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녀석의 느닷없는 시골여행 제안에
아무 생각없이, 패밀리 세녀석과 함께
2박3일의 일정으로 떠난 김제행.
형, 볼건 없어..
온통 평야말곤..
녀석 말마따나 도로를 가운데로 해서 양쪽 모두
드넓은 평야.
아직 모내기철 이전이라 갈아만 놓은 평야, 그 끝이 안보인다.
한쪽 끝에 파르라니 보이는 건 파를 심어놓은 건가, 하고 가봤더니
보리였다. 보리잎의 파르스름한 색이라니.
새벽 이슬을 머금은 녀석들의 까칠한 머리가 더욱 싱싱해 보인다.
내장산.
단풍철이 아닌 내장산엔 인적도 드물어,
그저 나무들만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렇지, 새삼 산에는 나무들이 사는거지 하는 안도감.
매년 단풍철만 되면 수많은 행렬로 몸살을 앓을 산에게 있어
봄철은 휴가기간이겠구나 하는 생각.
그렇겠지, 너희들도 한숨고를 시간이 필요하겠지.
그래서 몇 안되는 등산객이 고마웠다.
빽빽하게 늘어서 있는 나무들은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한 채
자족하며 그렇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격포-채석강-변산반도 국립공원
바다에는 파도가, 기암괴석만이 철썩거리며 숨을 쉬며 살고 있었다.
역시나 아직은 드문드문 여행객들.
날은 좀 흐려 명명한 파도색을 볼 순 없었지만
조용히 밀려들다 빠져나가는 파도의 찰싹거리는 호흡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 한 호흡 멈출 수 있었던 건,
주변 음식점의 호객소리에서,
그들의 삶은 바다로 인해 유지해 갈 수 있겠기에,
자연과 인간은 결국 하나인거구나라는 새삼스런 인식은.
자연을 개척하고 함께 영위하는 삶의 모습을
벽골제에서, 조상의 창조정신을 봤다면
그 창조가 다시금 인간의 이기주의로 인해 훼손되는 현장은
새만금방파제를 통해 재인식할 수 있었다.
떨어지는 빗줄기 속 한가로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을 달리는
차 밖에서 자연은, 애처롭게 현실에 안주한 채 삶을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었다.
태안반도는 차마 가 볼 수가 없었다.
더 이상 하나가 아닌, 각각의 길을 가는 우리 앞에 미래는
어떤 모습으로 다가설 지 상상하는 자체가 자연앞에 부끄러웠으니.
부모님.
부모님은 항상 그 자리 그 곳에 계셨다.
뭐라도 하나 더 먹이려고 하는 녀석의 어머니에게서
내 어머니의 한면을 봤다면,
막내놈의 선배들이라고, 한 잔 술상앞에서
그래, 젤 선배가 누군가 하는 물음과 함께
내게, 다 자란 자식이지만, 우리 정호 모자람이 많은 녀석이니까
느들이 좀 더 챙겨주고 좋은 길로 이끌어들 주면서, 알제?
자, 언능와서 한잔씩들 받아봐.
나가 정호 선배들이 내려온다고 해서 벌써부터 맘 준비하고 있었당께.
사발 가득 소주를 따라주신다.
사발 가득 넘치는 사랑에 시골에서나 봄직한 상 가득한 밑반찬들과
고봉밥에 내려갔던 세 녀석 모두 배부르고 얼굴 불콰해져 익어가는 밤은
세차게 내리는 빗소리에 묻혀 조용히 저물어만 간다.
아버님, 걱정마세요. 정호녀석 잘하고 있고요.
또 비슷한 녀석들끼리 이리 어울리는거니까요, 걱정놓으시고요.
올라오는 길, 여전한 빗줄기 속에서
세상 때, 세상 짐.
부러 내려놓고 올라가는 길은 아니지만
한숨 쉬어놓고 다시금 일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거로 족한 짧은 여행은 아니였는지,
사는게 별거간,
그리 살며, 살아가며
그러다보면 다시금 원점으로 돌아오고 다시금 또 돌고도는 게
그게 인생이려니
사는 게 다 그런게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왔으니 또 그리 사는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