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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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분단이라는 상황 속에서의 지식인의 절망과 선택

 

 

  너무 오래된 이야기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내게 있어서, 그리고 우리에게 있어서....... 남북 분단이라는 어떤 허리 디스크와 같은 통증이 만성이 되어버려서, 이제는 어떤 고통이라기보다는 그저 익숙한 ‘무엇’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 이러한 시점에서 최인훈의 ‘광장’을 어떤 느낌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고등학교 적 뜨거웠던 마음 이 후, 십 몇 년이 흘러 다시금 한 호흡에 ‘광장’을 집어삼킨 후, 먹먹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음이 무언가 흠뻑 젖은 스펀지처럼 무겁지만, 여느 때처럼 전철 창문에 부딪치는 내 잔상은 이질적으로 차갑고 날카롭기만 하다. 대체 이제 와서 이런 신파극이 다 무슨 소용 있단 말인가? 책속의 명준을 빌린 저자의 얘기처럼 지금 이 시대는 광장이라는 것이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겠거늘. 이어폰을 귀에 꽂고 시끄러운 음악에 빠져있는 대학생, 게임 중독인 중고등학생들, 그도 저도 아니면 초조하게 어찌 시간을 때울지 몰라,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으로 폭발할 지경이면서도 이렇게 멍한 표정을 지어낼 수밖에 없는 모두 자기 밀실에 갇힌 무력한 존재의 껍데기들 밖에 없는 것을. 한국 문학을 접할 때마다 느끼는 이러한 복합적인 감정들은 대체 어디서 야기된 것일까?

 

 

  사실, 늘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듯이 난 한국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문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감히 문학을 논하려고 한다. 그런데 더욱 아이러니 한 것은 이런 내가 한국 문학을 제법 읽었다는 것이다. 최인훈의 경우만 놓고 봐도 그렇다. 광장, 구운몽, 화두, 그리고 드라마로 만들어진 상도까지. 너무나 자연스럽게 접하고, 알게 된 그의 소설들. 어쩌면 내게 있어서 한국문학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 중 하나가 바로 이 최인훈이라는 작가일 것이다. 특히, 이 ‘광장’이라는 작품은 그 중에서도 가장 그의 대표작이고, 개인적으로도 매우 재밌게 읽었던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그렇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진 우리의 한계를 가장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할 것이다.

 

 

  명준은 어느 명문 대학에 철학과에 다니는 대학생이다. 일제 강점기부터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던 아버지는 해방과 함께 북으로 넘어갔고, 어머니는 곧 돌아가셨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은혜를 입었던 한 지인에 의해 부족함 없이 보호받으며 자라게 된다. 하지만 그는 무력하다. 해방 후 남한이라는 사회 속에서 너무도 철저하게 그는 무력하다. 자유가 팽배한 사회, 그러하기에 모든 부패마저도 만연한 사회. 그 속에서 그는 젊은 호기로 무언가를 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사회의 현실 속에서 그저 무력할 뿐인 것이다. 그런데 그 때 별안간 그에게 예기치 않았던 일이 생겨난다. 북으로 넘어간 아버지가 대남방송을 하면서, 그는 갑자기 요주의 인물이 되어 버려, 빈번하게 경찰서에 끌려가고, 구타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에게 그동안의 삶에 대한 일종의 반성과 각성의 의식이 자리 잡게 된다. 그리고 바로 그 때, 그에게 윤애라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그전부터 알아오기는 했지만, 그의 무력함과 변변치 않은 성격 때문에 가까이 다가설 수 없었던 여자. 하지만, 경찰서의 그 일 이후,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그는 윤애에게 한 걸음에 달려가게 되고, 그 때부터 그는 그 동안의 아버지의 친구 집에서 나와 윤애의 집 식객으로서 살아가게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둘은 관계를 갖게 된다. 하지만 윤애는 도통 알 수가 없는 여자이다. 한 번 몸을 섞었기에 가까워졌다 싶으면, 그 다음엔 다시 그를 거부하여, 그를 힘들게 하고, 되레 그에게 어떤 알 수 없는 죄의식마저 심겨 놓는다. 그러던 차에 그에게 갑작스럽게 어떤 제의가 들어오게 된다. 북으로의 밀항선! 아버지가 있고, 어떤 마르크스주의라는 뜨거운 열정과 혁명의 정신이 살아있는 장소! 그러나 막상 북으로 왔을 때 그가 본 것은 혁명의 빈껍데기뿐이었다.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어떤 개인적 주석도 불가능한 사회. 그저 당에서 시키는 대로 기계적으로 움직여야만 하는 사회. 그와 동시에 당간부로서 남한의 부르주아들과 똑같은 삶을 유지하고 있는 아버지. 모든 것은 그를 염증 나게 하고, 지치게 만드는 것뿐이다. 북한 역시, 그가 소리 낼 수 있는 광장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하기에 여기서 그는 다시 은혜라는 한 여자를 통해 밀실을 발견해 낸다. 그리고 은혜라는 여성은 윤애라는 여자와는 달리, 그 어떤 경우에도 그를 거부하지 않고 품어준다. 심지어 발레리나로서 가장 꿈일 수 있는 모스크바행도 포기하고 그를 위해 남아준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를 버리고 떠나간다. 그리고 6.25 전쟁이 발발한다. 남한이라는 광장도, 북한이라는 광장도, 그리고 윤애와 은혜라는 밀실도 잃어버린 그에게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광기밖에 없었다. 아니, 주인공인 명준은 그러고 싶었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은인이었던 아버지의 친구 아들 태식이 자신 앞에 끌려왔을 때, 그는 자신이 형사들에게 당했던 것처럼 똑같이 폭행을 하고, 이제는 그의 아내가 되어 있는 자신의 옛 여자 친구 윤애를 거리낌 없이 윤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마저도 끝까지 갈 수 없었던 그는 태식과 윤애를 몰래 탈출시키고, 그 당시 가장 위험했던 낙동강 지역으로 자원을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극적으로 은혜를 재회를 한다. 자신을 배신했던 여자, 그렇지만 다시 자신을 찾기 위해 간호병으로 지원하여 낙동강까지 찾아온 여자. 그 둘은 전쟁이라는 외부의 엄청난 비극 속에서 그 둘만의 밀실인 동굴을 만들어 놓고 도피해 들어간다. 그러나 낙동강 전투의 마지막 날 은혜는 전사하고 만다. 그렇게 명준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그리하기에 휴정협정 날, 그는 남한도 북한도 아닌 중립국을 선택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을 모르고, 자신 또한 이제 어떤 복잡한 생각을 할 수 없는 그런 곳. 병원 문지기라든지, 소방서 감시원이라든지, 극장의 매표원이라도 좋다. 그저 여생을 소박하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라면, 그렇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렇지만 정말 그런 곳이 있긴 있는 것일까? 한참을 그렇게 표류하던 어느 날, 그는 줄곧 그의 배를 쫓아오던 갈매기 속에서 은혜와 그녀가 어느 날 읊조리던 딸에 대한 소망을 새끼 갈매기 속에서 보게 된다. 그리고 다음 날 그는 실종된 채,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는 캘커타를 향해 항해를 계속해나간다.

 

 

  역시, 억지로 써내려가는 글들이라 짜임새가 없다. 그렇지만 대강의 줄거리를 재구성하면서, 다시 한 번 한 호흡으로 읽어내려 간 후의 먹먹한 감정을 재현시켜 본다. 결국 소설은 현실이라는 광장 속에서 남과 북이 하나로 가는 길의 가능성을 포기하고 있다. 아니, 그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마저 포기하고 있다. 그렇지만 남남북녀라고 했던가? 미력하게나마 작가는 하나로의 꿈을 소설이라는 밀실을 통해 바로, 주인공 남녀 명준과 은혜를 통해 꿈꾸었던 거 같다. 그러하기에 마지막 장면에서 명준은 제 3국, 중립국으로 가는 것조차 포기함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도리어 그는 은혜라는 갈매기의 표상을 통해 그들이 꿈꾸고 소망한 딸이 바로 새끼 갈매기라는 사실을 목도하게 된다. 비록 중립국으로 향하는 배를 타는 순간부터 그 자신의 언저리에서 무언가 귀신처럼 달라붙어 자신을 괴롭히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여, 총으로 쏘려고 하기까지 하였지만, 그것이 바로 자신의 아내이며, 자신의 딸임을 뒤늦게 그는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갈매기가 되어 그는 지금도 어느 저 바다 위 창공 위를 떠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밀실이 아닌, 사회적 광장 속에서도 하나 되기를 소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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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3 0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저는 광장을 읽고
97년 쯤였나..유정.무정 춘원을 떠올렸던 기억이 아련하게 있다고..왜..춘원이 떠올랐나..글의 어디에서..그의 광장은 최인훈 이라는 어떤 브랜드가 쌓아온 뭔가와 다르다 느꼈던..그게 고통스러웠는지..그 글읽고 감상 쓰기 조차 힘들었던 기억만..있다.고...가까운 시일내 다시 읽어보고 오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