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머리를 치다

 


두 다리를 꼬옥

부여잡고서

닭 머리를 친다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목이 돌아가고

사방에 피가 튄다

언제까지 살고 싶은 거니?

한참 기다려도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목이 돌아가고

사방에 피가 튄다

생이란 게 이토록 잔인하고

질긴 것인지

피가 다 흐르기까지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목이 돌아가고

사방에 피가 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아이거나 바람이거나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

나는 무엇을 버려야 할까?

나를 버리면

무상무념이 되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팔을 버리고, 다리를 버리고

눈을 버리고, 코를 버리고

입을 버리고, 귀를 버리고

그렇게 모두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허공에 가득 채워진

공기 흐름에

문득, 나를 맡겨보고 싶다.





*화엄경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어느 몽상가의 기억

 

 

오직 떠나지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떠나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모 말도 않고 생각도 없이*

그저 떠나지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떠나지던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무엇이 바뀐 걸까요?

아직도 내 마음은

오직 떠나지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정처없이

터진 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쏘다니고 싶은데

모든 걸 쏟아내고 싶은데

더 이상 방밖으로 나오질 않고

아무것도 쏟아내지 않은 채

무력하기만 한데

그렇게 절망으로 가득한데

그래도 아직도 내 마음은..

 

 

 

 

 


*랭보, 감각, 민음사, 2010년, p10

**랭보, 나의 방랑생활, 민음사, 2010년, p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본능과 진심의 정합

 

 

나비야 어쩌란 말이냐

푸른 날개를 파르르 떠는

푸른 나비야 어쩌란 말이냐

내 너를 볼 때마다

짐승처럼 발기하여

네 날개를 뜯고

처참히 능욕하고 싶은 것을

푸른 나비야 어쩌란 말이냐

세월이 지나

모든 것이 잊혀지면

내 너를 거들떠 보지도

않을 것을

푸른 나비야 어쩌란 말이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윤회

 

 

코피가 흐른다

바닥에 점점이 맺혀

빨간 웅덩이를 만든다

눈물이 흐르고

콧물이 터지고

오줌보가 폭발한다

모든 구멍에서 물기가

빠져나와

웅덩이는 샘이 되고

샘이 강이 되어

바다로 흘러간다

그 바다 건너 혹은

바다 깊은 곳에서

폭풍의 전설을 간직한

빗물이 쏟아진다

그렇게 코피가 흐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