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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길목에서
하늘은 잠깐
회색빛톤으로 뾰로퉁
눈발 긏더니
다시금 새침한 얼굴로
내가 언제하고, 새침해져 있습니다

시간은 휴지간 속에서
바이올린 가락으로
툭, 툭 소리내며 흐르는 속
기억은,
기억속에서 또 다른 기억의 강 저편으로
흘러만 갑니다
언젠가는 내 안의 것이였지만
이제는 보듬어볼 수는 없는 거리 저편에서
되새길만은 한 정도의 사이를 두고
여봐란 듯이 한번은 보암직할 만한 곳에서
은근히 시위하고 있습니다

만져볼까,
손내밀어보지만 만져지지는 않는
그렇게 흘러가는 기억의 잔상들처럼
다시 보듬고 쓰다듬어주고 싶지만
그럴수는 없는 기억은
그렇게 시간속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봄은 소유할 수 없는
신기루인가 봅니다
사랑이 가진 이중성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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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의 전등을 끈다.
스탠드의 on/off 스위치를 한번 터치한다.
살짝 밝아지는 방안.
얼굴 하나가 스치듯 지나간다.
한번 더 만지자 선명해지는 얼굴.
또 한번의 터치에 스탠드 불빛은 만개하고
방안 가득 꽉 찬 얼굴 하나.
한번 더 만지자 방안은 컴컴해지고
영상도 스러져간다.

다시 환해진 방안.
스탠드 불빛은 노랑.
내 침대보도 이불색도 하나되듯 노랗고
방안의 전체적 색조도 희부염 노르스름하다.
오직 유리창 밖 풍경만 칠흑.

어릴 적 노랑풍선 하나를 들고
집 앞 언덕배기에 오른다
언덕 가장자리에 서서는 온 볼에 힘을 주고
바람을 주입시키는 나.
내 볼의 부풀어오름에 비례하여 팽창해지던 풍선.
행여나 터지랴, 민감히 반응하는 내 볼에 와 닿던
공기의 흐느낌.
이윽고 다 부풀어진 풍선의 아가리를 잡고는
하늘위로 날리는 나.
피융-, 외마디 비명소리로 어디론가로 날아오르던
내 노랑풍선.
그리곤 먼 데 하늘 한번 쳐다보고는
집으로 들어가는 나.

그때, 그 풍선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의지없이 멈춰 선 어딘가에서
또 누군가에 의해 그 활기찬 몸부림을,
생의 이쪽과 저쪽 끝까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을까.

행복은 스며들지만 기쁨은 내켜 달려든다.
행복은 전염성이 없지만 기쁨은 그렇지 않다.
오늘 하루를 수고스레 마쳤다는
내 소박한 기쁨이 어느 누군가에게도
그대로 전염되기를 소망하는,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이기를 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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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구들과
한 잔 술을 마셨다
하소연,
하소연, 각각의 얘기들에 대한
각각의 생각들,
비 오는 천막 안, 떨어지는
빗방울들처럼,
우리의 대화도 그렇게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누구 말마따나
살아 온 환경이,
서로의 생각이 다르듯이
내가 미처 모르는
또 다른 사연들이 제각기 자릴잡아
나이테 수 만큼 성장해 있었겠지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 새벽, 돌아와 냉장고를 뒤지다
빵 한 봉지를 뜯어 먹는다
겉봉에 보이는 유통기한,
유통기한이 넘은 음식을 먹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꺼려지는 건 분명하다
그 기한까지 유지시키기 위해 첨부된
방부제,
생각해본다
방부제가 첨가된 유통기한의 기일만 준수하면
신상에 별 탈은 없을 것이다
인간관계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까,
누구누구는 언제까지,
아, 누구는 방부제 많이 첨가해야해
그렇게,
한 명, 두 명…

머리를 흔든다,
최소한 내가 아닌
나외의 모든 너에게
획일적인 내 기준으로, 유통기한을
방부제를 첨가해서 붙이긴 싫다
유통기한이 없는
열려진 상태에서 그때 그때의
상황에 맞는 생각으로 그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근데, 그게 너무 힘들다
내가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나도 사람이기에
식품처럼 똑같이 적용할 수만 있다면,
누구누구 몇 명에게만은
유통기한, 방부제가 전혀 필요없는 라벨을
가슴깊은 곳, 바코드로
영원히 안 떨어지게 가장 강한 접착제로
붙여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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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선생님에 대한 소식은

계속 들어왔지요,

가을타시는거 같다며

요즘 힘들어하시는 거 같다고

어린 제자들은,

선생님도 가을타시네, 하면서

철없이 웃고 그랬지요



언제 무교동에서 낙지먹자고,하셨던

날짜가 잡혔습니다

부천공연 이틀전이네요,

선생님 만나면 드리려고

인사동에서 다기와 국화차를 사고

그 바람에 국화주 한 잔씩도 하고

그윽한 찻집에서 분위기도 잡아보다가

결국은 어린애들처럼,

편지도 쓴다 안쓴다 서로들

23년전, 꼬맹이때처럼 싸웠네요

결국은 난 쓸거니,

넌, 알아서 해 하고 그 싸움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차와 함께 할,

화과세트를 어제 눈맞춤해놓고

뭐라고 쓸까 고민하다, 고민하다

짧은 시, 하나가 완성됐습니다,

아무리 형편없는 글이라도

선생님은,

주름살 가득한 웃음으로 읽어주시겠지요



* 겨울의 초입,
밤은 길고 해는 짧아
한 해의 끝을 얼마 안 남기고
생각은,
삶은
길어진 밤의 무게로 스며든다
떠난 가을이 짧았던가,
이 겨울맞기가 이리 힘들줄을
어찌 알았겠는가,
긴긴 밤,
제자가 보낸 국화차 손에들고
평생을 같이 한,
인생고개 함께 넘어 온
안해의 얼굴 마주하고
살아온, 살아갈 人生보따리 풀어내며
긴 밤, 그렇게 보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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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퇴근 길 전철안에서였다
그 애를 만난건,
내가 들어섰을 때 여자아이는 출입문 앞에 서서
두 손을 앞으로 뻗어서는 양 손바닥을 벌리고
서 있었다
전철문은 아직 닫히지 않은 상태였다

좀 있으면 닫힐거예요..
문이 닫히자 아이는 두 손바닥을 맞댄다
그리곤 나를 보고 방긋 웃는다
내가 닫은거예요..
전철이 출발하자 아이는
자, 출발! 뿌웅~ 뿌웅..
경적을 울리는 흉내를 내고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낸다

한 대여섯살 정도 되려나,
길게 땋은 머리에 눈이 똘망똘망한 게 여간
영악스럽지 않을 듯 싶다
순간, 떠오른 사랑방손님과 어머니의 옥희.
속으로 웃는다
이제 아인 내 주변을 맴돌면서 발꿈치로 내 신발을 툭툭 찬다
(얘가 왜 이러나..)
오빠..?
(순간, 응.. 오빠.. 는.. 니겐 아니지...ㅋㅋ)
오빤, 어디갔다 오는거예요..
(얼결에 대답을 하고 말았다)
... 회사에서 퇴근하고 집에 가는거지..
집이 어딘데요..
의정부..
응, 그렇구나..
그리곤 옆의 할머니에게 묻는다
할아버지, 할머니 우린 집에까지 몇 개 남았어요?
군자에서 갈아타야 돼..
여자아이는 노선도를 보고와선,
두개만 더 가면 되요 한다

다시 전철문이 열리고
아이는 첨의 그 손동작을 하고 있다
한 여자가 들어선다
내 앞에 선다, 대학생 정도...
아이의 관심은 여자에게로 향한다
언닌, 어디 갔다 오는거예요..
(여전히 존대말이다)
여자가 일순, 당황한 듯이 나를 쳐다본다
지금 학교가는거야..
학교가 어딘데요...
멀어..
(고갤 갸우뚱하며) 언닌 초등학생, 고등학생?...
그 순간, 여자도 나도 웃는다
... 대학생이야..
응, 그렇구나..난 유치원생인데..
여자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다
이젠 아이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가 나도 궁금하다
근데, 언닌 남자친구 있어요?
(대뜸 뒤돌아서는)
오빠는요..
그녀와 내가 멋적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본다
대답하긴 참, 난감한 질문이다

전철이 군자역에 다다랐다
옆의 할머니가 아이의 손을 잡아끈다
나도 내려야 한다
소녀가 여자와 나를 향해서는
환하게 웃으며,
언니, 오빠 안녕하곤 빠이빠이를 한다
그녀와 나도 함께 손을 흔들어 준다

참, 당돌하면서도 티없이 맑고 깨끗한 아이였다
고 10여분동안 그녀도 나도 동심의 세계속을
여행하고 온 듯한 느낌이였다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겠지..
ㅋ아이만큼 천진난만하진 않았던 듯 싶다...

전철 안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07. 10. 14

* 문이 닫힙니다
   출발 뿌우웅~~
   갑자기
   전철이 동심의 세계로 날아오릅니다

   이쁜 소녀는 물어요
   오빤 어디서 오는거예요
   언닌 초등학생, 고등학생
   얼굴 가득 핀 소녀의 장난기에
   전철안에 이름모를 꽃들이
   하나, 둘 방긋방긋 피어오릅니다

   세상 모든 대상이
   소녀는 궁금해요
   오빠, 언니 안녕~
   소녀의 빠이빠이에
   발걸음이 두둥실 떠오릅니다
   귀가길 전철 안                 - 어느 귀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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