점에서 시절을 바라보는 까닭인지 이야기의 흐름은 약간 더딘듯 하다. 그러니 거두절미하고 이 여인들의 사랑이 어느쪽을 향하고 있는가만 알아채면 될 것 같다. 과연 그 여인들은 어떤 사랑을 원했고 또한 어떻게 사랑을 했을까? 아들의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종내는 자신의 비로 맞아들였던 현종의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양귀비라는 여인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흔히 뇌쇄적인 이미지를 생각하게 되는 양귀비가 여기에서는 오롯이 한 남자의 사랑속에서만 존재하는 여인 그 자체로써만 표현되어지고 있다. 그것도 정신적인 사랑을 우선적으로 그리고 있다. 범려와의 사랑을 뒤로 하고 구천의 복수를 위하여 오나라로 가게 되는 서시의 사랑 역시도 정신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단순히 왕을 유혹하고 육체적인 사랑만을 앞세웠던 여인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 사랑을 위하여 목숨을 거는 사랑말이다.

안타깝게도 결실을 보지 못했던 초선의 사랑은 어느쪽으로도 가닥을 잡지 못했다. 양아버지의 근심을 덜어주기 위하여 동탁과 여포를 유혹하게 되지만 어느 누구에게서도 잠시의 행복을 느끼지 못하니 그또한 마음이 아프다. 동탁과 여포, 그리고 조조에게서 관우에게로... 하지만 미인이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그 쳇바퀴를 돌아야 했으니 누굴 탓할까 싶기도 하고. 욕심을 앞세웠던 화사의 농간으로 인하여 타국에서 반생을 보내야 했던 왕소군 역시도 생각해보면 아련하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적인 속물들은 변함이 없다. 모든 것은 다 변하는 데 어찌 인간만이 변하고자 하질 않는지.. 이런 류의 이야기를 접하다보면 은근슬쩍 화가 나기도 한다. 인간으로써의 의미보다는 도구처럼 전락해버리고 마는 여인의 굴레가 너무도 슬프기 때문이다. 지금세상이 더 나은 것인지 아니면 그 오래전의 세상이 더 나은 것인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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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 세상을 점령하다 - TBWA KOREA가 청바지를 분석하다
TBWA KOREA 지음 / 알마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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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바지가 세상을 점령했다? 어떻게? 하면서도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바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나조차도 지금은 왠만한 자리에 청바지를 입고 다니니 말이다. 청바지.. 어쩌다 시내라도 나가서 돌아다니다보면 그야말로 청바지 세상이라는 말이 맞다. 종류는 왜 또 그리 많은지.. 같은 청바지라도 색이 다르고 워싱처리가 다르고 무엇을 장착했는가에 따라 달라보인다. 거기다 주머니 종류도 많다. 주머니 위치에 따라 청바지의 이미지가 달라보이는 것도 그런데 스티치 기법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보이는 것도 참 신기하다. 스티치를 줄 때 어떤 색의 실을 사용했는지에 따라 또한 청바지의 느낌이 확 달라지는 걸 보면 청바지라는 이름을 가지고 마법을 보여주는 것도 같다. 그 유행에 따라 요즘처럼 밑위길이가 너무 짧아서 자리에 앉았을 때 뒤에서 보기가 민망한 경우도 있지만 청바지를 자신의 개성에 맞게 정말 멋지게 입은 경우는 다시한번 쳐다보게 된다.  

청바지.. 과연 어떻게 탄생되었던 걸까? 단순히 노동자들이 일하기 쉽고 편하게 만들어졌던 옷이라는 것만 알고 있을 뿐 그 탄생의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그런데 천막천이 청바지의 원조였다는 말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천막천이 청바지로 변했다는 거야?... 처음 책을 받아보고 후루룩 넘겨보았을 때 이건 뭐지? 싶었다. 무슨 잡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그것도 내가 가장 싫어하는 광고지면처럼 보여졌다. 에구, 정신없겠다 도중에 포기하고 싶어지면 어쩌지?... 했었는데 왠걸! 오히려 그렇게 조잡스럽게만 보여지던 편집이미지들이 이 책을 읽으며 청바지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아주 작은 그림하나까지도.. 그리고 내가 알 수 없었던 사실들이 그 그림속에 들어 있었으니 새롭게 세계사 공부를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청바지는 왜 블루일까? 의외로 참 간단한 답을 가지고 있었다. 청바지를 청색으로 물들였던 인디고라는 염료가 무엇인가를 알면 바로 알 수 있다.  인간의 오줌으로 발효시켜 사용하는 인디고는 값이 쌌고 햇볕에 잘 바래지도 않았으며 거친 노동으로 긁히고 때가 타도 티가 잘 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육체 노동자들이 아주 오래전부터 청색의 옷을 즐겨 입었다는 이 책의 설명은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었다. 청바지의 역사속에는 인류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종교적인 것도 함께 들어 있었다. 그 청바지 하나로 인하여 많은 것들이 변화되고 또한 많은 문화가 창조되기도 했다는 사실 앞에서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도 참 놀라운 느낌을 갖게 만들었던 청바지의 역사.. 지금이야 블루진뿐만 아니라 블랙진, 화이트진도 많이 보이지만 뭐니뭐니해도 청바지는 블루진이 원조다. 역시 가장 청바지답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가장 놀랍고도 화가 났던 점은 청바지를 통해서 보았던 미국이란 나라의 입김이었다. 미국의 역사와도 나란히 견줄만하게 느껴지던 청바지의 역사속에는 노동자들의 삶 뿐만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화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와 청바지를 통해 또하나의 식민정신이 분포되었으며 은연중에 그들을 추앙하게끔 만들어버렸던 점에 대해서는 경악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실리주의를 추구했던 미국이란 나라의 기업 이윤 추구의 속성이 청바지속에 아주 촘촘하게 박혀져 그것에 대해 감히 저항할 수도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사그러들지 않을 청바지에 대한 세계인의 사랑과 관심.. 마지막 장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이제는 청바지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청바지에게 선택을 당해야 하는 우리가 되어버렸다는 게 사실로 여겨지니 참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요즘 유행어처럼 누가 그랬을까? 하고 묻고 싶었다. 정말 왜 그랬을까? 왜 그래야만 하는 것일까? 그만큼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느껴지던 대목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잡지속에서나 보았음직한 말들에 대해 조금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패션이니 스타일이니 하는 말 따위에는 사실 그다지 관심이 없기도 했거니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겠거니 했었던 까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바지에 대해 새롭게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참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워싱처리 기법이 일본에서부터 시작되어졌다는 것을.. 청바지 하면 대체적으로 미국을 떠올리게 되지만 스톤 워싱 기법이 처음으로 개발된 나라가 일본이며 그 일본의 구라보 인더스트리라는 섬유회사의 제품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데님 제조회사란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브랜드를 가진 청바지회사로 원단이 공급된다는 말에는 부러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린 MP3플레이어인 애플의 아이팟에 내장된 플래시 메모리가 알고 보면 우리의 삼성전자 제품이라는 말에 그 부러움을 애써 눌러보기도 한다. 

실용과 멋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다는 청바지.. 이제 나는 그 말에 이의를 달지 않는다. 패션을 모르는 나에게도 그렇게 보여지니 말이다. 대중성의 대명사, 청바지.. 하지만 청바지에 의해 선택되어진다는 마지막 장에서는 이의를 달고 싶어진다. 정말 미친짓처럼 보여지는 청바지의 가격을 보면서 그것에 의해 선택되어지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아무리 각자의 개성이고 취미이고 특성이라고는 하지만 좀 그렇다. 남들과는 다른 좀 더 독특한 그 어떤 것을 추구한다고는 해도 그 가격을 보면서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다. 청바지속에 그것을 입는 사람의 정신이 있다고는 해도, 청바지가 만들어낸 문화 코드가 다양해졌다고는 해도, 너나 잘하세요 라고 말한다고 해도 서민적인 입장에서 보자면 좀 그렇다는 얘기다. 어찌되었든 새로운 상징과 스타일로 태어날 청바지의 무한한 에너지라는 말에는 공감한다. 청바지만큼 젊음을 표현해주는 매개물도 없다는 말에도 공감한다. 또 어떤 문화를 창조해 낼지도 궁금하다.

청바지.. 우리나라 백화점의 청바지 편집 매장에는 9개 나라,50여 브랜드, 450여 가지 스타일의 바지가 가지런히 걸려 있단다. 이제부터 청바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에 약간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다. 왠지 청바지의 새로운 마력앞에 지름신이 강림하실것만 같은... 옷장을 열어보니 내게도 꽤나 많은 청바지가 있다. 입어야 할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입했으니 나름대로 저마다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청바지들이. 청바지의 새로운 면을 알 수 있었던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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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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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들고 표지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었다. 뭘까 이 느낌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해주던 표지그림을 바라보면서 작가 김정현의 전작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던 중년의 남자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죽음에 대하여 묵묵히 받아들이던 모습.. 그 죽음을 앞에두고 감정적인 처리를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 그랬다. 사람은 정말이지 누구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혼자였다는 걸 알았었다. 어쩌면 늘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싫어 외면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가족간에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었다.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 된다면 나에게도 저 주인공과 같은 처방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럴수는 없다는 둥, 할 수 있을만큼은 해봐야 한다는 둥, 본의아니게 가족간의 다툼이 일기도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랬던 그가 다시한번 눈물 적시는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 같아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미리 마음을 다잡는다.

서용준.. 대학재학중 입대하고 제대에 맞추어 아버지가 쓰러진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하여 예정에도 없던 가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용준은 묵묵히 그걸 받아들였다. 다시 복학할 수 있겠지 하며 기다리던 시간들조차도 그에게는 어쩌면 사치였을까? 아버지를 대신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게 모든 꿈과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하는 길이 되고 말았으니.. 17년이라는 세월을 그렇게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용준에게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어머니와 그의 아내였다. 존재자체만으로도 그에게 하나의 힘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힘겨움을 안아줄 수 있었던 아내의 그 포근함이 있었기에 그가 그 긴 세월을 버티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힘겨워하는 용준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지. 어머니는 어떡하라구요? 당신이 이렇게 마음을 놓아버리면 어머니는 누구에게 마음을 기대고 살아가라는 말인가요? ..  어머니를 위하여, 그리고 묵묵하게 자신 곁에 있어주며 하나의 위안으로 자리했던 아내를 위하여 그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었다. 그러던 그에게 죽음의 사신이 찾아왔다는 건 정말이지 가혹한 현실이었다. 당신 얼굴이 왜그렇게 까맣게 보여요?  그리고 아내와 친구에게 떠밀리듯이 찾아갔던 병원에서 그는 간암 판정을 받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죽음마져도 묵묵하게 받아들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와 친구의 가슴은 찢어질듯한 아픔으로 통곡을 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울었고,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했던 내 오라버니가 생각나서 울었고,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살아오신 내 어머니가 생각나서 울었고... 그랬다. 이 책속에서 나를 울렸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용준의 마음이 나를 아프게 했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내 오라버니의 아픔이 생각나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책을 읽는 내내 용준과 그 어머니의 끈끈한 믿음이 가슴 한가득 느껴졌었다. 내 어머니.. 지금까지 5,6년동안을 아무런 표현조차 하지 않으시지만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서러움을 어찌 달래고 계시는가!  평생을 자신 하나만을 위해 살아오셨던 내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를 용서해드리지 못한 채 그저 붙잡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질책이 느껴져 나는 그렇게 울었었나 보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이 책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았다.  "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산다는 거, 부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거, 그렇게 요란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는... 친구같이 서로 의지가 되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다만 잘 모를 때에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될 테고, 굳이 모든 걸 알려고 들지 않아도 언젠가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테니 서두를 것 없다는 생각이면 되지 않을까. 난 속속들이 말하는 쪾은 아니지만 그래도 속이거나 배신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믿어도...." (75쪽) 속정 깊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 표현은 안해도 행동속에 그리고 가끔씩 하는 말속에 가슴속의 정이 표현되어지는 그런 사람. 부부라는 게 정말 용준의 말처럼 살아질수만 있다면 백점 만점에 백점일게다. 용준과 그의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말처럼 함께 있는 날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나를 다시한번 더 돌아볼 일이었다. 굳이 사랑한다는 말 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욕심부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도 하면서...

소중한 느낌. 그래, 사랑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랑한다는 건, 그래서 그가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그 마음도 실상은 소중하게 여겨지는 바탕일 것이다. 그런데 처음 사랑이라는 불꽃 앞에 눈이 멀어 내면의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면 끝내는 그림자마저 푸석해져 버리는 것이리라. (132쪽) 사랑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까지 깊은 공감을 자아내게 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말없이 힘겨운 용준의 곁에 서 있어준 아내의 깊이가 아마도 저와 같았을 것이다. 한편의 영화처럼 살아 온 그들 부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마치도 그들 부부의 손잡은 뒷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는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었다. 인간의 속성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랬으리라. 변질될 수 없는 속성, 사랑이라는 이름과 함께 했을 때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아름다워지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점점 영악해져 가는 세상이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빚을 갚는다는 건 아마도 이 시대에서는 아득한 전설이 된 게 분명할 것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가슴속 공허함에 진저리를 치며 마음을 털어놓고 위안 받을 그 무엇인가에 간절히 목말라 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백 마디의 진심어린 따뜻한 위안보다도 눈앞에 보이는 손톱만큼의 이익에 더 현혹된다.(180쪽)  정말 그렇다. 영악해져 가는 세상도 사실이고, 저마다의 공허함을 달래지 못해 위안 받을 그 무엇인가에 목말라 하는것도 사실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진심보다는 거짓을 더 앞장세워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힘겨운 삶의 여정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이 책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니 더 절절할 밖에.. 그러니 더 아플 수 밖에.. 그들이  힘겨울 때마다 하나의 위안으로 삼았던 친구 서용준을 보내면서 얼마나 가슴 깊은 절망을 느껴야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말, 사람은 누구나 철저하게 혼자라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남편과 아내의 사랑, 친구와 친구의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채 묵묵히 삶을 인정했던 용준이 내게 가르쳐주고 간 것은 너무도 많다. 그중에서도 그의 아내와 그가 말없이 나누었던 부부의 사랑만큼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문득, 잠시 비워두었던 자리에 찾아드는 사람처럼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와 어느 결에 내 몸 안에 스며든 사람. 내가 줄어든 것이 아닌데도 그녀는 내 절반이 되었고, 그녀 또한 그대로인데 나는 그녀의 절반이 되어 있었다. 아무런 이물감도 없었고 무겁지도 않았다.(240쪽)  나 역시 내 남자에게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 책장을 다 읽고 눈물을 훔치면서 책장을 덮었다. 다시 보이는 표지그림.. 그 그림을 내가 저만큼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생겨나기도 했고,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심코 접혀진 책장을 쭈욱 펼쳐보았다. 앞뒤로 그려진 표지그림이 이어지며 하나의 세상이 되어 펼쳐졌다. 고향사진관,중화반점,숙다방,양지이발소....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표지그림안에서 숨쉬고 있었구나... 잊혀지는 사람이 가장 슬프다는 말을 떠올린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되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일게다. 서용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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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동화
최용탁 지음 / 나무그늘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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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동화? 도대체 뭐가 어쨌길래 이상한 동화라는 제목을 붙여야 했을까? 이 책을 처음보는 순간 내가 한 생각이다. 무서운 동화도 나오는 세상인데 이상한 동환들 못나올 건 없잖아? 하면서도... 하지만 읽고난 뒤에 내가 붙인 제목은 이렇다. 단 세명의 어린이를 위해 지어진 아름다운 동화, 슬픈 이야기를 읽고도 행복해지는 아름다운 동화..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어린이들의 시선만이 아닌 어른의 시선으로 동화를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동화이기도 했다. 전혀 이상하지 않은 아홉편의 아름다운 동화속에서 내가 만날 수 있었던 메세지는 뜻밖에도 많았다. 단순히 동심만을 이야기하지 않았던 동화가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자신의 아이들을 위하여 하나씩 만들었다는 이야기속에는 아이들을 향한 아버지의 바램과 아버지로서의 노파심과 그리고 아버지의 염려, 한마디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있었음을 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장애를 가진 아이의 꿈을 우리는 얼만큼이나 배려하고 있는가? 비록 장애를 가졌더라도 그들이 품고 있을 꿈의 크기에 대하여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다시한번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 <누리의 하루>.. 배고프고 힘겨웠던 계절속에서 아이들을 위하여 먹이를 구하러 나갔던 엄마 아빠노루. 하지만 엄마는 그만 인간들의 덫에 걸려 아이들의 곁을 떠나버리고 부상을 당한 아빠노루는 아이들을 위해 길을 떠나기로 한다. 힘겨울수록 함께 해야 한다는 <노루 가족의 겨울> 이야기속에는 사랑이라는 강한 메세지가 들어 있었다. 살기 위하여 가족이 함께 하지 못하는 삶의 여정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보고싶은 동생을 위해 분홍머리핀을 사는 아이 선재의 마음을 그렸던 <분홍 머리핀>은 삶의 힘겨움이 변화시키는 어른들의 세계와 그것을 바라보는 아이의 아픔 또한 함께 그려주고 있음이다. 오동나무의 가장 어린 잎이었던 끝동이가 엄마에게서 떨어져나와 바다로 가는 여정을 그려준 <바다로 간 끝동이>에서는 우리가 무심코 망가뜨리고 있는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 외에도 <아빠와 두더지>, <소진이의 일기장>, <은행나무 네 그루>를 통해 보여주었던 가족간의 끈끈한 사랑이야기는 슬며시 작은 감동을 일으키며 지나가기도 했다. 

얼마전에 읽었던 <두꺼비가 뿔났다>와 애니메이션으로 즐겨 보는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을 떠올리게 했던 이야기, <참목이와 도토리 삼형제>.. 참목이는 어린 참나무이다. 하지만 아주 어린 나무가 아니었던 까닭에 인간에게 베임을 당해야 하는 빨간칠을 하게 된다. 이제 막 자신에게 생겨난 도토리,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도토리 삼형제를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애를 쓰던 참목이.. 그 참목이를 살려내기 위한 숲속 친구들의 노력과 바램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고 마지막 희망이었던 늙은 밤나무 할머니의 죽음마져도 참목이를 구해내지는 못했다. 동물이 없으면, 그리고 나무와 자연이 없으면 인간들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인간들만 모르고 있다던 소나무 할아버지의 말이 울림처럼 나의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도토리 셋중에서 둘은 다람쥐에게 주고 하나만 심어주었으면 좋겠다던 참목이의 마지막 소원속에는 무엇이건 채워야만 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한 질책이 들어있는 것만 같아 가슴 한 쪽이 찡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童話는 자연속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 자연과 가장 친밀하다는 童心.. 어쩌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아이들마져 동심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 아이같지 않은 아이들을 만나게 될 때마다, 아니 그런 아이들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되는 이 세상속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고 싶었던 아버지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문예창작과를 나왔다는 작가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농부의 일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내 아이만큼은 진정 아이답게 살아가기를 원했던 그 마음을, 결코 이상하지 않은 그 마음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 작가의 세 아이들, 정말 행복하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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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주민아 옮김 / 도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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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라는 제목부터가 이상했다. 그리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도 어디에 전쟁에 대한 사랑이 존재하는지 열심히 찾아다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을 찾지 못했다. 이 책속에서 내가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이 아니라 그만큼의 사랑을 가지고 전쟁을 바라보아야 하며 또한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목소리였다. 보편적으로 우리는 전쟁에 대한 사랑보다는 그야말로 말하기조차 싫은 끔찍한 단어들로 구성되어지는 안좋은 이미지를 먼저 떠올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런 끔찍한 단어들이 지목하는 상황과 단한번만이라도 마주쳐본 적이 있을까? 나는 전쟁을 겪은 세대도 아니고 또한 앞으로 그런 전쟁을 겪을 가능성조차도 가늠할 수 없는 현실속에서 살고 있다. 단지 영화속에서나 책속에서 혹은 실제로 전쟁을 겪은 나이드신 어르신들의 기억을 통해서만 전쟁에 대하여 상상하고 생각할 뿐이다. 그러니 그럴 것이다, 혹은 그랬을 것이다라고만 예측할 뿐..

총 네장으로 구성되어져 있는 이 책의 내용은 놀랍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힘겨웠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것인지 정리하기에도 벅찼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그가 했던 말 혹은 그의 저서들을 나열해가며 알아듣겠느냐고 외쳐대고 있었지만 나는 몇번씩이나 이미 지나쳤던 부분들을 되짚어 가야만 했다. 그야말로 나는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고~~를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제목만큼이나 끔찍한 시간이었다고 해도 거짓말은 아닐 것이다. 1장에서는 전쟁은 정상적이며 심리학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이해해야 할 현상이 무엇이든 그것에 공감해야 한다는 심리학의 제1원칙을 거론하며 전쟁에 대한 우리의 공감을 끌어내려하고 있다. 전쟁에 대한 혐오와 평화주의자들의 공포나 반감 따위는 멀찌감찌 치워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작가의 말처럼 그렇게 될 수가 있을까?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위한 전쟁을 해야만 한다는 말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수월한 말은 아닐듯 싶다.

전쟁은 비-인간적이다라고 외치는 2장속에서는 전쟁으로 인하여 피폐해져가는 상황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변해가는 모든 것들이 그 속에 나열되어있다. 전쟁속에서 변해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의 비인간적인 모습들을, 그야말로 인간성을 포기해버린 인간들의 모습들을 끔찍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변해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대며 그들을 정당화시키고 있다.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가? 를 따져묻기도 하지만 그렇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왠지 작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부분들이 있다. 그렇겠구나, 정말 그렇겠다, 그럴수도 있겠다 싶어서 인정하게 되는 부분들이 많아 나 스스로도 깜짝 놀라고 만다. 일본이란 나라속에 발을 붙였던 총이 어느날 시나브로 그들곁에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게 되는 그 배경은 사뭇 경이롭기까지 했다.

신화를 통해서 보는 전쟁이야기는 재밌었다. 전쟁의 신 아레스와 (마르스)를 끌어들여 우리의 마음속에서 용암처럼 부글거리는 전쟁에 대한 욕망, 전쟁으로 맛볼 수 있는 황홀한 광기, 전쟁이 있어 경험할 수 있는 공포감 따위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아름답다는 말로 포장하기까지 한다.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말이다. 전쟁이 치명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온다는 것을.. (마치도 행복과 불행처럼..) 아레스와 바람난 아프로디테가 남편 헤파이토스에게 걸렸다. 다 아시겠지만 헤파이토스는 최고의 대장장이다. 그의 그물에 걸려버리고 만 두 신의 모습을 보며 던졌던 아폴론의 물음에 비록 발가벗은 채 그물에 걸렸지만 내가 아레스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던 헤르메스의 신화를 예로 들어 준 것은 적어도 내게만큼은 책속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신화속에 등장하는 신들을 거론하며 그들의 특징에 맞게끔 인간의 심리와 접목시킨 부분들은 정말이지 기가 막히다. 신의 형상과 닮은 인간이라고 했던가? 그래서인지 그들의 생각과 행동속에 인간의 모든 것들이 들어있다는 말이 왠지 거북스럽지가 않았다.  

종교는 전쟁이라고 말하던 마지막장에서 다룬 전쟁과 종교의 이야기는, 어찌보면 마녀사냥과도 같은 특정 종교 때리기처럼 보일수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는 이미 기독교적인 인간들이라는 말이 왠지 서글프게 다가왔던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책을 통하여 어렴풋하게나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속으로는 모든 권력이나 야심, 즉 호전적인 (마르스)나 아레스적인 면을 숨기고 있다는 말 또한 거부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신화와 종교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새롭게 다가왔다. 인간속에 머물러 인간과 함께 살아가느냐 아니면 인간위에 군림하느냐 하는 것은 분명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내가 잘 모르기는 해도 이미 우리곁에 머무는 유일신의 종교는 분명 인간위에 군림하고 있을테다.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전쟁은 사람들, 언론, '적'을 규정하고 싸움을 유도하는 지도자들의 마음속에 담긴 날카로운 목소리에서 시작된다. 그 현혹적인 격정과 기만적인 행위의 분출은 서로를 부추긴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는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혀 고귀한 선전포고라는 위선으로 우리 자신을 은폐한다.(321쪽)  색다른 주제를 다룬 책이 아니었나 싶다. 신선한 느낌도 있었지만 거부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던 책이었다. 어찌보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모든 현실 또한 전쟁일게다.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들면 마르스나 아레스적인 면이 없지않다. 그렇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다고 감히 말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전쟁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아주 작은 작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을 이해시키기 위해 너무도 많은 것들을 나열하며 신들의 이름까지 거들먹거린 작가의 노고가 대단하다. 읽기에 아주 버거운 책이었지만 말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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