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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 3 (1부 3권) - 군자유종(君子有終), 군자에 이르는길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권에서 공자의 마지막이 좀 아쉽다고 생각했습니다. 공자가 열국을 주유하기를 마치고 고향인 노나라로 오면서 이야기가 끝이 났는데, 뭔가 좀 허전하다 싶었습니다.
3권 첫 장은 2권에서 이어집니다. 아마 2권의 분량 때문에 조절한 것 같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상이 결코 현실 정치에는 접목시킬 수 없음을 뼈저리게 느낀 공자. 그는 정치적 이상을 통해 국가를 바로잡으려는 외부적 노력보다 학문적 사상을 개발하여 내적 자아를 완성하려는 노력이 훨씬 더 값어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로부터 7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오로지 학문에 정진합니다. 그 6년의 시간 동안 공자는 수천 년 역사에 길이 남을 경전을 집필합니다.
오늘날 산동성 곡부에 있는 공자의 묘에는 이런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위대한 완성자, 최고의 성인, 문화를 전파하는 왕"
위대한 인격의 완성자요 사상의 완성자라는 말인데, 이 말은 결국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온 후 죽을 때까지 6년 동안 펼쳐 보인 눈부신 가르침을 일컫는 것입니다.
이 장의 제목은 〈공자천주(孔子穿珠)〉입니다.
공자가 노나라로 돌아올 때 구슬을 하나 가져왔는데, 이 구슬에는 아홉 개의 구멍이 뚫려 있었습니다. 공자는 이 아홉 개의 구멍에 실을 꿰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했으나 쉽게 찾지 못합니다. 제자들은 불가한 일이라고 단정합니다. 공자는 아무리 진귀한 보물이라도 실로 꿰지 않는 이상 쓸모없는 물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곧 자신의 처지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사상을 가졌을지언정 현명한 군주를 만나 정치적 이상을 드러낼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 말입니다.
어느 날 공자는 누에를 치기 위해 뽕 따는 아낙네를 만납니다. 아마 실 꿰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 아낙네는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히 생각하십시오. 생각을 조용히 하십시오. 密爾思之 思之密爾"
공자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한 끝에 방법을 찾아 냅니다. 개미를 잡아다가 개미 허리에 실을 매고 한쪽 구멍에 개미를 밀어넣고 반대편 구멍에 꿀을 발라 개미를 유인합니다. 그렇게 해서 개미로 실을 꿸 수 있게 됩니다. 공자는 아낙네의 말 중에서, 조용히(密)라는 말에서 꿀(蜜)을 떠올렸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 장의 제목을 공자천주(孔子穿珠)로 한 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13년의 천하주유가 아홉 개의 구멍에 실을 꿰어주는 군주를 만나기 위한 순회였다면 노나라에 있어 공자의 말년기 6년은 아홉 개의 구멍에 학문과 사상을 실로 꿰는 대발분의 절정기였던 것이다."
이 장에서는 공자가 《시경》 《서경》 《예기》 《악기》 《역경》 《춘추》 《논어》 《효경》 등 9가지 경전을 정리 편찬한 시기를 그의 제자들 이야기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권의 본편인 퇴계 이황의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저자는 조광조의 추적을 통해 그 개혁정신이 공자의 유가사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공자로까지 거슬러 올라갔습니다. 공자의 천하주유를 통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것이 조광조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반면 그가 마지막 6년 동안 학문에 정진한 것이 퇴계 이황으로 이어졌다는 것 또한 알게 되어, 유림 제1부의 마지막을 이퇴계의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자는 퇴계를 공자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 발전시킨 동양 최고의 학문적 제자라고 말합니다.
퇴계의 본명은 이황(李滉). 퇴계(退溪)는 그의 호인데, 말년에 자신의 고향인 토계로 돌아와 마을 이름을 퇴계라 고치고 더 이상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세상과 완전히 손을 끊겠다는 의지를 《논어》에 나오는 '조정에서 물러나다(退朝)'에서 따온 '물러날 퇴(退)'자를 사용했던 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퇴계는 평생을 통해 79번이나 벼슬자리를 사퇴했습니다. 말 그대로 물러나 계곡으로 나앉은 것입니다. 그 물러난 계곡(退溪)에서 오직 학문에 정진한 것입니다. 공자가 자기를 써 줄 군주를 찾아 천하를 주유한 것과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이는 공자의 마지막 6년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또한 이황이 평생토록 사표로 삼은 주자(朱子)가 28세 때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남악에 칩거하여 오로지 학문과 저술에 전념한 것을 닮았습니다. 공자보다 빠르고 주자보다 느렸으니,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셈입니다.
부끄럽지만 솔직히 이 글을 통해 퇴계에 대해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늘 보는 천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이자, 내 태어난 고향 안동의 대표적 인물이기도 한 이퇴계에 대해 너무나도 몰랐던 것입니다.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사실에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과거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생각해야 함에도, 현재를 기준으로 과거를 바라보는 고질적인 시각으로, 과거는 고리타분하고 유교는 보수적이며 이황은 그 보수적인 유교를 대표하는 구시대적인 인물이라는, 지극히 원초적인 생각만을 갖고 있었으니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최인호는 명기 두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이 퇴계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두향 - 단양 태생. 중종시대의 사람이며, 특히 거문고에 능하고 난과 매화를 사랑했고, 퇴계 이황을 사모했으며, 수절 종신한 기생. 이렇게만 이야기하면 좀 어리둥절하지요. 퇴계 이황과 기생 두향이라. 결국 성리학자든 누구든 남자라는 것들은... 쯧쯧쯧...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세요. 그 정도의 이야기였으면 제가 이퇴계에 대해 잘 몰랐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퇴계가 두 번째 부인과 사별한 지 2년이 흐른 시간. 단양의 군수로 있을 때, 그 적요한 공방에서 명기 두향을 만납니다. 그 때 퇴계의 나이 48세, 두향의 나이 18세, 딸보다 어린 두향이었으니 나이를 초월한 남녀간의 상사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 짧은 9개월의 사랑. (생략합니다. 책 사서 보는 분을 위하여^^)
퇴계가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 말은, 뜻밖에도 "분매에 물을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저녁 5시 경에 와석을 정돈하라고 명하고 부축하여 일으켜 앉히니 조용하고 편안하게 돌아가시다'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분매(=매분=분재매화)는 짐작하셨겠지만 두향이가 준 것입니다.
이퇴계가 죽고 얼마 후 두향은 따라 죽었습니다.
이렇게 적고 보니 마치 신파 소설처럼 보여지겠습니다. 하하, 오해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장황히 적자니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옮기는 것 같아, 후에 책을 직접 보는 분들께 우를 범할까 조심하고 있을 뿐입니다.
퇴계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저자는 후기에서, 이퇴계가 벼슬을 버리고 떠나와 7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도산서원에서 학문정진하는 시기를 제5권에서 다루겠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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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내어 도산서원에 가보고 싶습니다. 안동에서 태어났으나 도산서원에 한 번 가보질 못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63빌딩에 가보지 못하고 유람선을 타지 못했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니 부끄럽네요. 어찌 한강 유람선과 도산서원을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지척에 두고 한 번도 가보지 못했으니, 도산서원에 다녀오기 전까지 내 고향이 안동이라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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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4,5,6권 예고 - 저자의 후기에서제4권 : 공자에서 퇴계로 이어지는 유가의 계승자들이었던 맹자를 비롯하여 순자, 묵자, 주자, 왕양명 등
제5권 : 벼슬을 버리고 70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도산서원에서 학문에 정진하였던 퇴계의 은둔강학기
제6권 : 68세의 늦은 나이에 고향에 돌아와 73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불과 6년의 짧은 기간 동안 인류의 교과서라 불리는 경전을 편찬한 공자의 생애를 공자의 고향 공부를 통해 되살림.
언제쯤 책이 나올까,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