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눈
- 공광규
겨울에 다 내리지 못한 눈은
매화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벚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조팝나무 가지에 앉고
그래도 남은 눈은
이팝나무 가지에 앉는다.
거기에 또 다 못 앉으면
쥐똥나무 울타리나
산딸나무 가지에 앉고
거기에 다 못 앉으면
아까시나무 가지에 앉다가
그래도 남은 눈은
찔레나무 가지에 앉는다.
앉다가
앉다가
더 앉을 곳이 없는 눈은
할머니가 꽃나무 가지인 줄만 알고
성긴 머리 위에
가만가만 앉는다.
*
하얀 꽃눈이 기다려지는 요즘,
매화에서 찔레나무까지 두 계절을 먼저 만나는 기분이다
소박한 밥상과 할머니의 뒷모습 그리고 노을진 풍경이 서글퍼지려다가도 흰눈 맞은 할머니의 표정을 보면 노년이 그리 고되진 않은것 같아 안심이 되기도 한다
정제된 언어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그림이 있어 아이들도 시가 낯설고 어렵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