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사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6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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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전부터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인간 실격이란 말에 자꾸만 시선이 갔던 까닭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인간 실격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순간은 언제일까? 표지에서 보여지는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도 암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길을 걷고 있는 사람의 뒷편으로 커다란 십자가처럼 버티고 선 채 무게감을 실어주고 있는 전봇대의 위용.. 그리고 그 골목길은 참 스산하다. 왜일까? 그림속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뒷모습이 서글프게 보이는 이유를 알지 못하겠다. 도시는 회색빛의 건물로 가득 차 있다. 아무에게도 말을 걸지 않는, 아니 말을 걸 수 없는 그런 차가움을 안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찰나의 순간들이 저런 모습은 아닐까?  책표지의 작은 그림 한점이 이렇게나 많은 말을 뱉어내고 있다는 점이 나를 놀라게 했다. 사양 斜陽... 한자대로 풀이해보자면 이렇다. 비낄 斜, 볕 陽..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묻어나고 있음이다. 어쩌면 또한번 가슴 깊은 곳의 아픔을 느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책장을 펼쳐들었다.

처음 책장을 펼쳐들면서 예외없이 작가의 이력을 파헤친다. 그렇구나, 결국 이 사람도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구나...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생각났다. 왜일까? 인간의 본질, 혹은 인간의 내면성에 대해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자신의 삶에 대해 무책임해야 하는 것일까?  <설국>을 읽는 내내 조바심을 내던 나를 기억해내고는 이내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끝내는 책을 읽어냈다는것에 대해 나 자신에게 감사한다. 그렇게 조바심을 내며 이 책을 읽는 내내 나역시도 작가와 같이 깊은 수렁같은 절망속에 빠져들었지만 말이다. 그 절망감은 책을 통해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또하나의 알 수 없는 느낌 그 자체로 내게로 온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아프다. 끝없이 자기 자신을 찾아 헤매이는 것 같아도 궁극적인 애정결핍으로 결론지어져 버리는 상황이 나를 너무도 아프게 한다.  험난한 세상을 살기 위해서 어떤 겉치레가 필요하고, 보기좋은 허울이 필요하고, 표정을 숨겨줄 수 있는 가면이 필요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현실이지만 왜 그런 것들을 걸치기 위해서 자신의 내면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감춰둔채로 살아가야만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왜 속에 있는 것들을 위장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책속에서 움직이는 주인공은 누구도 아닌 작가 자신이며 책을 읽는 자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너무도 아프게 현실을 살아내야 하는 우리의 모습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늘 사랑에 목말라하고 늘 사랑에 굶주린 채로 살아가지만 자신 안의 사랑을 꺼내지 못하고 살아가는, 아니 자신속에 내재되어져 있는 사랑이라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한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사랑을 향한 욕망이 변하여 자기학대를 하며 그런 자신의 모습을 위장한채 웃고 있는....

책의 서두에서 보여지는 석장의 사진에 대한 설명은 정말이지 기묘하다. 첫번째 사진으로 보여지는 꼬마의 웃는 얼굴... 양손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웃고 있는 아이의 웃음을 이야기하며 결코 웃고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이란 이렇게 두 주먹을 움켜쥐고서 웃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두번째 사진속에서 보여지는 청년의 모습... 하나부터 열까지 만들어진 장식품 같은 느낌으로 한 채로 웃고 있다. 계산된 표정도, 경박스럽지도, 멋스럽다고도 하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그 학생에게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괴하고 음침한 기운이 느껴진다고. 그런 이상한 미모를 갖춘 청년을 본 적이 한번도 없다고.  가장 기괴하다고 쓴 마지막 사진속의 모습에는 아예 그 나이조차 가늠할 수 없다고 써 있다. 웃고 있지 않지만 다른 어떤 표정도 들어있지 않은... 자연스럽게 죽어있는 듯한, 너무도 꺼림칙하고 불길한 냄새를 풍기는 사진이라고.  그래놓고 작가는 또 이렇게 말한다.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얼굴, 눈을 뜨고 다시 들여다봐도 생각나지 않는 얼굴이라고. 단 한번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라고... 그 석장의 사진을 묘사한 대목을 읽으며 알 듯 모를 듯 묘한 느낌을 받아내야만 했던 그 순간은 내게도 끔찍했다. 그 석장의 사진만으로도 아주 간단하게 한사람의 일생이 그려지고 있으니 말이다.

인간실격속의 주인공 요우죠우를 보면서 나는 껍질도 없이 돌아다니는 달팽이같다고 생각했었다. 단단함이라고는 제 몸을 숨길 수 있는 등딱지뿐인.. 세상을 향해 더듬이를 내밀다가도 아주 작은 충격에도 놀라 그만 제 몸속으로 들어가버리고 마는.. 세상속으로 들어가고 싶지만 너무 말라도, 너무 젖어있어도 안되는 특성이 그를 자꾸만 멈칫거리게 만드는.. 그렇지만 그 요우죠우에게 어느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으니 결국은 모든것들로부터 상처를 입고 그 상처로 인하여 끝내는 자신의 마음의 문에 빗장을 걸어버리고 마는 요우죠우의 모습. 정서상으로는 사랑이 필요했던 거라고 말을 하지만 오롯이 그 사랑하나때문만은 아니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자기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건지도 모를일이다. 그런데 누구를 탓해야 할까? 가부장적이며 권위주의인 아버지를 탓해야 했을까? 아니면 많은 형제들 사이에서 막내로 태어나 억눌림을 받았던 생활을 탓해야 했을까?  그런 외적인 형편보다는 진실되지 못한 채 앞뒤가 서로 틀린 인간의 모습들이 어쩌면 그를 자신만의 세계속에 안주하게 만들었던 건 아니었을까?

사양에서의 주인공 가즈코 역시 귀족 출신이다. 시대가 변하여 이미 귀족으로서의 틀이 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귀족정신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주변때문에 결국 자기 자신을 어쩌지 못하는 가즈코의 현실은 그런 것들로부터 탈출하고자 제 스스로 타락하고 파탄의 길로 들어서고자 노력했던 동생 나오지보다 더 참혹했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죽어간 어머니의 모습과 그런 모습을 만들어주었던 형식들이 싫었지만 결국 어머니를 닮은 여인에게 사랑을 느껴야 했다고 유서에 썼던 나오지의 모순은 우리가 살아내고 있는 세상속에서 끝도없이 마주쳐야 할 모순의 하나일수도 있다.  남들이 말하는 생활 능력이란 게 없다고. 돈 때문에 남들과 겨룰 만한 힘이 없다고,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를 칠 수가 없다고 그래서 죽는 게 나을거라고 말하던 나오지의 착잡함은 정말 착잡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그렇게 보여지는 형식의 틀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똑같다. 그 세상을 살아내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역경 또한 누구나 똑같다. 단지 더 아프고 덜 아프고의 차이일뿐이다. 그 느낌은 누가 느끼나? 그것 또한 내가 느끼는 것이다.  저 위에 가면 무엇이 있나요?  끝도없이 위로 올라가며 거대한 기둥을 만들었던 애벌레들의 질문처럼 요우죠우와 가즈코의 모습은 그 기둥의 끝에서 보았던 황홀한 날개짓을 위해 고치를 만들었던 것과 다르지 않을거란 생각을 한다. 그 고치속에서 이제는 나와 황홀한 날개짓을 하기 위한 아픔이었을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결코 누군가가 도와주어서는 안되는 그 ....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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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들
요시다 슈이치 지음, 오유리 옮김 / 북스토리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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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즉부터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의 글과 만나고 싶다는 유혹에 빠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사 만나게 된 것은 아마도 이제까지 읽어보았던 일본소설들이 내게 남겨두고간 느낌 때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그리 많은 책을 읽어보진 못했지만 지금까지 읽어본 일본소설들은 내게 알 수 없는 아픔을 주었던 까닭이다. 대체적으로 현실속에서 느껴야만 했으나 비껴가고 싶었던 것들을 책속에서 만난다는 건 가끔씩 나를 아프게도 한다. 되돌아보기 싫은 나의 지나간 시간속의 얼굴처럼 말이다. 책을 읽고난 후 내가 묻고 싶었던 것은 과연 그들에게 '일요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에게 다가왔던 게 과연 '일요일들'이었을까? 였다. 

책표지의 말처럼 애인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 누구나에게 일요일은 온다. 일요일의 의미는 통상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쉰다'는 것이다. 이제껏 힘들게 살아왔으니 오늘 하루쯤은 맘놓고 푹 쉬어도 좋다고 허락받아 놓은 날이 일요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속의 '일요일들'속에는 편안함 혹은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일요일들'이라고 명명지어진 날들 속에서 더 아파하고 더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얻고자 했던 '쉼'은 어디로 간 것일까? 혹시 그 '쉼'에게도 그날이 '일요일들'은 아니었을까? 알 수 없다. '일요일들'마다 벌어졌던 일들의 의미는 또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든 날들이 일요일일수도 있고 일요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된다.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는, 그러나 어쩌면 늘 쉬고 있는 것일수도 있는 그런 것처럼 말이다. 책속에서 만나지는 일요일들은 저마다 주인공의 아픔을 하나씩 안고 있었다. 이별의 아픔, 존재성의 아픔, 생활의 아픔.... 우리곁에서 늘 맴돌고 있는 차마 버릴 수 없는 아픔들이 그 안에 나란히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부터 만나는가는 읽는자의 몫이다. 역시 일본소설답게 현실속의 아픔이 절절히 녹아져 있다. 피해가지 않고 정면돌파를 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진다. 신기한 것은 매 '일요일들'의 사이 혹은 그 '일요일들'마다 감초처럼 끼어들던 어린 형제의 모습이다. 그 형제들의 시간이 결국 현재와 마주치면서 이 책의 책장을 덮게 되지만 나는 그 어린 형제의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 보았던 <주온>이란 영화속의 어린아이를 떠올렸었다. 영화속 아이의 그 텅빈 눈동자처럼 이 책속의 어린형제는 시간과 공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해주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묻혀져 있었던 것은 어쩌면 외로움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무언가로부터 버림을 받아야 하는 그 순간,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 발버둥치는 그런... 늘 외로움속에 존재하면서 외롭지 않다고 우겨대는 것 또한 우리의 모습이기에 폭력으로부터 해방되어 고향으로 내려가던 노리코와 다 자라서 청년이 되어버린 어린 형제를 만나게 해 주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결코 외롭지 않다고, 우리가 살아내는 이 시간들은 결코 외롭지 않은 거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를일이다. 누군가 우리를 떼어놓을 거라고 복지원으로 들어가길 거부하던 그 형제들은 그들이 생각했었던대로 동생은 입양이 되고 형은 목수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 현실을 멋지게 받아들이고 있었던 거다. 마주바라보던 노리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고 청년도 말없이 끄덕거렸다고... 그렇게 우리의 현실은 받아들여지는 거라고...

노리코의 입을 통해 전해들었던 것은 모든 것은 다 내 안에 있다는 거였다. 현실은 내가 당당하게 대항할 수 있을 때 이겨낸다는 거였다. 우리가 그토록 찾고 싶어하는 '일요일들'마져도 우리속에 감춰져있다는 거였다. 노리코의 말처럼 나쁜 일만 있었던 건 아닐테니까..../아이비생각

"아니, 그 뭐냐, 잊으려고 하는 건 말이야, 참 어려운 일이지, 난 그렇게 본다."
"네?"
"아니, 그러니까,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잊히지가 않아.
 인간이란 건 말이다, 잊으면 안되는 걸, 이런 식으로 맘에 담아두고 있는 건가 보다."
"이런 식으로라니요?"
"아니, 그러니까, 잊어야지, 잊어야지 노상 애를 쓰면서....."
<163쪽, 일요일의 남자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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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의 수수께끼 - 흥미진진한 15가지 쟁점으로 현대에 되살아난 중국 역사
김영수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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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오래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원복님의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책이 시리즈로 출간되어 학생들에게 읽혀졌던 게.. 만화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다가가기에 부담이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책이 아직도 책꽂이에 꽃혀있지만 어찌된 일인지 아들녀석은 도통 흥미가 없다. 하기사 요즘의 아이들에게는 책보다 가까운 컴퓨터와 게임이 있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일본편을 보면서 새롭게 다가오던 일본이란 나라에 대한 느낌을 이 책에서도 느낄 수 있을거란 기대를 했었다. 단순히 중국사를 논하기보다는  중국의 역사에 맞추어 우리의 모습을 한켜,한켜씩 보여주던 작가의 세심함에 새삼스럽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던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중국이란 나라의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우리의 역사속에서도 아주 진득하게 그리고 질펀하게 녹아져 있는 게 중국이란 나라인 것도 같고...  사실 어지간한 중국의 문명이나 문화가 우리의 삶속에 그대로 녹아있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중국이란 나라의 이모저모를 만날 수 있었다.  무인 출신이었으나 지식인을 높이 평가하여 끝까지 그들을 지키고자 했던 송 태조 조광윤, 그는 공개, 공평,공정이라는 '3공'의 정신에 입각한 유례없이 합리적인 인재 선발 제도였던 과거제도를 확대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출세의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대운하를 통해 들려주었던 시대적인 정치나 경제, 군사의 복합적인 배경은 나에게 놀라움을 전해주기도 했다. 운하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했다. 중국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꼭한번은 찾아보리라던 진시황릉과 병마용 갱의 역사는 아주 세밀하게 잘 그려져 있어서 보고 또 보았다. 사진과 곁들여진 작가의 세심함에 놀랍기도 했지만, 그런 중국사를 들려주며 우리의 역사와 우리의 지식인들, 정치인들에 대한 우려감을 표현한 부분들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중국인들의 역사재조명이나 그들의 역사관이 변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는 어떠한가? 작가는 되묻고 있었다. 기원전 2333년이 위험하다던 작가의 글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었으니 그런 현실을 몸으로 보고 느꼈던 작가의 심정이 오죽할까?

16년 넘게 100여 차례나 중국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길고도 짧은 여행을 다녔다는 작가가 우리에게 제대로 된 중국을 알려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는 책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듯 하다. 고대 중국에서는 공무원을 어떻게 선발했으며 그에 따른 녹봉은 또 얼만큼씩이나 책정이 되어졌는지 그리고 지금처럼 평가제가 있었고 정년퇴직을 해야 했다는 점등, 능력이 없다고 평가되어진 관리들은 명예퇴직을 당하거나 한직으로 쫓겨나고 그것도 안되면 파직 당하기도 했다는 것을 보면서 지금 우리의 정치현실을 바라보니 쓴웃음만 나온다.  병마용갱이나 능원을 발굴해보자는 여러계층의 제의를 받고도 자신들의 역사를 지키기 위하여 '하루 늦게 파는 것이 하루 일찍 파는 것보다 낫다'는 원칙을 사수했던 그들의 모습에서는 절로 감탄사가 나온다. 우리같았으면 어땠을까?  얼마전 신문지상에서 보았던 우리의 오래된 문화유산들이 재개발이나 건축현장속에서 그 빛을 잃어가고 있다는 기사가 생각났다. 문화적인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처간 서로 떠넘기기만 하다가 시간이 흘러 그렇게 되었다는 글을 읽으며 쫓아가 머리라도 한대씩 쥐어박고 싶은 심정이었던 까닭이다. 도대체 저들과 우리가 무엇이 다르길래 이토록 의식의 차이를 느껴야 하는가 말이다. 시대적으로 변해져 내려오던 무인상과 문인상을 바라보면서 저 모습속에도 그토록 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었구나 싶어 다시한번 바라보기도 했다. 역사는 이긴 자에 의해, 남겨진 자에 의해 쓰여진다고 했지만 자신들의 색깔과 선을 분명하게 긋기 위하여 노력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되어지던 순간이기도 했다.

사진과 이야기가 적절하게 어울어져 서로 보충설명을 해주었던 점은 이 책의 묘미가 아닐까 싶다. 중국에 대한 이야기가 어찌 이것뿐일까? 아마도 작가의 생각과 마음속에는 이것보다도 더 많은 이야기들이 살아 숨쉬고 있으리라. 2002년부터 시작된 '동북공정'이나 2000년부터 시작된 '중화문명탐원공정' 등은 '중국사 다시 쓰기'의 큰 퍼즐 맞추기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작가는 묻고 있음이다. 그 안타까움을 여러가지 예시를 들어 설명하고 있으니 나까지도 착잡해지는 느낌을 감출수가 없다. 지식인들의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꼬집어 말한다해도 그들중 아무도 고개 들어 반박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가의 말처럼 문제는 우리들 자신이 아닐까 싶다. 작가의 말처럼 식민사관에 안주한 채 집단이기주의를 등에 업고 사사로운 매명에만 열을 올리는 기득권층이 역사적 책무를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제 닭잡아 잔치해 봐야 무슨 득이 있다고 우리의  저 잘난 인물들은 오늘도 피터지게 싸우고 있는데... 흔히 말하는 made in china 만이 중국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이길 수 있다던 옛말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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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몰이
조에 부스케 지음, 김관오 옮김 / 아르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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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오래 걸렸다. 아직까지도 이 책을 내려놓는다는 게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도중하차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여러번 했으면서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읽고 읽고 또 읽었다. 같은 문장, 같은 페이지를 몇번씩 읽어가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무엇이 나를 이 책속에 머물게 했던 것일까? 어찌보면 거대한 은유의 물살에 휩쓸려 제정신을 차라지 못했던 것도 같고, 어찌보면 끝없는 나락의 저 밑창으로 한없이 떨어져내리는 건 아닌지 두려운 마음마져도 들었던 것도 같다.
보통 불가에서 말하는 '화두'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이 책 자체는 어쩌면 내가 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군가 툭 던져놓고간 화두처럼 그렇게 무겁기만 하다. 이만큼 왔다고 생각되어지는 순간에 나는 또 저만큼 멀어져 있으니... 읽고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반칙을 써보기로 했다. 책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싫어서 옮긴이의 말이나 책에 대한 해설을 가장 나중에 읽곤 했었던 나만의 법칙을 벗어나보기로 했다.  마지막 부분의 해설편에서는 이 책의 작가인 조에 부스케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 조에 부스케의 작가정신이라기 보다는 그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였다고 말하는 것이 옳겠다. 어쩌면 그의 사상이 되어주기 위해 존재했었던 그의 생활들은 참으로 끔찍했다. 부스케 자신의 상처 체험을 극단으로 심화하여 그것을 존재론적 차원에까지 이르게 한 거대한 노력의 결정체... 우리가 자신의 상처와 불행을 어떻게 극복하여 육화시킬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는 사랑과 긍정의 이야기이며   가장 자전적인 산문이라던 광고의 말처럼  나에게도 그렇게 다가와 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사실은 너무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주 가끔씩 부스케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현실을 그려내며 보여 주었던 대목을 빼고나면 너무 어렵다. 소용돌이를 보고 있는 것 같다. 가까이 다가올 듯 하면서도 다가오지 않는 어떤 느낌들이 너무 짜증스럽기도 했다.
너의 전 존재를 마치 너를 판단하기 위해 사건의 형태를 취한 것 같다.
색 속에서 사는 모든 것은 땅 밑에서 산다.
사람은 깨어나 살도록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말은 말의 기호이다. 우리가 깨어나는 세계에는 그것의 광대함을 위한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등등등... 언뜻 언뜻 보여지는 볼드체의 말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부르조아 집안의 경직이 싫어서 결국 부모에게 복수를 하려고 전쟁에 자원입대를 하게 되었던 조에 부스케. 자살을 꿈꾸었던 그에게 전쟁에 대한 공포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무모함으로 대담함으로 전쟁을 치루어냈던 그는 장교 계급장까지 달게 되지만 부스케는 언제나 가장 위험한 최전선에서 싸우기를 원했다고 한다. 1918년 큰 부상으로 인해 잠시 병가를 보내게 되었을 때 한 여인을 만나 첫사랑을 하게 되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다시 귀대를 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쓰러진다. 척추를 뚫고 나간 총알이 그를 쓰러뜨리고 그대로 그곳에 버려지길 바랬던 그의 명령을 무시한 부하들에 의해 그는 야전병원으로 이송되었고, 부대원 전원이 전사하는 전장에서 그는 기적처럼 살아남았다. 다시 회생할 수 없었던 그의 삶은 침대와 더불어 이어지게 되는데 그 고통스러움과 절망의 끝에서 부스케가 희망처럼 부여잡았던 글쓰기의 결과가 이 책으로 태어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죽는 날까지 침대에 누워 지내기로 작정하고 공부를 시작했으며 철학과 문학에 빠져 들었다고 하니 말이다.

다시 원점. 천천히, 천천히 다시 읽기 시작한다. 아마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다시 이 책을 잡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고통의 깊이가 너무 깊어도 그 고통을 인식할 수 없다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어쩌면 조에 부스케에게 있었던 그 고통은 고통이기에 앞서 하나의 절망이었고, 하나의 희망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우리의 삶이 안고 있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고통 역시 드러나지 않는 하나의 절망이며 희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며칠을 안고 뒹굴었던 화두 '달몰이'의 무게가 자꾸만 나를 가라앉게 한다. /아이비생각

인간은 그가 제어하는 사건들의 장소이며, 그가 제어하지 못하는 사건들의 장소이다.(43쪽)
우리가 세계로부터 분리되어 있는 것은 우리가 우리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상처는 이 분리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상처를 내면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상처를 받았기 때문이다. (67쪽)
사람들은 보존할 가치가 있었던 것에만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그때 사람ㄷ르은 무엇에도 우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디에 우리의 가치들이 있는가? 나는 이 가치들이 심지어 우리의 실존이 우롱하는 정의에 대한 사랑속에 있다고 믿는다.(100쪽)
세계의 진부성은 우리 직관의 불완전성 때문이고, 우리의 주의력 불능 때문이다. 자동차의 헤드라이트에 의해 뚫려진 밤의 시야처럼 사실에 대한 우리의 직관은 항상 애매하고 막연하다. 사람은 그토록 눈이 멀었지만 자신이 희미하게 들여다보는 세계의 불충분함을 메우기 위해 자신의 상상력이 하나의 세계를 열어 줄 것을 요구한다.(161쪽)
의식은 인식의 모든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의식을 인식의 자리에 놓는 데 온 상상력을 사용할 것. 의식은 '있는 것'에 따르고, 인식은 '우리인 것'에 따른다.(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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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밀화로 만나는 동물지식백과 1 - 놀라운 동물의 몸
파멜라 히크만.에타 케너 지음, 이일형 옮김, 팻 스티븐스.그레그 더글라스 그림, 권오길 / 청림아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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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이거요 이거! 제가 전에 말했었잖아요..
뭐가? 도대체 뭘 보고 그러니?
책을 펼쳐들고 시원스럽게 펼쳐보던 아들녀석의 수선스러움에 아이 곁으로 다가갔다. 며칠전인가 퀴즈를 낸다고 하더니 세상에서 가장 큰 조개가 뭐냐고 물었었다. 정답은 '거거'다. 세상에서 가장 크다는 조개 '거거'는 어른 세 명을 합친 것만큼 무겁고 크기도 욕조만하다고 나와있다. 와, 진짜로 이렇게 큰 조개가 있었네? 거봐요, 제 말이 맞죠?  아주 자랑스러운 듯이 엄마를 쳐다보는 아이의 표정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는다. 동물의 세계뿐이랴? 곤충, 식물... 살아있는 것들은 모두가 아이들의 호기심을 비껴가지 못한다. 어릴때부터 그렇게 곤충을 좋아하더니 지금은 뭘 봐도 귀엽다고 장난감 취급을 한다. 생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중한 거라고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 거라고 말해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그야말로 동물백과사전이다. 일반적인 사진이 아니라 사진에 가까운 세밀화로 그려져 아이가 다가가기에는 부드러워 괜찮은 듯 하다. 

죽을 때까지 쓰는 이빨이 3000개나 되는 나는 누구일까요?  엄마의 젖을 하루 200리터나 먹어대고, 몸무게가 하루에 90킬로그램씩 늘어나게 되요. 나는 누구일까요?  다 자라도 키가 겨우 15센티미터밖에 안되는 나는 누구일까요?  입 안에 125개나 되는 날카로운 이빨이 달려 있답니다. 이 이빨을 앞뒤로 움직여서 먹잇감의 몸 위에 구멍을 내는 누구일까요? .....

정말 신기하다. 내가 체험할 수 없는 세계의 신비로움은 말로는 할 수 없는 것 같다. 그 세계에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와 감정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이 책을 보다보면 만약에 내가 ~~~라면? 하는 시리즈가 나온다. 만약에 여러분이 하늘다람쥐라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설명을 붙여 놓았는데 아이가 보기에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학습적인 참고사항이라고 할 수 있는 작은 실험실에서는 엄마와 함께 혹은 아이 혼자서도 과학의 세계로 근접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작은 실험실 코너에서 내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렵고 힘든 실험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아주 쉽게 접할 수 있는 실험예를 들어주어 아주 좋았다는 거다. 실험이라는 게 실질적으로 실험을 하는 아이가 그 실험의 결과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던 까닭이다. 너무 어렵게 접근하다보면 혹은 너무 준비물이 많아야 한다면 이미 시작할때부터 실패다. 그런데 이 책속의 작은 실험실은 그런면에서보면 합격이다. 

여러분은 여름잠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보통은 겨울잠에 대한 이야기들을 많이 한다. 겨울이 오면 동면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동물에는 이러이러한 것들이 있다고만 아는 게 대부분의 경우가 아닐까 하는데, 이 책을 통하여 여름잠에 대해 알게 된 아들녀석의 반응은 새삼스러웠다. 엄마, 여름에도 잠을 잔대요!  몸의 형태나 오감에 의한 정보, 그리고 사는 곳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정보등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동물은 참으로 많다. 일일이 그림으로 그려주며 설명해 놓았다. 문체도 엄마가 이야기해주는 듯한 느낌이 든다. 되도록 쉬운 말로 풀이해 놓은 것도 괜찮았다. 굳이 흠이라고 말한다면 책장을 넘기면서 갑작스럽게 만나지는 동물의 클로즈업된 모습이다. 부드러운 느낌을 주는 동물그림이라면 괜찮겠지만 주로 강렬한 이미지를 남기는 동물의 모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라, 아이와 엄마가 함께 책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책장을 넘겼는데 예고도 없이 크고 선명한 색깔을 한, 구불구불하게 몸을 말고 있는 왕뱀이나 독뱀의 모습이 느닷없이 펼쳐지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면?  검은톤의 배경색속에서 야행성 동물의 크고 밝은 커다란 두 눈을 만나게 된다면?  동물의 어느 특정부위를 크게 그려놓아 순간적으로 깜짝 놀라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그런 것들과 마주치고 나면 책장을 넘기는 게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엄마의 욕심으로 아직 어린 유아기의 어린아이와 이 책을 보는 것은 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초등학교 이상의 아이들이 본다면 조금 나을 듯 하다. 곁들여놓은 세부적인 설명만으로도 아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크고 선명한 그림이 있는 덕에 아들녀석이 실감나게 책을 보고 있다. 가끔씩 툭 튀어나오는 약간은 혐오스러운(?) 몇 장면만 너그러이 봐줄 수 있다면 간접적인 체험학습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엄마, 엄마 이것봐요. 이거 정말 신기하지요? 와, 이런 것도 있구나~ 책에 빠져 있는 아들녀석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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