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고- 엄청 깁니다.
영화 <데블스 에드버킷(The Devil's Advocate, 1997)>은 장르상 법정 스릴러로 분류되어 있다. 인간의 뒤틀린 욕망,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 양심과 재물에의 저울질 등 검붉은 포스터가 말해주듯 인간이 가진 악의 본성을 탐구하는 거대한 드라마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며 선택의 극한까지 관객을 몰고 간다. 무엇보다 알 파치노와 키아누 리브스의 연기대결이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전율하게 한다. 이 영화를 알려준 책은 헤닝 만켈의 <방화벽>이다.
헤닝 만켈은 '발란더 형사' 시리즈로 유명한 스웨덴 출신의 북유럽 스릴러 작가다. 여기 앉아 저기를 조정할 수 있는 사이버 테러를 소재로 하는 <방화벽>에서 발란더 형사가 단서상 발견하게 된 영화가 <데블스 에드버킷>이다. 요즘 드라마 <유령>에서 악성코드로 원격조정 당하는 자동차까지 보면서 사이버 테러의 무궁무진함을 흠뻑 체험중이다. 이혼 후 떨어져 사는 딸에게 전화로 줄거리를 묻지만 면박만 당하고, 수사의 단서가 보일 듯 말 듯 아슬아슬한 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직접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본다. 범인을 알아내야 할 임무를 띤 채 독서하고 있으니까. 이걸 두고 '빙의된 아이리시스'라고 한다.
"이것은 도미노와 같은 거야. 돌멩이가 하나 무너지면 이어서 모든 것이 붕괴하는 거지. 이른바 연쇄반응이 일어나는 거야. 티네스는 바로 처음 무너진 돌멩이에 해당해." (<방화벽> 2권 중에서)
"우리는 과거에도 종종 이런 상황을 맞은 적이 있지. 즉 두 사건이 우연히 서로 맞물려 일어나는 경우 말이야. 우리는 우연히 일어난 충돌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그 두 사건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믿는 거지." (<방화벽> 2권 중에서)
추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쳇바퀴와 충돌과 우연한 연관을 구별짓는 일이다. 시작점을 어디로 하느냐에 의해 수사의 단서와 추리는 일방향으로 미끄러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인데, 같은 사람이 하던 방식대로 생각하는 경우나 같은 사람이 같은 주제로 줄기차게 써먹는 글의 소재와 문체 같은 것과 비슷하다. 다만 이걸 깨닫는 데는 언제나 시간과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초반에 쉽게 얻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헤닝 만켈이 발란더 형사에게 투여한 발상과 사고의 전환은 초기 수사의 중요성을 꼬집는 것 같다. 그는 굉장하다. 몇 가지 사건을 외따로 벌여놓더니 배경을 넓혔다가 좁혔다가 다시 넓힌다. 경계를 오가며 맛보는 짜릿함이 일품인데, 모든 패를 까고 시작하는 이 게임은 정작 끝나고 나서 후련한 게 아니라 허무하다.
헤닝 만켈은 처음이지만(처음 아닌 게 별로 없지만;;) 알게 된 건 <이탈리아 구두>의 번역본이 국내에 출간된 2010년이었다. 일련의 추리 시리즈가 아니라 순문학으로 그의 이름을 삼켜버렸다는 게 우습다. 겉만 보고 판단하는 뭐 그런 거. 사건은 순차적 혹은 동시다발적으로 빵빵 터지고 단서는 던져줄 듯 말 듯 애간장을 녹이다 배후에 뭔가 커다란 음모가 도사리는 것처럼 무대영역을 확장시킨다. 앞뒤가 딱딱 맞아떨어지거나 떡밥을 던지며 복선을 깔아두는 이른바 반전 스릴은 없지만 믿음직하고 거대하고 탄탄하다.
헤닝 만켈의 배경 무대가 주로 아프리카여서 차가운 느낌이 강한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나 <스노우맨> 보다는 내용상으로 사회적 음모 분위기가 물씬나는 <밀레니엄> 시리즈에 가깝다. 북유럽 스릴러의 개요를 정리하자면, 요 뇌스뵈(노르웨이), 스티그 라르손(스웨덴), 페터 회(덴마크), 아날두르 인드리다손(아이슬란드) 정도를 듣거나 읽었다.
(여기서 읽은 책은 <스노우맨>이랑 <우아한 제국>)
이유없이 북유럽 스릴러로 넓어진 페이퍼를 힘껏 좁히자면 다시 헤닝 만켈로 돌아온다. 스티그 라르손이 북유럽 스릴러의 대중화를 시도했다면 헤닝 만켈은 그 프로젝트에 화룡점정 역할을 한다. BBC 방송은 '발란더 형사'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를 방영중이다. 국적은 영국인데 스웨덴 올로케라서 영상미가 상당하다. 보는 중. 영국 드라마 특유의 90분짜리 3부작의 1시즌 구성은 <셜록>에 이어 계속되고 있다. 영화 한 편 보는 것과 동일한 체력과 집중력을 요하는 진지하면서 긴박한 영국 드라마의 묵직함이 좋다.
BBC 방영 드라마 [Wallander]
이름 : 쿠르트 발란데르
나이 : 1948년 출생
사는 곳 : 스웨덴 남부 스코네 주의 위스타드
직업 : 위스타드 경찰서의 형사
가족 : 린다라는 딸이 있고, 아내 모나와는 이혼했음. 어머니는 그가 11살에, 화가였던 아버지는 그가 46세에 사망했음. 형제로는 스톡홀름에 사는 누이 크리스티나가 있음.
취미 : 음악 감상. 주로 오페라를 들음.
건강 : 48세에 당뇨 진단을 받았음. 몸이 무거웠을 때는 92킬로그램까지 나갔음. 용의자 사살 후 우울증에 시달려 1년 병가를 내고 쉬었던 적이 있음.
성격 : 무뚝뚝하고, 직선적이고, 침울함. 생각이 많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음. 수사관다운 직관과 끈기가 있음. 사회성이 부족하고, 때로 독불장군처럼 고집을 부리거나 다혈질적으로 분노함. 정치 사회적 시각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특정 주의를 따르지 않음.
줄을 못세우고 닥치는 대로 읽어서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나 좀 orz <방화벽> 다음 <미소지은 남자> 보면서 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다섯 작품 다 읽을 거였음 줄 좀 세우고 읽어도 됐잖아. 헤밍웨이는 그렇게 나란히 줄도 잘 세워놨었으면서.
<미소지은 남자>는 장기를 사고팔 목적으로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산 사람마저 이용하는 범죄현장을 담아낸다. 1990년대에는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2010년대인 지금은 암묵적으로 있는 일이라는 점만 빼면 충격은 마찬가지다. 산 사람이 살기 위해 산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이 악이라면 이 악의 끝은 대체 어디까지일까. 이미 있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벌어질 일이 두려운 이유다. 과거보다 미래가 겁나는 이유다. 이 소설에 언급되는 작품은 <맥베스>다. 악의 결정판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래서 나는 굳이, 반드시, 헤닝 만켈 중간에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읽어야 했고 그렇게 했다.
<하얀 암사자>는 이 문장이 배경을 관통한다.
헤닝은 이것이 영국인들의 지배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지는 남아프리카에서 보어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얀 암사자> 중에서)
약 80년 전 '형제단'이라는 조직의 결성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헤닝이 친구들과 함께 보어인의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 조직한 '형제단'은 50주년 되던 1968년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단체가 되었으며, 1970년대 후반 급속히 위축됐는데 이는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이 유색인종과 흑인의 반발과 백인의 동조로 인한 대결 상황에 임박해 있었기 때문이다. 30년간 정치범으로 수감되어 있던 넬슨 만델라의 석방이 보어인인 클레르크 대통령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은 보어인들에게 큰 배신으로 여겨진다. 과격 인종차별주의자들의 클레르크 대통령 암살작전은 천천히 아주 은밀하게 진행된다. 만델라가 클레르크와 함께 1993년 공동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것 외에 아는 게 없다. 클레르크(1989년부터 1994년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제10대 대통령이었다)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철폐시킨 공로자로서 그 정책 아래 존재한 가장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작품 속 간간이 등장하는 아프리카민족회의와 KGB는 내 교양을 벗어난다.
죽은 뱀 한 마리. 뱀의 머리는 여전히 꿈틀거리고 있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뱀이 아직 살아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바로 이러한 형국이었다. 죽어서 이제는 무덤에 묻혀 있다고 생각되는 많은 옛것들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 있는 것과 연합하거나 대항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끈질기게 살아 있는 과거에 대항해서 싸워야 한다. (<하얀 암사자> 중에서)
배경에 도움이 되는 만델라의 여러 버전이 있다. 물론 만델라를 몰라도 헤닝 만켈을 읽을 수 있지만, 이 역사적 배경이 호기심을 끌 정도로 대단한 먹이사슬로 이뤄진 인종다툼이라 관심분야와도 맞다. 스웨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먼나라 남아프리카까지 뻗어있는 스케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과 남아메리카를 이으려는 광대한 스케일에서 개연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꼭 스웨덴이거나 꼭 남아공이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
아프리카의 독립과 백인,유색인종,흑인 간, 다민족간, 다종족간, 다부족간, 식민종속관계이자 먹이사슬 관계의 검은 대륙의 싸움이 고스란히 배경이 된다. 보어인은 그 중 하나일 뿐인데, 그들은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기 위해, 백인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계속적으로 편리하게 시행하기 위해 서로 죽고 죽이는 지리한 싸움을 끝맺지 못한다. 첫 스웨덴 여성의 살인은 그저 우연이었다. 만델라 암살의 킬러로 투입된 이들의 마음이 어긋나 벌어진 우연한 사건의 실마리가 마침내 풀렸을 때, 이 일이 단순한 우발적 사고가 아니라 아프리카 지도자 한 명을 죽이고 정치적으로 원하는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한 특정집단(여기서는 보어인)이 오랜시간 계획적으로 주도해온 사건이란 걸 알게 되면 놀랄 것이다. 헤닝 만켈은 모든 것을 까발린 채 시작하는데도 일단 재밌다. 발란더 형사의 개인사와 경찰서 동료들과의 인간적 관계, 단순과 우연과 거대한 사건사고가 얽혀 하나의 뿌리 깊은 사건의 전말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대단하다.
<다섯번째 여자>는 우연한 관광객에 불과했지만 수녀 넷이 단체로 죽는 사건에 끼여 죽은 한 중년 여자를 일컫는다. 이름하여 다섯번째 여자로 통하게 될 그녀의 죽음을 이상하게 여긴 사람은 그녀의 딸이다. 그리고 다른 사건. 자동차 판매업으로 큰돈을 번 한 남자의 죽창에 찔린 죽음, 꽃가게 남자의 실종, 단서는 처음 발견된 사체의 주인공 집안 금고에 든 콩고에서의 용병 경험을 기록한 몇 십년 전의 일기장과 고도로 압축된 해골 뿐이다. 차례대로 4번째 작품을 읽어오는데 제일 난감한 단서들이다. 어떻게 다시 한 번 스웨덴에서의 죽음과 아프리카의 역사를 연결할지 궁금한 가운데, 우리의 발란더 형사는 쉴 틈이 생긴 날, 이 영화를 빌려온다. 참, 이번 편에서 그의 아버지가 뇌출혈로 급사한다.
이 영화는 <안개 속의 풍경>인데, 소설 속 제목은 <안개 속의 다리>라고 나온다. 그런 영화는 없는데, 우리가 모르는 영환가, 고전영화라고 해서 그 영화가 이 소설의 배경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영화라서 호평 받은 비슷한 제목의 영화로 때우;;면 안되겠지만 이 영화는 되게 좋은 작품이다.
다음 인용구는 다소 역사적, 정치적인 배경인데 어떤 책을 읽다가 이런 부분을 만나 궁금증이 생겼을 때 이런저런 자료나 검색, 또 다른 책으로 자세한 내용에 대해 알아보는 게 좋다.
"1953년부터 시작해 보겠소. 당시에는 네 개의 아프리카 주권국가가 국제연합 회원국이었소. 그러던 것이 7년 후에는 스물여섯 국가로 늘어났고 아프리카 전체 대륙이 들끓었소. 이른바 탈식민지화가 극적인 단계에 접어든 거였소. 독립을 선언하는 국가들이 늘어났고 독립국으로 태어나기까지는 종종 엄청난 진통이 따랐소. 그 중에서는 벨기에-콩고처럼 격심한 진통을 겪은 나라는 없을 거요. 벨기에 정부는 1959년 주권 양도를 위한 계획안을 마련하고, 주권 이양 시기를 1960년 6월 30일로 확정했소. 그런데 그날이 가까워질수록 전국적으로 격심한 소요가 일어났소. 각 부족들이 나름대로의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연일 폭력사태가 발생했소. 어쨌든 독립은 이루어졌고, 카사부부라는 경험 많은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고 루뭄바는 총리가 되었소. 루뭄바라는 이름은 당신도 한번쯤 들어보았을 거요." (중략)
"카탕가에서의 전투에는 수백 명의 용병이 참전했소. 용병들의 출신지는 다양했소. 프랑스, 벨기에, 알제리,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15년이 흘렀으나, 전쟁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독일인들도 많았소. 그들은 아무 죄 없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복수했소.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용병들도 상당수 있었소. 이들 중 일부는 전사해 무더기로 묻히기도 했죠. 그들이 어디에 묻혔는지는 아무도 모르오. 어느 날 한 아프리카인이 유엔군 스웨덴 진영을 찾아왔소. 그는 죽은 용병들의 서류와 사진들을 가지고 있었죠. 스웨덴 출신 용병들은 거기 없었소." (<다섯번째 여자> 중에서)
용병들은 돈을 가장 많이 주는 사람 편에 서서 사람을 죽였다. 명분으로야 자유라는 이념을 수호하기 위해, 공산주의에 반대한다는 이데올로기가 있었지만 그들의 삶은 결국 피폐해져갔다. 사디스트나 정신이상자로. 그리고 지금은 사진 한 장 속 이름모를 인물로 나뒹군 채 이름도 소식도 잃은 채 살거나 죽었다. 일기장의 주인은 현재 그 이름이 아닐 수도 있고, 가명일 수도 있고, 원래 그 이름이 아닐 수도 있다. 발란더 형사는 수사가 벽에 부딪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수사의 단서와 증거들 보다 이런 얘기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인생을 통찰하고 관계에 대해 고민하고,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촉구하는 사람들의 대화.
"할아버지는 자기 세계에 갇혀 살았지.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에서 해의 움직임을 결정했어. 해는 언제나 있던 자리에 걸려 있었지. 50년 동안 나무 그루터기 위에. 뇌조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고. 나는 가끔 아버지가 자신이 살고 있는 집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른다고 생각했어. 자기 둘레에 테레빈으로 된 보이지 않는 벽을 쌓고 사셨지."
"그렇지 않아요. 할아버지는 많은 걸 알고 계셨어요." (<다섯번째 여자> 중에서)
누구나 누군가에 대해 잘 모른다. 어쩌면 가장 가깝다고 믿는 그 사람에 대한 내밀한 것은 물리적 거리로 판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자기 세계, 바깥 세계, 그런 게 있다면, 내면으로 침잠하는 사람과 바깥 뉴스에 골몰하는 사람의 결혼생활은 위태롭다. 관심분야, 흥미거리, 삶의 방향성이 모두 다를 것이므로. 그런 것들이 걱정이 된다. 나는 너와 함께 오랫동안 잘 살아내지 못할까봐. 정작 깊은 곳으로 파고든 작품은 용병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건이었다. 가장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부터 촉발된 살인동기 그리고 슬픈 사연과 쳇바퀴 돌듯 연결되는 부조리, 그것이 범죄. 나만 발빠지지 않으려 애쓰고 애쓰는 것만이 과연 최선일까. 삶에 최선이 있다고 보기란 힘들지만.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어느 사회에서나 문제가 된다. 여자, 아이,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한 배려는 인도적 차원이나 휴머니즘 차원을 넘어선 인간 본연의 윤리로 작용했으면 좋겠다. 용병의 윤리문제로 가는가 싶던 <다섯번째 여자>의 살인이 오뉴월에 서리 내리게 하는 여자의 '한' 때문이란 걸 알았을 때-특히 남편의 폭력에 의한-나는 좀 놀랐다. 용병에서 남편에게 매맞는 여자까지는 넓어도 너무 넓은 물리적 거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축제로부터 시작되는 소리소문 없는 두려움, 발란더의 동료가 살해된다. 발란더에게는 단지 동료였는데, 그는 여러 사람에게 발란더를 가장 친한 친구로 소개하고 다녔다. 그의 외로움과 고독, 관심사와 삶을 파고들면 들수록 한 사람이 남기고 간 생의 자취는 점점 더 희미해진다. 엉망으로 어질러진 사건현장에도 불구하고 찾아낸 비밀공간 서랍에서 두 장의 사진을 발견하면서 불이 켜지는 듯하지만 여전히 수사는 혼돈이다. <한여름의 살인>은 끈적하다. 유럽여행을 떠난 줄로 알았던 세 아이들의 실종, 이들이 평소 벌였다던 역사속 시대 흉내내기 가장무도회 축제, 여행간 딸의 엽서 속 서명을 딸의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엄마, 동료의 살해, 단서가 네(한 명은 아픈 바람에 약속에 참여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평소 놀이처럼 게임처럼 했다던 그 변장쇼에 있을까. 늘 그랬듯 수사는 좀처럼 진척되지 않는다. 연달아 읽다보니 다소 스타일이 지루해지면서도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아쉬운 걸 보면 좋아한 모양. 같은 캐릭터를 또 불러오고 함께 숨쉬고 시간이 흐르고 묵히고 그러면서 여느 인간처럼 실수도 하고 변화하고 다치고 울고 이기심도 비치고 이런 것들이 좋다. 함께 존재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죽은 사촌 둘로부터 찾아낸 어느 여자의 사진, 동료들은 아연해지고 수사는 미궁 속으로 빠지면서 1권이 끝날 때까지 사건의 윤곽은 짐작되지도 않는다. 마침내 한 권이 남았다고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최대한 읽는중의 즐거움과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스포일러에 해당하는(할 것 같은) 전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으려고 무진장 애쓰는 중이다) 벌어진 살인을 추적하는 중에 연쇄반응의 2차 살인이 계속 터져나오는 통에 작가가 처음부터 까놓고 시작해도 막상 끝나면 범인이 누구였는가 보다 왜 살인할 수밖에 없는가가 더 중요해진다. 소수자와 소외된 자 혹은 소심한 자들의 꽁꽁 눌렀던 분노가 발화되면서 범죄를 낳는 게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로서 지상낙원 같던 복지국가의 나라 '스웨덴'도 뭐 별 것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범죄는 그곳이라서 있는 게 아니고 인간이기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것. 다양한 인간군상과 인간 본연의 성질과 기질에 의해 스웨덴이나 한국이나 범죄양상은 별다를 게 없음을 본다. 그래서 지구촌은 하나.
번역작을 다섯 개 끝내자마자 여름에 새로운 출간소식이 있다고 주워 들었다. 쇼~ 끝은 없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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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헤닝 만켈이 최고로 꼽는 범죄소설은 <드라큘라>와 조셉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다. 나머지는 내가 끼운 책. 올 여름 내내 차례대로 읽고 있는 공포와 악의 문학들이다. 앞의 책 다 까먹어야 다음 책 읽고 그리고 두 번째를 까먹고 세 번째를 읽는 식이 되겠지만 언젠가 끝나긴 끝나겠지.. 네버엔딩 스토리는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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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란더 형사 시리즈 순서는 이렇다. (도움이 되기를!)
얼굴 없는 살인자들 (1991)
리사의 개들 (1992)
하얀 암사자 (1993)
미소 지은 남자 (1994)
가짜 흔적 (1995)
다섯번째 여자 (1996)
한여름의 살인 (1997)
방화벽 (1998)
피라미드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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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나 미스터리를, 그것도 사회파를 넘어 역사파까지 읽으려면(예능을 예능으로 못 받아치는 나는) 당연히 고민해봐야 한다. 악의 역사나 영향 혹은 효과에 대해서. <악의 역사> 세트는 예전에 사이비 종교와 사탄에 관심 많았을 때 읽으려다가 나가 떨어진 전력이 있지만 여전히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