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를 위한 교양 수업 - 365일 1일 1지식
라이브 지음, 김희성 옮김 / 성안당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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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후'라는 말은 일본어 御宅おたく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처음에는 그다지 좋은 의미로 쓰여지진 않았으나 지금은 뭔가 한가지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보이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사용한다. 하다못해 뭔가 하나를 엄청 좋아하는 사람에게까지 덕후라는 말이 쓰여지는 듯 하다. 어쩌다가 일본말이 한국에서 쓰여지게 된 것일까? 우리집에도 있다. 라이트노벨에 빠져 방을 도서관처럼 꾸민 녀석이. 그런데 그 현상에 대해 굳이 덕후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저 누구나 하나씩 가지고 있음직한 작은 취미가 아닐까 싶어서. 열정과 흥미를 보이는 것은 좋으나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현실적인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이 책을 통해 '덕후'라는 말이 품은 다양함을 알고 싶었다. 책의 소개글에서 덕후들이 좋아할 만한 장르와 전문 용어를 다뤘다는 말을 보았으면서 왜 그렇게까지 생각했는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일반적인 관심을 통해 이 책을 바라본다면 조금은 실망하지 않을까 싶다. 게다가 일본색이 너무 짙다. 역사와 신화, 전설이나 문학, 철학이나 심리등을 나누어 구성했다고는 하지만 마치 일본의 신화를 공부하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떠다니는 정보들을 한데 모아 요점정리를 해 둔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게임을 좋아하거나 전형적인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나름 많은 정보를 얻을 수는 있을 듯 하다. 적어도 게임 캐릭터나 애니메이션의 배경이 된 신화나 전설의 유래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을까 싶어서.


오래전 신화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때가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신화라면 '그리스로마 신화', '북유럽신화', '켈트 신화', '이집트 신화'쯤일까? 남의 나라 신화를 열심히 읽다보니 우리나라에는 어떤 신화나 설화가 있을까 싶어 찾아 헤맨적도 있었다. 신화는 대체적으로 비슷한 틀을 갖고 있다. 하지만 모든 학문의 근원이라고까지 말할 정도로 신화의 파급력은 대단하다. 신화는 단순한 허구가 아니라 각 나라 또는 그 지역의 자연환경이나 문화, 역사등에서 볼 수 있는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너무 쉽게 생각하면 안된다. 또한 다른 나라의 신화를 번역하는 과정이나 해석하는 과정에서 잘못 전해진 것들도 꽤나 많이 볼 수 있다. 신화가 환타지나 SF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중 철학과 심리를 공부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귀에 익었던 말들의 정확한 의미나 배경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예를 들면 '헴펠의 까마귀', '슈레딩거의 고양이', '라플라스의 악마', '메리의 방' 등이다. 일본의 괴담이나 요괴들이 중국의 '산해경'에서 차용된 것들이라는 점이나, '프리메이슨'처럼 잘못된 지식을 제대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모르는 것보다 알고 있으면 재미있을 듯한 이야기거리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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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크리스마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3
쥬느비에브 브리작 지음, 조현실 옮김 / 열림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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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란 말은 어떤 의미일까? 특별하지 않게 보통으로 살아가는 것이 평범한 일상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에게 있어서 '평범함'이란 말이 주는 무게는 만만치않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평범함'의 기준이 사회적 기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남들이 하는 것을 나도 해야만 한다는 듯이 살아가고 있는 작금의 사회적인 풍토만 보더라도 '평범함'이란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주관적인 삶의 방식보다는 사회적인 기준에 맞춰진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또 '행복하다'라는 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행복' 역시 주관적인 의미일 수 밖에 없는데 이 역시도 우리는 사회적인 기준에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 않나 싶을 때가 많다. 우리는 어쩌다 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스스로를 누군가와 비교하며 내가 좀 더 낫지? 묻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그런 우리의 잘못된 관념에 대해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어떤 의무를 짊어진 것처럼, 해야만 하는 숙제를 앞에 둔 사람처럼 그렇게 살지 말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로라도 행복해져야만 한다는 그 안간힘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75쪽)

"어떡하면 편해질 수 있을까 하는 게 우리를 살게 만드는 힘의 원천인가 봐.

다행히 편할 날은 하루도 없다만..."(-79쪽)

"넌 사람들이 꿈꾸고 싶어한다는 걸 그렇게도 이해 못 하겠니!

자기가 모른다고해서 무조건 비웃는 건 호기심이 부족하다는 증거야!"(-172쪽)

언제나 똑같은 스토리들이 세상 어느 구석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거예요.(-194쪽)

현실에선 기쁨도 결국은 슬픔을 낳는다.

그리고 그 모든 것으로부터 견길 수 없는 불안이 생겨난다.(-271쪽)


누크와 으제니오는 엄마와 아들이다. 이혼을 했고, 지금은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지만 엄마는 잘 나가던 화가였다. 누크는 늘 불안하다. 자신이 엄마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아이가 뭔가를 부족해하지 않는지... 행복하게 지내야만 할 것 같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둘이서 보내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자신의 삶을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지만 엄마는 억지로라도 그 행복을 만들어주고 싶어한다. 그래서 이곳저곳을 쏘다닌다. 장난감 가게, 공원, 워터파크, 백화점... 새를 갖고 싶다는 아이를 위해 카나리아 한 쌍도 샀다. 그리고 둘 만의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기 위해 친구의 초대를 받아들여 기차를 탔다. 암수 한 쌍이라고 했던 카나리아는 숫놈 두마리였고 덩치 큰 새의 위세에 눌려 작은 새는 다음 날 시체로 발견된다. 기차를 타고 떠났던 친구의 별장에서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전 남편이 나타나고 아빠와 즐겁게 웃으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엄마는 또다른 불안에 휩싸인다. 자신의 일상이라고 느꼈던 모든 것을 잃게 될까봐. 사실 어디를 막론하고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항상 시간에 치인다. 결국 남는 건 마음의 상처뿐이다. 하지만 그런 자신을 용납할 수 없는 게 엄마라는 말이 가진 속성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없다. 단지 결말을 암시하고 있을 뿐.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불안이 문장으로 잘 표현되어져 있어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싼타는 없다고, 어린 시절에 너무나도 일찍 알아버린 크리스마스의 허상은 내게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아동문학 작가라 한다. 아동문학 작가라는 말이 시선을 끈다. 저자가 그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순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그만큼 아이의 심리나 엄마의 심리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외롭고 쓸쓸하다. 갇힌 듯 지내야 하는 팬데믹의 시대에 이런 책은 둘 중 하나다. 힘을 얻거나 오히려 더 암울해지거나. 어느쪽을 선택하는가는 자신의 몫이다. 그럼에도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를 너무 피곤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채로운 주제였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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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낼 수 없는 대화 -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장동훈 지음 / 파람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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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만 보면 무슨 소설제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혹은 전혀 익숙하지 않은 그림을 소개한다. 오늘에 건네는 예술의 말들, 이라는 부제처럼 여러 작품을 통해 힘겨운 우리에게 뭔가를 말하고 싶어한다. 어쩌면 그래서 끝낼 수 없는 대화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 장의 그림이나 한 곡의 노래, 한 편의 시가 어떤 사람에게는 크게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모든 위안이나 공감은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모든 것을 가둬버린 팬데믹의 시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영원할 것처럼 누렸던 것들로부터 더 멀어질까 두려움에 떨게 한다. 책을 열면 들어가는 말에서 이런 문장이 보인다. 편집자의 기대를 저버리고 세속화를 선택한 나의 고집도 사실 여기에 있었다. 공의회의 고백처럼 참으로 인간적인 것이 실로 거룩한 것이라면, 예술작품이 무릇 인간에 대한 저마다의 깊이대로의 고뇌와 질문이라면, 성속의 경계를 걷어내고 그렇게 한참 내려가다 보면 결국 인간이라는 궁극의 질문에서 함께 맞닿아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는. 저자는 지금 천주교 사제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이다. 신학생들에게 그리스도교 역사를 강의하고 있으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등에서 일하며 노동자, 빈민등 사회적 약자들을 벗으로 만나왔다는 말도 보인다. 업으로 삼고 싶을 만큼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는 소개글처럼 그림사에 대한 박식함이 묻어난다. 사람은 자신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한다. 뭔가에 꽂힌다는 것이 그만큼 무섭다는 말이다. 관심을 두다보면 그 주변 역시 궁금해지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그 분야에 대해 깊이있는 지식이 쌓일 수 밖에 없다. 이 책을 보면서 든 생각이다. 저자의 말처럼 그림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분명할거라는. 세속화를 선택했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세속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관념에서 바라본 세속이 아닐까 싶다. 가난과 종교라는 두 개의 주제로 구분되어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 두 개의 주제가 서로 맞닿아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어쩐 일인지 마음이 아닌 눈으로 읽혀졌다는 게 솔직한 표현이라고 하면 더 맞는 말일까?


지금까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명화가 있는가 하면 전혀 보지 못했던 작품도 볼 수 있었다. 문득 마네의 그림 <풀밭 위의 점심>을 처음 보았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인상주의니 전체적인 구도가 어떠니 자연의 빛을 통한 느낌이 어쩌니 하는 말들은 늘 이 작품을 따라다니는 말이었지만 그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저 여인은 왜 옷을 벗고 있는 것일까? 화가는 왜 저 여인의 옷을 벗기고 그림을 그렸을까? 단순히 풀밭 위에서의 식사를 그리고 싶었다면 함께 있는 남자들처럼 잘 차려진 옷을 입고 있는게 오히려 훨씬 더 자연스러운 장면이 아니었을까? 뜬금없는 생각이 훅, 치고 들어왔던 그 때의 기억... 그처럼 하나의 작품은 보는 사람마다 느낌을 달리 한다. 제 아무리 멋진 말로 소개를 하고 제 아무리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라해도 마음으로까지 공감한다는 게 쉽지는 않을 터다. 가난한 사람을 그린 그림이라고 해서, 그저 서민들의 삶을 담은 그림이라해서 세속화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종교가 대중을 구원해주지 못하고 대중이 종교를 걱정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그림들이 저자가 의도한 바를 담고 있을까? 잘은 모르겠다. 학창시절의 미술시간이 생각난다. ㅇㅇ주의, △△주의, ㅁㅁ주의, XX파, ++파... △△주의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성행했으며 ㅁㅁ파에는 어떠 어떠한 화가가 있었다... 미술선생님의 열정적인 강의가 그저 열심히 외워야 할 시험범위에 불과했었던 것처럼 이 책속에도 그런 미술사의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의 장면으로 표현되어진 그림은 하나의 역사가 되기도 한다. 그 하나의 그림을 설명하기 위한 선택이었겠지만 역시 딱딱하기는 매 한가지다. 그러니 당연히 몰입은 힘겨워진다. 개인적으로 '정교분리'를 원칙으로 해야한다는 말에 공감하는 까닭인지 모르겠으나 그 와중에 정의평화위원회라는 말이 자꾸만 겹쳐진다. 종교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간혹 '무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그림을 보게 된다. 그렇게 어떤 틀에 갇히지 않은 그림이 보기 수월할 때도 있다. 오롯이 나만의 느낌으로 바라볼 수 있는 까닭이다. 마지막으로 했던 저자의 말이 한동안 시선을 끌었다. 가늠할 수 없는 내일 앞에 꼼짝없이 갇힌 지금의 모두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지금까지의 모든 형태와 이름의 초안을 포기할 용기, 그리고 늘 새롭고도 가장 오래된 궁극의 질문, 인간은 무엇인가를 되묻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의 모든 형태와 이름의 초안을 포기할 용기,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찌되었든, 장황한 미술사 강의를 들은 기분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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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석을 따라 서울을 거닐다 - 광복 이후 근대적 도시에서 현대적 대도시로 급변하는 서울의 풍경 표석 시리즈 3
전국역사지도사모임 지음 / 유씨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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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표석을 따라 한성을 거닐다>, <표석을 따라 경성을 거닐다>의 시리즈물이다. 굳이 따지고 본다면 한성이 곧 경성이고, 경성이 곧 서울이다. 그러니 같은 지역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구석구석 발품을 판 셈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같은 주제를 다룰 수 있는 자신감은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소제목에서 보이듯 광복 이후 근대적 도시에서 현대적 대도시로 급변하는 서울의 풍경을 담고 있다. <표석을 따라 제국에서 민국으로 걷다>도 있다고 하는데 어떨런지는 잘 모르겠다. 스토리텔링을 원하는 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표석만으로, 표석에 써있는 안내문만으로 그 현장을 짐작해본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은 까닭이다. 답사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것이 남겨진 터를 찾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눈앞에 보이지 않는 역사를 남겨진 터를 통해 상상할 수 있다는 건 경이롭기까지 하다. 집에서 감옥살이와 같은 생활을 한지도 벌써 2년이 지나고 있다.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슬쩍 가까운 곳으로 바람이나 쐬러 가보자고 나설 때도 있지만 코로나라는 녀석이 길목에 버티고 서 있으니 맘대로 쏘다닐수도 없는 일이다. 서울만큼 많은 이야기를 가진 곳도 없다. 그 많은 이야기를 책을 통해 듣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隔世之感이나 桑田碧海라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는 곳이 바로 한양이자 서울일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는 청계천의 변화도 그렇고, 논과 밭뿐이던 영동이 서울의 중심이라는 강남으로 자리잡은 것도 그렇고, 구로공단이 가산디지털단지로 바뀌며 그 형태를 변환한 것도 그렇고 옛날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요즘은 레트로 스타일이 유행이라고 한다. 다시말해 복고주의를 지향한다는 말이다. 힘겨운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옛날의 체제나 전통등을 그리워할 뿐이지 진심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것은 아닐 것이다. 딱 하나, 서로에게 믿음이 있었고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것만 빼면 그렇게 막무가내로 돌아가고 싶어할 만큼 아름다웠다고는 말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 시절의 영등포는 정말 대단했었다. 영동이라는 말이 곧 영등포의 동쪽이라는 뜻이었으니 영등포의 크기와 무게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구로구, 금천구, 관악구가 영등포에서 분할되어진 구역이다.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영등포역 시계탑 밑에서 만나자던 약속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의 영등포는 그 시절의 영등포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책에서 보여주고 있지만 아파트 옆에서 소를 몰며 밭을 가는 농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 당시 강남 개발의 시작이었다. 이 책은 강남을 개발해야만 했던 시대의 흐름과 정권의 속내도 살짝 들춰내고 있다. '졸부'나 '복부인'과 같은 말들이 그 때 생겨난 것이다. 아울러 그 시대 '공순이'라고 불리우며 수출의 역군으로 자리매김했던 소녀들이 살던 구로동과 가리봉동 가옥의 형태를 소개한다. 정말 어려운 시절이었다. 청계천 복개공사로 인하여 삼일고가가 없어졌고 그로인해 생겨난 것이 평화시장이었다. 하지만 평화시장도 그 옛날의 평화시장은 아니다. 그야말로 隔世之感이나 桑田碧海라는 말이 어울리는 곳으로 탈바꿈되어버린지 오래다. 평화시장 한쪽에 자리잡고 있던 헌책방 거리는 지금도 그리운 곳 중의 하나다. 서울은 이제 바야흐로 세계적인 도시로써의 위상을 떨치고 있다.


파주 헤일리 '근현대사박물관'과 동인천 '수도국산박물관'은 개인적으로 마음을 빼앗긴 박물관이다. 그 곳에 가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느끼게 된다. 모든 것이 정말 빠르게 변해버렸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서울의 옛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또다시 느끼게 된다. 시간이 정말 빠르다는 것을.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왜 이리도 오래된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금천구에 수출의 역군 '공순이'들이 살던 그 '벌집'을 전시해놓은 곳이 있다고 한다. 청계천 끝자락에 복개공사 이전 청계천 자락에 살던 사람들의 집을 전시해 놓은 곳이 있다고 한다. 일부러 시간을 내서라도 한번 가봐야지 다짐해 본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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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 의학 전문 저널리스트의 유쾌하고 흥미로운 인간 탐구 보고서
제임스 햄블린 지음, 허윤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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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인간의 의미를 변화시키는 가운데 우리는 충분히 주의하고 숙고해 기술을 채택하고 있는가?"

바꿔 말하면 이렇다. "기술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해하려고 하는가?"(-141쪽)

인체 내부를 찍은 사진들은 진단을 내리기 위한 퍼즐 조각들이다. 의사가 CT(또는 엑스레이나 MRI) 사진을 살펴볼 때 어떤 질병이 진행돼 환자를 괴롭히는지 완전히 확실하게 말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170쪽)

병원에서 환자가 너무 아파서 음식을 입으로 먹지 못하거나 환자에게 위장관도 사용하지 못할 때 최선의 방법은 (종합 영양 수액이라고 알려진) 영양 혼합물을 정맥에 직접 주입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세심한 고려와 감시가 아무리 엄격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환자의 간 기능이 멈추고 장내 세균이 소멸할 때까지 몇 달 동안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227쪽)

만일 나더러 우리가 피하고 조심해야 할 것에 대한 보편적 권고를 꼽아보라고 하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자만심이다. 둘째는 귀가 얇은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한다는 게 우리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차이에 대한 오해가 모든 식이요법 유행의 중심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246쪽)


이런 주제의 책을 읽으면 시선보다 생각이 앞서 나간다. 그렇다면 혹시 이런 것도? 라는 생각과 함께 어쩌면 그럴 것이다,라는 예측을 먼저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랬다. 제목에서 이미 말하고자 하는 바를 예시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책의 제목처럼 우리 몸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는 아마도 귀를 닫고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만큼 귀가 얇은 까닭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건강보조 식품을 많이 챙겨먹는 까닭이다. 목차를 보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다. 신체의 표면인 겉모습에서부터 감각 작용을 통한 인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먹기, 수분 보충을 위한 마시기, 성에 관한 궁금증, 죽음에 관한 우리의 생각등 총6장의 주제로 나누어 각각의 질문을 소제목으로 선택했다. 마치 초등학생이 질문한 것처럼 느껴져서 피식피식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그 질문들이 우리의 허를 찌르고 있기 때문에 웃음기를 바로 거둬들일 수 밖에 없게 된다. 실례로 2장의 질문을 살펴보면 이렇다. 면역력을 ‘증진’할 수 있나요?, 카페인이 수명을 늘려주나요?, 당근을 충분히 먹으면 안경을 완전히 벗을 수 있을까요?, 잠은 실제로 몇 시간 자야 할까요?, 자기 전에 휴대전화를 보면 정말 안 되나요? 처럼 평소에 우리가 한번쯤은 들어봤거나 의심스러웠을 법한 질문들이 대부분이다. 3장과 4장에서 대답하고 있는 질문들도 역시 마찬가지다. 밤늦게 왜 나쁜 음식이 당길까요?, 종합비타민을 먹어도 괜찮을까요?, 달걀이 오트밀보다 건강에 좋을까요?, 프로바이오틱스는 효과가 있나요?, 하루에 물을 여덟 잔씩 마셔야 하나요?, 스포츠 음료나 탄산수를 마시면 일반 물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인가요? 여기에서 단 한가지만이라도 피해갈 수 있는 질문이 있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질문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우리의 지식은 얇고 그에 따라 귀 또한 얇은 것도 사실이다. 오죽하면 건강염려증이라는 말이 나왔을까?


125쪽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면역계라는 것은 사실 우리 몸 활동의 전체를 말한다. 면역계의 '과잉'활동이 염증질환을 만들어냈다. 우리의 신경세포계는 많은 신경세포로 연결되어 있는데 뇌의 훈련된 학습으로 인하여 시냅스의 가지치기 단계에 혼란이 온다. 다시 말해 면역계가 증진된다는 것은 과도한 스냅스의 가지치기가 발생하고 그 현상이 바로 조현병이나 알츠하이머와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면역력증진이란 말을 내세우며 이익을 취하고자 하는 많은 기업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라는 얘기다. 면역계는 음료의 형태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도 중요하다. 결국 면역력은 어린시절부터 왜 될수록 다양한 삶의 형태로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훈련되어 학습되어진다는 것 자체가 바로 우리 삶의 형태와 연관되어지는 까닭이다. '통찰력을 키우는 게 사실을 외우는 것보다 중요하다' 는 말이 프롤로그에서 보인다.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본래 사회적 질병이자 생활 습관병이 많다. 비만이나 당뇨, 심장사와 같은 유전적 요인이 30%쯤이며 60%는 사회적 환경이나 환경의 영향이 행동에 좌우된다는 말에 크게 공감한다. 결국 의료계가 할 수 있는 일은 10%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런 일들은 왜 일어나는 걸까? 여기서 다시 거론할 수 밖에 없는 것은 기업의 이윤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명제다. 현대사회는 자유를 내세우는 자본주의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건강보조 식품'의 효과를 그다지 믿지 않는다. 수많은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 들어오는 나쁜 질병들에 관해서도 굳이 그들의 말에 좌우되는 삶을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우리의 식단이 서구화되면서부터 '건강보조 식품'이라는 말이 세상에 떠돌기 시작했다. 바꿔말하면 우리가 서구화 식단으로 가지 않았다면 굳이 필요없는 것들이란 말이 되지 않을까? 오래전에 읽었던 책 <만들어진 전통>을 떠올린다. 우리가 굳건히 믿어 의심치 않았던 많은 전통이 사실은 일부에 의해 전통처럼 여겨지도록 만들어진 것이라는 걸 알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다. 지금 수많은 광고를 통해 우리를 현혹하는 보조식품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선진국, 즉 자국에서는 판매행위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햄버거나 코카콜라 역시 자국에서는 비만과 성인병의 원인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않는다. 그러니 그들이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으로 건너가 자리를 잡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당근을 많이 먹는다고 눈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2차세계대전 중 영국의 왕립공군은 자국의 조종사들이 당근을 많이 먹어서 야간시력이 뛰어나다고 소문을 퍼뜨렸고 당시 비타민에 집착하던 많은 대중이 그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근거없는 소문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현대사회에 부유물처럼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베타카로틴이 남아돌게 되면 오히려 눈과 피부가 노래질수가 있다. 유아의 경우 비타민A를 너무 많이 먹이면 머릿속 압력이 증가한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기전에 휴대전화를 보면 정말 안되나요? 대답은 YES. 만약 건강을 잃고 싶다면 자기전에 휴대전화를 열심히 들여다보면 된다. 또한 잠이 부족한 사람은 음주운전자와 똑같다는 말이 눈길을 끈다. 사람에게 적정 수면 시간은 여러모로 취합해 보았을 때 7시간으로 나왔다고 한다. 불면증으로 수면제에 의존하는 사람으로써 여간 염려스러운 게 아니다.


종합비타민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에 대해 꼬집고 있으며 빵이란 이름으로 불리우며 우리의 건강에 심각성을 초래하고 있는 글루텐에 대한 문제점도 말해준다. 글루텐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빵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종이 번성하고 퍼지면서 빵은 세계적인 주식이 됐다. 하지만 글루텐 자체보다 그것이 인간에게 고통을 주는 새로운 관계 그리고 그 관계의 존속기반인 돈과 심리가 훨씬 흥미롭다. 글루텐은 제과 제빵뿐만 아니라 우리 삶에도 정체성과 회복력, 토대를 형성하게 됐다.(-229쪽) 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글루텐이 '자기면역 질환'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왜곡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해서 글루텐이 없는 것이 곧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자연식이 답일까? 아니 그렇지도 않다. 무엇이 되었든 하나만으로 완벽함을 취할 수 없는 까닭이다. 달걀이 오트밀보다 건강에 좋을까? 이건 어느쪽에서 연구비를 댔는지가 중요하다. 프로바이오틱스는 효과가 있을까? 과연 포장지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미생물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보면 된다. 하루에 물을 여덟 잔씩 마셔야 할까? 물섭취 권장량이란 것은 없다. 스포츠음료가 우리 몸에서 오히려 수분을 빼낼 수 있다는 말은 수분 보충을 위해 음료수를 마셔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다. 콜라겐은 우리 몸 어디에나 있는 단백질이다.(-403쪽)... 사실 새로운 주제를 다룬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주제는 자주 언급되었으면 좋겠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누군가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까닭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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