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사진관
김정현 지음 / 은행나무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책을 받아들고 표지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었다. 뭘까 이 느낌은? 누군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게 해주던 표지그림을 바라보면서 작가 김정현의 전작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한부 생명을 선고받았던 중년의 남자가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죽음에 대하여 묵묵히 받아들이던 모습.. 그 죽음을 앞에두고 감정적인 처리를 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 그랬다. 사람은 정말이지 누구를 막론하고 철저하게 혼자였다는 걸 알았었다. 어쩌면 늘 그렇게 생각은 하면서도 받아들이기 싫어 외면하거나 인정하지 않은 채 살아가고 있는건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가족간에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었다. 내가 만약 저런 상황이 된다면 나에게도 저 주인공과 같은 처방을 내려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럴수는 없다는 둥, 할 수 있을만큼은 해봐야 한다는 둥, 본의아니게 가족간의 다툼이 일기도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그랬던 그가 다시한번 눈물 적시는 이야기를 들고 나온 것 같아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미리 마음을 다잡는다.

서용준.. 대학재학중 입대하고 제대에 맞추어 아버지가 쓰러진다.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아버지를 대신하여 예정에도 없던 가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용준은 묵묵히 그걸 받아들였다. 다시 복학할 수 있겠지 하며 기다리던 시간들조차도 그에게는 어쩌면 사치였을까? 아버지를 대신하여 살아간다는 것은 그에게 모든 꿈과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하는 길이 되고 말았으니.. 17년이라는 세월을 그렇게 움직일 수 없는 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던 용준에게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것은 어머니와 그의 아내였다. 존재자체만으로도 그에게 하나의 힘이 되어 주었던 어머니, 그리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힘겨움을 안아줄 수 있었던 아내의 그 포근함이 있었기에 그가 그 긴 세월을 버티어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버지를 보내드리고 힘겨워하는 용준에게 아내는 이렇게 말했었지. 어머니는 어떡하라구요? 당신이 이렇게 마음을 놓아버리면 어머니는 누구에게 마음을 기대고 살아가라는 말인가요? ..  어머니를 위하여, 그리고 묵묵하게 자신 곁에 있어주며 하나의 위안으로 자리했던 아내를 위하여 그는 마음을 내려놓지 않았었다. 그러던 그에게 죽음의 사신이 찾아왔다는 건 정말이지 가혹한 현실이었다. 당신 얼굴이 왜그렇게 까맣게 보여요?  그리고 아내와 친구에게 떠밀리듯이 찾아갔던 병원에서 그는 간암 판정을 받는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자신의 죽음마져도 묵묵하게 받아들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와 친구의 가슴은 찢어질듯한 아픔으로 통곡을 하게 된다.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도 울었다. 내 아버지가 생각나서 울었고,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야 했던 내 오라버니가 생각나서 울었고,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으며 지금까지 살아오신 내 어머니가 생각나서 울었고... 그랬다. 이 책속에서 나를 울렸던 것은 아버지에 대한 용준의 마음이 나를 아프게 했고,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내 오라버니의 아픔이 생각나 정말 꺼이꺼이 울었다.  책을 읽는 내내 용준과 그 어머니의 끈끈한 믿음이 가슴 한가득 느껴졌었다. 내 어머니.. 지금까지 5,6년동안을 아무런 표현조차 하지 않으시지만 먼저 간 자식에 대한 서러움을 어찌 달래고 계시는가!  평생을 자신 하나만을 위해 살아오셨던 내 아버지.. 아직도 아버지를 용서해드리지 못한 채 그저 붙잡고 있는 내 자신에 대한 질책이 느껴져 나는 그렇게 울었었나 보다.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이 책을 통하여 배울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많았다.  " 남자와 여자가 함께 산다는 거, 부부라는 이름으로 산다는 거, 그렇게 요란할 필요는 없을 거 같다는... 친구같이 서로 의지가 되고, 말하지 않아도 상대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하고. 다만 잘 모를 때에는 좋은 쪽으로 생각하면 될 테고, 굳이 모든 걸 알려고 들지 않아도 언젠가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될테니 서두를 것 없다는 생각이면 되지 않을까. 난 속속들이 말하는 쪾은 아니지만 그래도 속이거나 배신하는 일은 결코 없을 테니 믿어도...." (75쪽) 속정 깊은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겉으로 표현은 안해도 행동속에 그리고 가끔씩 하는 말속에 가슴속의 정이 표현되어지는 그런 사람. 부부라는 게 정말 용준의 말처럼 살아질수만 있다면 백점 만점에 백점일게다. 용준과 그의 아내는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말처럼 함께 있는 날까지는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못하는 나를 다시한번 더 돌아볼 일이었다. 굳이 사랑한다는 말 하지 않아도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욕심부릴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생각도 하면서...

소중한 느낌. 그래, 사랑은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사랑한다는 건, 그래서 그가 없으면 안절부절 못하는 그 마음도 실상은 소중하게 여겨지는 바탕일 것이다. 그런데 처음 사랑이라는 불꽃 앞에 눈이 멀어 내면의 그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하면 끝내는 그림자마저 푸석해져 버리는 것이리라. (132쪽) 사랑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까지 깊은 공감을 자아내게 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말없이 힘겨운 용준의 곁에 서 있어준 아내의 깊이가 아마도 저와 같았을 것이다. 한편의 영화처럼 살아 온 그들 부부의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워서 마치도 그들 부부의 손잡은 뒷모습을 내가 바라보고 있는것만 같은 착각이 들기도 했었다. 인간의 속성은 사랑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랬으리라. 변질될 수 없는 속성, 사랑이라는 이름과 함께 했을 때 좀 더 강해지고 좀 더 아름다워지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점점 영악해져 가는 세상이었다. 말 한마디로 천 냥빚을 갚는다는 건 아마도 이 시대에서는 아득한 전설이 된 게 분명할 것이다.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가슴속 공허함에 진저리를 치며 마음을 털어놓고 위안 받을 그 무엇인가에 간절히 목말라 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현실에서는 백 마디의 진심어린 따뜻한 위안보다도 눈앞에 보이는 손톱만큼의 이익에 더 현혹된다.(180쪽)  정말 그렇다. 영악해져 가는 세상도 사실이고, 저마다의 공허함을 달래지 못해 위안 받을 그 무엇인가에 목말라 하는것도 사실이다.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진심보다는 거짓을 더 앞장세워야만 하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힘겨운 삶의 여정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 이 책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그러니 더 절절할 밖에.. 그러니 더 아플 수 밖에.. 그들이  힘겨울 때마다 하나의 위안으로 삼았던 친구 서용준을 보내면서 얼마나 가슴 깊은 절망을 느껴야 했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는 말, 사람은 누구나 철저하게 혼자라는..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 남편과 아내의 사랑, 친구와 친구의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 삶에 대한 사랑...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채 묵묵히 삶을 인정했던 용준이 내게 가르쳐주고 간 것은 너무도 많다. 그중에서도 그의 아내와 그가 말없이 나누었던 부부의 사랑만큼은 정말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 문득, 잠시 비워두었던 자리에 찾아드는 사람처럼 그리 낯설지 않게 다가와 어느 결에 내 몸 안에 스며든 사람. 내가 줄어든 것이 아닌데도 그녀는 내 절반이 되었고, 그녀 또한 그대로인데 나는 그녀의 절반이 되어 있었다. 아무런 이물감도 없었고 무겁지도 않았다.(240쪽)  나 역시 내 남자에게 그런 사람으로 그렇게 사랑하며 살아가고 싶다.

마지막 책장을 다 읽고 눈물을 훔치면서 책장을 덮었다. 다시 보이는 표지그림.. 그 그림을 내가 저만큼 위에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생겨나기도 했고,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무심코 접혀진 책장을 쭈욱 펼쳐보았다. 앞뒤로 그려진 표지그림이 이어지며 하나의 세상이 되어 펼쳐졌다. 고향사진관,중화반점,숙다방,양지이발소.... 그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표지그림안에서 숨쉬고 있었구나... 잊혀지는 사람이 가장 슬프다는 말을 떠올린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되어질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일게다. 서용준.. 그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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