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슴도치의 우아함
뮈리엘 바르베리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실례지만 속을 편히 할 수 있는 곳이 어디있나요? "
만약에 당신이 누군가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면 어떤 대답 혹은 어떤 반응를 보여줄 것 같은가?
나는 이렇게 묻고 싶었다. 그녀, 쉰네살이고 이름이 르네인 아파트 수위 아줌마가 카쿠로 오주에게 이렇게 물었을 때, 그리고 변기의 물을 내릴 때 불쑥 튀어나왔던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듣게 되었을 때의 황당함에 그리고 당혹스러움에 노랗게 변했을 수위아줌마의 얼굴 표정을 떠올리면서..
나같으면 다시한번 물었을 것이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한거야? 

내가 항상 그렇지만 늘 독서란을 훑어보면서 이 책의 광고문구를 보게 되었다. 우선적으로 나는 <고슴도치의 우아함>이란 제목에 유혹을 느꼈다. 고슴도치라고? 뭔가 아주 깊고도 진한 것을 숨겨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주 대단한 은유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설레임같은..
망설임없이 선택했지만 책을 읽기까지는 꽤나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매력적이면서 유머 가득한 어쩌구 저쩌구 했던 광고문구에 비해 책의 두께가 나를 압박해 왔다. 어쩌면 너무 가볍게 생각했을수도 있다는 자책감과 함께 쉽게 손을 뻗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의 유혹에 넘어가기로 작정한다. 그리고 나는 아주 소금에 절인 배추마냥 이 책속의 세상에 푹 절어버리고 말았다.

'깊은 사색'과 '세상의 움직임에 대한 일기'라는 이중일기를 쓰기로 작정했던 그러나 자살을 꿈꾸었던 깜찍하고 당찬 열두살 소녀 팔로마와, 아파트 수위이면서 자신의 내면을 자신의 아픔을 남에게 철저하게 숨기고자 하는 쉰네살의 수위 아줌마 르네의 이야기는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며 하나가 되어가고 있었다. 짧은 단막극을 보는 듯한 이야기 전개가 너무도 황홀했다. 그렇다면 열두살 소녀는 왜 자살을 꿈꾸었으며 쉰네살의 수위 아줌마는 왜 그토록 철저하게 자신을 숨겨야만 했을까? 세상속에 존재하는 모든 편견과 아집과 선입견들이 여기에서 다 까발려지고 있다.  고슴도치처럼 가시옷을 입은 채 자신을 깊게 바라보려 하는 사람을 향해 가시를 곧추세우는 우리의 주인공 르네 아줌마에게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아니 말하지 않은 유년의 고통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르네 아줌마만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가 실질적으로 안고 살아가는 이미 썩어가고 있는 상처가 아닌가 싶다. 누군가 터뜨려주었으면 하는 고름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모습.. 뭐 그런거 말이다. 

인간들은 행위가 아닌 말이 힘을 갖는 세상, 최고의 능력은 바로 능변인 세상에 살고 있다.(77쪽) 
눈은 늘 자각하지만 유심히 바라보지 않고, 믿긴 하지만 의문을 갖지 않고, 받긴 하지만 찾지는 않는다. 즉 욕망도 배고픔도 십자군도 없다. (448쪽)
아픈 은유들을 만나게 되는 순간들은 가슴속이 섬뜩해져 옴을 느끼게 된다.  르네 아줌마가 수위로 있는 부자 아파트에 이사온 일본인 카쿠로 오주.. 한눈에 가시속에 자신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버렸던 그 사람에게 결국 자신을 내보이고 말았던 르네 아줌마가 어느날 아파트 사람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 카쿠로씨의 팔짱을 끼고 식사를 하러 나갈 때의 장면.. 그 장면속에서 나는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우리들의 서글픈 모습을 본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안녕히 가세요 사모님!... 아무런 의미와 형태도 없이 그저 부자인 카쿠로씨의 팔짱을 끼고 가는 모습만으로 사모님이 되어버렸던 우리의 수위아줌마는 그때의 심정이 어땠을까? 우리는 왜 보여지는 것만 믿고 싶어하는 것일까? 아니 우리는 왜 되도록 우리에게 편안함만을 제공하는 것에 열망하게 된 것일까?  굳게 닫혀진 성안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타인을 인정하지 못한채 성밖으로 나오기를 두려워하며 그럴것이다,라고 추측해 버리고 마는 그 억지스러움은 어쩌면 우리가 늘 저지르고 사는 바보같음인지도 모를일이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건 우리가 사물의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보는 순간에 일어나는 사물의 찰나적인 배열이다.... 아마 이것이 살아잇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들을 추적하는 것이.(400쪽)
고통은 늘 여기 있지만, 그렇다고 내가 걷고 말하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는다.(477쪽)
어린 아가씨 팔로마 앞에서, 그녀의 내면을 들켜버렸던 카쿠로 오주씨 앞에서 오열하며 흘렸던 르네 아줌마의 눈물은, 그 아픈 서러움은 무엇이었을까?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숨겨야 할 우리의 모습은 도대체 몇가지나 되는 것일까? 좋은 모습만 기억되어지길 바라면서 보여주는 우리의 모습속에는 진정한 나의 정체성이 몇프로나 들어있는 것일까?  때에 따라 적당한 표정으로 갈아 써야만 하는 이중의 가면속에 숨겨진 우리의 모습은 우리 스스로가 얼만큼씩이나 인정해주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르네 아줌마의 서러운 기억을 보듬어 안았던 우리의 열두살 아가씨 팔로마는 이렇게 말했지.. 나는 내 주위의 그 누구에게도 잘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아줌마의 손을 잡으면서 나는 나 역시 병자였다는 걸 느꼈다..고. 그래서 불을 내고 자살할거라는 계획을 재고해야만 할 것 같다고... 가끔씩 주변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면 아주 철저하게 자기 위주로 돌아가 있는 모습과 만나게 된다. 누구나에게 한번쯤은 아니 한가지쯤은 있음직한 혹은 있었을 아픔도 오직 나만의 아픔이었고 나였기에 더 아팠고 나였기에 더 혹독했다고 그러니 그걸 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얼마나 큰 목소리로 웅변하듯이 토해냈던가?  누군가의 관심을, 사랑을, 배려를 그토록 원하면서도 과연 나는 그 누군가를 얼마나 배려했으며 얼만큼의 관심으로 사랑을 주었는가? 

근본적으로 우리 모두는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믿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통 받는 것을 원치않는,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할만한 가치가 있는 무엇이 있고, 그렇기에 삶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데 우리의 모든 힘을 다 써버린다.(29쪽)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가슴 한켠이 서늘했다. 내 속깊이 파고 들어오는 알 수 없는 느낌때문에.. 끝도 없이 살아 숨쉬는 글자의 마술속에 갇힌채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던 진정한 내면의 아우성.. 우리의 수위 아줌마 미셸부인 르네와 우리의 열두살 소녀 팔로마를 앞세워 웅변같은 열변을 토해내는 작가의 모습, 아시아로의 여행을 꿈꾸는 철학 선생과 그의 책을 읽는 독자와의 실제적인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과연 그들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갈까?  참으로 부질없을 궁금증 하나가 내 머릿속에서 서성거렸다.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세상은 너무도 많다. 엉킨 실타래같은 길찾기가 나에게 주어진 몫이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던 속담처럼 너무도 많은 길을 보여주고 혹시? 하는 물음표도 던져주지만 결국 르네와 팔로마의 귀착점은 같다. 외로움.. 고독..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아니 다른 사람들의 속깊은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는 목마름.. 그 외로움과 고독과 목마름을 서로에게서 찾게 되는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그들의 모습.. 첫눈에 가시속에 숨겨진 수위아줌마의 내면을 알아챈 카쿠로씨에게 결국 마음을 열게 되었던 르네 아줌마와 그 길속에서 잠시 머무르다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우리의 깜찍한 팔로마에게 나는 정말로 이제까지의 아픔보다도 더 진한 행복이 함께 했으면 하고 바랬다. 하지만.. 철학선생인 작가의 선택은 너무나 잔인했다. 달려오던 차와 부딪혀 차가운 아스팔트위에서 죽어가던 수위아줌마 르네의 행복은 이제 어쩌라고?  그 죽음의 순간속에서 그녀가 불러보던 그 이름들의 아픔은 또 어쩌라고?

우리는 늙어가고, 그건 아름답지도 좋지도 즐겁지도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자신의 힘을 다해, 지금 뭔가를 구축해야 한다.(187쪽)
우리는 정말이지 끝도 없을 것처럼 달려간다. 지금도 달려가고 있다. 내 앞에 놓여진 시간을 내맘대로 하기 보다는 그 시간에 끌려가듯이 그렇게 달려가고 있는건지도 모를 일이다. 르네 아줌마의 죽음앞에서 나는 참담했다. 왜 그녀는 죽어야 했을까? 그토록 오랜동안 시간에게 끌려다니다 이제와 그 시간앞에 섰는데 어째서 그녀는 죽어야만 했을까? 오십사년만에 처음으로 느꼈던 마음의 평안을 그녀에게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 버린 우리의 철학선생이 나는 너무도 미웠다. 그런 평안을 그녀에게 영원히 선사하고 싶어서였을까?  작가가 곁에 있다면 나는 묻고 싶었다. 왜 그랬느냐고. 그녀를 왜 죽여야 했느냐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 달라고..  하지만 나는 책장을 덮고서야  그 죽음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녀의 아픔과 열두살 소녀의 자살계획은 과연 누구로부터 비롯되어진 것이었던가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녀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시킨적은 없었을 것이다. 내게 온 시간은, 내게 배당되어진 시간은 온전히 나의 몫이라는 것을.. 그 모든 것들이 나로부터 비롯되어진것이라는...
수위아줌마 르네의 죽음을 카쿠로씨에게서 전해들었던 열두살 소녀 팔로마의 일기에 이렇게 씌여져 있었다. 난생 처음 나는 '다시는'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느꼈다. 그건 끔찍하다. 우리는 하루에 이 단어를 백번씩 발음하지만 진정한 '더이상... 다시는' 에 직면해보기 전에는 우리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477쪽) 고..

생은 많은 절망이 있지만, 또다른 종류의 시간인 아름다움의  몇 순간들도 있다. 마치 음악의 한 소절이 시간속에 일종의 괄호와 정지를, 바로 여기속의 다른 곳, '다시는'속의 '언제나'를 만드는 것처럼. 그래, 바로 그거다. '다시는'속의 '언제나'...  이 책의 맨 마지막 쪽에 나와있는 마지막 구절이다. 열두살 소녀 팔로마의 일기속이기도 하다. 그리고 팔로마는 이렇게 말한다. 걱정마요, 르네. 나는 자살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아무것도 불태우지 않을거에요. 당신을 위해 나는 이제부터 다시는 속의 언제나를 추적할 것이기 때문이에요..라고. 
그야말로 황홀한 유혹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멋진 말들과 표현으로 내게 다가왔는지 이 책을 선택해 주었던 내 자신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아니 많은 분야들이 넘쳐나고 있었지만 나는 그것들을 모두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많은 분야들을 내가 다 알수는 없으므로.. 그저 우리의 주인공인 수위아줌마와 열두살소녀에게만 집중을 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멋진 두명의 친구를 사귀는 듯 했지만 그녀들은 끝내 가버리고 말았다. 너무나 아쉽게도.. 그리고 나는 내 가슴을 설레게 했던 그녀들과의 재회를 꿈꾸기로 했다. 그녀들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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