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0624.
오랜만에 공지영이다.
에세이는 사실 취향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 학교 독서동아리에서 함께 읽기로 한 책이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였다.
발제자까지 맡게 되었고, 게다가 국어 교과 주임 선생님도 참석한다고 하니 부담 백배. 아, 왜 그러시냐고요...
그렇게 시작된 독서였지만, 곱씹으며 읽다 보니 처음에 느꼈던 '꼰대의 말'은 아니었다.
도리어 내 아이에게, 내게 들려주고 싶은 말들이 많아지는 시간이었다.
작가가 독립한 성인인 딸에게 해주는 말의 형식이지만, 굳이 딸이 아니어도 새겨들을 말들이 많았다.
나 역시도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다.
꼰대가 하는 말이라고 한쪽 귀 막고 듣지 말고 좀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처럼 아이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을 글로 남겨놓는 것도 좋은 생각이란 생각도 든다.
장기 프로젝트!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2015년 초판으로 2023년 개정되었다.
출판 연도와 작가의 결혼을 고려하면 대상은 20대 중반쯤 되었다.
내가 20대였을 때 이런 말을 들었다면 또 어떠했을까도 생각해 봤다.
여전히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한 오춘기였던 나의 20대 때 이런 말들을 들었다면 무조건적인 반발심이 들었을 수도. ㅋ
(그러니 지금 내 이야기를 아이들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속상해 말자)
역시... 조언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 때에야 약이 된다.
작가 공지영의 '즐거운 나의 집'이나 '네가 어떻게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도 딸, '위녕'이 등장한다.
어쩐지 멋지단 느낌이었다.
GPT는 이렇게 말해줬다.(GPT 말은 검증이 필요함)
‘위녕’(蔚寧):
“蔚”은 우람할 위, 푸를 위
“寧”은 편안할 녕
→ 푸르고 평안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이름이죠.

https://youtu.be/K-2yrEaLXHo?si=E1bsN8vSjT2iS69r
초반부에 'Sometimes I feel like a motherless chilid'라는 곡을 추천하길래 찾아봤다.
물론, 독서모임에서 같이 듣기도 했다.
작가가 추천한 소년합창단 말고도 다양한 버전이 있다는 걸 알았다.
대체로 재즈가 많은데 오홋, 숨겨놓은 명곡이었구나.
좀 우울할 때 들으면 위로가 될 것 같다.
글 중간에, 그리고 레시피에 삽입된 일러스트도 좋았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나왔던 '면도 이야기'처럼 자존감,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작가가 위녕에게 했던 술에 대한 이야기-혼자 마시지 말 것, 즐거운 기분일 때 마실 것, 첫 잔은 세 번에 나눠 마실 것-는 최근 큰아이에게 해줬다.
여기에 한 가지-술은 득보다 실이 많다, 마시지 않아도 되면 마시지 않는 게 훨씬 좋다-를 더 추가했다.
작가이다 보니 여러 다른 작품 이야기나 인용을 하기도 하는데 다 읽어보고 싶어졌다.

책에도 나오는데 나 역시 이제 혼자 밥을 먹더라도 크고 예쁜 접시에 플레이팅 예쁘게 해서 먹어야겠다.
좋은 친구를 만나라, 이런 친구를 피하라는 이야기에서 나는 이런 사람은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긍정의 말을 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감사일기를 쓰고, 주변에 널리 전파했다는 경험담을 읽으며 매일 뭐라도 하나 감사하는 일을 찾아보자 다짐했었....는데, 고새 까먹고 있었다.
얼른 루틴으로 만들어야지.

보너스처럼 나오는 여러 레시피들이 정말 말도 안 되게 쉽다.
레시피 책이 아니라 에세이인지라 레시피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것이 아닌지라 대문자 T인 나는 직관적이지 않은 이 대목이 좀 불편했다만, 에세이라는 점으로 이해하니 볼 만은 했다.
따라 하고픈 레시피가 여럿 있었는데 이 중에서 냉장고에서 숙성되고 있는 사과를 처리하기 위해 식빵에 응용해 보았다.
이 애플파이는 요새 우리 집 최애 간식이 되었다.(가능한 식빵 꽁다리 쪽을 이용하는 게 더 바삭하고 맛있다)
레시피 얘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아이에게 전해줄 간단 레시피는? / 나를 위한 레시피는?' 이란 주제로 또 한참을 이야기했다.
주옥같은 레시피들이 쏟아져 나온다.
역시, 음식과 글은 사람을 이어주는 공통 언어다.
집단지성의 힘.
명심해라. 이제 너도 어른이라는 것을.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p.30
독서모임 마지막 큰 질문.
여러분은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 스스로에게 준 것은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가볍게 물질적인 면으로 대답할 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독립을 꿈꿔왔었는데, 여전히 독립은 못한 것 같다.
공지영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는 문장도, 일러스트도 좋았는데
무엇보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볼수록 깊게 다가온다는 걸 알려준 책이라 더 의미있었다.
이제 남은 과제는 나만의 버전으로 아이들에게 남길 레시피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