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의 마음
마당은 햇살로 가득했어. 마당 가운데 꽃밭에는 달리아, 분꽃, 장미, 맨드라미…. 그 꽃들 사이로 사철나무 한 그루, 감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어. 마당 가장자리는 섬돌로 둘러싸여 있고. 그 섬돌 아래 세 개의 고무대야에 담긴 물이 햇살처럼 부드럽게 찰랑거렸어.
엄마가 비누로 옷을 치대 주면 언니가 그 옷을 헹구고, 그 다음 대야에서 내가 다시 헹궜어. 물이 맑지 않으면 한 번 더 헹구기도 하지만 어쨌든 내 대야의 물이 가장 맑고 차가웠어. 물놀이하듯 참방참방 옷을 만지작거리면 거품은 물속으로 흩어져. 거품이 안 보일 때까지 맑은 물을 만지면 옷도 나도 개운해졌지.
큰 옷은 언니와 내가 마주 보고 빨래 끝을 잡고 짜서 탈탈 털었어. 빨래가 끝나면 햇살에 이끌려 좁은 계단을 올라 가. 옥상에 오르면 바람이 우리를 기다렸어. 널린 빨래는 맑은 물속에서, 햇살 속에서 춤추듯 그렇게 바람 속에서 일렁거리고, 우리도 허리를 쭉 펴고 하늘을 봤어. 세제 거품 같은 하얀 구름이 하늘을 씻으며 흐르고 있었지.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우리의 눈도 맑게 씻기는 느낌이었어. 엄마와 언니, 꽃과 햇살과 바람과 함께 하는 빨래는 맑고 따뜻해.
그러나 투두둑 비라도 떨어지면 빗소리가 마치 비상벨이라도 되는 듯 후다닥 옥상으로 올라가 빨래를 걷었어. 장마엔 빨래하기도 말리기도 쉽지 않았어. 잠깐 햇볕이 나면 얼른 빨래해서 널었다가 비가 오면 걷고, 또다시 볕이 나면 널고…. 그렇게 옥상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장마를 보냈어. 쨍한 볕을 그리워하며 먹구름이 깨끗이 씻어져 흰 구름으로 떠오르길 기다리며.
이제 세탁기가 빨래를 해. 아이를 낳고 나서는 삶는 기능까지 있는 세탁기를 사용하다 보니 양푼에 빨래를 넣고 물이 넘칠까 봐 조마조마할 일도 없어. 게다가 아파트 베란다는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널어둔 빨래가 젖지 않지. 이번에 이사하면서 건조기까지 사서 몇몇 옷가지를 빼고는 널지 않아도 돼. 덕분에 주말에 시간을 내서 해야 했던 빨래는 날씨와 상관없이 매일매일 버튼 하나로 할 수 있어. 이보다 더 편리한 기기가 있을까. 물에 손을 담그지 않고 옷을 빨 수 있다니! 나는 이 편리함에 사로잡힌 지 오래라 이제 손빨래를 해야 하는 옷은 사는 것도 주저해.
엄마도 이제 세탁기로 빨래를 하지만 주택에 사셔서 옥상에 빨래를 널어. 내가 베란다에 이불을 널면 “이런 건 햇볕 좋을 때 바람 훌훌 부는 옥상에 말려야 속이 시원하지.” 하시며 옥상에 널어야 빨래가 빠닥빠닥하게 잘 마르는 것 같다고 하셔. 이불 빨래는 욕조에 넣어 실컷 밟아줘야 허물이 씻기는 것 같다며 예전처럼 빨래를 하시고.
정말 옥상에 널린 빨래가 더 잘 마르는 것인지 그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빨래라면 어떨까 생각해 봐. 예기치 않게 비를 만나 젖을 수도 있지만 큰 대야 물에 휘 휘 헹궈져 해와 바람 앞에서 너울너울 흔들리는 게 좋을까? 젖을 일 없지만 세탁기에 갇혀 뱅뱅 돌려지다가 베란다에 걸려 창을 내다보는 게 좋을까?
옥상에 걸린 빨래와 베란다의 빨래는 예전의 나와 지금 우리 아이들 같다는 생각이 들어. 내가 어릴 때는 학교 갔다 돌아와 가방만 던져 놓고 뛰어나갔어. 대문을 열면 코 묻어 반질반질한 소매로 된 옷을 입고 친구들이 소복이 모여 있었어. 고무줄이니 대장 놀이니 땅따먹기니 쌩쌩 골목길을 내달렸지. 비가 오면 남의 집 대문 앞에서 비를 피하다 할 수 없이 뿔뿔이 흩어져 집에 돌아오곤 했어.
지금 우리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지만 대개 학원 일정 때문에 미리 연락해 약속을 잡고 친구를 만나. 그림도 책 읽기도 죄다 학원에서 배웠어. 친구들도 거기에 있어. 세탁기에서 뱅뱅 도는 빨래처럼 학원을 뱅뱅 돌다 베란다 같은 실내 놀이터에서 생일 파티 같은 걸 해. 실내 놀이터엔 비가 내리지 않아. 아쉽게 헤어질 필요도 없고, 정해진 시간만큼 정해진 요금을 내고 편안히 놀다 오지.
시대가 다르니 뭐가 더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기억 속에서 나의 빨래는 햇살을 받고 있어. 아이들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혹시 편하게만 보이는 아이들이 세탁기 속에서 부딪히고 온몸이 뒤틀리면서 꺼내달라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세탁기 문을 닫고 버튼만 누르면서 모든 게 아주 편리하다고, 쉽다고 안심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아이들이 이 편리함을 어떻게 느끼는지 궁금해. 아이들도 수영장보다 마당 한가운데 커다란 대야의 이불 빨래를 밟는 걸 더 즐거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넘칠 듯 일렁이는 맑은 물속에 담긴 햇살과 자신의 수고로 깨끗해진 옷을 만나고 싶을지도.
일흔 넘은 엄마가 오르내리기엔 불편한 계단, 비가 오면 몇 번이나 오르내려야 하는 그 계단을 아직도 오르시는 건 그저 습관 때문일까. 햇살과 바람과 함께 비와 먹구름이 옥상에 있어. 불편과 불안을 딛고 엄마가 옥상에 빨래를 널듯이 내가 아이들을 자유로이 부는 바람 속에 놓아둘 수 있을까? 빨래를 생각하는 시간, 비가 내려. 아주 오랜만에 뛰어나가 비를 맞고 싶어. 어쩌면 모든 빨래가 젖기를 두려워한다는 건 나의 오해일 수도.
빨래
_이해인
오늘도 빨래를 한다.
옷에 묻은 나의 체온을
쩔었던 시간들을 흔들어 빤다.
비누 거품 속으로
말없이 사라지는 나의 어제여
물이 되어 일어서는 희디흰 설레임이여
다시 세례 받고
햇빛 속에 널리고 싶은
나의 혼을 꼭 짜서
헹구어 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