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방의 기도

 

 

나방이라고 너무 쉬 죽이지 말아주세요

저도 어엿한 나비목에 속해있어요

꽃을 찾아 꽃무늬를 한 나비는 아니지만

나뭇결에 고요히 잠든 나뭇결을 닮은

저의 무늬가 징그럽다면

꽃가루가 아닌 밤의 가루를 뿌리고 다녀

위험하다고 생각하신다면

그 모든 것은 진실이 아니랍니다

저는 그저 밤을 사랑하는 나비일뿐

찬란한 태양 대신 당신들이 만들어 놓은

형광등의 불빛과 가로등불을 사랑하는

나비보다 더 당신과 친해지고 싶은

그런 존재일뿐입니다

그래도 제가 밉고 보기 싫으시다면

한밤에 촛불을 켜주세요

그 촛불에 오직 당신을 위해

불타올라 사그라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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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버그

 

 

외래종이라고 합니다

모두가 숨어서 사랑하는데

하늘에서 서로 교미하며

종일 날아다닙니다

파리과라고 징그러워 합니다

파리는 사랑하면 안 되나요?

너무 많아서 싫다고 합니다

과한 사랑은 싫으신가요?

바닥에 우수수 떨어집니다

사랑은 힘이 드는 법니다

한여름 내내 그럴 줄 알았는데

며칠 비가 내린 후

우수수 우수수 떨어졌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습니다

죽도록 사랑만 하다가

사라진 모양입니다

진정한 사랑이란 이다지도

어려운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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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당신과 나 사이엔

육체라는 커다란 벽이 있어

쉬 다가설 수 없고

그 안엔 심장이란 벽이

또 하나 놓여있고

그 심장 안엔 네 개의

벽이 가로막혀 있어

그렇게 헤아리다 보면

당신과 나 사이에

각종 오장육부가 있고

그 안에 세포와 세포벽 또

그 안에 수 많은 공간이 있어

도저히 닿을 수 없고

전할 수 없을지라도

저의 마음을 당신께 전하고 싶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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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 민음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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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 아프리카 부흥을 기원하며

 

 

 아프리카에 대해서 아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나이지리아? 축구를 잘하는 나라? 월드컵 때 녹색 옷을 입은 아프리카인들이 봉고를 치면서 열정적으로 응원을 하던 모습이 얼핏 기억난다. 그 외 아프리카에 대해서, 나이지리아에 대해서, 난 아는 바가 전무하다. 바로 이런 이유로 이 책을 읽었고, 뜻밖에 흥미를 느껴 추천하게 되었다.

 

 첫째는, 식민지 문학이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솔직히 우리나라의 식민지 문학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문학이 뭐가 있을까? 꽤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실상 거의 없었다. 이광수의 무정? 김유정의 봄봄? 염상섭의 삼대? 솔직히 이런 작품도 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우화적으로 돌려치기를 했을 뿐, 식민지 시대를 잘 표현하고 있는지 개인적으론 잘 모르겠다. 차라리 절망으로 가득 찬 이상의 문학이나, 그 당시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백석 등의 시가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친일로 유명했던 서정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또 무슨 연유일까?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를 제대로 표현한 식민지 문학이 존재했는지 개인적인 의구심을 가져본다. 이에 비교해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확실히 식민지 문학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다. 기존의 자신만의 문화를 소중히 여기던 주인공들이 영국 국교회의 선교사들과 대치하면서, 갈등을 일으키고, 그 갈등이 주인공의 죽음으로까지 귀결되는 까닭이다. 물론, 여기에 어떤 사상적 담론을 치열하게 다룬 흔적은 없다. 아니 담론에 대한 어떤 논의조차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이유로 이 담담한 구조가 오히려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둘째는, 서두에서 밝힌 아프리카에 대한 내 무지에서 출발했다. 식민지 문학이든, 무엇이든 간에, 무언가 모르는 미지를 탐험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프리카 특유의 종교적 의식과, 속담의 향연, 그리고 각종 생활의 편린들이 이 글 속에는 가득하다. 특히 내가 관심을 갖고 본 부분은 종교적 의식과 속담의 내용들이었다. 종교적인 부분은 일본의 종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숲과 빽빽한 밀림으로 되어 있어, 정령에 관한 이야기 부분이 유독 강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 모든 사물을 대할 때 종교적으로 접근한다는 의식이 일본의 종교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담의 경우는 중국의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아프리카 특유의 생활과 밀접한 지혜를 담은 속담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이야기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이 글은 일단 아프리카에 대해 생소한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과 그에 따른 기쁨을 주리라 생각한다. 동시에 식민지 소설의 전형적인 특성으로 인해 어떤 안타까운 마음을 품게도 만들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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꾿빠이, 이상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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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꾿빠이, 이상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안녕

 

 

 처음, 이 소설을 기성작으로 하자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이 기회에 이상을 다시 읽자, 이었다. 마침, 내 집에 이상 전집이 있기도 했고, 당연히 시집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이 전혀 당연함이 아니었다. 일단, 시집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이상 전집도 읽어보니, 내가 아는 건 날개, 다른 소설은 말 그대로 난해함 그 자체였다. 첫 소설 지도의 암실부터 지주회시’, ‘동해’, ‘종생기,’ ‘환시기’, 거의 모든 소설이 어려운 번역서를 읽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을 느꼈다. 그나마 봉별기가 조금 가슴이 아려서 소설 같은 느낌이었다. 이어서 시를 읽어보는데, , 정말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할지. 1아해 제2아해 제13아해를 떠나서 아예 우주 밖으로 치솟아 올라버린 이 시들을 어떻게 이해하는 게 맞는지. 솔직히, 개인적으로 시는 가슴으로 읽는다 생각했는데, 이 시들은 가슴으로 읽을 수가 없었다. 일단, 해석부터 어렵고, 해설서를 보면 더 산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정말 이상을 포기해야 하나? 이상은 이해할 수 없는 미친놈인가? 이런 생각으로 결론을 맺으려 할 때, 이 책을 펴들었다. 일단, 끝까지 읽고서 든 단상적인 느낌을 몇 가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첫째, 이상은 정말 믿음이라는 생각에 동의한다. 둘째, 이상은 지독한 에고이스트라는 점도 동의한다. 시든, 소설이든, 자기 얘기 말고는 거의 없다. 마지막으로, 김연수라는 작가에 대해 조금 놀라게 되었다. 그전에 한두 편 읽어본 적 있는 줄 알았는데,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딱 한 작품만 읽어보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그 작품도 너무 오래전에 읽어서 기억도 안 난다. 여하튼 지금 이 꾿빠이 이상작품만 보았을 때 내 개인적 평가로는 앞으로 당분간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중견작가로 손꼽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서론은 이쯤으로 하고 본론으로 들어보려고 한다.

 

 일단, ‘데드마스크. 정말 단순한 구도이다. 어느 날 잡지 기사인 주인공이 서씨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다는 이상의 데드마스크의 이야기에 홀려, 이상에 관해 관심을 갖게 되는 이야기이다. 물론, 여기에 유부녀에 대한 사랑 이야기도 있고, 여기저기 철저한 이상에 관한 고증도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이 이 삼부작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먼저 화두를 꺼내 놓는다는 점이다. 이상은 믿음인가, 하는 이상한 화두이지만. 솔직히 이상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화두라 생각한다. 그리고 여기서 나머지 두 이야기가 풀려나가는 실마리가 주어진다. 두 번째 이야기 잃어버린 꽃은 첫 번째 데드마스크에 나온 서씨의 형 서혁민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마지막 참조로서의 이상 텍스트를 쓴 피터 주에 관한 이야기이다. 두 번째 소설의 화두는 인간 김해경그리고 시인 이상에 관한 질문이다. 여기에 평생 이상의 흉내를 내며 살아간 서혁민의 삶이 보태져 있다. 철저하게 이상을 흉내내며 살아온 서혁민이 진짜였을까? 아니면 이상이 없었더라면 자연스럽게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갔을 서혁민이 진짜였을까? 언제 이상은 이상이 되었고, 어느 순간 김해경이 되었을까? 다소 현학적인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상 작품보다 이상을 존재케 한 이상이라는 한 인간의 삶을 재조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어 보인다. 마지막 소설 는 말 그대로 정체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상이라는 난제 때문에 한 인간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려버린 이야기이다. 한국인의 부모 밑에서 미국에서 태어나 대학 전까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나라에 대해 이상오감도를 읽고 관심을 갖게 된 주인공, 피터 주는 한국으로 와 이상의 연구를 계속해나간다. 그의 주제는 사라져버린 오감도 15편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논문 발표 날, 사라졌다던 이상의 오감도 16실화가 나타난다. 자기는 기껏 19311932년 사이의 소설들과 시를 비교해 오감도에 실렸을 만한 시들을 추렸는데, 이게 무슨 청천벽력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을 떠나려는 찰나, 첫 번째 소설의 주인공이었던 김연화에게서 연락이 온다. 자신에게 또 다른 버전의 오감도 16편인 실화가 있다고. 그리고 그의 삶을 철저하게 따라서 산 서혁민의 수기도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위험한 도박이다. 일단, 한 번 논란이 일었던 데드마스크사건은 분명한 가짜로 밝혀진 일이다. 그리고 그 논거의 중심엔 그 자신이 낸 책 참조로서의 이상 텍스트에 주석으로 쓴 내용이다. 데드마스크가 북한에서 이미 사라졌다고 들었던 내용을 그대로 담은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물론 엄밀하게 따지면, 그 자신도 그리고 이야기를 전해준 사람도 전해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학계에 새로운 오감도 16편의 버전을 발표하는 일은 전혀 다른 일이다. 철저한 검증도 필요할 뿐 아니라, 아닐 경우 그 파장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여 철저한 검증을 한 후 학계에 발표를 한다. 그런데 이게 가짜라고 판명이 난다. 첫 문장 자체가 이상의 오감도에서 가장 빈도수가 높은 글자들을 그대로 조합한 문장이었던 것이다. 그는 이제 궁지에 몰렸다. 더 이상 한국에 발붙일 곳이 없다. 실제로 그의 부모는 한국인도 아니었다. 그의 부모는 타이완에 이민 온 한 여자였다. 어떤 이유로 그를 낳았는지 알 순 없지만, 책임을 질 수 없기에 입양을 시킨 것이다. 그동안 알아 온 모든 정체성이 흔들리며 그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살아야 한다. 이상처럼 부러진 날개로 날아야 한다. 동시에 이별해야 한다. 이상이라는 작가와, 어쩌면 이상이 태어난 나라와. 꾿빠이 이상, 꾿빠이.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된 건 정말 어이없게도 이상이라는 필명의 의미였다. 이상이 그동안 나는 당연히 이상(理想)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李箱)이라니. 내 무지에 일단 감탄했다. 그리고 한 작가에 대해 이렇게까지 고증을 하면서, 이별 의식을 치러내는 작가의식에 또 다른 경외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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