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의 염려

 

 

오늘은 미세먼지가 없는지 하늘이 환하고 먼 산이 보였어. 이렇게 먼지가 있는지 없는지 살피면서 살 거라고 생각도 못했어. 물론 물을 사먹고, 공기청정기가 집집마다 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지만. 앞으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일이 또 얼마나 생겨날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허덕대는 나는 북극에서 벌어지는 일이, 세계 곳곳의 전쟁이, 무차별적인 혐오가 두려워. 먼지가 한 나라를 삼키듯 북극의 얼음 녹은 물이 전 세계를 덮을 지도 몰라. 먼 나라 전쟁인 줄 알았는데 그 전쟁이 우리의 전쟁이 되고, 난민이 우리 이웃이 되고, 우리가 난민이 되고, 그리고 어느 날 나와 이웃이 성별과 지향으로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는 순간 속에 벌써 와 있는지도 몰라.

 

그렇지만 나는 우르르 몰려다니는 개미떼 중의 한 마리처럼 줄지어 가는 길을 따라 걷고 있을 뿐이야. 어떨 땐 이런 걸 생각하지 않고 살고 싶을 때가 있어. 세상이 돌아가는 대로 살지 않고 세상을 제대로 돌아가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면 존경심이 들어. 때로 안됐기도 하고. 너무 힘들어 보여서. 내가 뭘 했다고 이렇게 지쳐있는 걸까? 어떤 핑계를 대도 내가 사는 세계에는 내가 있어서 그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나는 어느 정도의 책임이 있지. 공범이 되기 쉽지.

 

날도 좋고 공기도 맑은데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지? 근근이 지탱하던 세계가 갑자기 무너져내릴까 나도 모르게 염려하고 있었던 걸까?

    

 

 

아픈 개미가 있다

_최승호

 

 

앞발로 이마를 짚고

뒷발로 배를 한참 문지르다

개미는 출근하기로 마음먹는다

 

만성피로 개미들의 긴 행렬 속에 아픈 개미가 있다

 

 

-최승호,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지성사, 2018),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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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15 09: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6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안개

 

 

엄마, 안개는 구름이지요? 구름이 내려와 안개가 되는 거죠?”

하고 아이가 물었어. 아침에 안개가 짙게 꼈거든.

그래, 그러네.”

대답하고 보니 산 중턱 걸린 구름을 보고 거기 가면 구름은 없고 안개만 있었던 기억이 나. 그 구름이 우리 마을까지 내려왔다고 생각을 못했어. 벽을 뚫고 걸어 다니는 유령처럼 나는 구름을 뚫고 걸을 수 있지만 눈앞의 풍경은 다 지워져 있어. 어쩌면 어둠 같아. 해가 떠오르면 사라지는.

 

구름과 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으면 해. 빛을 가리기도 하고, 빛을 품기도 하고, 빛에 뚫리기도 하는 구름을 바라보는 게 좋아. 숲 속에서는 숲을 볼 수 없듯이 구름 속에서는 구름을 볼 수 없어. 숲 속에선 숲이 나무들로 이름이 바뀌고, 구름 속에서는 구름이 안개로 이름이 바뀌지.

 

너무 가까이 있으면 내가 알던 그 존재가 아니게 되는 것들이 있지. 다른 이름을 갖게 되는 존재가 있지. 그게 나쁠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 아니, 사실은 좋고 나쁜 건 없어. 내 상황에 편한지 불편한지가 있을 뿐인지도 몰라.

 

지금은 마을 어디에도 안개가 없어. 하늘로 돌아가 저기 저 구름이 되어 떠 있는 걸까? 햇볕이 내리쬐고 있어. 이제 앞이 환히 보이는데 나는 아직 아침의 안개 속에 서서 네게 말을 걸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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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7: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의 안개는 미세먼지가 섞인 스모그에 가깝죠... ㅎㅎㅎㅎㅎ... ㅠㅠ

이누아 2019-03-11 18:4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다행히 대구는 오늘 아침 미세먼지 소식이 없었어요. 내일도 없었으면 좋겠어요.^^
 

빨래의 마음

 

 

마당은 햇살로 가득했어. 마당 가운데 꽃밭에는 달리아, 분꽃, 장미, 맨드라미. 그 꽃들 사이로 사철나무 한 그루,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어. 마당 가장자리는 섬돌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섬돌 아래 세 개의 고무대야에 담긴 물이 햇살처럼 부드럽게 찰랑거렸어.

엄마가 비누로 옷을 치대 주면 언니가 그 옷을 헹구고, 그 다음 대야에서 내가 다시 헹궜어. 물이 맑지 않으면 한 번 더 헹구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 대야의 물이 가장 맑고 차가웠어. 물놀이하듯 참방참방 옷을 만지작거리면 거품은 물속으로 흩어져. 거품이 안 보일 때까지 맑은 물을 만지면 옷도 나도 개운해졌지.

 

큰 옷은 언니와 내가 마주 보고 빨래 끝을 잡고 짜서 탈탈 털었어. 빨래가 끝나면 햇살에 이끌려 좁은 계단을 올라 가. 옥상에 오르면 바람이 우리를 기다렸어. 널린 빨래는 맑은 물속에서, 햇살 속에서 춤추듯 그렇게 바람 속에서 일렁거리고, 우리도 허리를 쭉 펴고 하늘을 봤어. 세제 거품 같은 하얀 구름이 하늘을 씻으며 흐르고 있었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의 눈도 맑게 씻기는 느낌이었어. 엄마와 언니, 꽃과 햇살과 바람과 함께 하는 빨래는 맑고 따뜻해.

 

그러나 투두둑 비라도 떨어지면 빗소리가 마치 비상벨이라도 되는 듯 후다닥 옥상으로 올라가 빨래를 걷었어. 장마엔 빨래하기도 말리기도 쉽지 않았어. 잠깐 햇볕이 나면 얼른 빨래해서 널었다가 비가 오면 걷고, 또다시 볕이 나면 널고. 그렇게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장마를 보냈어. 쨍한 볕을 그리워하며 먹구름이 깨끗이 씻어져 흰 구름으로 떠오르길 기다리며.

 

이제 세탁기가 빨래를 해.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삶는 기능까지 있는 세탁기를 사용하다 보니 양푼에 빨래를 넣고 물이 넘칠까 봐 조마조마할 일도 없어. 게다가 아파트 베란다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널어둔 빨래가 젖지 않지. 이번에 이사하면서 건조기까지 사서 몇몇 옷가지를 빼고는 널지 않아도 돼. 덕분에 주말에 시간을 내서 해야 했던 빨래는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매일 버튼 하나로 할 수 있어. 이보다 더 편리한 기기가 있을까. 물에 손을 담그지 않고 옷을 빨 수 있다니! 나는 이 편리함에 사로잡힌 지 오래라 이제 손빨래를 해야 하는 옷은 사는 것도 주저해.

 

엄마도 이제 세탁기로 빨래를 하지만 주택에 사셔서 옥상에 빨래를 널어. 내가 베란다에 이불을 널면 이런 건 햇볕 좋을 때 바람 훌훌 부는 옥상에 말려야 속이 시원하지.” 하시며 옥상에 널어야 빨래가 빠닥빠닥하게 잘 마르는 것 같다고 하셔. 이불 빨래는 욕조에 넣어 실컷 밟아줘야 허물이 씻기는 것 같다며 예전처럼 빨래를 하시고.

 

정말 옥상에 널린 빨래가 더 잘 마르는 것인지 그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빨래라면 어떨까 생각해 봐. 예기치 않게 비를 만나 젖을 수도 있지만 큰 대야 물에 휘 휘 헹궈져 해와 바람 앞에서 너울너울 흔들리는 게 좋을까? 젖을 일 없지만 세탁기에 갇혀 뱅뱅 돌려지다가 베란다에 걸려 창을 내다보는 게 좋을까?

 

옥상에 걸린 빨래와 베란다의 빨래는 예전의 나와 지금 우리 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어릴 때는 학교 갔다 돌아와 가방만 던져 놓고 뛰어나갔어. 대문을 열면 코 묻어 반질반질한 소매로 된 옷을 입고 친구들이 소복이 모여 있었어. 고무줄이니 대장 놀이니 땅따먹기니 쌩쌩 골목길을 내달렸지. 비가 오면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비를 피하다 할 수 없이 뿔뿔이 흩어져 집에 돌아오곤 했어.

 

지금 우리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지만 대개 학원 일정 때문에 미리 연락해 약속을 잡고 친구를 만나. 그림도 책 읽기도 죄다 학원에서 배웠어. 친구들도 거기에 있어. 세탁기에서 뱅뱅 도는 빨래처럼 학원을 뱅뱅 돌다 베란다 같은 실내 놀이터에서 생일 파티 같은 걸 해. 실내 놀이터엔 비가 내리지 않아. 아쉽게 헤어질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만큼 정해진 요금을 내고 편안히 놀다 오지.

 

시대가 다르니 뭐가 더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 나의 빨래는 햇살을 받고 있어.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혹시 편하게만 보이는 아이들이 세탁기 속에서 부딪히고 온몸이 뒤틀리면서 꺼내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세탁기 문을 닫고 버튼만 누르면서 모든 게 아주 편리하다고, 쉽다고 안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아이들이 이 편리함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 아이들도 수영장보다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대야의 이불 빨래를 밟는 걸 더 즐거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넘칠 듯 일렁이는 맑은 물속에 담긴 햇살과 자신의 수고로 깨끗해진 옷을 만나고 싶을지도.

 

일흔 넘은 엄마가 오르내리기엔 불편한 계단, 비가 오면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하는 그 계단을 아직도 오르시는 건 그저 습관 때문일까. 햇살과 바람과 함께 비와 먹구름이 옥상에 있어. 불편과 불안을 딛고 엄마가 옥상에 빨래를 널듯이 내가 아이들을 자유로이 부는 바람 속에 놓아둘 수 있을까? 빨래를 생각하는 시간, 비가 내려. 아주 오랜만에 뛰어나가 비를 맞고 싶어. 어쩌면 모든 빨래가 젖기를 두려워한다는 건 나의 오해일 수도.

 

 

빨래

_이해인

 

 

오늘도 빨래를 한다.

 

옷에 묻은 나의 체온을

쩔었던 시간들을 흔들어 빤다.

 

비누 거품 속으로

말없이 사라지는 나의 어제여

물이 되어 일어서는 희디흰 설레임이여

 

다시 세례 받고

햇빛 속에 널리고 싶은

 

나의 혼을 꼭 짜서

헹구어 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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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3-11 1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시사철 미세먼지가 심해지는 날이 계속되고, 빨래 건조기를 장만한 사람들이 많아지면 밖에서 빨래를 너는 사람들 보기 어려워질 거예요. 사소한 일상의 풍경 한 장면이 추억 속으로 남게 될지도 모릅니다. ^^;;

이누아 2019-03-11 15:56   좋아요 0 | URL
캐나다 사는 친구 말이 캐나다에서는 빨래를 밖에 널지 않는대요. 모두 건조기를 쓰나 봐요. 가난한 집에서만 빨래를 넌다고. 그곳은 공기 맑은 시골인데도 그렇대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고 빨래 장인이나 빨래 무형문화재가 생기지는 않겠지요? 저는 벌써 마당에서 바람과 햇살과 함께하던 빨래가 그리워요.
 

창을 닫은 봄

 

 

미세먼지 때문인지 목이 아파. 가래도 있고. 어항 속 금붕어 같아. 뿌연 물속에서 뻐금뻐금.

멀리 산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날이 꽤 길게 가네. 오늘은 좀 낫다는데 내 목도 좀 나아질까?

 

며칠 전에 팔공산에 갔는데 거기도 시야가 흐렸어. 아파트 화단에는 아직 꽃이 보이지 않는데 산에는 꽃이 피어 있었어. 뿌연 하늘을 마주한 꽃들이 노랗고 빨개. 복수초, 산수유, 홍매화.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었어.

 

난 왜 이제 막 피어난 것을 보며 지는 걸 떠올릴까? 동백처럼 온몸 던져 툭툭 지는 게 있는가 하면 목련처럼 필 때는 천상의 꽃 같지만 질 때는 빛을 잃고 타들어가면서 악착같이 나무에 붙어 숨을 쉬는 꽃도 있어. 딱해 보여. 꽃은 꽃대로 살아내느라, 죽어내느라 용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이제 막 봄이고, 이제 막 피어나 갓난아기 같은 꽃들이 먼지 속에 있어. 얘들도 숨 쉴 때마다 어디가 따갑고 아플까? 내 귀에는 꽃의 말이 들리지 않아. 다행이야. 나는 이미 많은 슬픔을 듣고 있어. 꽃들끼리 즐겁고 꽃들끼리 슬퍼하고 있겠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이듯 꽃과 먼지가 엉겨 있는 봄이, 벌써 와 있어.

 

 

 

 

꽃나무

_이상

 

 

벌판 한 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 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런 흉내를 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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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참론을 읽다가

 

 

어제 정민의 한시미학산책(휴머니스트, 2017) 중 시참론(詩讖論) 부분을 지인들과 함께 읽었어. 시참은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말해. 가수가 노래 가사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거나 시인이 자기가 쓴 시의 내용대로 산다는 종류의 이야기와 통하는 거야. 함께 얘기하다 시에는 긍정적인 요소를 넣는 게 좋다는 데까지 이야기가 이르자 마음이 불편했어.

 

책에 나온 예라는 것이 우홍적이 일곱 살 때 늙은이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를 쓴 걸 보고 이 사람이 요절할 것을 알았다는 식이야. 근데 그가 그냥 이 시를 지은 게 아니라 로와 춘자로 글을 짓게 해서 지은 거야. 기발한 아이디어 정도로 여겨도 될 것을 시참이라고 하는 거야. 우홍적이 정말 요절했으니까. 난 아무래도 끼워 맞추기 같아.

 

어쨌든 실제로 시참이 있다고 쳐. 그렇다면 그는 시 때문이 아니라 시를 쓰는 그 마음과 몸 때문에 요절했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시참이 두려워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들을 예쁜 것들로 포장한다면 어떻게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생활에서 말할 수 없지만 홀로 있을 때 일어나는 마음속 이야기를 현미경처럼 바라보기도 하고, 천체망원경으로 저 우주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게 시인이라고 생각해. 시 안에서는 자신에게 무엇이든 허용할 수 있어야 조그만 종이 위에서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긍정적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 모르겠어. 어떨 땐 긍정적이고 어떨 땐 부정적이지. 그게 삶이고, 그게 시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도 읽고, 이상 시인의 시도 읽는 거 아닐까?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도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민음사, 2018),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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