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의 요정
칼리나 스테파노바 지음, 조병준 옮김 / 가야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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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라는 말은 그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동화가 어느때부터인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컨셉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왜일까? 단순히 어린시절의 마음, 동심으로 돌아가보자고 그런 시도를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어른이 되면서 점차 잃어가고 있는 길을 찾기 위함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해 보았다. 어른이 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찾기 힘들어지는 것들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많은 것 같다. 단순히 순수라거나, 순진이라거나 하는 말의 의미를 떠나서라도 우리가 잃어버린 채 혹은 잊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들은 무엇일까?

오래전부터 정채봉님의 글을 사랑해 왔다. 특히 그분께서 보여주셨던 생각하는 동화시리즈는 각권 모두를 구입해서 지금도 내가 사랑하는 책의 목록에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음이다. 아주 단순해보이지만 그 짧은 이야기들이 전해주고 싶어하는 의미는 참으로 넓고 크고 깊다. 그 짧은 이야기속에서 어렵게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 아주 환하게 빛을 발하며 나 여기 있어요! 하면서 웃고 있다. 그래서 나는 동화를 사랑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앤의 요정들은 모두 일곱명이다. 그 요정과 만나는 순간 앤은 자신을 닮은 자신의 요정들에게 이름을 붙여주기로 한다. 도,레,미,파,솔,라,시... 참 이쁘지 않은가?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일곱명의 요정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각양각색이다.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당신이 지닌 여러 얼굴들이고 당신이 지닌 성격의 여러 측면이에요. 그러니 우리를 서로 구분하는 일이 어려울 이유가 없지요...하고 요정이 말했듯이 앤은 요정들에게 명명식을 하며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다. 자기 자신의 모습과 제대로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거다. 각기 다른 재능을 가진 요정들의 모습속에는 앤의 여러 모습이 판박이처럼 들어 있었으니 말이다. 지도자의 모습을 한 도, 절대 '안 돼'라는 대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격의 레, 홍보담당 미, 일 중독자의 모습을 하고 있는 파, 여행가 솔, 언제나 화해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외교관 라, 항상 무언가를 쓰고 골똘하며 혼자있기 좋아하는 작가 시... 멋지다. 정말 멋지다. 나에게도 이렇게 멋진 요정들이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 한편으로는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지만 또한편으로는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기도 하다.

물방울처럼 여린 모습으로 나타났던 집 없는 요정들의 이야기는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였던 까닭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잃는다는 것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구나, 요정이 한말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남들이 자기에게 해주기 바라는 행동만을 남들에게도 할 수 있다던 말,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늦든 빠르든 언젠가는 자신이 행한 모든 행동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온다는 것을...
언젠가 스님이 말씀하셨었다. 길가에 함부로 침을 뱉지 말아라, 그 침도 역시 내 안에서 나간 것이기에 남들이 그 침을 보면서 더럽다고 욕을 하게 되면 그 욕이 고스란히 네게로 되돌아오게 되는거란다...
결국 세상 모든 일은 당신이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달려 있어요..하던 요정의 말이 새삼스럽게 내 가슴속에 각인되어져 버린다. 뜨끔하게도...

사랑이 가슴속에 머물고 있는 한,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내 가슴속에 떠나지 않는 한, 그리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한 나의 요정들은 내곁을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앤처럼 나도 나의 요정들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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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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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부자놈들이 아무에게도 빌려주지 않는 장난감이지요.-39쪽

고통은 늘 여기 있지만,그렇다고 내가 걷고 말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477쪽

인간들은,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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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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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속을 편히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있나요? "
만약에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어떤 대답 혹은 어떤 반응를 보여줄 것 같은가?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녀, 쉰네살이고 이름이 르네인 아파트 수위 아줌마가 카쿠로 오주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그리고 변기의 물을 내릴 때 불쑥 튀어나왔던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듣게 되었을 때의 황당함에 그리고 당혹스러움에 노랗게 변했을 수위아줌마의 얼굴 표정을 떠올리면서..
나같으면 다시한번 물었을 것이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한거야? 

내가 항상 그렇지만 늘 독서란을 훑어보면서 이 책의 광고문구를 보게 되었다. 우선적으로 나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란 제목에 유혹을 느꼈다. 고슴도치라고? 뭔가 아주 깊고도 진한 것을 숨겨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주 대단한 은유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같은..
망설임없이 선택했지만 책을 읽기까지는 꽤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매력적이면서 유머 가득한 어쩌구 저쩌구 했던 광고문구에 비해 책의 두께가 나를 압박해 왔다. 어쩌면 너무 가볍게 생각했을수도 있다는 자책감과 함께 쉽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유혹에 넘어가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이 책속의 세상에 푹 절어버리고 말았다.

'깊은 사색'과 '세상의 움직임에 대한 일기'라는 이중일기를 쓰기로 작정했던 그러나 자살을 꿈꾸었던 깜찍하고 당찬 열두살 소녀 팔로마와, 아파트 수위이면서 자신의 내면을 자신의 아픔을 남에게 철저하게 숨기고자 하는 쉰네살의 수위 아줌마 르네의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짧은 단막극을 보는 듯한 이야기 전개가 너무도 황홀했다. 그렇다면 열두살 소녀는 왜 자살을 꿈꾸었으며 쉰네살의 수위 아줌마는 왜 그토록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야만 했을까? 세상속에 존재하는 모든 편견과 아집과 선입견들이 여기에서 다 까발려지고 있다.  고슴도치처럼 가시옷을 입은 채 자신을 깊게 바라보려 하는 사람을 향해 가시를 곧추세우는 우리의 주인공 르네 아줌마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니 말하지 않은 유년의 고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르네 아줌마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실질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미 썩어가고 있는 상처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터뜨려주었으면 하는 고름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 뭐 그런거 말이다. 

인간들은 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77쪽) 
눈은 늘 자각하지만 유심히 바라보지 않고, 믿긴 하지만 의문을 갖지 않고, 받긴 하지만 찾지는 않는다. 즉 욕망도 배고픔도 십자군도 없다. (448쪽)
아픈 은유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들은 가슴속이 섬뜩해져 옴을 느끼게 된다.  르네 아줌마가 수위로 있는 부자 아파트에 이사온 일본인 카쿠로 오주.. 한눈에 가시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버렸던 그 사람에게 결국 자신을 내보이고 말았던 르네 아줌마가 어느날 아파트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카쿠로씨의 팔짱을 끼고 식사를 하러 나갈 때의 장면.. 그 장면속에서 나는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의 서글픈 모습을 본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안녕히 가세요 사모님!... 아무런 의미와 형태도 없이 그저 부자인 카쿠로씨의 팔짱을 끼고 가는 모습만으로 사모님이 되어버렸던 우리의 수위아줌마는 그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우리는 왜 보여지는 것만 믿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왜 되도록 우리에게 편안함만을 제공하는 것에 열망하게 된 것일까?  굳게 닫혀진 성안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타인을 인정하지 못한채 성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며 그럴것이다,라고 추측해 버리고 마는 그 억지스러움은 어쩌면 우리가 늘 저지르고 사는 바보같음인지도 모를일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가 사물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보는 순간에 일어나는 사물의 찰나적인 배열이다.... 아마 이것이 살아잇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들을 추적하는 것이.(400쪽)
고통은 늘 여기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걷고 말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477쪽)
어린 아가씨 팔로마 앞에서, 그녀의 내면을 들켜버렸던 카쿠로 오주씨 앞에서 오열하며 흘렸던 르네 아줌마의 눈물은, 그 아픈 서러움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숨겨야 할 우리의 모습은 도대체 몇가지나 되는 것일까? 좋은 모습만 기억되어지길 바라면서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속에는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 몇프로나 들어있는 것일까?  때에 따라 적당한 표정으로 갈아 써야만 하는 이중의 가면속에 숨겨진 우리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가 얼만큼씩이나 인정해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르네 아줌마의 서러운 기억을 보듬어 안았던 우리의 열두살 아가씨 팔로마는 이렇게 말했지.. 나는 내 주위의 그 누구에게도 잘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아줌마의 손을 잡으면서 나는 나 역시 병자였다는 걸 느꼈다..고. 그래서 불을 내고 자살할거라는 계획을 재고해야만 할 것 같다고... 가끔씩 주변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아주 철저하게 자기 위주로 돌아가 있는 모습과 만나게 된다. 누구나에게 한번쯤은 아니 한가지쯤은 있음직한 혹은 있었을 아픔도 오직 나만의 아픔이었고 나였기에 더 아팠고 나였기에 더 혹독했다고 그러니 그걸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얼마나 큰 목소리로 웅변하듯이 토해냈던가?  누군가의 관심을, 사랑을, 배려를 그토록 원하면서도 과연 나는 그 누군가를 얼마나 배려했으며 얼만큼의 관심으로 사랑을 주었는가?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믿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 받는 것을 원치않는,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할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이 있고, 그렇기에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데 우리의 모든 힘을 다 써버린다.(29쪽)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가슴 한켠이 서늘했다. 내 속깊이 파고 들어오는 알 수 없는 느낌때문에.. 끝도 없이 살아 숨쉬는 글자의 마술속에 갇힌채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던 진정한 내면의 아우성.. 우리의 수위 아줌마 미셸부인 르네와 우리의 열두살 소녀 팔로마를 앞세워 웅변같은 열변을 토해내는 작가의 모습, 아시아로의 여행을 꿈꾸는 철학 선생과 그의 책을 읽는 독자와의 실제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그들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갈까?  참으로 부질없을 궁금증 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서성거렸다.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세상은 너무도 많다. 엉킨 실타래같은 길찾기가 나에게 주어진 몫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 속담처럼 너무도 많은 길을 보여주고 혹시? 하는 물음표도 던져주지만 결국 르네와 팔로마의 귀착점은 같다. 외로움.. 고독..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아니 다른 사람들의 속깊은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목마름.. 그 외로움과 고독과 목마름을 서로에게서 찾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그들의 모습.. 첫눈에 가시속에 숨겨진 수위아줌마의 내면을 알아챈 카쿠로씨에게 결국 마음을 열게 되었던 르네 아줌마와 그 길속에서 잠시 머무르다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우리의 깜찍한 팔로마에게 나는 정말로 이제까지의 아픔보다도 더 진한 행복이 함께 했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철학선생인 작가의 선택은 너무나 잔인했다. 달려오던 차와 부딪혀 차가운 아스팔트위에서 죽어가던 수위아줌마 르네의 행복은 이제 어쩌라고?  그 죽음의 순간속에서 그녀가 불러보던 그 이름들의 아픔은 또 어쩌라고?

우리는 늙어가고, 그건 아름답지도 좋지도 즐겁지도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자신의 힘을 다해, 지금 뭔가를 구축해야 한다.(187쪽)
우리는 정말이지 끝도 없을 것처럼 달려간다.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내 앞에 놓여진 시간을 내맘대로 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끌려가듯이 그렇게 달려가고 있는건지도 모를 일이다. 르네 아줌마의 죽음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왜 그녀는 죽어야 했을까? 그토록 오랜동안 시간에게 끌려다니다 이제와 그 시간앞에 섰는데 어째서 그녀는 죽어야만 했을까? 오십사년만에 처음으로 느꼈던 마음의 평안을 그녀에게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 버린 우리의 철학선생이 나는 너무도 미웠다. 그런 평안을 그녀에게 영원히 선사하고 싶어서였을까?  작가가 곁에 있다면 나는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느냐고. 그녀를 왜 죽여야 했느냐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 달라고..  하지만 나는 책장을 덮고서야  그 죽음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녀의 아픔과 열두살 소녀의 자살계획은 과연 누구로부터 비롯되어진 것이었던가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녀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킨적은 없었을 것이다. 내게 온 시간은, 내게 배당되어진 시간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을.. 그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진것이라는...
수위아줌마 르네의 죽음을 카쿠로씨에게서 전해들었던 열두살 소녀 팔로마의 일기에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난생 처음 나는 '다시는'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느꼈다. 그건 끔찍하다. 우리는 하루에 이 단어를 백번씩 발음하지만 진정한 '더이상... 다시는' 에 직면해보기 전에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477쪽) 고..

생은 많은 절망이 있지만, 또다른 종류의 시간인 아름다움의  몇 순간들도 있다. 마치 음악의 한 소절이 시간속에 일종의 괄호와 정지를, 바로 여기속의 다른 곳, '다시는'속의 '언제나'를 만드는 것처럼. 그래, 바로 그거다. '다시는'속의 '언제나'...  이 책의 맨 마지막 쪽에 나와있는 마지막 구절이다. 열두살 소녀 팔로마의 일기속이기도 하다. 그리고 팔로마는 이렇게 말한다. 걱정마요, 르네. 나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불태우지 않을거에요. 당신을 위해 나는 이제부터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추적할 것이기 때문이에요..라고. 
그야말로 황홀한 유혹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말들과 표현으로 내게 다가왔는지 이 책을 선택해 주었던 내 자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아니 많은 분야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모두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많은 분야들을 내가 다 알수는 없으므로.. 그저 우리의 주인공인 수위아줌마와 열두살소녀에게만 집중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멋진 두명의 친구를 사귀는 듯 했지만 그녀들은 끝내 가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아쉽게도.. 그리고 나는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녀들과의 재회를 꿈꾸기로 했다. 그녀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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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명산 수첩 Outdoor Books 5
최선웅 지음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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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시간이었다. 책을 보는 내내 지나간 날의 추억속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그렇게 즐거움과 기쁨을 만끽했던 것 같다. 한 때 산에 미쳤다고 할만큼 여분의 시간이 생길 때마다 산속을 헤매다녔던 적이 있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보는 내내 가보지 못했던 산의 이름은 나를 유혹하는 듯 보였고, 이미 기억속에 자리한 산의 이름은 다시 못 올 그 시간을 되돌려 줄 듯 나를 유혹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숫자로써 무언가를 정의내리길 원하게 된 모양이다. 100명산이라~~ 딱히 그 100개의 산이름을 명산이라고 이름지울 필요는 없을텐데도 말이다. 산은 어느 산이든 그 산대로의 매력이 넘쳐난다. 똑같은 산, 똑같은 코스라 할지라도 등산할 때와 하산할 때의 느낌이 다르고 각 계절마다 그 맛이 다르니 더 말해 무엇할까?  이십대의 추억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것이 산행의 즐거움이다. 오죽했으면 남편이 당신 앨범은 더이상 볼 것이 없다고 말했을까? 매냥 똑같은 배경 똑같은 등산복차림이니 말이다.

다녀 본 산중에 어떤 산이 제일 좋아요? 가끔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곤 한다. 그럴때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산은 다 좋아요.. 하지만 그래도 내 기억속에 가장 멋지게 자리한 산이 있다면 가평 현리에 있는 운악산이랍니다..  그 좋다는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큰 산을 말하지 않은 까닭일까? 사람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곤 한다. 이 책에도 나와 있듯이 운악산은 경기 5악중의 하나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산을 오르면서 느낄 수 있는 느낌은 참으로 넓고 깊다. 산세도 참 아름답다. 산을 오르며 볼 수 있는 그 바위들과 나무의 어울어짐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보는 듯하다. 현등사에 들러 두손모아 합장하며 잠시 다리쉼을 하던 때가 엊그제만 같다.

산행코스와 각 코스마다 소요되는 산행시간도 물론 중요하지만 내가 처음 산행을 하기 시작할때 가장 난감했던 부분이 바로 대중교통수단이 아니었나 싶다. 내 차를 운행하다보면 내려왔던 길로 다시 하산을 해야 하는 까닭에 왠지 밋밋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지인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좀 더 상세하게 나와 있는 대중교통수단이 없을까 찾아 헤맨적도 있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에 검색만하면 바로 찾아질수도 있는 세상이지만 이 책처럼 작게 만들어져 항상 휴대할 수 있게 나와 있는 것이 있었으면 했다. 내가 이 책에 욕심내게 된 까닭도 거기에 있다. 하지만 내 생각이 욕심이었던 것일까? 아니 욕심이었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서울을 출발하여 터미널에 도착하고 그곳 터미널에서 가야할 동네이름까지는 누구나 겁내지 않고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작 어디서 내려야 등산 시작점과 멀지 않은지를 알 지 못하니 참으로 난감하다. 그 차의 종점과 등산시작점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왕왕 있는 까닭이기도 하다.  바로 등산시작점을 찾을 수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이렇게 초보 산행하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헤아려 줄 수 있는 프로산악인들의 배려를 생각했던 나의 마음이 조금은 씁쓸했다. 아직은 우리나라의 표지판을 따라 움직인다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 내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책을 봐도 빠지지 않는 먹을거리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긴 하지만 음식점 정보는 그토록 자세히 해주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음식점 정보를 볼 때마다 나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하긴 어떤 분들은 그 음식점에 전화를 해서 내려야 할 곳을 찾는다고도 하니 영 도움이 되지 않는건 아닌 모양이다 ㅎㅎ. 

이 책은 그야말로 산행수첩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 마치도 사전같다. 산행사전.. 산에 관한 정보가 쏠쏠하다. 특히 도움이 될 수 있을만 한 것은 각 지점과 지점사이인 단거리 코스에도 소요시간을 적어주었다는 점이다. 등산길과 하산길의 소요시간도 알 수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아직 가보고 싶은 산이 너무나 많다.   치를 떨며 산을 올라야 한다고해서  치악산이라고 사다리병창코스를 지나며 누군가가 말했었다. 치악산 비로봉에 처음 올랐을 때 쌓아놓은 돌탑이 어찌나 신기해보이던지.. 호반의 도시 춘천을 한아름 안아볼 수 있는 삼악산과 다도해의 멋진 풍경을 가슴속에 담을 수 있어 좋았던 두륜산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그야말로 끝내주었던 산이었다.  건강이 허락된다면 할머니가 되어서도 할아버지가 된 남편과 손을 잡고 간단한 베낭하나 짊어지고 함께 산행을 해보고 싶다. 아직 가보지 못했으나 먼 훗날에 늙어진 모습으로 남편과 다정하게 이야기하며 오르고 싶은 산이 있다. 해인사를 품고 있는 가야산이다. 언제쯤이면 가야산을 오를 수 있으려는지.../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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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리 가든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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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호, 시즈에,나카노,쇼노스케,세리자와, 쓰쿠이... 두 여자와 그녀들의 일상이 되어주는 남자 네명의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엉켜드는 이야기다.

과거를 껴안고 사는 여자, 가호..
안경점의 직원이다. 느릿 느릿 그러나 쉼없는 그녀의 일상은 늘 일정한 속도와 일정한 높이를 잃지 않는다.  늙은 고양이 후키를 가끔씩 자신의 담요속으로 불러 들이는 여자.. 헤어진지 이미 5년이 되어가는 남자 쓰쿠이를 잊지 못해 자기 자신을 유리컵을 내던지듯이 깨뜨려 조각내버리는 여자. 아니 그와의 기억으로 현실을 지탱해 나가는 여자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이란 건 이미 어떤 정의를 상실해버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늘 같은 아침, 같은 오후, 같은 저녘, 같은 밤만이 그녀에게 존재할 뿐이다. 알 수 없다. 그녀가 왜 이 남자와 자고 저 남자와 또 자는지를.. 그것을 누군가는 복수라고 말했지만 그녀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몸짓으로 말하고 있다.
안경점의 동료 나카노는 어쩌면 과거로부터 그녀를 탈출시키기 위한 하나의 탈출구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끊임없이 그녀의 주위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그녀의 모든 것을 껴안고 그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묵묵하게 바라보기만 하던 그 남자도 가호의 옛사랑앞에서는 주춤거렸지.. 아직도 살아 숨쉬는 그녀의 옛사랑을 어쩌지 못한채로.. 아니 그녀의 사랑이 너무 단단해 보여서.. 단지 그녀가 그것으로 인해 버텨내는 세상살이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온전하게 그녀를 사랑하는 걸 보면 사랑은, 그렇게 기다려주는 아름다움이 필요한 것일게다...

현실에 매달려사는 여자, 시즈에..
미술선생님이다. 키가 크고 마른 여자.. 그녀의 일상은 마치도 자로 잰듯하다. 총총히 자신의 길만을 왔다갔다하는 시계바늘처럼 그렇게 늘 제자리를 지켜내려 애쓰면서. 그녀 자신은 불륜이라고 전혀 생각지 못하는 유부남 세리자와와의 사랑. 난 아내도 있고 열다섯살짜리 딸도 하나 있지, 아주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세리자와라는 사람의 사랑은 그녀에게 있어서 진정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일까? 가끔씩 만나 그 사랑에 충실하고 또한 그렇게 충실했던 자신의 시간에 대한 연민이나 미련따위를 갖지 않기 위해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가고 있는 여자다. 그것으로 되었다고 늘 생각하면서. 하지만 가끔씩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녀도 그녀의 사랑에 욕심을 부린다. 갖고 싶다고, 늘 곁에 있게하고 싶다고, 헤어지는 순간이 너무도 싫다고.. 그런 걸 보면 사랑은 바라보기만 할 수는 없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은 어느 방향에서 보느냐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는 모양이다.
그런 그녀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남자 쇼노스케는 대학시절의 연인이다. 연인의 감정을 뛰어넘은 우정일까? 차마 연인이 될 수 없었던 우정일까? 도무지 아리송하다. 그녀를 생각하는 그의 마음도, 그를 생각하는 그녀의 마음도 어찌보면 참으로 이기적이란 생각이 든다. 결혼한 여자친구들은 불러내기가 부담스럽다며 자연스럽게 쇼노스케를 불러내는 그녀의 내면에는 과연 어떤 생각이 잠재해 있는 것일까?

자신이 살아가야할 몫의 시간들을 다 채우고 난 뒤의 여백을 채워주는 두 여자의 이야기는 사실 뭐 이렇다하게 별다른 건 없어 보였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니까, 누구나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별다를 게 없어보이는 두 여자의 일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작가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혹시 우리의 기억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만지지 못하고, 느껴질 수 없어 버려진 조각난 시간들을 퀼트를 하듯이 그렇게 꼼꼼하게도 잘 엮어 놓았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들이 점처럼 그렇게 콕콕 찍혀져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왠지 그 시간들이 참으로 쓸쓸하게 다가왔다. 너무도 오랜동안을 곁에 있어주어서 이제는 도무지 멀어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두 여자조차도 사실은 각각의 시간에 대한 비밀을 간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속이 아니라 겉뿐인 것을 두여자를 통해 여실하게 봐버린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남의 이야기는 들어주지 못하면서 그저 자신의 이야기만을 쏟아내고 싶어하는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아픔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두 여자의 모습이 마치도 평행선 같다.
다 보여주는 것 같아도, 다 말해주는 것 같아도 사실은 알맹이는 쏙 빼고 이런 거야, 하며 겉껍질만 보여주는 두 여자의 마음을 본 것만 같아 씁쓸하기도 하다.  들키고 싶어하지 않는 자기만의 세계의 빗장은 여전히 굳건하게 질러놓고 말이다.

기다림으로 사랑을 얻었을까? 결국 다시 한침대를 쓰며 지내고 있는 나카노와 가호의 사랑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일까? 옛사랑의 상처와 그 시간들을 묶어 보관하던 비스켓 상자를 열었을 때 이미 가호의 새로운 사랑은 집을 짓기 시작했던 것 같다. 오랜동안의 기다림으로 다져진 그들의 사랑이 왠지 잘 그려진 수채화같다는 생각을 한다. 오래되어도 흔적으로 각인되어질 사랑이 아니기를 ... 가호의 일상을 사랑해 줄 수 있었던 나카노의 진실함과 배려가 참으로 아름다웠다.

무슨 얘기든 상관없다. 남편 얘기든 투정이든, 어떤 얘기든 상관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푸근해졌다. 사회속에서 비슷한 곤란을 겪고, 하루하루 모색하면서 생활하는 사람들...(60쪽) 바로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질펀하게 흐트러져 있던 책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가끔씩은, 정말이지 아주 가끔씩은 남의 아픔도 들어주어야만 한다. 나의 귀를 빌려줄수도 있어야 한다. 나 혼자만이 존재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므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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