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을 닫은 봄

 

 

미세먼지 때문인지 목이 아파. 가래도 있고. 어항 속 금붕어 같아. 뿌연 물속에서 뻐금뻐금.

멀리 산이 보였다 안 보였다 하는 날이 꽤 길게 가네. 오늘은 좀 낫다는데 내 목도 좀 나아질까?

 

며칠 전에 팔공산에 갔는데 거기도 시야가 흐렸어. 아파트 화단에는 아직 꽃이 보이지 않는데 산에는 꽃이 피어 있었어. 뿌연 하늘을 마주한 꽃들이 노랗고 빨개. 복수초, 산수유, 홍매화.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었어.

 

난 왜 이제 막 피어난 것을 보며 지는 걸 떠올릴까? 동백처럼 온몸 던져 툭툭 지는 게 있는가 하면 목련처럼 필 때는 천상의 꽃 같지만 질 때는 빛을 잃고 타들어가면서 악착같이 나무에 붙어 숨을 쉬는 꽃도 있어. 딱해 보여. 꽃은 꽃대로 살아내느라, 죽어내느라 용을 쓰고 있는 것 같아.

 

이제 막 봄이고, 이제 막 피어나 갓난아기 같은 꽃들이 먼지 속에 있어. 얘들도 숨 쉴 때마다 어디가 따갑고 아플까? 내 귀에는 꽃의 말이 들리지 않아. 다행이야. 나는 이미 많은 슬픔을 듣고 있어. 꽃들끼리 즐겁고 꽃들끼리 슬퍼하고 있겠지? 기쁨과 슬픔이 뒤섞이듯 꽃과 먼지가 엉겨 있는 봄이, 벌써 와 있어.

 

 

 

 

꽃나무

_이상

 

 

벌판 한 복판에 꽃나무 하나가 있소.

근처에는 꽃나무가 하나도 없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열심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열심으로 꽃을 피워 가지고 섰소.

꽃나무는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에게 갈 수 없소.

나는 막 달아났소.

한 꽃나무를 위하여 그러는 것처럼

나는 참 그런 이상스런 흉내를 내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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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참론을 읽다가

 

 

어제 정민의 한시미학산책(휴머니스트, 2017) 중 시참론(詩讖論) 부분을 지인들과 함께 읽었어. 시참은 무심히 한 말이 뒷날의 예언이 되는 경우를 말해. 가수가 노래 가사와 비슷한 삶을 살게 되거나 시인이 자기가 쓴 시의 내용대로 산다는 종류의 이야기와 통하는 거야. 함께 얘기하다 시에는 긍정적인 요소를 넣는 게 좋다는 데까지 이야기가 이르자 마음이 불편했어.

 

책에 나온 예라는 것이 우홍적이 일곱 살 때 늙은이 머리 위에 내린 흰 눈은/봄바람 불어와도 녹지를 않네를 쓴 걸 보고 이 사람이 요절할 것을 알았다는 식이야. 근데 그가 그냥 이 시를 지은 게 아니라 로와 춘자로 글을 짓게 해서 지은 거야. 기발한 아이디어 정도로 여겨도 될 것을 시참이라고 하는 거야. 우홍적이 정말 요절했으니까. 난 아무래도 끼워 맞추기 같아.

 

어쨌든 실제로 시참이 있다고 쳐. 그렇다면 그는 시 때문이 아니라 시를 쓰는 그 마음과 몸 때문에 요절했다고 해야 옳지 않을까. 시참이 두려워 자기 마음속에 일어나는 것들을 예쁜 것들로 포장한다면 어떻게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오히려 생활에서 말할 수 없지만 홀로 있을 때 일어나는 마음속 이야기를 현미경처럼 바라보기도 하고, 천체망원경으로 저 우주에서 바라볼 수도 있는 게 시인이라고 생각해. 시 안에서는 자신에게 무엇이든 허용할 수 있어야 조그만 종이 위에서라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 아닐까.

 

긍정적으로 시를 써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 모르겠어. 어떨 땐 긍정적이고 어떨 땐 부정적이지. 그게 삶이고, 그게 시라고 생각해. 그래서 이해인 수녀님의 시도 읽고, 이상 시인의 시도 읽는 거 아닐까?

 

 

 

내게는 야망도 욕망도 없다.

시인이 되는 건 나의 야망이 아니다.

그건 내가 홀로 있는 방식.

-페르난도 페소아, 시는 내가 홀로 있는 방식(민음사, 2018),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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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든 거기에는

    

 

저 벽을 어떻게 오를 수 있을까.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 지루한 일상을 뚫고 지금 이곳이 아닌 새로운 곳으로 가고 싶을 때, 저 벽을 넘어서면 무언가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 같을 때, 그때가 내게는 이십 대 중반 무렵이었어.

 

낯설었던 서울 생활은 아무리 물을 부어도 뭉쳐지지 않는 모래처럼 서걱거리는데 아버지의 죽음과 언니의 투병은 나를 가라앉게 했어. 얇은 상자 같은 허술한 마음은 무거운 슬픔을 견디지 못해 곧잘 터져버리고, 텅 빈 자취방의 어둠은 아침이 와도 내 눈 속에 그대로 고여 있었어. 마음 붙일 곳 없는 거대하고 적막한 도시를, 문을 열면 왈칵 무어라도 쏟아질 것 같은 자취방을 떠나고 싶었어. 하얀 눈처럼 모든 걸 덮어버리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곳, 달아날 수 있는 곳. “그래, 히말라야! 나는 히말라야로 가야겠어!”

 

그러나 내게 그런 막연한 대담함은 없었어. 준비하자는 생각에, 신문에 난 등산학교광고를 보고 찾아갔어. 등산학교는 매 주말 12일의 일정으로 한 달 정도 진행되었어. 등산의 기본이 되는 여러 가지를 익혔는데, 그중 거의 모든 일정에 암벽등반과 관련된 교육이 있었어. 암벽등반은 북한산 인수봉에서 대여섯 코스를 연습해 오르곤 했는데 처음엔 용기가 필요했지만 결국은 체력과 끈기가 관건이었어. 마지막 코스에선 너무 지쳐 팔에 힘이 없었어.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아침마다 집 근처 낮은 산에 올라 스트레칭도 하고, 악력기로 손힘도 키웠어.

 

벽을 올랐어. 처음 바위틈을 발견했을 때 반가운 마음에 그곳에 발을 깊이 넣었더니 몸까지 끼어 잘 움직이지 않은 적도 있고, 발 디딜 곳이 없어 보였던 매끈한 곳에서 디딜 곳이 보였을 때는 기쁨의 탄성을 지르기도 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떨어지려고 할 때 추락이라고 큰 소리를 질러 동료에게 내 위험을 알리는 것이었어. 얼마나 자주 추락을 외쳤는지. 만일 그렇게 외치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면 ~~”하다 떨어졌을지도 몰라.

 

암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손과 발만 벽에 닿아야 해. 두려움에 몸을 벽에 붙이면 꼼짝할 수가 없어. 현실이 어떻든 그곳에 발을 딛고 있어야 하지만 온몸을 붙이고 그것이 전부인 양 매달릴 때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고, 아무 길도 열리지 않아. 안전해 보이는 길도 안전하지 않고, 위험해 보이는 길도 빛나는 길이 되기도 해.

 

힘들면 힘들다고 소리쳐야 해. 누군가와 함께 오르는 게 좋아. 떨어질 때 추락하지 않도록 서로 줄을 당겨줄 사람이 있어야지. 그리고 그 줄을 잡고 있는 서로를 믿어야 하고. 나를 묶고 있는 줄은 무엇일까? 가족일까? 친구일까? 내 추락의 순간에 소리쳐 나를 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일까? 이런 생각들 속에서 벽은 내 삶에 녹아들고 있었어.

 

마지막 주가 되었어. 평소에는 밤이 되면 텐트 안에서 줄 묶는 법이나 등반에 관한 이론을 익혔는데 그날은 지도를 보고 길을 찾는 법을 익히고, 텐트 없이 밖에서 자는 비박을 하려고 했어. 날은 이미 어두운데 안개까지 짙었어. 능숙한 교사들도 결국 길을 잃었어.

 

우리 조가 멈춘 곳은 능선 끝 벼랑. 교사들이 조치를 취해 우리는 모두 벽을 타고 그곳을 내려왔어. 9명이 모두 내려오는 데 1시간이 넘게 걸렸어. 3월이었는데도 추위로 몸이 떨렸어. 의지할 수 있는 건 헤드라이트 불빛뿐이었어. 내리막에서 나는 몇 번이나 발 디딜 땅을 확인했어. 그래, 저기를 디디는 거야, 하고. 그런데 뭐가 잘못된 걸까. 내가 그토록 확신했던 땅은 허공이었어. 능선의 아래는 산 아래로 이어지고, 거기에서 떨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데.

 

몸이 붕 떠올랐어. 나도 모르게 풀을 잡았더니 그 풀이 뿌리까지 뽑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였어. 갑자기 온산이 환해지고 나는 벌거벗은 것처럼 가벼웠어. ‘나는 이렇게 가벼운데, 풀뿌리까지 뽑히는 구나’, ‘이렇게 가볍고 환하다면 죽는 것도 괜찮을지 몰라하는 생각들이 아주 천천히 일어났어. 그러다 갑자기 움직임이 멈추고 따뜻해졌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나는 우리 조 담임교사의 품에 안겨 있었어. 가볍고 벌거벗은 듯 느껴졌던 몸은 두꺼운 외투와 20kg에 가까운 커다란 배낭 때문에 생각보다 천천히 굴렀던 모양이야. 선생님이 약간 평평한 곳에서 기다렸다 나를 받아 안았는데 다행히 바지가 찢긴 것 외에 다치신 곳은 없었어. 모두가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음날까지 내 사고는 얘깃거리가 되었지.

 

길을 잃을지는 아무도 몰랐어. 내가 확신한 땅이 허공일지도 몰랐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삶이 끝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죽음이 멀리 있는 것 같지 않고,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고통스럽거나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 아버지도 언니도 각자의 벽을 오르고 있을 뿐. 나의 염려와 슬픔이 벽을 오르는 그들의 줄을 더 튼튼하게 할 수 없으며 추락을 외칠 때 서로의 끈을 꽉 잡아주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

 

마찬가지로 나는 나의 벽을 오르고 있지. 서울이든 히말라야든 어디에 가든 거기엔 내가 있고, 나를 따라 삶과 죽음이 나란히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벽에 몸을 붙인 듯 꼼짝 못 할 것 같았던 답답한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어. 죽음의 문턱에 다녀오고서야 나는 달아나지 않기로 했어.

 

간혹 어딘가 멀리 달아나고 싶을 때 그날을 생각해.

 

 

      

네가 어디를 가든 거기에는 네가 있다(Wherever you go There you are)_존 카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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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9-03-06 20: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의 염려와 슬픔이 그들의 줄을 더 튼튼하게 할 수 없으며‘에 깊이 공감합니다. 누구나 혼자 남겨지는 시간은 피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가끔 우리 집에 와서 주무시고, 일주일에 한 두번 봄 눈 처럼 다녀가는 딸을 기다리는 것 외엔,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는 삶은 어떤 것일까, 마음이 무거워지곤 합니다.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그들의 끈을 아무리 꽉 잡아도 마지막은 오는 것, 부디 부처님의 자비와 지혜의 품에 안착하기를 바라게 됩니다. 님의 글이 너무 감동적이라 안부 묻고 갑니다. 요즘 쓰시는 글들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이누아 2019-03-06 23:04   좋아요 0 | URL
1월에 쓴 ‘기적‘(http://blog.aladin.co.kr/inua10/10617164)에서 님과 따님의 이야기를 썼어요. 그 일화를 떠올리면 무사한 오늘이 감사하게 느껴져요. 님은 무심코 쓴 글이 제게는 멈춤 버튼 같은 것이에요. 불평이 올라올 때 누르면 호흡이 느려지는 그런 버튼요.

어머님들을 위한 기도가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누군가 자라는 것을 보는 것도, 늙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아픔을 보는 것도, 그리고 그 모든 걸 겪어야 하는 것도 다 삶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도 가능하면 원만하고 평온하게 이 과정을 겪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사라지지 않네요. 님의 기도가 이루어지길 저도 기원합니다.

오랜만에 댓글, 반갑고 고맙습니다.

혜덕화 2019-03-07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월에 미얀마 가 있을 때 쓴 글이군요. 님의 글을 읽고 내가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나 찾아보니 2010년 기도 같이 다니는 보살이야기를 하면서 쓴 내용이더군요. 님의 글도 제겐 어느 도반이나 스승님 같은 감동과 깊이를 준답니다. 오랫만에 예전 글도 읽어보고 아침 시간을 고요하게 보냈습니다.
요즘은 대반열반경 사경을 시작했습니다. 1200페이지 넘게 한자로만 된 책인데, 한문 음을 하나하나 찾으며 하려니 시간이 꽤 걸립니다. 한글본도 있고, 현토본도 있는데, 한문 음 달린 대반열반경은 없더군요. 오랫만에 한자 공부도 하고 5년이나 10년 잡고 시작은 했는데, 꾸준히 잘 할지 모르겠네요. 건강하시고 님의 글 자주 만날 수 있기 바랍니다.

이누아 2019-03-07 11:55   좋아요 0 | URL
1200페이지에 한번 놀라고, 그 경전이 대반열반경이라 왠지 숙연해집니다. 초기 경전에서는 디까니까야에 대반열반경이 나와요. 한문 경전과는 내용이 좀 다른 부분이 있긴 하지만 님이 사경하신다니 다시 읽어보고 싶어집니다. 불경에 나오는 한자는 음차가 많아 까다로운데 마음을 먹으셨다니 초발심이 변정각이라고 저는 발심하신 그 마음에 점 하나 찍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하시길!

이누아 2019-03-31 23:56   좋아요 0 | URL
기적을 쓰신 글을 찾아봤는데 제 기억과는 많이 다르더군요. 아마 그 글을 읽을 때 의 제 생각과 겹쳐져 기억으로 남아 있었나 봅니다. 글은 내용대로 수정했어요. 그래도 큰 뜻은 같았다고 생각해요. 제게 힘이 되는 글이라는 것도 같구요. 고맙습니다.
 

최선


쓰러질 때까지 달리는 건 최선이 아니야. 쓰러지기 직전까지 달리는 것, 그게 최선이지. 어떻게 그 지점을 알 수 있을까? 과로사 하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위인 같기도 하고 멍청이 같기도 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까? 빠르게 달리면 좋겠지. 달리고 싶다면. 나는 달리고 싶은지 어떤지 모르는 채 달리기도 해. 휙휙 나를 앞지르는 긴 다리에 깜짝 놀라기도 하면서. 

최선의 지점은 사람마다 달라. 나의 최선은 여기까지일까? 아직 좀 더 힘내야 할까? 누군가는 한참을 더 달릴 수 있다는데 그건 누군가의 최선이지. 한번씩 궁금해. 용수철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 탄성이 좋아지지만 너무 당기면 망가져. 그렇게 몸이 망가지고 마음이 늘어나 버린 경우를 보기도 해. 기슭아, 나는 아마도 최선을 다하고 싶은가 봐. 자기 전에 인사나 하려고 했는데 최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걸 보니.



특별한 일 
_이규리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 하네요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외롭다는 말도 아무 때나 쓰면 안 되겠어요

그렇다 해서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요

어느 때, 어느 곳이나
꼬리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 있겠지만
꼬리를 잡고 싶은 건 아니겠지요

와중에도 어딘가 아래쪽에선

제 외로움을 지킨 이들이 있어
아침을 만나는 거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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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9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10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일은 어머님 제사라 경기도에 있는 큰집에 가. 나는 어머님이 좋았어. 키가 작고 몸집이 조금 있는데 얼굴엔 주름이 거의 없었어. 어머님이 꼬박꼬박 졸고 있으면 '호호 아줌마'가 생각나. 그 장면이 떠오르면 지금도 혼자 웃어. 어찌 보면 보통 할머니랑 비슷한데 내 눈엔 귀여우면서도 기품 있어 보였어.

 

화병이 있어서 한 번씩 불쑥 큰소리를 내셨는데 그러면 나는 어머님, 깜짝 놀랐어요.”라고 해. 그러면 어머님은 그래, 내가 와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시는 거야. 그뿐이었어. 어머님 화내셨다고 마음 상하지도 않았고, 어머님도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화 때문에 며느리와 관계가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

 

어머님은 늘 전화를 기다렸어. 사흘이 지나면 전화가 와. 무슨 일 없냐고. 그래서 어머님 연락 오기 전에 전화를 드리다 보니 이틀에 한 번꼴로 통화를 했어. 별로 할 말도 없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싹싹한 성격도 아닌데 그냥 맞춰 드리고 싶었어. 세상엔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나한테 맞거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어머님은 나와 뭔가 맞는 사람이었지.

 

그렇지만 어머님이 시어머니라서 불편했어. 이 말을 이해 못하는 남자에게 난 늘 이 말을 해. 내무반에 마음씨 좋은 상관이 있으면 그 내무반에 계속 있고 싶으냐고. 어떻게 어머님을 군대 상사에 비교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딱 그런 느낌 같아. 어머님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우리 집에 오셔서 일주일에서 열흘 있다가 가셨는데 며칠은 그럭저럭 지내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면 답답했어. 어머님을 좋아했는데도 말이야. 이게 며느리 마음인가?

 

어머님 댁에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먼저 부엌에 가 있었어. 그땐 부엌이 바깥에 있어서 겨울엔 몹시 추웠어. 내가 일찍 나와 있으면 어머님이 안타깝게 여기시는 게 느껴졌어. 늘 천천히 나오라고 하셨지. 근데 하루는 동서가 어머님께 몇 시에 부엌에 나갈까요? 하니까 어머님이 8시에 나오라고 하셨어. 평소에 난 7시 전에 나갔거든. 잘됐다, 싶어 그 시간에 나갔더니 어머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거야. 나오라고 한 시간에 나갔으니 뭐라 말씀도 못하시고. 그때 이게 시어머니 마음인가 싶었어. 눈치 보고 애쓴다 싶으면 안쓰럽고 어른 힘든 거 안 돌아본다 싶으면 괘씸하고.

 

내가 오래 아이가 없다가 쌍둥이를 낳았을 때 어머님은 통화만 하면 웃으셨어. 호탕한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아. 이렇게 나에겐 어머님과의 추억이 어둡지 않은데 남편은 어머님이 고생한 것만 생각나나 봐. 남편과 나는 그렇게 서로 다른 어머님을 기억하고 있어. 남편이 더 어머님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모든 모습이 다 어머님이라고 생각해. 만약 누가 떠난 내 가족을 나처럼 기억하고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아픔과 고통은 모르고, 무겁지 않고 따뜻하게 말이야.

 

 

 

나의 어머니

_브레히트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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