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건드리니까 사계절 동시집 12
장철문 지음, 윤지회 그림 / 사계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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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동시야?

그래, 동시야!!


어른이 아이의 마음으로, 아이의 눈으로 쓴 시다.

가장 정제된 언어로 쓴 문학장르라지만, 시라는 것이 무슨 형식이 필요한가?

그래서 시와 별로 친하지 않은 우리 아이들도 부담없이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책을 읽어주긴 하지만 이 책은 내가 읽어준 책이기 때문이다.



 

꼭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좋다. 그저 마음가는 대로, 손길 가는 대로 펼쳐 읽으면 그만이다.

이른 봄 제주여행에서 제일 처음 만난 매화꽃밭.

그 기억이 생각나 제일 먼저 펼친 시는 "매화 보러 갔다".

한편의 일기 같은 느낌이다.

어라? 이게 시야?

시라는게 별로 어려운 게 아닌데? 아이의 반응은 이랬다.

 

 

제목부터 확 와닿는 "들판에서 똥 누기"

나도 똥을 누고, 별도 똥을 누고.

그 별은 별똥별일까, 반딧불이일까?

철퍼덕, 똥을 깔고 주저앉을 뻔했다는 표현에 모두들 까르르.

아...아깝다.  철퍼덕했음 더 재미있었을텐데 말이지.

경험해 보지도 않았고 그림책도 아닌데 눈앞에서 장면이 펼쳐지는 게 신기하다.

어? 시라는게 쫌 재미있는데?


똥과 관련된 또다른 재미있는 동시가 있다.

역시 아이들에게 똥은 최고로 인기가 좋다.



건망증이 아주 심한 사람이

길에서

똥이 마려웠다


길가 숲으로 들어가서

나뭇가지에 모자를 걸어 놓고

그 아래서 똥을 쌌다


다 싸고 일어나니

모자 하나가

툭,

이마에 걸렸다


허허,

어떤 녀석이 모자를 걸어 놓고 그냥 갔네


모자 하나가 공짜로 생겼으니

그 아니 좋으랴!

덩실둥실 춤을 추다가

그만 똥을 퍽석 밟고 말았다


에잇,

어떤 녀석이 여기다 똥을 싼 거야!


- '건망증은 무서워' 전문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표현한 시들 덕분에 한편의 그림일기집을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엄마의 폭풍같은 수다를 보고 표현한 "우리 엄마 좀 말려 주세요" 같은 시를 보고는 찔끔 찔리기도 했다.

또 같은 풍경을 놓고 아이의 눈으로 보는 건 다르구나 느끼기도 했다.



동백꽃이 뛰어내리기 시합을 했다


한 송이가 뛰어내리니

투둑

툭,

툭,

너도나도 뛰어내렸다


까르르 깔깔

까르르

쿡쿡


한바탕 웃어 젖히고는

정신을 차리고 보니,

뛰어내린 곳이

까마득하다


으앙, 울음을 터트리는 녀석

시무룩한 녀석

저 혼자 뾰로통한 녀석


까무룩 봄 졸음에 떨어졌던 나무가

화들짝,

새파랗게 질린다


너희들 그 밑에서 뭐 해?


나무가 품에 안아서

푸른 가지 끝에 다시 올리기까지

꼬박 네 계절이 걸린다


- '동백꽃 소동' 전문



동백꽃이 질때면 모가지가 뚝뚝 끊어져 처절하다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아마도 이런 말을 많이 들어 그런 편견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동백꽃을 보면 까르르 깔깔 웃음소리가 들릴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뿅가맨" 그림책 작가 윤지회님의 그림이 더해져 마음이 푸근해지는 동시집이다.

바람이 자꾸 건드리니까, 나뭇가지가 자꾸 건드리니까,

그리고 해설을 쓴 강정연님의 답시처럼 "시가 자꾸 건드리니까",

오늘은 시랑 놀기 딱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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