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미카엘 엔데 지음, 차경아 옮김 / 청람문화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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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을 줄 아는 귀를 가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말하고나서 괜히 말한 것은 아닌지 불안해한 적이 있을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소리만을 듣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마음에 여유가 있고, 열려 있을 때 내게 말하는 이는 평안을 느끼고, 말한 다음에도 찌꺼기처럼 자신에게 남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마음이 조급하고, 닫혀 있을 때는 말하는 사람도 힘들고, 하고 나서도 왜 했나 싶게 된다. 모모가 언제나 들을 줄 아는 귀를 가졌다면 그 아이는 언제나 마음이 평온했으리라. 쫓기지 않는 마음이 그런 평안을 가져왔을까? 시간이나 상황에 쫓기지 않는 그 마음은 욕심 없음에서 나온 건 아닐까?

시간도둑에게 시간을 빼앗기는 사람은 처음에는 아주 작은 욕심으로 그렇게 하지만, 나중에는 빨라진 시간에 대처하느라 모모를 만날 시간도 없어진다. 그리고는 왜 그렇게 바빠졌는지 모른다. 오늘 나는 시간을 팔아 무엇을 사들이고 있을까? 모모처럼 할일 없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시간도둑의 담배를 말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시간을 절약함으로써, 결국 실제로는 전혀 엉뚱한 것을 아끼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자기의 삶이 점점 빈약해지고, 단조로워지며, 차가워져 간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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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비룡소 걸작선
생 텍쥐페리 지음, 박성창 옮김 / 비룡소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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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나는 이 책을 외우기까지 했었다. 얼마전 조카에게 이 책을 선물하면서 다시 보았다. 참 신기한 책이다. 참 신기해. 여우와 어린왕자의 대화가, 그 다음엔 알약 파는 사람과 샘의 이야기가, 그후엔 너무 어려서 꽃을 사랑하지 못한 왕자의 이야기가, 그리고 일시적인 존재이기에 더욱 소중하다는 이야기...무수히 많은 이야기들이 새로이 살아났다.

일주일에 53분을 절약할 수 있는 알약 파는 사람이 알약을 사라고 어린왕자에게 말했을때 어린왕자는 사람들이 그 53분으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했다. 알약파는 사람은 그 시간으로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한다고 대답했다. 그때 어린왕자는 '내게 그 53분이 있다면 샘을 향해 천천히 걸어갈텐데..'라고 말한다. 그리고 실제로 '마음에 좋을지도 모르는 물'을 마시기 위해 사막의 어둠을 걸어 축제처럼 즐겁게 그 샘을 만난다. 목이 말라서가 아니라 그저 마음에 좋을 것 같아 샘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다. 목을 축이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욕심 없는 발걸음...

이 이야기는 늘 나를 돌아보게 한다. 돈을 번다, 시간을 절약한다, 그렇게 알약을 사서 먹는다, 그리고는 무엇을 하는가? 내 자신을 찾아 떠나기엔 사막의 막막함처럼 내 삶이 막막하게만 느껴지는가? 두려운가? 왕자처럼 아무 계산 없이, 욕심 없이 동틀 무렵 샘을 발견하리라는 믿음이 내게는 없는 것일까? 나도 그 물을 마시고 싶다. 알약말고, 마음에 좋은 물을.

사막 한 가운데에서 샘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어린왕자도 후회라는 것을 한다. 지리학자의 설명에 따르면 꽃은 일시적이며, 일시적이라는 말은 곧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는 뜻이다. 그런 꽃을 두고 온 것을 후회한다. 그리고 너무 어려서 그 꽃이 그의 별을 향기로 뒤덮게 한 행위를 보지 못하고, 허영에 찬 꽃의 말만을 들었던 것에 대해, 너무 어려서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자신에 대해 후회한다. 여우의 말처럼 중요한 것은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꽃의 향기처럼 보이지 않지만 우리 존재를 뒤덮는 것이다. 누가 중요한 일을 하는가? 나는 중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야 라고 매일 외치는 버섯이 되지 않으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건 아닌지...

아, 자꾸만 살아난다. 어린왕자. 그의 별과 그가 친구가 되고 싶어 했던 가로등 켜는 사람, 수수께끼 같은 말만 하는 뱀, 그리고 왕과... 그 모두가 내 친구였다. 살아있는 책, 살아나는 책, 신기한 책-어린왕자. 아, 어린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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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6 14: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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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9 22: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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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창비시선 188
유승도 지음 / 창비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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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를 처음 만난 것은 1995년 [문예중앙]에서였다. '나의 새'라는 시가 한눈에 확 들어왔다. 그 잡지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던 그는 개구리가 밤에 따뜻한 아스팔트를 찾다가 차에 깔려 죽는 이야기를 하며 자신이 상을 받는 행위가 개구리의 행위처럼 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의 당선소감을 썼다. 늘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후 그가 시집을 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우연히 서점에서 다시 만난 그는 결혼을 하고, 강원도의 농사꾼이 되어 있었다. 시집에서 첫번째 시는 '침묵'이었다. '바람 속에 내가 있었으므로 바람의 처음과 끝을 이야기 하지 않았다'는 그의 말처럼 그는 철학이 아니라 순간과 삶 속에 있었다. 그는 이미 새들이 막 잠에서 깨어 새들의 눈이 그를 바라보는 것을 보았으리라.

그의 시가 훌륭한지 그렇지 않은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바라보고 웃는 작은 것들을 나도 보며 따라 웃을 수 있다. 그가 걷는 그 산길을 따라 걷는다. 그리 험하지 않고, 고요하면서도 뭇 작은 생명들이 눈을 반짝이고 있는 그런 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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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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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그의 시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의 마지막 구절이다. 그의 시는 중얼거림 같다. 어둠 속의 중얼거림.

처음 기형도의 시를 읽을 땐 어둠밖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슴이 답답해서 책을 덮었다. 그 후, 어둠에 좀 익숙해진 내 눈이 기형도의 시어를 보았다. 이미지들. 훌륭했다. 어둠 속에서도 알알이 빛났다. 다시 편 이 책은 철학책 같았다. 좀더 자세히 그의 시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만 갈갈이 시집을 찢는 듯한 느낌이 들어 그만둔다. 어쨌든 익숙해진 까닭인지 어둠보다 그의 중얼거림이 이제 더 잘 들린다.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를 피워내는 나무들처럼 희망-그것도 다른 이들이 누리고 있기 때문에 나도 누리고 싶은 질투로 가득찬 희망-과 그 희망을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탄식들에게 자신을 찾지 말라고 한다. 그는 솔직하다. 지나치게 솔직하다. 그 지나침이 그를 이 세상에 살지 못하게 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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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몽쇄언 - 꿈과 인생
김대현 지음, 남만성 옮김 / 을유문화사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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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선물로 오빠가 사준 책이다. 내가 잘 알지 못하지만 은둔자처럼 숨어있던 이 책의 서술의 담담함과 소박함, 내용의 광활함이 내 눈을 가만히, 그러나 점점 커지게 한다. 이런 책을 만드는 을유문화사에게 감사한 마음이 인다.

월창거사는 이 책의 말이 자질구레하고, 좀스러워 '꿈에 관한 부스러기 같은 말'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하지만 아직 꿈 속에 사는 나로서는 이 책의 말이 크고 환하여 읽고 또 읽게 된다. 제목처럼 꿈에 관한 이야기 책이다. '삶을 알면 죽음을 알고, 죽음을 알면 돌아간다는 것을 알 것이다. 돌아간다는 것을 아는 자는 생사의 꿈 밖에 뛰어난 사람이다'라는 책 속의 말처럼 꿈 속의 사람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지만 결국 꿈 깨는 것에 대해 적어 놓은 책이다.

꿈 속에서도 무서운 것이 나타나면 기겁을 하고 달아나듯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도 꿈이라 할지라도 후회하는 과거와 근심하는 현재와 염려하는 미래가 엄연히 우리를 붙잡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을 가만히 읽노라면 잠시라도 내가 꾸고 있는 이 꿈이 참말로 꿈 같고, 그래서 문득 죽고 사는 큰 꿈에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이 책을 권하고 싶다. 특히 노자나 장자를 좋아하거나 불교의 선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책을 여러 번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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