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
틱낫한 지음, 박윤정 옮김 / 명진출판사 / 2005년 4월
평점 :
품절
집 앞 전철역 오르내리는 통로 옆에 요즘 연등이 걸려 있습니다. 분홍빛 연등에 아기 부처 그림과 '부처님 오신날'이라는 글귀가 씌어 있습니다. 연말에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던 자리입니다. 종교가 없는 저는 5월과 12월에 등장하는 그 두 상징물에서 평화로움을 느낍니다. 바쁜 출근길, 피곤한 퇴근길에 눈요기 이상의 그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의 책을 한 권 읽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우리에게 <화>라는 책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틱낫한 스님에 대해서는 말로만 전해들었을 뿐 저도 아직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며칠 후면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이기도 하고, 마침 틱낫한 스님이 새 책을 내고, 겸사겸사 그의 베스트셀러 <화>를 거저 주는 행사를 하고 있어 주문을 했던 것입니다.
제목은 <틱낫한 스님이 읽어주는 법화경>입니다. 이 책에서 스님은 개인적으로 법화경 읽기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불교 경전을 뭐 하나 제대로 읽어보지 못했으니 어떤 것을 좋아한다는 말이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저도 개인적으로 법화경만큼은 많은 애착이 갑니다. 대학 다닐 때 한때 불교에 관심이 많아 여러 책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법화경 한글본과 한역본, 그리고 해설서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흔히 법화경을 '경전의 왕'이라고 말하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 법화경의 탄생 배경에 대해 간단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최초의 원시 불교과 부파 불교의 분화를 거쳐 '대승'이라는 불교 내의 개혁적 운동을 통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전까지 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를 유일한 부처로 생각하고, 다른 이들은 수행을 통해 기껏해야 '아라한'(소승 불교 최고의 경지에 이른 성자)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출가자들은 개인의 깨달음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바깥 세상의 어려움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승가는 점점 보수화되었습니다. 부처가 열반에 들고 몇 백 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대승은 기원전 1세기 경 불교 내에 일어난 매우 급진적인 개혁 운동이었습니다. 개인의 구원에만 초점을 맞춘 기존의 관행에 반기를 들고, 출가자와 재가 불자를 모두 수용하며,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해탈로 인도하려는 혁명적인 움직임이었습니다. 불교가 매우 참여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해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루터의 종교 개혁 이상의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때 여러 대승 경전이 간행되는데 <반야바라밀경>, <보적경>, <화엄경>, <유마경> 등이 그러합니다. 소승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개혁적 운동의 영향으로 인해 이때까지의 대승 경전에서는 소승에 대한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법화경에 이르러서 진정으로 대승 사상이 완성되기에 이릅니다.
법화경은 대승경전 중에서 부드러운 언어를 구사하고 불교의 모든 종파와 사조들을 받아들인 첫 번째 경전입니다. 법화경이 등장하고 나서야 비로소 출가 불자인 비구와 비구니, 재가 불자인 우바이와 우바새로 이루어진 완전한 승가를 형성하기 시작합니다.
틱낫한 스님은 이 책의 앞 부분에서 법화경의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다음, 서품에서 보현보살권발품에 이르기까지 법화경 28품(장)의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고, 다시 각 장마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감히 말씀 드리건데, 틱낫한 스님의 이 책은 법화경에 관한 최고의 해설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처럼 쉽고 명쾌하게 법화경의 내용과 그 뜻을 알려주는 책은 아직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법화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역사적 차원'과 '궁극적 차원', 그리고 '실천적 차원'으로 나눠 설명하는데, 이로 인해 법화경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표면의 말에 갇혀 기적적인 사건과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솔직히 무협지와 같은 허황된 묘사에 삐딱한 생각을 가지기도 했었는데, 스님의 설명으로 명쾌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무진장의 시간 개념과 한량없는 공간 개념에 대해서도 서서히 이해되고 느껴지는 바가 있었습니다.
불교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거나 거부감이 있는 분들은 굳이 볼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불교에 관심이 있으신 분 또는 기존의 불교 서적의 난해함에 지레 겁을 먹었던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부처님 오신날 즈음하여 이 책 한 권 읽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참고로 '경'은 산문으로 된 긴 글을 뜻합니다. 그 전까지 부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는데, 구전하기에 쉽게 운문 형태로 전해졌습니다. 법화경에도 운문 형태의 게송이 많이 실렸는데, 아마도 운문이 먼저이고 그것을 상세하게 풀어서 곁들였을 것이라는 것이 통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