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세계 악녀 이야기
시부사와 타츠히코 지음, 이성현 옮김 / 삼양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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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이 양분되어져 시작되기만 하면 편을 가르는 것 중에 성선설과 성악설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선하다? 혹은 악하다? 이런 주제로 본다면 나는 성악설을 믿는 편이다. 아무래도 악한 본성을 지닌 것이 인간이 아닐까 싶어서이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약점을 남에게 드러내기 싫어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악한 본성을 감추기 위하여 선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이건 순전히 나만의 생각일뿐이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책을 열자마자 역자서문에서 나와 같은 말을 해주고 있으니 무슨 일일까?  "정의롭고 착하게 사는 것은 바보처럼 사는 것"이라는 가치관이 어느새 우리주위에 만연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어쩌면 정의롭다는 것을 파헤쳤을 때 나타나는 그 부조리함과 부패의 썩은 것들에 대해 부정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면적인 모습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속에는 동서양을 대표하는 악녀 열네명의 이름이 올라있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이름들도 있지만 약간은 생소한 이름들도 보여진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과연 이 여자가 악녀였을까? 되묻고 싶어지는 그런 경우도 만난다.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그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여 그 고기를 먹게했다던 이야기처럼 한때 푹 빠져 지냈던 신화속에도 악녀 이미지를 갖춘 여인들은 참 많았었다. 친절하게도 세기를 나누어가면서 악녀들을 들춰냈지만 내가 보기에 악녀라고 평하고 싶지 않은 여인들도 꽤나 되는듯 하다. 세계를 움직인 악녀라고 이름지어져 있던  클레오파트라가 진정 악녀였을까?  학창시절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던 만화 <베르사이유의 장미>에서 그토록이나 이쁘게 그려졌던 마리 앙뜨와네뜨가 정말 악녀였다고?  괴상한 매력을 가졌던 남자 괴벨스에게 빠져 나치스와 최후를 같이 했다던 여인 마그나 괴벨스는 생소하기도 했지만 왜 그녀가 악녀의 대열에 끼어야 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처녀로써 왕위에 올라 그 왕위를 지켜내기 위해 결혼조차 하지 않았다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악녀였다는 말에도 공감하기 힘들었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위하여 혹은 사랑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죽여야 했던 여인들.. 그것도 아니라면 정치적인 물결속에서 대세를 읽지 못한 채 물결에 떠밀려가야 했던 여인들.. 이유야 어찌되었든 간에 그녀들이 선택해야 했던 것들이 아마도 다른 사람들을 힘겹게 했으리라.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치면 화를 불러온다. 그랬기에 그녀들은 악녀 혹은 마녀라는 이름으로 재판을 받았을 것이고 화형에 처해졌거나 단두대에서 목이 잘렸을 것이다. 그런데 처녀의 피로 목욕을 했다던 에르체베트 바토리라는 여인의 경우는 정말 경악스럽다. 사람으로써 어찌 저럴수가 있을까 싶은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천인공노할 일이다. 독을 잘써서 희대의 독살마로 이름이 붙어버린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조차도 에르체베트 바토리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하고, 근친상간으로 인한 정신병적인 요인이 자리했을거라는 변명조차도 궁색하게 만들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악녀들을 동서양으로 구분지었다는 거다.  그런데 희안하게도 서양의 악녀보다 동양의 악녀들이 더 지독하고 잔인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은나라를 멸망시킨 달기야 원수갚음을 위하여 제조된 상황이니 그렇다치지만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첩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말을 못하게 한 것도 모자라 팔과 다리를 잘라내 사람돼지를 만들었다는 유방의 마누라 여후는 정말 지독했다. 그 참혹한 광경을 자신의 아들에게 가서 보라고 말할 수 있었던 그녀의 심장속에는 차가운 피가 흘렀을까?  동양 최고로 잔인한 악녀였다는 측천무후는 또 어떤가 말이다. 야망을 위하여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아이들까지 스스럼없이 죽여 없앴다던 그녀.. 자신의 길에 방해가 될 것 같다거나 방해가 될 인물이라는 소리만 있어도 가차없이 죽여없애야만 했던 그녀.. 그 유명한 밀고제도가 시작되어진 것이 그녀로부터였다는 건 정말 혀를 차게 한다. 그랬던 그녀가 말년에는 바른 인물을 등용했으며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했다는 것은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책속에서는 서양을 대표하는 악녀로써 클레오파트라, 아그리피나, 프레데군트 & 브룬힐트, 루크레치아 보르자, 엘리자베스 여왕, 메리 스튜어트, 에르체베트, 바토리 브랑빌리에 후작 부인, 마리 앙트와네트, 마그다 괴벨스를 다루었고 동양을 대표하는 악녀로써 달기, 여후, 측천무후, 서태후를 다루었다.(굳이 찾아본다면 악녀로써 거론될 이름들이 꽤나 많을 것 같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단순히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하여 그랬거나 정치에 관심도 없었지만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악녀소리를 들어야 했던 여인들은 조금 억울할 것 같다. 삼양미디어 출판사에서 기획한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시리즈'를 몇권 읽어보니 재미있다. 정말 상식적으로 알아두면 좋을 이야기들이 많은 것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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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연인 올랭피아
데브라 피너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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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팩션일까? 마네라는 인물과 역사적인 사실들을 열거한 걸 보면 분명 팩션이 맞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왠지 모를 허전함이 생겨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소설의 주요 플롯 중 하나는 황제에 대한 암살 시도를 기초로 했는데 이 사건은 1857년 4월 6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작가노트에 실려있는 글이다.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신뢰감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었다. 이탈리아 정부를 쫓아내기 위한 황제의 부인이 꾸민 계략에 불과했다던 그 이야기로 처음부터 시작했다면 어쩌면 조금은 짜릿한 기분도 들었을 것 같은데 그 상황을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짜맞춘듯한 느낌을 준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등장인물들에 대한 배경 따위들이 나열된 구도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미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수도없이 나열되는 상황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다가온다.

마네... 법관의 아들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화가의 길을 반대했기에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는 배경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늘 머무르던 보들레르 역시 성병과 중풍으로 말년을 보내다 사망했다는 것까지도.. 지독하게도 친절한 설명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렇게 친절한 설명보다는 어느정도는 작가적인 상상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미 읽어서 머리속에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던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 <진주 귀고리 소녀>나 <버진 블루>가 떠오른다. 작가마다의 특징에 대한 배려를 놓친채 아마도 나는 <진주 귀고리 소녀>와도 같은 느낌을 요구했던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에두아르, 왜 우린 서로에게 달아나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낭비했을까?"
"삶은 시간으로 잴 수 없어. 삶은 일련의 인상들로 이루어져 있지"
에두아르 마네와, 평론가와 시인들의 혹평과 빗발치는 야유를 불러냈다는 '올랭피아'의 모델 빅토린 로랑의 사랑.. 그들이 온전한 사랑을 얻기까지의 길은 너무도 좁았다. 코르티잔( 이 책의 설명을 빌리자면 귀족이나 왕실을 상대로 했다던 고급창녀이다 ) 이 되면서까지 부를 통한 삶의 안정을 취하려했던 한 여인과 그 여인을 누드모델로 세우며 그림을 그렸던 한 남자의 간절한 속마음이 이 책속에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남자에게 스쳐지나는 순간의 여인이 되기 싫어 사랑마져도 거부해야 했던 여인의 아픔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절절함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웠다. 결국엔 서로의 마음을 숨기지 않은채 함께 하는 시간을 맞이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밋밋하다 싶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까?  황제의 암살미수자로써 감옥에 갇히는 빅토린 로랑이 마리앙뜨와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전에 머물렀다던 감옥에 수감된다는 것도 그렇고, 느닷없이 빅토린 로랑의 과거를 들춰내면서 보들레르를 그녀의 생부로 만들어버린 것도 좀 억지스러운듯 하다. 이렇다하게 다가오는 느낌없이 그저 밋밋하게 열거되어진 사실들을 읽고 난 것처럼 허탈하다. 짧은 소견으로 시선의 폭을 조금만 줄이고 작가의 상상력을 힘껏 불어넣었다면 참 좋았을거란 생각도 든다. '올랭피아', '풀밭위의 점심', '막시밀리앙의 처형', '거리의 여가수', '받침대 위의 작약 꽃병' 등 책장 사이사이에 한장씩 끼워넣었거나 책의 말미에 보여주고 있던 마네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은 미술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내게는 괜찮은 행운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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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느끼는 낙타
싼마오 지음, 조은 옮김 / 막내집게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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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하라 이야기>에 이어 두번째로 만나는 싼마오의 이야기.. 처음 <사하라 이야기>를 읽었을 때의 느낌이 참 좋았었다. 젊은 새댁의 거침없는 생활이 너무 멋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부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마도 가감없이 써내려갔던 그녀의 문체가 좋았을게다. 꾸미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그렇게 다가서기 좋은 느낌을 전해줄 때가 있다. 물론 꾸며야 할 상황이라면 꾸며야하겠지만 말이다. 뜨거운 사막을 사랑하는 여자.. <사하라 이야기>를 읽으면서 도대체 무엇이 이 여자를 이토록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는가 궁금했었다. 그토록 힘겹다는 타지에서 그것도 뜨거운 햇빛과 모래뿐인 사막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토록이나 그녀에게 당찬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가가 궁금했었다는 말이다. 오로지 사랑하는 남자 하나만을 믿고 거기에 갔을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내가 알지 못한 그 어떤 것들이 틀림없이 작용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무리일까? 하지만 이 책 <흐느끼는 낙타>를 읽으면서 전작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다.

거침없이 써내려가는 그녀의 글속에는 아주 평범한 일상들이 담겨져 있었다. 누구나 겪으며 살아가는 삶의 비참함도 들어 있었다. 어느 누구도 비껴갈 수 없는 삶의 절망도 들어 있었다. 그리고 오해와 싸움과 화해와 이해도 들어 있었다. 그녀의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것들이 참 좋았다. 특별히 꾸미지 않아도 이뻐보이는 순수함과 같은 것들이 느껴져 참 좋았다. 이 책, <흐느끼는 낙타> 속에는 그녀에 관한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속세의 인연) 이야기들이 작가의 말로 담겨져 있다. 겨우 6년이라는 결혼생활을 마감하면서,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이나 거침없이 사막속에 뛰어들어야 했던 배경과 같은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조금은 특이하게 보이기도 하는 그녀의 어린시절은 그녀에게 있어 하나의 버팀목이 되어준 게 아니었을까?  어버이날에 쓴 그녀의 글속에는 그녀가 살아왔던 짧은 생의 시간들이 하나씩 하나씩 베일을 벗으며 나를 맞이했다. 싼마오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에 대해 아주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전작 <사하라 이야기>와 같이 독특한 사하라 이웃들과 엉키며 살아가는 모습들을 담담히 담아내고 있는 <흐느끼는 낙타>속에서도 어김없이 가슴 찡한 느낌은 나를 찾아왔다. 서사하라의 정세가 날로 불안해져 가는 와중에 이웃들에게 버림을 받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하는 싼마오에게 사하라는 그저 사하라일뿐이다. 그녀의 남편 호세와 그녀 싼마오가 결코 잊을 수 없었던 이웃들의 이야기가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아픔으로,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절망으로, 때로는 더이상 없을것 같은 인간적인 모습으로 정갈하게 그려져 있다. 결국 이상속에서만 맴돌던 서사하라 주민들의 문맹앞에서 그녀가 사하라를 떠나야 했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사하라는 또하나의 고향으로 자리했을 것이다. 이야기속에서 '벙어리 노예'나 '영혼을 담는 기계'를 통하여 보여주었던 인간으로서 살아가야 할 조건들은 참으로 아프게 다가왔다. 영혼이 살아 있어 사랑을 가슴에 품을 줄 알았던 벙어리 노예, 그가 원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을 것이다. 가족과 함께 하고 싶다는...

유격대장의 아내였기에 처연한 삶을 살아야 했던 샤이다라는 여인의 죽음속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서사하라의 자주 독립을 외치며 투쟁하는 유격대의 모습속에서 철없는 욕망과 이상만을 보아야 했던 싼마오의 가슴은 서늘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없었던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웠으리라. 이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신의 현재를 그대로 인정할 줄 알았던 그녀의 모습이 아름답게 다가왔다. 사막 사하라를 떠나 화산섬 카나리아 제도에 다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의지할 곳 없는 노인의 장례를 치뤄주는 그들 부부에게 무엇때문에 그런 일을 하느냐고 멀어져가던 카나리아 제도의 이웃들은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그녀의 솔직하고 담담한 삶의 이야기는 몇번을 마주친다해도 식상하지 않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따뜻한 그녀의 마음은 자주 만나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돈을 얼마나 버는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
"꼴 보기 싫은 놈이라면 천만장자라도 필요없고, 마음에 든다면 억만장자라도 결혼해야지"
"결국은 돈 많은 사람한테 시집가겠다는 얘기 아냐"
"예외도 있을 수 있어"
"나랑 결혼한다면?"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돼"
"당신 많이 먹어?"
"아냐, 아냐. 그리고 앞으로는 더 조금 먹을 거야" (206쪽)

책속 이야기 '털보와 나'를 통해서 보여준 그녀 부부의 이야기는 참으로 정겹다. 그리고 소박하다. 번듯한 청혼 한번없이 그냥 결혼해 버려서 돌이켜보면 유감스럽다고 작가는 말했지만 아마도 그것이 그들 부부의 매력이었을거란 생각이 든다. "무슨 반쪽?" "당신의 반쪽이니까 당연히 나지!" "나는 반쪽이 아니라 하난데" '그래, 사실 나도 반쪽이 아냐. 나도 완전한 하나라고'... 가정 같지가 않고 남녀가 같이 사는 기숙사같다고 했지만 그렇게 그들은 서로를 인정해주었고 또다른 하나로써 받아들였다. 결혼하면서 서로 동료가 되어 주기를 바랐을 뿐, 피차 무리한 요구나 집착은 없었다던 그들 부부.. 그저 인생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동반자를 찾으려 했을 뿐이라던 그들 부부.. 특별할 것 없는 그들 부부의 특별한 이야기속에 푹 빠졌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녀의 삶속에서 작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녀, 싼마오의 이야기가 다시 나온다면 나는 주저없이 또다시 그녀의 이야기속에 빠져버릴 것만 같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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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내기한 선비 샘깊은 오늘고전 8
김이은 지음, 정정엽 그림, 김시습 원작 / 알마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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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보면 그저 아이들을 위한 한편의 동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김시습 단편소설 모음이란 부제를 보면서 또 한편의 어려운 고전이 다시 태어났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는 김시습의 소설 《금오신화》에 나오는 다섯 이야기중의 하나이다.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남염부주지>, <용궁부연록> 이렇게 다섯편의 이야기로 되어 있으며 모두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현실적인 이야기라는 게 해설의 말이다.  책속의  '부처님과 내기 한 선비'는 <만복사저포기>가 원전이며,  '이생이 담안을 엿보다'는 <이생규장전>이 원전이라고 한다. 이 두 편의 고전을 읽으면서 내심 기쁘기도 했다. 어렵기만 한 우리의 고전을 쉽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고 있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니 말이다. 한시를 그대로 쓰지 않고 풀어 썼어도 아이들이 보기에 그 내용을 이해하는데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았다. 해설편을 보면 매월당 김시습과 그의 작품《금오신화》에 대하여 상세하게 설명되어져 있는데 그것만큼은 지나쳐가지 말고 꼭 알아두었으면 한다. 이 책에 실려있지 않은 이야기까지 《금오신화》의 모든 이야기를 고루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가 될테니 말이다. 

두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내내 서포 김만중의《구운몽》을 떠올렸다.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이 술에 취해 팔선녀와 희롱한 죄로 인간 세상에 '양소유'란 인물로 환생하면서 시작되어지는 이야기. 깨어보니 모든 것이 꿈이었다는 설정을 통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주제로 삼았다던《구운몽》에는 남녀간의 애정이야기도 쏠쏠하게 나온다.  《구운몽》이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던 일종의 사회상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금오신화》의 이야기에는 왜적의 침입을 받은 나라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환상같은, 정말 꿈속에서나 이루어질 그런 사랑을 그렸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왜 이렇게까지 꿈같은 사랑을 그려야 했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어쩌면 너무나도 많았던 규제때문은 아니었을까?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자유롭지 못했던, 아니 사랑뿐 아니라 여러가지 상황을 전반적으로 보았을 때 자신안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사회적인 여건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저 빙 둘러쳐진 담벼락안에서 책이나 읽고 수나 놓으면서 살기에는 젊은 피가 너무 뜨거웠던 때문은 아니었을까?  조선시대를 살아야 했다면 결코 빠져나갈 수 없었던 유교의 덫을 말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하는 말이다.

연리지라거나 비목어처럼 우리가 지금도 사랑을 이야기 할 때 흔히 비유되는 표현이 있다. 이 책속에서도 역시 남녀간의 사랑을 그렇게 비유하는 걸 보면 '사랑'이라는 정의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나뭇가지가 서로 얽혀 하나가 되는 연리지나 눈이 하나만 있어서 두마리가 함께 있어야만 온전해진다는 비목어처럼 끝내주는 비유가 또 어디있으랴 싶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 책을 통하여 또한번 나의 무식함이 탄로났다. 지금까지 내게 있어 금오신화는 金鰲神話였었다. 그런데 金鰲神話가 아니라 金鰲新話였다는 것...  '금오'는 경주 남산의 금오봉 또는 남산을 가리키며 '신화'는 '새로운 이야기'라는 뜻이었다는 것...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나를 자책하며 또한 수박겉핧기식의 내 자만에 대하여 생각하니 정말 부끄럽기 그지 없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그저 학창시절의 국어교과서에서만 잠시 스쳐가는 우리의 고전이 아니라 이렇게 가벼운 소설을 읽는것처럼 가까이 하기에 편하고 좋은 우리의 고전을 만날 수 있다면 어찌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유교적인 시선에 의하여 김시습의 문집 '매월당집'이 간행될 때 《금오신화》는 거기서 빠졌었단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널리 읽히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으로 전해져서는 거듭 간행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고 하니 참으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제나라의 문화를 업수이 여기는 것 또한 시대가 변했어도 여전한 듯 하니 또한 마음 아픈 일임엔 분명한 듯 하지만 누굴 탓하기 이전에 앞서 나먼저 우리의 고전을 사랑해야지 하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여 풀이를 하였고 또한 설명을 하였다고는 하지만 어른이 읽어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해설편에서 보여주고 있는 《금오신화》의 상세한 면면들을 놓치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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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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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리가 흔히 하는 질문중에 이런게 있다. "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어느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 , "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하고 싶어? "  그런데 이 책은 그것을 뛰어넘은 채 당신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어떻겠느냐고 묻고 있다. 한번 생각해본다. 정말 나의 시간이 거꾸로 간다면 어떨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싯점부터 다시 거꾸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부정도 긍정도 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왔던 길을 고스란히 되돌려 거꾸로 가야한다면 그것은 반대일것이고 무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길을 선택해서 거꾸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딱히 싫지만도 않은 것 같다.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의 여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런 생각도 고민도 하지 않겠지 싶다. 그런데 나는 이쯤에서 저런 기발한(?) 제목을 불러올 수 있는 생각이 왜 들었을까 궁금해진다.

F.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를 빼놓고 작가에 대해 알고 있는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말할 수 있는 답이 있기는 할까? 이 책을 만나고서야 나는 피츠제럴드라는 사람의 이력에 대한 궁금증을 온전히 풀게 되었다. 이 책속에서 만날 수 있는 젊은 시절의 방황이라거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허탈함,  마음처럼 되지 않는 냉혹한 현실에 대한 공허함등이 실제적으로 작가가 겪었던 일과 일치한다는 것이 일단은 놀랍다. 너무나 세속적이면서도 너무나 현실적이었던 그의 생활패턴과 삶의 여정이 왠지 낯설지 않게 다가온다. 아내 젤다 피츠제럴드와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나 결혼생활이 그에게 가져다 준 빈곤의 나락속에는 헤어날 수 없는 인간의 욕심과 허영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지만 말이다.

첫작품으로 등장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에서 벤자민 버튼이 살아냈던 시간들이 황당하게만 보여지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자신의 인생이 끝나야 할 싯점에서 태어나 태어나야 할 싯점에서 죽는다는 것은 살아보지 않고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벤자민 버튼의 시간들이 그리 당혹스럽게만 보여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그가 살아냈던 젊은 시절의 욕망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에 반응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그 변화에 대처해나가는 벤자민 버튼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야기 한편으로 자신의 삶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를 갖을 수 있다는 건 어쩌면 행복한 일이다. (요즘 한창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동명의 영화는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냈을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책속의 작품들중에서 젊은시절의 방황과 거기에 따른 책임을 보여주었던 <젤리빈>,  자신의 욕심을 버린 후에야 제대로 된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메세지가 보여지던 <낙타 엉덩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꿔봄직한 부에 대한 환상의 세계를 그려주었던 <리츠칼튼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사랑의 허망함속에서도 끝내는 그 사랑의 끈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인간의 내적 외로움을 알게 해 주었던 <행복의 잔해>를 통해 전해지던 메세지의 여운은 참 괜찮았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혹은 작품에 대해 그다지 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습작노트처럼 보였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나의 작품이 나오기 위한 구상정도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말미에 붙어 작품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게 도와주었던  작가의 말이나 옮긴이의 말, 작가연보가 너무나도 고맙다. 또한 편집해준 출판사에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작품의 연이은 실패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그리고 아내 젤다의 병으로 절망에 빠진 피츠제럴드가 회복 불가능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활동하는 등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그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던 것들은 참으로 많아 보였다. 힘겨웠던 작가의 여정이 그대로 녹아든 듯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했고... '재즈시대의 이야기'들이라고 평했던 옮긴이의 말은 차치하고라도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가 실제적인 생활속에서 보여주었다던 파격과 방종한 기행이 그 시대적인 정신세계를 그대로 반영한 듯하여 남겨지는 여운이 씁쓸하기도 하다.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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