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인형 중국 아동문학 100년 대표선 25
인졘링 지음, 김명희 옮김 / 보림 / 2017년 4월
평점 :
품절


양갈래 머리의 볼빨간 소녀, 핑크빛 표지 그리고 '숨기고 싶은 성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사춘기 소녀의 성이야기인가보다 상상해본다.

그런데 왜 '종이인형'일까?

주인공 랴오랴오는 청소년 상담을 하면서 어릴적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랴오랴오가 아홉살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벌써 가슴에 멍울이 잡힌다.

친구 추쯔는 벌써 생리를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일단 놀랬다.  사춘기가 빨라졌다고는 하지만 아홉살인데 벌써?

울 아이들의 먼 이야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내 어린시절보다 아이들이 다가올 시기를 염두에 두고 읽게 된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구나.


대학생 언니의 풍만한 가슴을 몰래 훔쳐 보기도 하고, 같은 반 남자친구에게 애정공세도 받아보고,

또 좋아하는 여선생님에게서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젊은 남자선생님을 짝사랑(?)하기도 하고.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시작된 랴오랴오의 흔들리는 성적 호기심, 수치심, 고민을 잡아준 건 '단니'다.

단니는 랴오랴오가 그린 종이인형의 이름.

엄마나 선생님,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고민을 단니는 털어놓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가야 할지도 단니와의 대화를 통해서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다.

랴오랴오의 이야기는 아홉살에 멈춘 것이 아니라 랴오랴오가 스무살이 될때까지 이어진다.

마지막에 랴오랴오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와 비로소 성인이 되었을 때,

그때 단니는 사라지고 없지만, 더이상 단니가 필요하지 않아서일수도 있겠다.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랴오랴오의 내면세계를 들여다 보면서

나의 사춘기는 어땠는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올바른 성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함께 고민해 봤지만,

더 중요한 것은 랴오랴오나 특히 친구 추쯔가 엄마에게서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때문에 생기는 일들이

충분히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겠구나 싶어 좀 더 따뜻한 엄마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요즘의 사춘기 소녀들이 읽는다면 얼마만큼 공감할지도 궁금하다.

분명한건, 건전하고 "순조로운" 길을 가기 위한 자신만의 단니가 하나씩은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이 엄마이든, 친구든, 걱정인형이든, 종이인형이든 간에.


 

p. 54

곧 다가올 사춘기는 입을 쩍 벌리고 있는 캄캄한 동굴 같았다.
나는 아무런 근심 걱정 없는 청소년에서 시작해 좁고 긴, 다양한 통로를 걸어가야 한다.
통로는 끝없이 길고 양쪽에는 높은 벽이 서 있다.
나는 나의 발소리를 들으며 더듬어 간다.
쿵쿵쿵 울리는 발소리는 긴장한 내 심장 소리다.
밝고 안전한 동굴 입구로 누가 나를 인도해 줄까?

p. 125

나는 좀 놀란 표정으로 우아한 선생님을 쳐다보았다. 마음속에서 익숙한 무언가가 조용히 떠올랐다.
무시 선생님이 다가와 다정하게 남학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선생님의 부드러운 손이 남학생의 덥수룩한 머리를 엄마의 손길처럼 살며시 어루만지고 있었다.
순간 가슴이 이상하게 두근거렸다.
그것은 오랜만에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손길이 어떻게 이런 상쾌한 느낌과 감동을 줄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내가 크고 난 뒤에는 이렇게 다정한 손길을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건 정말이다.

p. 170

지금 나는 스스럼없이 자주 예전 단니와의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그 기억들은 흐릿하게 떠오르는 이상한 것들뿐이다.
어떤 때는 단니가 정말 존재했었는지 확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의 사소한 기억들이 아주 또렷이 떠오르고, 내 등에는 아직도 단니의 따뜻한 손길이 남아 있다.
(...)
청소년기에 나를 완전히 무너뜨릴 만한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마도 나의 청춘을 이끌어 주 단니 덕분이 아닐까?

p. 213

"하지만 선생님은 제게 오빠 같은, 평생 감사한 선생님이에요.
그리고 ...... 저는 늘 제 마음이 순탄한 궤도 위를 달렸으면 좋겠어요. 순조롭지 않은 길을 가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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