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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의 연인 올랭피아
데브라 피너맨 지음, 박산호 옮김 / 황금가지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팩션일까? 마네라는 인물과 역사적인 사실들을 열거한 걸 보면 분명 팩션이 맞긴 한 것 같다. 그런데 왠지 모를 허전함이 생겨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 소설의 주요 플롯 중 하나는 황제에 대한 암살 시도를 기초로 했는데 이 사건은 1857년 4월 6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토대로.... 작가노트에 실려있는 글이다. 이 글을 보기 전까지는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신뢰감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었다. 이탈리아 정부를 쫓아내기 위한 황제의 부인이 꾸민 계략에 불과했다던 그 이야기로 처음부터 시작했다면 어쩌면 조금은 짜릿한 기분도 들었을 것 같은데 그 상황을 맞이하기까지의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짜맞춘듯한 느낌을 준다. 역사적인 사실이나 등장인물들에 대한 배경 따위들이 나열된 구도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미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수도없이 나열되는 상황이 왠지 모르게 낯설게 다가온다.
마네... 법관의 아들로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화가의 길을 반대했기에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는 배경은 이 책에서 보여주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늘 머무르던 보들레르 역시 성병과 중풍으로 말년을 보내다 사망했다는 것까지도.. 지독하게도 친절한 설명들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렇게 친절한 설명보다는 어느정도는 작가적인 상상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미 읽어서 머리속에 많은 여운을 남겨주었던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작품 <진주 귀고리 소녀>나 <버진 블루>가 떠오른다. 작가마다의 특징에 대한 배려를 놓친채 아마도 나는 <진주 귀고리 소녀>와도 같은 느낌을 요구했던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에두아르, 왜 우린 서로에게 달아나면서 그렇게 오랜 시간을 낭비했을까?"
"삶은 시간으로 잴 수 없어. 삶은 일련의 인상들로 이루어져 있지"
에두아르 마네와, 평론가와 시인들의 혹평과 빗발치는 야유를 불러냈다는 '올랭피아'의 모델 빅토린 로랑의 사랑.. 그들이 온전한 사랑을 얻기까지의 길은 너무도 좁았다. 코르티잔( 이 책의 설명을 빌리자면 귀족이나 왕실을 상대로 했다던 고급창녀이다 ) 이 되면서까지 부를 통한 삶의 안정을 취하려했던 한 여인과 그 여인을 누드모델로 세우며 그림을 그렸던 한 남자의 간절한 속마음이 이 책속에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이 진정 사랑했던 남자에게 스쳐지나는 순간의 여인이 되기 싫어 사랑마져도 거부해야 했던 여인의 아픔을 그리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절절함은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웠다. 결국엔 서로의 마음을 숨기지 않은채 함께 하는 시간을 맞이하지만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밋밋하다 싶은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까? 황제의 암살미수자로써 감옥에 갇히는 빅토린 로랑이 마리앙뜨와네트가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기전에 머물렀다던 감옥에 수감된다는 것도 그렇고, 느닷없이 빅토린 로랑의 과거를 들춰내면서 보들레르를 그녀의 생부로 만들어버린 것도 좀 억지스러운듯 하다. 이렇다하게 다가오는 느낌없이 그저 밋밋하게 열거되어진 사실들을 읽고 난 것처럼 허탈하다. 짧은 소견으로 시선의 폭을 조금만 줄이고 작가의 상상력을 힘껏 불어넣었다면 참 좋았을거란 생각도 든다. '올랭피아', '풀밭위의 점심', '막시밀리앙의 처형', '거리의 여가수', '받침대 위의 작약 꽃병' 등 책장 사이사이에 한장씩 끼워넣었거나 책의 말미에 보여주고 있던 마네의 그림들을 감상하는 것은 미술을 잘 모르기도 하지만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없는 내게는 괜찮은 행운이기도 했다. /아이비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