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어머님 제사라 경기도에 있는 큰집에 가. 나는 어머님이 좋았어. 키가 작고 몸집이 조금 있는데 얼굴엔 주름이 거의 없었어. 어머님이 꼬박꼬박 졸고 있으면 '호호 아줌마'가 생각나. 그 장면이 떠오르면 지금도 혼자 웃어. 어찌 보면 보통 할머니랑 비슷한데 내 눈엔 귀여우면서도 기품 있어 보였어.

 

화병이 있어서 한 번씩 불쑥 큰소리를 내셨는데 그러면 나는 어머님, 깜짝 놀랐어요.”라고 해. 그러면 어머님은 그래, 내가 와 이러는지 모르겠다.” 하시는 거야. 그뿐이었어. 어머님 화내셨다고 마음 상하지도 않았고, 어머님도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화 때문에 며느리와 관계가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

 

어머님은 늘 전화를 기다렸어. 사흘이 지나면 전화가 와. 무슨 일 없냐고. 그래서 어머님 연락 오기 전에 전화를 드리다 보니 이틀에 한 번꼴로 통화를 했어. 별로 할 말도 없었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싹싹한 성격도 아닌데 그냥 맞춰 드리고 싶었어. 세상엔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 있는 게 아니고 나한테 맞거나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어머님은 나와 뭔가 맞는 사람이었지.

 

그렇지만 어머님이 시어머니라서 불편했어. 이 말을 이해 못하는 남자에게 난 늘 이 말을 해. 내무반에 마음씨 좋은 상관이 있으면 그 내무반에 계속 있고 싶으냐고. 어떻게 어머님을 군대 상사에 비교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딱 그런 느낌 같아. 어머님은 일 년에 두 번 정도 우리 집에 오셔서 일주일에서 열흘 있다가 가셨는데 며칠은 그럭저럭 지내는데 일주일이 넘어가면 답답했어. 어머님을 좋아했는데도 말이야. 이게 며느리 마음인가?

 

어머님 댁에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 내가 먼저 부엌에 가 있었어. 그땐 부엌이 바깥에 있어서 겨울엔 몹시 추웠어. 내가 일찍 나와 있으면 어머님이 안타깝게 여기시는 게 느껴졌어. 늘 천천히 나오라고 하셨지. 근데 하루는 동서가 어머님께 몇 시에 부엌에 나갈까요? 하니까 어머님이 8시에 나오라고 하셨어. 평소에 난 7시 전에 나갔거든. 잘됐다, 싶어 그 시간에 나갔더니 어머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는 거야. 나오라고 한 시간에 나갔으니 뭐라 말씀도 못하시고. 그때 이게 시어머니 마음인가 싶었어. 눈치 보고 애쓴다 싶으면 안쓰럽고 어른 힘든 거 안 돌아본다 싶으면 괘씸하고.

 

내가 오래 아이가 없다가 쌍둥이를 낳았을 때 어머님은 통화만 하면 웃으셨어. 호탕한 웃음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아. 이렇게 나에겐 어머님과의 추억이 어둡지 않은데 남편은 어머님이 고생한 것만 생각나나 봐. 남편과 나는 그렇게 서로 다른 어머님을 기억하고 있어. 남편이 더 어머님의 본모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 모든 모습이 다 어머님이라고 생각해. 만약 누가 떠난 내 가족을 나처럼 기억하고 있다면 좋을 것 같아. 아픔과 고통은 모르고, 무겁지 않고 따뜻하게 말이야.

 

 

 

나의 어머니

_브레히트

 

 

그녀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녀를 땅 속에 묻었다.

꽃이 자라고, 나비가 그 위로 날아간다……

체중이 가벼운 그녀는 땅을 거의 누르지도 않았다.

그녀가 이처럼 가볍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겪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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