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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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개인적으로 그렇게 잘 안다고 볼 순 없지만 우리말의 맞춤법에 조금 신경을 쓰는 편입니다. 일상적으로 쓰는 말들 중에 잘못 사용되는 말들이 꽤 많은데, 특히 그것을 지면으로 옮겨 적을 때는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 중에 '다르다'와 '틀리다'가 있습니다. 이 둘은 엄연히 다름에도 구분하여 쓰지 아니 하고 오로지 '틀리다'로만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달라도 틀리고 틀린 것은 역시 틀리고...
그런데, 혹시 이것이,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는 우리의 타성이 반영된 건 아닐까요?

마케팅의 기본은 '차별화'입니다. 나의 상품이 다른 상품과 구분되는 그 무엇이 없으면 안 됩니다. 적어도 마케팅에서만큼은 '다르다'는 것은 지극한 선善입니다.
반면, 홍세화의 표현대로, 사람은 자기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끔찍스럽게 여기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반기지도 않습니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엄격히 말하자면 마케팅에서의 상품 '차별화'는 그 상품의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우월성'을 강조하는 방식일 뿐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우리와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것 역시 근본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다수와 강자의 집단이 스스로 우월함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 욕망을 힘의 논리로 강요하는 세상 -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다른 것이 곧 틀린 것과 동일시되는 이 사회에서,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10명의 만화가가 모여 한 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기획하고 박재동,손문상,유승하,이우일,이희재,장경섭,조남준,최호철,홍승우,홍윤표가 그린 《십시일反》을 보았습니다. 여기서 '反'은 이 책 한 권으로 차별에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 같습니다.

차별의 실상과 당연한 것들에 대한 허상을 유쾌하게 그린 것도 있지만 차마 오랫동안 주시하지 못하고 얼른 넘겨버리고 싶은 그림도 있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
이 책의 모든 이야기의 주제를 단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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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시민 불복종 세계를 뒤흔든 선언 3
앤드류 커크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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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조금씩 갉아먹지만 우리는 한꺼번에 되찾으리라. 아-아- 무리의 길은 힘찬 단결투쟁뿐이다."
"다시 한 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하네 (반란이)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하네."

혹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앞의 노래는 김호철이 작사 작곡한 '단결투쟁가'이고, 뒤의 노래는 김남주의 시에 누군가가 곡을 붙인 '죽창가'입니다.

"이제까지 사회의 모든 역사는 계급 투쟁이 역사이다. (...)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유명한 〈공산당 선언〉의 처음과 끝입니다.

이러한 선언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데이비드 소로의 〈시민 불복종〉은 그저 그런 소시민적인 외침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부끄럽게도 이제서야 처음으로 〈시민 불복종〉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이 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망설였습니다. 이미 150여 년 전에 씌여진, 그 당시에는 어떤 이의 주목도 받지 못했던 이 글을, 지금 내가 읽으며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무엇을 '느껴야' 하다니요!!!  
소로의 독백 따위는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저의 감각은 무디어져 있었습니다.
정말 부끄럽습니다.

많이 바뀐 듯 하지만, 시간이 흘러 21세기의 지금 세계는, 그러나 근본적인 변화는 없는 듯 보입니다.
"단 한 명이라도 부당하게 감옥에 가두는 정부 밑에서, 정의로운 사람이 있을 곳은 역시 감옥뿐이다"라는 소로의 말은, 어쩌면 인류가 존재하는한 다른 누군가에 의해 영원히 되풀이될 수밖에 없는 선언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만감이 교차합니다. 글로 정리할 수 없는 혼란함에,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제 자신을 원망합니다.
이미 새로운 사회를 향한 긴장을 상실한 이가,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 글을 쓰려했는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심지어는 자유의 문제를 자유무역의 문제 뒷전으로 밀어 버린 채, 저녁을 먹고 나서 조용히 물가 시세표와 최근 멕시코 전쟁 소식을 나란히 읽고나서 필시 거기에 머리를 처박고 잠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어디선가 지금의 제 모습을 보며 내뱉은 일갈一喝 같습니다.

*
혼란하고 부끄러운 마음에 서평같지도 않은 서평을 써서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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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랫동안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만 하던 아이가 갑작스레 아파했습니다. 금요일 저녁, 어린이집에서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 아내가 데려왔습니다.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갔습니다.

Scene #1

저녁 시간이라 아내는 급한대로 근처 동네 소아과에 갔습니다.
의사는 다짜고짜 아이 입을 벌립니다. 아이가 깜짝 놀랍니다. 다시 귀를 잡아당겨 속을 보려하지만 귓구멍이 좁아 잘 볼 수 없다며 툴툴대다가 살펴보기를 그만둡니다. 화장이 유난히 짙은 간호사가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갑니다. 아이 엄마가 깜짝 놀라 어디로 가냐고 묻습니다. 뭐라뭐라고 말하는데 모기 소리만해서 들리지도 않습니다. 아이더러 뭘 잡고 있으라고 합니다. 아프고 겁에 질린 아이가 뭘 들고 있을 수나 있겠습니까. 엄마는 인내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병원 가기를 어린이집 가듯이 즐겨 하는 아이도 이번에는 혼이 났는지 계속 웁니다. 의사에게 무얼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지만 일일이 어떻게 다 설명해주느냐고 도리어 짜증입니다. 아이의 목이 부어서 열이 그렇게 올라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약을 이틀치만 지어줍니다. 일요일까지 먹으려면 모자라니 더 지어달라고 했지만 토요일 늦게까지 하니까 그 때 다시 오라고 합니다. 정말 우여곡절 끝에 병원을 탈출했습니다. 정신이 하나도 없습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으로 가지만 제대로 처방한 것인지 의심스럽습니다.

Scene #2

다음 날에도 아이의 열이 떨어지지 않아 좀 멀지만 차를 몰고 늘 다니던 소아과로 갔습니다. 아내는 이곳에 가야만 안심이 된다고 합니다. 저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대기 중인 아이들이 여럿 있었지만, 간호사가 반갑게 맞아 줍니다. 의사는 아이에게 입을 벌리라고 합니다. "아~~~". 그리고 청진기로 장 움직임 소리를 듣습니다. 부모는 그 사이 이것 저것 아이의 증세를 말합니다. 의사가 말합니다. "목이 이 정도 붓는다고 열이 39도 이상으로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요즘 갑자기 열이 올라가며 목이 허는 경우까지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심한 건 아니지만 장의 움직임도 그리 좋지 않아 이에 대한 약도 조금 처방해드리겠습니다. 약에 해열제 성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열이 잘 떨어지지 않을 때에는 해열제를 따로 더 먹여 주세요. 해열제는 따로 있습니까?" 그리고는 오늘이 토요일이니 넉넉하게 약을 4일치를 처방한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의사에게 어떤 것을 먹여야 하고 먹여선 안 될 것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의사는 싫어하는 기색 없이 차근차근 설명해 줍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 약을 먹으면 아이가 곧 나을 것 같은 믿음이 들었습니다.

소아과 의사들에게 자격증을 주기 전에 먼저 적성 검사를 따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어른을 다루듯이 - 사실 어른도 그렇게 다루어서는 안 됩니다 - 그렇게 아이를 다루고, 알아서 약을 지어 줄테니 군말 말고 먹으라는 식의 처방을 해서는 안 됩니다. 비단 우리 동네만의 문제는 아닐 것입니다.
반면 정말 '친절하고 샹냥한' 의사가 있는 소아과가 있다면 아마도 웬만한 기존의 근처 소아과를 모두 제치고 모든 엄마들을 불러 모을 수 있을 겁니다. 저부터 그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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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설득파워 - 백지연의 성공을 부르는 힘
백지연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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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자기계발 관련 책을 읽었습니다. 한동안 이런 책들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적이 있었는데, 웬만큼 알려진 책은 거의 본 것 같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런 류의 책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가진 분들도 많습니다. 특히 책 제목에 '처세'에 관한 냄새가 풍길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책 축에도 끼워주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이런 책들이 상당한 도움이 되었습니다. 생활에 동기를 부여하고 늘 깨어있게 만들고 생기를 불어 넣어 줍니다. 때로는 신중하고 때로는 치열하고 열정적으로 살 수 있도록 채찍질합니다. 삐딱한 선입견만 던져버리면 세상에 독毒이 되는 책은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백지연의 신간 《자기설득파워》를 읽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읽어온 자기계발 부문의 책들과 내용면에서 특이할만한 것은 없었습니다. 백지연이 말하는 자기설득기제(SPM;Self Persuasion Mechanism)는 옛날 맥스웰 몰츠 박사가
《싸이코 싸이버네틱스》에서 말한 자기성공메커니즘(Self Success Mechanism)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기본 원리 뿐만 아니라 실천 방식 또한 큰 차이가 없습니다. 거기에 피터 드러커 또는 우리나라의 공병호 박사가 말한 실천 방안들 몇 가지를 합치면 대부분의 내용은 '이미' 다른 이들의 입을 통해 알려진 것들입니다.

몰츠 박사가 직·간접적 상담 사례와 통계를 근거로 했다면 백지연은 그녀의 현재 모습으로 말합니다. 남들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사례로 말합니다. 자기계발을 위한 책의 목적이 단순히 원리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독자의 사고와 습관을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최소한 우리에게는 몰츠 박사보다 백지연이 더욱 강력할 수 있습니다.

백지연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자기 연상, 자기 암시에 매우 탁월한 능력을 가진 것 같습니다. 이 책은 자신의 경험과 성공 스토리를 체계화·이론화한 것입니다. 역시 그의 전공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본문을 조금 들여다 봅시다.
백지연은 삶의 목적이 결국은 '행복'을 위한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늘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 나에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지를 자문했는데, 그래서 얻은 최종 결론이 '자기 설득'이라고 말합니다.
"평생 '다이어트'라는 숙제를 안고 살아가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음식을 자제하고 운동하는 것이 훨씬 정확한 방법이다. 밀린 업무가 하기 싫다고 자꾸 외면하기보단 지금 당장 모니터 속으로 정신을 집중시키는 것이 괴로움을 더는 방법이다. 해결법은 누구보다 당신 자신이 잘 알고 있다. 단, 이 모든 것을 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그리고 온전히 '나 자신'의 탓인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 책에서 끊임없이 강조하는 자기설득기제(SPM)에 대한 '정의'는 보이지 않습니다. 자기설득기제가 가져다 주는 여러 효과와 그 실천 방법은 있으나,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설득하는 법(p.28)' 이상의 설명이 굳이 필요 없었던 듯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스로를 잘 설득하여 성공으로 갈 수 있을까?
먼저 자기 자신을 제대로 분석하는 것부터 출발하라고 합니다. 강점을 강화하고 단점은 거의 무시하되 반복되는 실수는 체크하라고 합니다.
다음 단계로 마음 속에 늘 소망을 품으라고 합니다. 그 소망은 매우 구체적일수록 좋습니다.
다음으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구분하라고 합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해야 할 일'을 선택하라고 합니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정해지면 철저하게 '하고 싶은 일'은 접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고통의 역치'를 깨뜨려 보라고 말합니다. 지금까지 내가 할 수 있었던 그 한계를 깨뜨리라고 합니다. 조금씩, 조금씩... '내 안에 이런 힘이 있는 줄 몰랐네!'하는 깨달음이 있을 때마다 세상을 상대로 조금씩 담대해질 거라 말합니다.
마지막으로 가끔은 스스로의 어깨를 두드려 주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질문일 수도 있고 자신만의 피드백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joy of life'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요점만 쓰는 것이 읽는 이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혹 그 내용을 궁금해하실 분을 위해 몇 자 적었습니다.
이런 책의 진정한 효과는, 책을 사는 순간의 마음가짐에서 이미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백지연이 말한 것과 똑같은 말을 누군가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낸다면, 아마 그래도 전 또 그 책을 살 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마음을 곧추세울 수 있는 '리마인드 기제'가 필요한데, 그래서 저자의 말처럼 '끼니 때 밥을 챙겨 먹는 것처럼 내 마음을 다잡는 리마인드 작업을 규칙적으로 반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반복적인 리마인드 기제의 하나로 이런 책도 꽤 효과적입니다. '다 알고 있는데 뭘~'하는 생각을 버리고 겸허하게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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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 세계를 뒤흔든 선언 1
데이비드 보일 지음, 유강은 옮김 / 그린비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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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책을 읽었습니다. 빨간 것은 불온不穩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불온한 문서나 책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습니다. 다만 과거에 불온했던 것이 지금은 '덜' 불온할 수 있습니다. 불온이라는 말은 온당하지 아니하다는 뜻도 되고 치안治安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공산당 선언(이하 〈선언〉)〉의 원문이 포함된 해설·연구서 《세계를 뒤흔든 공산당 선언》을 읽었습니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이런 책을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 여전히 〈선언〉을 읽는 것은 그리 안전하지 않습니다. 연구나 해석이 목적이 아니라 변혁이 목적일 때 그러합니다. 맑스는 언젠가 "지금까지의 철학자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계를 변혁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두 말할 나위 없이〈선언〉을 쓴 진정한 이유 역시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볼온하고 위험한 책입니다.

지금 〈선언〉이 자유로이 출판될 수 있는 것은 현실 사회주의가 몰락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1991년 어느 날, 호외 신문을 통해 소련 몰락 소식을 접했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학교에서 누가 장난으로 신문을 만들어 뿌린 줄로만 알았습니다. 냉전이 공식적으로 종료 선포되는 날이었습니다. 현실 사회주의의 패배를 최종 공인하는 날이었습니다. 이는 전세계적 자본주의화, 곧 '세계화' 시작을 선포하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보아온 현실 사회주의는 맑스와 엥겔스가 〈선언〉에서 말한 그 모습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사회라는 것을 〈선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맑스주의가 맑스가 생각하고 있는 핵심을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맑스가 생존했을 때부터 이미 감지되었습니다. 맑스는 언젠가 엥겔스에게 "나는 맑스주의자가 아니라네"라고 했습니다. 스탈린은 맑스-레닌주의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가 정작 맑스도 레닌도 결코 원치 않았던 폭압적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해도 도저히 저지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던 사회주의 블록은 이미 몰락의 씨를 싹틔우고 있었습니다.

현실이 이러하니, 마치 맑스와 엥겔스의 모든 주장이 응축된 〈선언〉, 그리고 그들의 정치경제학적 자산인 〈자본론〉이 불완전하기 그지 없는 글처럼 취급되는 듯합니다. 그렇다고 맑스와 엥겔스를 무덤에서 다시 일으켜 세울 수는 없습니다. 당신들이 말한 것이 결국 이런 것이었냐고 항변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상합니다. '불가피한' 세계화와 80:20의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있는 지금, 다시 읽는 〈선언〉에서 새로운 생명력이 느껴집니다.
150여 년이나 지난 지금 〈선언〉은 여전히 신선하고 적절하며 여전히 불온합니다.

이 책은 〈선언〉을 쓴 맑스와 엥겔스, 그리고 이 글이 쓰인 배경을 소개에서부터 〈선언〉이 가져다 준 의미와 여파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선언〉의 내용이 지난 150여 년 동안 어떻게 실현되고, 어떻게 왜곡되고, 어떻게 좌절됐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참 괜찮은 책 하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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