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의 신사
에이모 토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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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460
"그 옛날 너에게 평생 메트로폴을 떠날 수 없다는 연금형이 선고되었을 때,

네가 러시아 최고의 행운아가 되리라는 걸 그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그가 말했다.


2018년 마지막을 장식한 책이다.

30년 넘는 시간동안 같은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렇게 다사다난할 수 있구나 새삼 느낀다.

(어쩌면 늘 똑같아 보이는 내 일상도 글로 써내려가면 더 길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고 때론 심장 쫄깃해지며 (특히 후반부엔 더더욱!) 읽게 만든 작가의 힘이 느껴진다.

배경지식이 짧아 때론 이해하지 못한 부분들도 종종 있었다.

겁나서 시작하지 못했던 "안나 카레니나"와 "카사블랑카"를 꼭 제대로 보고 싶게 만든다.


+


p. 65
오랫동안 백작은 신사란 불신감을 기지고 거울을 보이야 한다고 믿어왔다.

거울은 자기 발견의 도구이기보다는 자기기만의 도구인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젊은 미인이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가장 아름다워 보이는 각도에 맞추려고 30도쯤 몸을 돌려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을 그는 얼마나 자주 보았던가?

(이후로 모든 세상이 그 녀를 오직 그 각도에서만 바라볼 거라는 듯이!)



p. 153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사교 범위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슬프지만, 피할 수 없는 인생의 현실이지.” 그가 말했다.

"습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늘거나 아니면 활력이 주는 탓에 우리는 갑자기 몇몇 익숙한 사람들과만 사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단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지금 단계에서 너처럼 멋진 새 친구를 만나게 된 것을 굉장한 행운으로 여겨.”



p. 178
주의력은 분 단위로 측정되고 절제력은 시간 단위로 측정되며 불굴의 정신은 연 단위로 측정된다고 한다면,

전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은 순간으로 측정된다.



p. 194
아무튼 바로 얼마 전에 호텔 로비에서 잠깐 동안 만난 사람에 관한 첫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아니, 그 누구든 간에 그 사람에 관한 첫인상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줄 수 있겠는가?

첫인상이라는 것은 단지 하나의 화음이 우리에게 베토벤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 또는 하나의 붓 터치가 우리에게 보티첼리에 관해 말해줄 수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너무 변덕스럽고 너무 복잡하고 엄청나게 모순적이어서 우리가 숙고해 야 할 뿐만 아니라 거듭 숙고해야 하는 존재다.

인간은 우리가 가능한 한 많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겪어보기 전에는 그 사람에 관한 견해를 보류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이 필요한 존재인 것이다.



p. 419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에 대해

- 원인과 결과, 영향과 파급 효과를 고려하는 데 그가 아주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는 점을 감안하여 사려 깊게 행동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백작의 경험에 의하면, 서성거리는 경향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왜냐하면 서성거리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생각을 몰아가려 하지만, 논리라는 것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그들을 분명한 이해나 확신의 상태로 데려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논리는 그들을 갈팡질팡하게 만들고, 결국 그들은 마치 문제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처럼 가장 사소한 변덕의 영향에,

그리고 성급하고 무모한 행동의 유혹에 노출되는 결과에 이르게 된다.


p. 564
소피야가 이 곡을 선택했을 때 백작은 곡이 '즐겁다', '매우 발랄하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우려를 에둘러 표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는 마음을 편히 먹었다.

우려를 표명한 다음에는 세 발짝 물러서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

한 발짝도 아니고 두 발짝도 아닌, 세 발짝이었다.  어쩌면 네 발짝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다섯 발짝은 절대 아니었다.)

그랬다. 아버지는 자신이 걱정한다는 것을 알려준 다음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나 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록 그 결정이 실망스러운 결과로 이어진다 하더라도 말이다.



p. 609
"내겐 너를 자랑스러워할 이유가 셀 수 없을 만큼 많단다.

그리고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바로 음악원 경연 대회가 열렸던 밤이었어.

하지만 정작 내가 최고의 자부심을 느낀 순간은 안나와 네가 우승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가 아니야.

그것은 바로 그날 저녁, 경연을 몇 시간 앞두고 네가 경연장으로 가기 위해 호텔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보았을 때였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박수 갈채를 받느냐 못 받느냐가 아니야.

중요한 건 우리가 환호를 받게 될 것인지의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지니고 있느냐, 하는 점이란다.”



p. 630
알레산드르 로스토프는 과학자도 아니고 현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예순넷이라는 나이를 먹은 그는, 인생이란 것은 성큼성큼 나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만큼은 현명했다.

인생은 서서히 펼쳐지는 것이다. 주어진 하나하나의 순간마다 천 번에 걸친 변화를 보여 주는 과정이다.

우리의 능력은 흥하다가 이울고, 우리의 경험은 축적되며, 우리의 의견은 빙하가 녹듯 매우 느리지는 않다 해도 적어도 천천히 점진적으로 진화한다.

소량의 후추가 스튜를 변화시키듯, 매일매일 벌어지는 사건들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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