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내맘대로 올해의 책으로 뽑은 양정무의 난생 처음 한 번 공부하는 미술이야기 시리즈.
작년에 2권 중반까지 읽다가 멈췄는데 올해 6월에 5,6권이 출간 예정인지라
아무래도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다시 시작했더랬다.
처음에는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나름 메모를 하면서 읽어봤다.



물론 챕터별로 난처하군의 필기노트가 꼼꼼하게 요점정리를 해 주어서 메모내용과 거의 겹치긴 하지만
손이 가만히 있으면 입력이 안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만의 노트를 만들었다.
중간중간 생각나는 것들고 함께 끄적여가면서.



나열식 서술이 아닌 문답형 강의식 서술이라 마치 저자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쉽고 재미있다.
굉장히 많은 도판이 들어 있어 마치 유적지 답사를 혹은 미술관 관람을 전시해설을 들으며 관람하는 기분이 든다.
볼륨과 도판의 양에 비하면 책값이 비싸지 않다.
 


권말에는 참고할 만한 서적이나 관련 사이트도 친절하게 소개해 준다.
현재 출간된 4권까지 읽었는데 5,6권이 출간되기 전, 그간 메모했던 것들을 한번 정리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싶어 포스팅한다.

 

 



​난처한 미술이야기 1권은 원시미술,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한 이야기다.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해서 그저 쉽게 보아 넘겼던 빗살무늬 토기에 대한 새로운 관점

즉, 장식은 본질이 아닌 부가적인 요소, 미술은 여유가 있을 때 할 수 있는  부차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은 편견이라는 저자의 말이 신선했다.

p. 44

그냥 보지 마시고 빗살무늬토기를 함께 감상했을 때처럼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을까?'를 떠올려보면 감상의 수준이 훌쩍 높아집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내가 직접 이 동굴에 들어가 그림을 그린다고요.

어둡고 고요한 동굴 안에서 말입니다.

p. 70~71

우리 조상인 호모 사피엔스는 대대적인 미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합니다.

석기도 그 시점에 발맞춰 급격히 발전하지요.

이걸 일컬어 '인지 혁명'이라고 부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저는 혹시 이와 같은 발달, 정확히는 미술의 출현에 현생인류 생존의 비결이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호모 그라피쿠스 Homo Graphicus, 즉 미술을 하는 인간이었기에 살아남았던 게 아닐까 하는 겁니다.

(...)

인류에게 정교한 생각을 할 수 있는 의식이 생겨났고, 그 생각을 교환하기 위한 장치로

언어와 미술이 발전했다는 얘기를 드렸는데요.

바로 이런 의사소통 능력이 현생인류가 가진 최고의 무기가 아니었을까 추정해 보는 겁니다.


p. 119

원시적 삶이란 이처럼 원시라는 단어에서 시간성을 덜어낸 뒤 특정한 삶의 방식이 미개하다는 편견을 모두 걷어냈을 때 보이는 삶입니다.

p. 179

유적의 규모에 감탄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유적을 만들어낸 문명이 도대체 무엇이었을지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미술사 공부의 핵심은 당대의 삶과 환경을 이해하는 것이죠.


p. 202~203

변하지 않는 이집트 미술을 지루하다고 보는 시각이야말로 이집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현대 서구 문명의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은 뒤집어 이야기하면 현재가 불안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하지만 이집트인의 세상은 그렇게 불안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은 자기들이 만들어낸 세계가 완벽하다고 보았고,그래서 그 문화를 그대로 유지한 거예요.

불변, 불명, 영생이야말로 그들이 추구한 가치였습니다.

(...)

이집트인이 추구하지도 않았던 변화라는 가치를 잣대로 삼아 그들의 문화를 평가하는 건 좀 불공평한 일이겠죠.

​p. 252~253

피라미드를 지을 때 기중기를 이용해 돌을 들어 올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요.

(...)
이때 많은 노예들이 희생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실 텐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오해입니다.

평소에는 농사를 짓던 일반 백성들이 농한기에 피라미드를 지어싿고 합니다.

(...) 피라미드 건설은 복지 제도에 가까웠어요.

농사일이 없어 놀고 있는 백성들이 일정한 소득을 벌어들일 수 있도록 했던, 고대 이집트식 뉴딜 정책이었던 거죠.

p. 266~267

피라미드는 이집트어가 아니라 그리스어에서 온 단어입니다.

심지어 특별한 뜻이 있는 단어가 아니라 그냥 삼각형을 의미하죠.

더 정확하게는 삼각형 모양으로 구운 케이크인 피라미스에서 유래한 말이고요.

(...)

이집트 사람들은 이 거대한 무덤을 피라미드라 부르지 않고 '메르'라고 부릅니다.

운하, 사랑, 괭이와 같은 뜻이지요.

(...)

문제는 그리스인이 남긴 이집트에 대한 기록이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다는 겁니다.


p. 269

이집트 사람들의 세계관이 반영된, 제대로 된 이름을 사용하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그리스 용어를 자꾸 따라 쓰다 보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리스인이 만들어낸 부정적 이미지에 설득당하게 되니까요.

(...)

서양 학자들 중에는 이집트를 아프리카 문명이라고 보는 데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서양 문명이 스스로 모태라고 생각하는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 반박 불가능한 사실이거든요.

'그리스 문명은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유럽 문명은 아프리카 문명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로 바꾸면 듣기에 매우 거북한 모양입니다.


p. 313

파라오는 원래 이집트어로 큰 집이라는 뜻입니다.

처음에는 왕궁을 뜻하는 명칭이었다가 후대에 이르러 성스러운 권자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죠.


p. 347

세계의 미술을 공부해서 좋은 점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세계의 작품에 대해 알고 있으면 우리 주변에 있는 문화재도 세계사적 맥락을 통해 더 넓은 시야로 바라볼 수 있거든요.

때로는 그 의미를 재발견하고 때로는 그동안 몰랐던 매력을 발견하죠.


p. 354

어쩌면 그게 미술사를 공부하는 목적일지도 모릅니다.

미술을 통해 긴 시간 인류가 품어온 바람이나 생각을 이해하고, 그것이 오늘날에는 어떻게 미술 작품에

반영되고 있는지 알아봄으로써 삶의 근본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재료를 마련하는 겁니다.


p. 364

미술이란 그저 보기에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만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들이 살아온 방식이 미술에 녹아 있고,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을 생생히 그려볼 수 있다는 거예요.

표면적으로야 거칠고 투박해 보여도 메소포타미아 미술에는 인류 문명이 성취한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인 '도시혁명'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p. 519

많은 사람들은 알렉산더 대왕을 거대 제국을 건설했던 위대한 정복 군주로 기억합니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조금 과장된 부분도 있습니다.

사실 알렉산더가 꺽은 제국은 페르시아 하나뿐이거든요.

페르시아가 먼저 거대 제국을 건설했고 알렉산더 대왕이 그 제국을 삼켰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겁니다.


p. 528

미술 작품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읽어내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외국어를 이해하려면 그 언어와 문법과 어휘, 발음을 익혀야 하듯  미술이라는 시각적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필요한 거죠.

(...)

외국어를 배우면 새로운 세상 하나를 더 읽어낼 수 있게 되듯

미술 언어에 익숙해지고 나면 문자 언어 이상의 풍성하고 생상한 소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난처한 미술이야기 2권에서는 에게 미술, 그리스 미술, 로마 미술을 다룬다.

1권에서도 그랬지만 2권 역시 뭔가 흩어져 있던 잔지식의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는 기분이 들어 좋았다.


p. 38

사는 내내 즐거움을 누리며 웃도록 하십시오.

삶이란 그저 버텨내라고 있는 게 아니라,

즐기라고 있는 것입니다.

- 고든 B. 힝클리


p. 107

보수가 확실해야 진보도 나오는 거예요.

깰 게 있어야 그걸 기준으로 뭔가 새로운 걸 만들어 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역설적이지만 결국 고전이야말로 역동적인 서양 역사의 바탕이라 하겠습니다.


p. 180

곰브리치는 고대 그리스 미술을 설명하는 장에 '위대한 각정'이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아시다시피 각성은 기존에는 없던 뭔가를 깨달았거나 긴 잠에서 깨어났다는 뜻이죠.

이 제목을 통해 곰브리치는 이집트 미술보다 그리스 미술이 훌륭하다는 생각을 밝힌 셈입니다.

그리스 이전까지는 긴 잠이 되고, 그리스가 위대하게도 그 잠에서 깨어났다는 말이니까요.


p. 186

곰브리치가 볼 때 이집트 미술은 완벽하지만 그 완벽성 안에 고미이 없는 미술입니다.

변화를 주지 않고 항상 그 틀을 유지하려고 했다고 본 거죠.

반면 그리스는 계속해서 샐운 시도를 하고 방법을 찾아나가려고 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다분히 서양 문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관점이지요.

p. 191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에서는 신과 인간의 거리가 정말 가까웠던 모양이네요.

신의 모습도 인간과 같다고 믿었고, 인간도 얼마든지 노력하면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니 말입니다.

맞습니다. 대단히 적극적인 세계관입니다.

어쩌면 이처럼 인간의 능력을 확신했기에 민주주의라는 정치 신념이 생겨났을 수도 있습니다.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이게 누드를 통해 드러나는 그리스인들의 힘입니다.

(...)

하지만 극단적인 인간중심주의를 긍정적으로 볼 수 만은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리스의 인간중심주의 때문에 인간이 교만해졌다고도 얘기할 수 있어요.

인간을 지나치게 신격화시킨 나머지 그리스 이후로 서양미술은 자연에 경외감을 품고 있던 과거의 미술과는 단절됩니다.

더 이상 인간은 자연과 한 몸을 이루어 교감하지 못하게 됐죠.

​p. 199~200

그리스 조각같다는 말은 엄청 위험한 얘기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그리스 인체 조각이 보여주는 사실성은 좋게 말하면 인상적인 아름다움의 추구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뭔가를 감추고 있는 '위장된 이상주의'인 겁니다.

​(...)

그리스 남성의 육체는 나라가 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어요.

그야말로 체력은 국력이었던 거죠.

그리스 사회가 남성 육체를 찬양했던 데는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겁니다.

(...)

그리스 조각이 보여주는 남성 육체에 대한 맹목적 찬양이야말로

그리스를 덮고 있는 신비를 걷어낼 때 드러나는 어두운 현실입니다.

(...)

그리스 미술을 감상하실 때는 조심스럽게 줄타기를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 미술을 비판적으로 보되, 그 장점은 인정하면서요.

이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읽어 가면 훨씬 재미있을 겁니다.

왜 그리스에서는 그냥 육체가 아닌 뛰어난 육체에 대해 열광했는지 두고두고 생각해 볼만한 문제입니다.

p. 326~327

고대 그리스가 언제부터 유럽 문화의 기준점이 됐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분명한 것은 유럽이 팽창하는 시점에 자신들의 역사적 출발점을 그리스로 선택했다는 거예요.

영국도 아니고 스칸디나비아도 아니고, 그리스입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인공적인 역사구분입니다.

(...)

그리스를 자신들의 역사적 전통의 뿌리로 삼은 것은 굉장히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제국주의의 시작과 관계된 선택이지요.

(...)

유럽은 전 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한 17세기부터 자신들의 역사를 재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총칼을 앞세워 다른 세계를 식민지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들의 우월함에 역사적으로 근거가 있다고 믿고 싶었던 거죠.

그래서 잘생긴 그리스 조각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생각하게 된 겁니다.

​p. 517

저는 실용적인 로마인들이 해결하지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던 죽음의 문제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는 게 기독교가 급속도로 번질 수 있었던 원인이 아니었나 추정합니다.


 


 

 

​1,2권에 비해 다소 얇아서 부담이 덜했던 난처한 미술이야기 3권.

그래도 350여 페이지에 달하긴 하지만.

3권에서는 초기 기독교 문명과 미술을 다룬다.


p. 264

흔히 그러듯 이 시기 게르만족이 로마제국으로 이동한 역사를 '게르만족의 침략'이라고 표현하면

다소 편파적인 이해를 불러오게 됩니다.

물론 어떤 게르만족은 폭력적으로 땅을 점령하기도 했지요.

하지만 대부분은 기근이나 전쟁, 훈족처럼 더 호전적인 민족 등을 피해

남쪽으로 도망쳐 내려왔던 난민에 가까운 사라들이었거든요.


p. 269

이게 기독교의 오래된 딜레마 중 하나입니다.

청빈한 삶을 추구하지만 그 청빈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공간과 인력이 필요하죠.

이후 기독교 역사에서 이런 모순은 무한히 반복됩니다.


p. 329

서양에서 기독교라는 종교는 아직도 명확한 문화적 국경을 긋고 있습니다.

(...)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에 어려움을 겪는 가장 큰 이유이자, 유럽 국가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유는 터키가 기독교 국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난처한 미술이야기 4권에서는 중세 문명과 미술을 다룬다.

3권과 4권에서는 건축, 특히 교회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p. 19

사실 중세를 암흑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중세 뒤에 이어지는 유럽의 근대를

더욱 아름답고 빛나는 시기로 포장하려는 역사 서술 방식 때문입니다.


+


4권까지 꽤 오랜 시간을 들여 씹어 읽으려 애썼다.

물론 전문적인 용어가 많이 나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흐름으로 이해하려 했다.

세계사를 공부하면서 함께 읽으면 촘촘하게 잘 꿰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작년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이집트보물전을 관람했은데,

1권을 먼저 읽었더라면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예전에 람세스를 읽었을 때처럼 1권을 읽으면서 이집트로 여행병이 도졌다.

4권까지 읽으면서 궁금한건 저자가 균형을 잘 맞춰 설명하려고 했지만

우리 것에 대한 문화적 자긍심에 대한 근거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집트 문명이 찬란하던 그때, 우리는 청동기시대였는데 5000년 역사의 근거는 또 어디에서 오는 걸까 궁금해졌다.

저자가 난처한 미술이야기 시리즈 이후, 우리 미술에 대한 이야기도 함께 다뤄줬으면 좋겠다.


2권을 읽을 때는 그리스로마신화를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3권과 4권을 읽을 때는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기독교 전파에 따른 건축양식 답사를 가고 싶어졌다.

중세인들이 성지순례하듯 그 발자취대로 유럽여행을 하고 싶어진다.

특히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그레고리안 성가대의 성가가 듣고 싶다.

버켓리스트가 몇개나 늘었나 모르겠다.


미술이 인문학의 꽃이라는 말을 무척 공감하며 읽었다.

전시회나 박물관에 가도 이해하기 힘든 말이 더 많았던 내게,

제대로 배우고 싶지만 엄두가 안나는 내게 미술은 재미있는 것이라고 알려준 책.

6월 출간 예정인 5권과 6권을 빨리 만나고 싶다.

전편을 다 읽고 나면 세계사와 그리스로마신화를 훑어보고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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