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테면 수양의 늘어진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그건 수양 가지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얼굴 한번 못 마주친 애먼 뿌리와

잠시 살 붙였다 적막히 손을 터는 꽃과 잎이

혼연일체 믿어주지 않았다면

가지 혼자서는 한없이 떨기만 했을 것이다

한 닷새 내리고 내리던 고집 센 비가 아니었으면

밤새 정분만 쌓던 도리 없는 폭설이 아니었으면

담을 넘는다는 게

가지에게는 그리 신명 나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가지의 마음을 머뭇 세우고

담 밖을 가둬두는

저 금단의 담이 아니었으면

담의 몸을 가로지르고 담의 정수리를 타 넘어

담을 열 수 있다는 걸

수양의 늘어진 가지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목련 가지라든가 감나무 가지라든가

줄장미 줄기라든가 담쟁이 줄기라든가

가지가 담을 넘을 때 가지에게 담은

무명에 획을 긋는

도박이자 도반이었을 것이다    - 정끝별

2008년 소월 문학상 대상작이다.

소월이 어느 때 소월인가,

학창시절 그 이름과 몇몇 시에 밑줄 그어가며 시험문제 맞히기 위한

해석 외우던 때 말곤.

하지만, 아직도 그 정신 이어가는 문학상이 있기에

이렇게 가끔은 소월이란, 본명이 김정식이란 시인을 생각하게 되니

문학의 힘은 그렇게 이어져 나가나 보다.

시에서처럼 가지가 담을 넘을 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하지만 그 시도 자체도 도박이자 도반이였던 행위처럼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행위도

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그 근저에 바탕이 됐겠지만

정말, 어쩌면 도박이자 도반인 것 일 수도 있겠다.

그 결과가 담 너머 새로운 세상이 환하게 보여졌으면 좋겠다 하는

환상을 품고.

이제는 환상과 현실 사이는 종이 한장 차이란 걸 알지만

무엇이든지 넘어간다는 건 바람직한 현상임을 알 수 있는 나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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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보다 이른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한가로이 점심을 먹고 오면서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본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하는 노래가사도 떠오르지만
같이 점심을 먹는 사람과 이런 얘기도 해 봤다.
왜, 비만 오면 파전과 막걸리가 생각날까?
...글쎄?...

비를 참 많이도 좋아했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예전엔 괜히 비만 오면 때로는 우산을 들고
때로는 홀딱 맞으면서 길을 걷곤 했었다.
비가 내릴때는 주변의 소리들도 잘 들려
걷다보면 주변의 슬레트나 양철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리도 낭만적으로 들리기도 했었고
그게 싫으면 창틀에 턱을 괴고 서서는 하염없이 떨어지는
낙숫물을 보거나 뿌옇게 흐려지는 유리창에 낙서를 하곤 했다.

이제는 그런 낭만을 즐기기엔 내 몸이, 내 마음이 안 따라주니
생각만으로 미소를 지어본다.
내리는 비, 계속 떨어지는 비
요즘 맘적으로도 많이 힘들고..
결국은 부딪혀 보는 수 밖에 없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해지는 길이겠지만,
그런다고 맘이 편해질 거 같진 않다.

떨어지는 비
넌 어디로 떨어지는건데?
무슨 생각으로?
떨어지기만 하면 되니
넌, 편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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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j lee 2008-06-21 0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hi...this is kyungjae..
yeah ur getting old..u can't enjoy rain any more...:-)
have a great weekend..

사랑이 2008-06-21 1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문만 보곤 누군가 했다. 잘 지내지.. 어젠 상우,형일과 가볍게 맥주 한잔 했다. 쏜다던 병대녀석이 펑클 내서, 셋이서만ㅋ.요즘 좀 머리아픈 일이 있어 글도 못 쓰고..그러네. 넌 공부 열심히 하고 여가 즐기면서 잘 지내고 있는거지? 보고싶다, 임마. 항상 건강 유의하길..
 

엄만
내가 왜 좋아?
-그냥….
넌 왜
엄마가 좋아?
-그냥….
문삼석 <그냥>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두척의 배가
미끄러지듯 항구에 닻을 내린다
벗은 두 배가
나란히 누워
서로의 상처에 손을 대며

무사하구나 다행이야
응, 바다가 잠잠해서
정끝별 <밀물> 

말로는 더 이상의 말이 필요없는 아이와 엄마의 사랑이나

어디선가에서 도란도란 파도끼리의 귓속말이 들릴것도 같은,

내일 비가 온다는데

그래서 이리 날이 흐려지는 것인가,

하루도 그렇게 점점 흐리게 져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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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헤치며
 날아와
 눈 쌓이는 가지에
 나래를 털고
 그저 얼마동안
 앉아 있다가
 깃털 하나 아니 떨구고
 아득한 눈속으로
 사라져 가는
 너

영문학자이자 수필가 금아 피천득 선생님의
1주년을 맞아 남양주 모란공원에 세워진
금아시비에 새겨졌다는 당신이 평소 가장
아꼈다는 시. 너
평생을 아이같은 동심으로 문학뿐 아니라
하찮은 미물에도 똑같은 관심과 사랑으로
대했다는 짤막한 기사를 대하고.

내 지금껏 살아오며
내가 다가가고 내게 다가와
짧은 인연이라도 내가 시선을 주고
내게 관심을 가져주었던
수많은 너에게.

어디에선가라도
같은 하늘 아래 있을
너에게
아쉽고 그리운 마음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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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부모님 생신이 얼마전이였지만,

어버이날에 꽃같은건 사오지 말란 어머니 말씀에 그럼 뭘 해드릴까

퇴근길 고민하다 맘에만 담고 있었지 차마 내비치진 못했던 말들을

편지 한장에 담아 똑같은 금액 속 어머니 봉투에만 편지를 넣어,

얼마전에도 줬는데 뭘 또 주냐는 어머니께 출근길 전해드린다.

뜻밖의 봉투안의 편지를 보곤 조금은 당황해하실 어머니가,

어머니 성격을 알기에 하찮은 편지지만 읽어보시고 아버지와 함께 기뻐하실

어머니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군대에 있는 동안 이후엔 처음으로 써 보는 편지인 듯 싶다.

자식이 셋이나 되지만, 그 자식들 성격이 제각각이라

굳이 낳으시고 길러주신 은혜만이 아닌 다 자란 지금까지도 노심초사하시는

부모님이시란 걸 알기에 맘뿐이고 평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못해 드렸던

나 자신이 참 못 나 보이고 죄송스럽다.

내 스스로가 자식을 낳아보고 그 상황이 되서야 부모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겠지.

모든게 그렇겠지만, 부모님에 대한 사랑만큼은 마음이 아닌 직접 보여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는 매년 어버이날.

간밤에 편질 써서 넣어 놓고도 드릴때 쑥스러워서, 뺄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에이, 모르겠다하고 실행한 자식은

이제서야 이미 질러버린걸 뭐, 하고 안심이 된다.

퇴근 후 날 맞이하실 어머니 얼굴이 벌써 궁금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는

날은 흐리지만 기분만은 가뿐해,

오늘만큼은 모든 부모님께 행복하고 기쁜 하루가 되길 빌어마지 않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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