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 (1disc) - [초특가판]
왕가위 감독, 양조위 외 출연 / 드림믹스 (다음미디어)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화양연화 - 가장 아름다운 시절에 대한 그리움

 

 

 

  사실 영화의 내용은 평범하기 짝이 없다. 어느 날 우연히 벽 하나를 두고 두 집안이 이사를 오게 된다. 젊은 남녀 두 부부... 쉽게 떠올리듯이 여기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무언가 불륜의 전조가 드리워지고... 역시 예상대로 한 여자와 남자는 눈이 맞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부터가 재밌다. 왕가위는 바람난 두 남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이 사실을 알게 된 다른 두 내외 즉 양조위와 장만옥에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아주 의도적으로... 문제의 원인인 이 두 사람의 부인과 남편에 관해선 목소리와 뒷모습 같은 배경적 의미 이외에 제대로 얼굴조차 비추지 않을 정도로. 그렇다면 왜 별로 재미도 없을 거 같은 바람난 남녀의 내외인 양가위와 장만옥에게 왕가위는 애틋한 시선을 보내었던 것일까? 사실 여기선 그전에 중경삼림이나 타락천사 등에서 보여주었던 왕가위의 시선과는 사뭇 다른 무언가를 느끼게 한다. 날카롭게 소외된 이들의 만남임에는 분명히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지만, 왕가위는 도리어 이번엔 이 소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시적인 미학 속에 머물렀던 그의 시선이 도시적인 향수로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것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하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왜냐면, 제목 ‘화양연화’가 의미하는 바가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분명, 비련의 주인공일 수 있는 이 영화의 두 남녀 주인공에서 어떻게 왕가위는 그런 애틋한 그리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일까?

 

 

  영화에서 두 남녀는 처음엔 단순히 서로의 부인과 남편을 되찾기 위해 만나기 시작했지만, 서로 점차 끌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주위의 시선과 아시아의 도덕적 환경이란 무거운 압박 속에서 그들은 결연히 사랑의 도피를 할 만큼 용기 있는 주인공들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에게 시작된 조그만 호감의 감정들을 끝까지 부인하고 싶다. 그러나 각자 부인과 남편에게서의 소외라는 상황과 주위의 시선에 대한 부담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감정을 사랑으로 발전시키게 되고, 급기야 이제 그들은 서로를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영화 `화양연화`는 이런 미묘한 두 남녀의 세세한 감정들을 왕가위 특유의 논리와 감각으로 잘 포착해 내고 있다. 특히 영화 중 나오는 그들의 연습(다른 의미로 연극)은 그러한 두 남녀의 심리에 대한 역설적인 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처음 자신들의 부인과 남편의 불륜의 관계를 확인하던 밤, 그들은 어떻게 자신의 배우자들의 불륜이 이뤄졌는지 더 자세히 확인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상의 연극을 해본다. 슬며시 유혹하는 두 남녀의 시선은 이미 연극을 넘어선 실제에 가 닿고, 어느새 두 남녀는 마지막 연극 연습을 하고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서로의 진실을 알아차린 미묘한 감정 속에서 헤어지기 연습을 해보는 것이다. 남자는 덤덤히 떠난다 하며, 이제껏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진실을 고백하고, 손 끝 쉬 범하지 못한 여자의 손목을 애처롭게 잡았다 놓으며 떠나간다. 슬픔을 견디는 듯 아무렇지 않은 표정 지어보려 홀로 떠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여자는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참을 수 없는 격정으로 남자에게로 달려가 그 품에 안기며 엉엉 서러이 울어버리고, 남자는 연습이라며 여자를 달랜다.

 

 

 

 

 

 

 

  다른 진실을 가정하고 그 진실 속에 몰입하는 그들의 약간은 장난스러운 듯하면서도 처연한 연극은 그들의 시작과 끝을 너무나 분명한 현실로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즉, 그들이 한 것은 연극이 아니라 실제의 진실이었고 실제였다. 마지막 두 주인공의 이별신 연습은 영화 스스로 그것을 인정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이러한 지점이 드러나고 있다. 즉, 그들은 그들의 가장 불행스러운 시절들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만들어내고 싶었던 욕구들을 하나의 연극을 통해 맛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현실은 이러한 연극의 종영이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하기에 결국 연극은 막을 내리고, 두 주인공은 내려와 서로 각기의 길을 걸어야 했으며, 남겨진 무대를 두고 서로 엇갈린 걸음들로 찾아와 종종 들여다보고, 아쉬워하고, 그리워하는 것, 이것으로 끝을 맺어야 했다. 연극은 끝이 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가짜였기에 어쩌면 가장 아름다운 진실로써 그들에게 절실한 그리움으로 남겨지게 된다. 비록, 이 또한 하나의 또 다른 소외를 위한 몸부림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왕가위는 이러한 연극의 행위를 통해 낳아진 소외를 그 그리움을, 우리 삶의 각박한 소외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 얘기하고 싶었던 건 아닌지...

 

 

  검은 커튼이 드리워진 꽉 닫힌 창문 사이로 한 개 시린 바람이 불어와 눈을 감은 눈가에도 빛이 어린다... 흐린 그림자 가뭇가뭇 어리어지고 그 사이 나도 모를 그리움이 피어올라 다시 보고 싶다. 그 때 그 시절... 끝나버렸기에 아름다운, 그토록 아름다운 그 시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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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1-13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는 이미 교감을 나눈 이가 있기에
더 함이 나눔보다..못할것같아서..

몽원 2015-01-13 20:49   좋아요 0 | URL

교감이라.. 좋네요^^ 이 글은 제가 거의 처음으로 썼던 품평인데... 10년도 넘은 시간 전에...
그 때 노블이란 문학 사이트에서 처음으로 이 글을 통해 저도 여러 사람과 글이란 도구를 통해 소통할 수 있게 된 계기를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름 의미가 있긴한데... 지금 보면, 살짝 부끄러운 ㅎㅎ

[그장소] 2015-01-13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도 안바래진 걸요.. 영화 다시봐도 전혀 촌스럽다거나 시대를 모르겠거나 하지않아요.그게..어색하지않음..세련됨..
같아요.저 영화는 은근하게 세련되고 은근하게 밝히고 은근하죠..사람들 속내같이..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화양연화...여전할 수있다고..믿어요.^^

몽원 2015-01-13 21:08   좋아요 0 | URL

아~ 영화 말고요. 화양연화는 그 이후로도 5번 정도 더 봤습니다. 워낙 명작이라..
볼 때마다 새롭더군요. 더 아리고. 제 글이 살짝 부끄럽다는 의미였습니다.^^;; 하하;;

[그장소] 2015-01-13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결국 같은 말을..ㅎㅎ
님의 글 역시 (아..부끄럽다...개인이 느끼는 감정을..) 주제넘게 아니다..그렇다..할 자격이 제게는 없지만..누구의 추억도 지나서 부끄러울..그런 기억은 아주 커다란
잘못이나..두고두고 후회할 만한 일이 아니면..대부분 미담으로 남겨지잖던가요..?.. ㅎ윽! 웹으로 가야..겠어요.
폰이 오늘 뭔가붎편한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