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운 신부 전집 - 전5권
G. K. 체스터튼 지음 / 북하우스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표면적으로 보자면 그들의 삼자대면은 멋진 일이다. 도중에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쓰는 사람이나 죄를 짓고도 교묘히 빠져나가 비열한 미소를 흘리는 사람만 없다면 정의를 실현하는 데 이토록 좋은 방법은 없을지도 모른다. 검사는 정의실현(죄를 지은 자가 그에 합당한 벌을 받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변호사는 억울한 자를 대변하는 동시에 (피해자든 가해자든) 인권을 가장 우선적으로 챙기는 대리자이며, 판사는 이 모든 과정을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감시하고 법전에 적힌 법조항을 사건에 가장 올바르고 정확하게 적용해 사회의 형평을 맞춘다. 그런데 법이 언제나 옳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확히는 법을 다루는 이들이 형평을 지키지 못할 때가 더 많다. 거기다 법은 벌을 받고나서도 거의 언제나 변하지 않는 인간으로 인해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법이라는 최소한의 테두리는 진실을 추적할 때만 이용되면 좋겠다는 법조인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상적인 법조인의 경우, 특히 판사는 남의 인생을 좌지우지하는 자리를 부담스러워했고, 대부분 어렵게 버렸다. 그래, 같은 인간인 이상 누구에게도 타인의 삶을 쥐락펴락할 권리는 없다. 그것이 필요하게 된 계기는 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인간이 서로 속고 속이는 데서 시작된 이상, 법은 여전히 누군가의 인생을 결정할 때의 토대가 되어야 한다. 동아줄을 잡은 이들의 마지막 희망을 끌어당기거나 밀어내면서 누구든 구원할 수 있다는 듯이.

 

2013년은 브라운 신부 팬들에게는 최고의 해이다. 최근 BBC에서 마크 윌리엄스가 브라운 역을 맡아 시리즈가 진행중이다. 구할 수 있는 한 영국 드라마는 거의 보려고 하기 때문에 반가운 일이다. 가톨릭계의 유명한 탐정 브라운 신부는 작달막한 키에 통통한 몸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 동해번쩍 서해번쩍 나타나 온갖 사건의 해결사 노릇을 한다. 사건은 유산 다툼일 때도 있고 살인사건일 경우도 있으며 신분위장인 때도 있다. 자극적인 묘사는 없다. 다만 사실적으로 상황을 그려낼 뿐이며, 대부분이 일이 일어날 즈음의 상황묘사와 캐릭터에 주목한다. 브라운 신부는 추리하지 않는다. 하는 것은 추리가 아니라 관찰이다. 냉철하고 온정어린 눈으로 상황을 들여다보고 진단하는데 그 사실이 생각지도 못한 데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마치 진찰은 의사가 하지만 약은 약국에서 판다는 듯 뒷일은 독자에게 맡겨버리는 식의 지적 게임같다. 우리가 탐정소설에서 찾는 것이 정의실현 보다는 사건 발생과 해결 사이의 역경과 짜릿함이라면 적어도 판사 보다는 형사가 더 낫고, 형사 보다는 추리소설의 독자가 되는 게 더 낫다. 피비린내 나는 응징이 아니라 진실을 고스란히 재현해내는 데 주목하는 점에서 범죄는 있을 수도 없는 것이며, 범죄자는 모두 악인들이라 정의하는 기존의 선악구도를 뛰어넘는다. 이쯤에서 브라운 신부 시리즈 다섯 권이 출간된 시점을 눈여겨 봐야 한다. 종교에서 더이상 신성함을 찾아볼 수 없는 21세기가 아니라 20세기 초반 가톨릭의 영향력이 빛나던 시기- 각각 1911년, 1914년, 1926년, 1927년, 1935년- 에 나온 작품이라는 점 말이다. 또 하나의 근대 탐정 브라운 신부는 영국의 위대한 탐정 셜록 홈즈의 뒤를 잇는다. 브라운 신부의 명성을 이어간 탐정은 포와르이며, 이를 만든 추리작가는 크리스티 여사다. 영국은 이렇게 세 명의 근대 탐정으로 지금까지 명성을 이어가는 중이다. 어떻게 신부가 탐정이 될 수 있는가 따위의 질문은 어리석다. 브라운 신부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짐작해보면, 응징보다는 자비에 관심을 두는 종교인이기에, 감싸안아야 하는 인간의 불우한 내면까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범인이 누구인가가 아니라 그 사람은 왜 범인이 될 수밖에 없었나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상황을 들여다보는 관찰력으로 인해 브라운 신부는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뒤이은 인기탐정이 될 수 있었다.

 

체스터튼은 미술학도로서 미술평론가로 처음 글쓰기를 시작했다. 그의 손끝에서 눈앞에 펼쳐지듯 생생한 사실적 묘사가 가능했던 것도 그의 이력과 무관하지 않다. 또한 브라운 신부의 모델이라고 밝힌 존 오코너 신부는 캐릭터 설정과 브라운 신부가 세상을 보는 사상이나 추리로서의 사건전개 면에서 영향을 미친 인물로 손꼽히며 명성을 얻었다. 신부라는 신분과 당시 종교인이 가졌던 느리고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떠올리면, 브라운 신부가 섬세한 관찰로 사건의 정중앙부를 날카롭게 파헤쳐 재현하는 역설과 반전의 논리가 쉽게 연상되지 않을 수도 있다. 게다가 잔잔하게 흐르는 사건에 들어있지 않거나 제3자로 무심히 서있다가 비로소 등장하여 짠하고 해결하는 스타일에 개연성이 없다거나 무난하다거나 하는 비평을 내놓을 수도 있다. 아서 코난 도일과 크리스티 여사가 그런 것처럼 체스터튼 또한 인간의 숨겨진 상처를 읽어내고 거기서 질투, 분노, 우울, 슬픔 등을 찾아냈다. <브라운 신부 전집>은 100년 전에 씌었고, 10년 전에 번역되었다. 결백/지혜/의심/비밀/스캔들 이라는 각 제목 안에 낱개의 제목을 단 수 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앞서 출현한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와 크리스티 여사의 포와르가 그렇듯 끔찍하고 선정적인 범죄장면 묘사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깊이 묘사하는 데 훨씬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다. 범죄소설에 길들여진 나는 처음에는 늘 지루함을 느낀다. 거기다 세월차도 무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야기에 서서히 물들어간다는 점에서 닮았다. 브라운 신부의 말 속에서는 인간이 가진 특유의 감각들을 음미할 수 있다. 오랫동안 복수의 칼날을 갈며 준비한 트릭 속에서 억울한 자가 죽은 에피소드를 두고 인간 내면에 숨겨진 사악한 재치를 맛보기도 하고, 일부러 어질러놓은 집안 가구의 배치 속에서 고의와 선의를 간파해내는 탐정을 두고 어떻게 감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집에서는 가장 천하고 악한 남편이 바깥에서는 제일 좋은 남자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인간에게는 한 모습만 존재하는 게 아니므로. 심지어 감정이란 더 많은 형태로 분리될 수도 있는 가장 신비롭고도 다채로운 보배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부모를 죽인 자식은 나쁘다. 동시에 부모를 버린 자식도 나쁘다. 수없이 쏟아지는 기사 속에서 죽이거나 버린 이유를 알고나면 이 끔찍한 결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보낸 야유의 목소리를 거둬들일 수밖에 없게 되는 게 인간의 이성이 하는 일이다. 늘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하라고 가르치는 이들은 이제 시대에 걸맞지 못하다는 평판에 부딪치지만, 아들이 친구를 때렸다면, 무조건 때리지 말라고 하기 보다는 왜 때렸는지 묻고, 왜 때리면 안되는지 가르쳐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그런 점에서 브라운 신부는 부모다. 범인이 누구인지도 중요하지만 범인의 사정 또한 주의깊게 다뤄진다는 점에서 체스터튼의 문학은 인간적이다. '어떻게' 보다는 '왜'에 초점을 맞춘다. 어제는 선한 사람이 내일은 얼마든지 나빠질 수 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상황의 즉시성 혹은 현실과 내면의 불일치 때문이지, 특정인에게 범죄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거나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범죄와 인간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가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이 변수를 잘 다독이는 것만이 범죄의 질을 낮추고 양을 줄이는 방법이다.

 

실제로 브라운 신부가 밝혀낸 트릭은 앞서 우리가 놓쳤던 것이 아니라 또다른 이야기를 사연으로 끌어내는 것에 불과해서 오늘 날의 범죄소설이나 추리소설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무릇 범죄란 발생하기 전에 막으면 좋을 일이지, 범죄에서 명언을 얻거나 깨달음을 구한다는 것은 현재에 비추어 보면 무리가 있는 발상이다. 신분제도에 기인한 범죄나 총보다 칼이 사용되는 범죄, 의외로 욕심 많은 사람들이 귀족의 지위에 있다는 것 등 적어도 어떤 범죄라는 것이 단 한 가지 이유로 촉발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 범죄의 다양한 모습과 거기에는 인과응보식의 대응도 필요하지만, 자비와 관용을 베풀어야 할 경우도 있다는 사실에 너그러워진다. 무엇보다 법적 처벌만으로 이 세상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법과 판사의 역할을 무시할 수도 없다. 누구를 속이거나 다치게 하거나 죽이는 사실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본다면, 그래서 죽였다는 사실조차 망각하고 누군가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면 어떨까. 우리의 욕심과 눈먼 질투, 약간 꺾인 자존심, 갑자기 툭 튀어나와 목표를 가로막는 장애물. 많고 많은 사소함 중에 단 하나로도 인간의 삶 아니 유리 같은 마음은 악에 저당잡힐 수 있다. 악은 몰라도 범죄는 순간적이다. 악은 전염성이 강해도 범죄는 개인의 것이다. 적어도 범죄자 중에 죄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는 극소수 중에 극소수이지 않을까. 범죄는 선과 악으로 구성되는 양날의 칼 속에서도 의외로 복잡한 구조와 형태를 갖는다는 것, 그래서 범죄로 인해 끊임없이 인간 본성을 탐구할 수 있으며, 근본을 유추할 수 있다는 것, 그로 인해 지치지 않게도 문학으로 재탄생되는 갈등과 대립의 구조가 늘어난다는 것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홈즈와 브라운 신부와 포와르가 읽히는 것도, 선과 악에 대한 지치지 않는 탐구와 권선징악을 향한 정의,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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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02-15 2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운 신부는 사실 여기에서 처음 보는데, 신부가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소설이라니 꽤 재밌겠어요. 신부는 아무래도 종교인이니까, 종교인의 시선에서 범죄와 범죄자를 보는 것은 또 다르겠죠. 아무튼 인간의 모든 범죄는 아주 다양한 인간의 욕망에서 출발하고,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형태로 이루어지니까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범죄는 사라지지 않을거고, 범죄소설, 추리소설도 계속 새로운 얘기를 쏟아내겠죠. 근데 TV에서 하는 범죄 얘기를 봐도, 사실 상당수의 범죄는 거대한 악이나 사이코패스 같은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별 것 아닌 것에서 시작한다는 것...

아이리시스 2013-02-15 22:05   좋아요 0 | URL
설상가상 제가 하지 말라는 것도 곧잘 해서 일을 잘 치는 편이긴 하지만 어제 파더 브라운 다운받다가 맥북이 맛이 갔어요. 외장하드를 인식못하는 상태로. 그런데 초성능 좋은 데스크탑 본체를 얼마 전에 들였거든요. 동생이 엄마 하시라고 사드렸는데, 덕분에 매일밤 대박맞고에 푹 빠져있어요. 이상하게 홈즈는 좋은데 크리스티는 푹 빠지게 되지 않았는데 브라운 신부는 첫장부터 재밌게 읽었어요. 단편이라 연결의 부담도 없어서, 그런데 책이 절판이란 건 몰랐어요. 이거 쓰고나서 알았어요. 대체로 미스터리 범죄소설은 평범한 사람이 악이라는 그런 얘기를 하잖아요. 추리소설 많이 읽어서 내일까지만 읽고 다시 인문학(!)으로 돌아갑니다. 히히히.

stella.K 2013-02-16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이거 드라마로 방영해요? 봤어요?
근데 이책 절판이네요. 읽는다 읽는다 하면서 아직도 못 읽다가
결국 절판되는 모습을 보게되는군요.
새로 안 나올까요? 헌책방 발품 팔아야 하려나요?ㅠㅠ

2013-02-19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19 1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8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스피 2013-02-16 1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라운 신부 넘 재미있지요.브리운 신부는 셜록 홈즈의 라이벌이었는데 국내에선 홈즈에 비해 영 인지도가 낮더군요ㅜ.ㅜ

아이리시스 2013-02-19 01:19   좋아요 0 | URL
홈즈가 1인자여서 영화나 시리즈로의 전환이 많고 빨라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카스피님. 넘 재밌어요. 디테일한 묘사로 시작하는 초반부에는 늘 또 어떤 사건으로 뒤통수를 칠까 두근두근. 그런데 왜 한 번도 개정판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여러 모로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는 상황ㅜ.ㅜ

transient-guest 2013-02-21 0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거 다 읽었는데, 리뷰는 이렇게 쓰지는 못했어요..ㅎㅎ 브라운 신부의 추리는 확실히 통찰력 같은걸로 사건의 본질이나 사람의 중심을 뚫어보는데 있지, 홈즈나 포와르식의 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방식하고는 틀리죠. 작품자체도 서술형이고, 뭐랄까, 편안하게 스토리를 읽어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드라마는 조만간 구해봐야겠네요.

아이리시스 2013-02-28 16:53   좋아요 0 | URL
포와르는 제가 어릴 때 읽다말아서, 다시 시작한다고 지난 여름에 읽다가 놔뒀는데(뒷심부족), 사조영웅전,의천도룡기,신조협려도 죄다 그 상태--; 트란님 따라서 저도 삼매경 해야겠어요. 웬만큼 재밌지 않고는 반전과 추리와 마무리를 한 번에 하는 브라운 신부의 구성은 개연성이 떨어지거나 갑자기 왜 이게 나와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게 없어서 홈즈나 포와르식과는 확실히 달라요. 홈즈를 좋아했는데 브라운 신부도 좋아요. 누가 더 좋은지는 모르겠어요.

2013-02-23 2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8 16: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3 23: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2-28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