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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들여다보는 사람 - 한국화 그리는 전수민의 베니스 일기
전수민 지음 / 새움 / 2017년 3월
평점 :
작가 전수민은 전통한지와 우리 재료를 이용해 우리 정서를 표현하는 화가다.
평범한 직장인에서 뒤늦게 그림을 공부한 그녀는 좀 독특하다.
어릴적 물에 대한 트라우마때문에 물의 도시 베니스여행이 그리 달갑지 않았기 때문이었는지
곧 죽을 사람처럼 종종 유서를 쓰고, 또 죽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죽고 싶지 않아 보이기도 한다.
이 책은 그녀가 베니스로 한달간 여행을 떠나면서 쓴 31통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고 베니스 여행기를 쓴 여느 여행안내서와는 다르다.
한달간 오픈스튜디오에서 작품활동을 하며 틈나는 대로 일어난 일이나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그것이 독자인지 아니면 특정 대상이 있는지 모호하다) 쓴 편지들이다.
작가가 한달간 베니스에 머무르면서 찍은 사진들로 나는 베니스의 면면을 엿볼 수 있었다.
명소가 아닌 숨겨진 곳들이 더 많다.
작가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들이라 사진만 봐도 좋다.
책 곳곳에서 작가가 베니스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한 작품들도 감상할 수 있다.
글을 잘쓰는 사람도 부럽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나는 늘 부러웠다.
자신의 감정을, 그때의 기분을 이렇게 멋지게 표현해낼 수 있다니...
누군가에게 쓴 편지라는게 살짝 엿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기도 하다.
일관된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두서없이 느꼈던 감정들을 쓴 것이라
글이 뚝뚝 끊기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내 생애 언제 베니스에 가볼 수 있으려나...작가는 두려워했지만, 나는 부럽기만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크게 자극받았던 이야기는 스물셋째날 쓴 편지,
"내 마음속의 어떤 동화"에 나오는 작가의 블로그 이웃에 관한 이야기다.
은행원으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프로골퍼가 되고 싶어한 그, 그렇게 프로골퍼가 되고 또 골프 칼럼까지 쓴 그는
어느날 불쑥 의사가 되기로 했단다.
그리고 지금, 뉴질랜드에서 물리치료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에 큰 자극이 된다.
베니스로의 여행을 꿈꾸게 하고, 평범하지 않은 작가의 눈으로 본 베니스의 풍경과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나의 꿈에 대해 아직 늦지 않았다고 용기를 주는 그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