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꿈을 꾼다

    

 

 

꿈을 꾸었어. 나인지 내가 아닌 다른 아이인지 모르겠어. 나라고 하자. 꿈에선 지켜보는 내가 있어서 꿈속에 나오는 내가 간혹 내가 아니게 느껴지기도 하거든. 꿈속은 진짜가 아닌데도 나는 자꾸 꿈속의 사람이 나인지 내가 아닌지 헤아리고 있구나. 어차피 진짜 나도 아닌데.

 

어쨌든 나는 고래 등에 엎드려 있었어. 고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고. 물속에 잠겼다가 물 밖으로 나왔다가를 끝없이 반복하고 있었어. 하늘은 맑고, 물결은 빛났어. 꿈속의 나는 특별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았어. 목적지에 못 갈까 봐 걱정하지도 않았고, 물속에 잠길까 봐 무섭지도 않았어.

 

그러나 작은 머릿속에서 돌돌 말려 있던 뇌의 굴곡이 확 펼쳐진 양 하늘에 사람들 얼굴이 걸렸어. 한 번도 보지 못한 얼굴들이었어. 모두 외국인이었지. 그들이 나를 보고 있었어. 실은 내가 그들을 보고 있었는지도. 꿈속에서 생각했어. 나는 저들에게 가고 있는 걸까, 갈 수 있을까, 하고. 바다 다음에는 바다가 있고, 그 바다의 다음에는 또 바다가 있는데 정말 어디로 가고 있기는 한 걸까.

 

그냥 꿈이야. 고래를 타고 바다를 유영하는 꿈, 무심한 바다와 무심한 내가 무심히 흐르는 꿈. 끝없이 물속과 물 밖을 오가는 것이 무의식과 의식을 오가는 것 같기도 하고, 생과 사를 흐르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생각이 그냥 흐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나쁜 습성 같기도 하고.

 

고래 꿈은 처음 꾸었어. 꿈꿨는데 기억 못 할 수도 있지만. 달력 속의 오늘이 단칸방처럼, 아파트의 창문처럼 놓여 있어. 사실은 자를 수 없는 바다 같은 날들을 쪼개 놓은 것인지도 몰라. 고래는 너무 좁아 살 수 없어서 오늘로부터 멀리에 있는 걸까. 달력에 그어진 선들을 쓱쓱 지우고 나면 거기에 그려질까. 나와 고래가 물속을 물 밖을 오르락내리락하며 흘러가고 있는 모습이.

 

 

 

고래의 꿈

_송찬호

 

 

나는 늘 고래의 꿈을 꾼다

언젠가 고래를 만나면 그에게 줄

물을 내뿜는 작은 화분 하나도 키우고 있다
 

깊은 밤 나는 심해의 고래 방송국에 주파수를 맞추고

그들이 동료를 부르거나 먹이를 찾을 때 노래하는

길고 아름다운 허밍에 귀 기울이곤 한다

맑은 날이면 아득히 망원경 코끝까지 걸어가

수평선 너머 고래의 항로를 지켜보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한다 고래는 사라져버렸어

그런 커다란 꿈은 이미 존재하지도 않아

하지만 나는 바다의 목로에 앉아 여전히 고래의 이야길 듣는다

해마들이 진주의 계곡을 발견했대

농게 가족이 새 뻘집으로 이사를 한다더군

, 화분에서 분수가 벌써 이만큼 자랐는걸……

 

내게는 아직 많은 날들이 있다 내일은 5마력의 동력을

배에 더 얹어야겠다 깨진 파도의 유리창을 갈아 끼워야겠다

저 아래 물밑을 흐르는 어뢰의 아이들 손을 잡고 쏜살같이 해협을 달려봐야겠다

 

누구나 그러하듯 내게도 꿈이 하나 있다

하얗게 물을 뿜어 올리는 화분 하나 등에 얹고

어린 고래로 돌아오는 꿈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문학과지성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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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슭아,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날이고 내 생일이기도 해. 음력이라 올해 두 번 생일을 하네. 생일이라고 특별한 다른 날이 되는 게 아니고, 오늘이 지나면 벼랑 같은 게 있어서 2019년이 딱 끊어지지도 않지. 내일은 그냥 보통의 아침이 올 거야. 그렇게 무심히 지내다 어느 날 진짜 벼랑을 만나게 되기도 하지. 이를테면 이별 같은 것, 실직 같은 것, 그런 게 벼랑인 거지.

 

오늘은 참 추워. 방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맞는 새해는 어떨까? 길고양이들은 어디서 잠을 청할까? 그래도 이 시간은 희망을 말해야 할까? 새해엔 내게도 소망이 있어. 새해가 아니라도 있었지만. 새해라고, 새해라서, 헌 해는 이제 접고, 새로 무엇을 쓸까?

 

기슭아, 건강하고 마음 편하게 지내길 빌어. 어느 때고 해님이 두루두루 구석구석 따스하게 비쳤으면 좋겠다.

 

 

       

있다고 말하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대답은 하지만

찾을 수 없는 산울림.

 

없다고 말하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마음

대답은 하지만

다만 산울림뿐.

 

(이뀨 선사의 시 중에서)

 

-오쇼 강의, 법의 연꽃: 이뀨(태일출판사, 2012),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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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2-3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생일 축하드립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원을 이루는 한 해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누아 2019-12-31 23:5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도 바라는 일들이 원만하게 이뤄지길 빌어요.
고맙습니다.^^

초딩 2020-01-0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생일 축하드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이누아 2020-01-01 00:2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초딩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페넬로페 2020-01-01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생일 축하해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누아 2020-01-01 11:22   좋아요 0 | URL
페넬로페님, 고맙습니다.
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2020-01-02 01: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누아 2020-01-02 21:26   좋아요 0 | URL
감사. 새해엔 이작가에게도 좋은 일들이 배경처럼 걸려 있을 듯.^^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곰탕집 성추행 사건이라고 들어 봤어? 곰탕집에서 남자가 여자의 엉덩이를 움켜잡았다고 여자가 주장했어. 두 사람이 스친 시간이 1, 2초에 불과하고 CCTV에 움켜잡는 손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자는 스치자마자 즉각 반응했고 그 남자에게 죄를 뒤집어씌울 아무런 이유가 없었어. 그게 재판까지 가서 남자가 유죄를 받았는데 증거가 확실하지 않는데 유죄였다거나 동종 범죄보다 과도한 형량이었다거나 하는 문제로 대법원판결이 났는데도 시끄러운 사건이야. 나는 이 사건을 보면서 기억하기 싫은 장면이 떠올랐어.

 

고등학교 때였나, 대학 때였나 시기는 불분명한데 그 장면은 선명해. 우리 집 근처 큰 도로 옆 인도를 걷고 있었어. 밤이었지만 큰 길이라 환했어. 그때 술을 마셨는지 약간 비틀거리는 남자가 마주 오고 있었어. 양복을 입고 있었고, 나이는 30대 정도로 보였어. 그렇게 지나가는데 그의 왼손이 내 가슴을 움켜쥐듯이 누르고 가는 거야. 정말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어. 나는 획 뒤돌아봤지. 소리도 못 지르고 쳐다봤는데 그놈의 발걸음은 아까와 전혀 다르지 않았어.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프라이팬 같은 걸로 그놈 뒤통수를 내려치고 싶은 충동이 생겨. 그랬다면 CCTV도 없고, 목격자도 없었으니 내가 폭력범으로 잡혀갔을지도. 근데 기슭아, 이게 30년 가까이 지난 일인데 내가 너무 잘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물론 기억이라는 게 왜곡이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어떤 일을 기억하고 못 하고를 구별하는 건 감정이 얼마나 개입했느냐, 라고 해. 나는 그 일에 대해 분노의 감정이 있어서 이렇게 생생하게 떠오르나 봐. 성폭력 피해자들의 기억이 그토록 또렷한 것도 두려움과 분노의 감정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은 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하지 않았어. 불쾌한 경험이고, 지금 와서 어쩔 수 없는 이야기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아닐 거고... 그래도 난 뉴스를 보다 그때가 떠올랐고, 떠올라서 말할 수 있었어. 어쩌면 그 일이 내가 말할 수 있을 정도겠지. 그 정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어. 그러니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 특히 성추행이나 성폭행에 관한 이야기는. 그러나 말하지 않을 뿐이지 여자라면 이런 이야기 한두 개쯤 없는 사람이 없을 거야.

 

문학동네(2018, 여름호)에 황정은 작가가 쓴 ”()이라는 글이 있어. 거기서 사촌에게 당한 성폭력 사건을 이야기해. 사실 그 글은 록산 게이의 헝거(사이행성, 2018)가 부제로 적혀 있었지만 그 책에 관한 내용은 거의 없었어. 그러나 그 책을 읽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었다고 말해. 그리고 아주 작게 각주에 그리고 동생들이 이 글을 쓰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면이야기를 쓸 수 없었을 거라고도 해. 시간이 흘러도 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시간이 흘러도 얼마나 생생한지, 가해자를 잡아서 어떻게 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기 힘든 말을 왜 하는 건지, 생각해.

 

말했을 때 말하기 전보다 더 힘든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커 보이면 우리는 입을 다물지. 입을 다물면 겉으로는 없었던 일이 되고, 안으로는 흐르지 못하는 물처럼 점점 무거워지지. 미투의 부작용이 있다고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내놓은 사람들 덕분에 가해인지도 모르고 가해했던, 가해인지 알면서 가해했던,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위축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생각해.

 

내 가슴을 만지고 간 그놈은 어떻게 살까? 곰탕집 성추행 사건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술을 마셔서, 너무 많이 그런 짓을 해서 기억도 못할까? 어쩌면 내가 마음으로 그놈 뒤통수를 너무 많이 때려서 그놈 머리가 ET처럼 변하고 있을지도.

 

    

 

괴물

_최영미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30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 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이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영미,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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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16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16 13: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hnine 2019-12-16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속의 En 이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패소 확정이라는 뉴스를 며칠 전에 봤어요.
최영미 시인 그동안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요.
위의 시에서 ‘괴물을 잡는다‘는 행보다 바로 앞 ‘괴물을 키운 뒤에‘라는 행이 얼마나 섬뜩하고 부끄러운지요.
곰탕집 성추행 사건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죄 확정 내렸다지요.

이누아 2019-12-16 15:28   좋아요 1 | URL
최영미 시인의 마음 고생이 올해 나온 시집 속에 들어 있더라고요.

저도 괴물을 키운다는 말이 더 눈에 띄었는데 그놈 뒤통수가 자꾸 생각나서 어떻게 잡아야 하나, 로 제목을...

곰탕집 성추행 사건에 대한 논란은 성추행 사건 자체에도 있지만 사법부 불신과도 관련 있지 않나 싶어요. 딱히 이번 판결의 형량이 높다 낮다를 떠나 동종 범죄뿐 아니라 타 범죄의 형량도 너무 들쑥날쑥하게 보이고...

이누아 2019-12-16 15:36   좋아요 3 | URL
뭘 해도 그 생각 /최영미

이 싸움이 끝나기 전에는 뭘 해도
준비서면과 진술서가 머리에 진드기처럼 붙어 있지

버스정류장에 서 있어도
버스가 보이지 않고
탈 버스를 놓치고 멍청하게
비빔밥을 먹는 그릇에도 진드기가 와글거리지
詩가 밀려와도 모른 척, 흘려보냈지
벌레들과 싸우느라 10월의 단풍도
첫눈이 내려앉은 나뭇가지도 보이지 않았지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내 머릿속엔
엄마, 병실을 옮길까 ?
엄마, 변을 언제 보았지?
엄마, 저러다가 돌처럼 딱딱한 피똥을 싸면
엄마, 내일 점심 도시락엔 뭘 넣을까

당사자 심문을 앞두고
3년이나 대기한 시립요양원에 자리가 나왔는데도
엄마를 옮겨드리지 못했다
내가 증언하는 날, 엄마가 갑자기 아프면?
누가 병원에 데려가나, 나밖에 없는데

벌레들과 전쟁을 치르느라 엄마가 잘못되면
누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까

혜덕화 2019-12-19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뉴스를 안봐서 곰탕집 사건도 늦게 알았습니다.저도 이누아님 같은 경험도, 곰탕집 여자 같은 경험도 했지만그냥 속으로만 미친놈 하고 입을 다물었지요. 이 뉴스 보면서 그 남자와 비슷한 부류의 인간들이 1초 아니라 0.1초도 남의 몸에 손대면 안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누아 2019-12-20 14:29   좋아요 0 | URL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인데 다른 기억보다 또렷해요. 우리가 부정적인 경험을 더 잘 기억하는 건 다시는 그 경험을 하고 싶지 않아서라고 해요. 저나 누구나 다 기억이 잊혀질 만큼 이런 일이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서니데이 2019-12-24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누아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이누아 2019-12-24 20:00   좋아요 1 | URL
예. 서니데이 님도 축하드려요. 님의 서재 들를 때마다 꽃다발 받는 기분이었어요. 고맙습니다.^^
 

다른 나라의 말

 

 

기슭아, 네게 편지를 쓰고 싶은 순간이 많았어. 노트북 앞에 앉아서 말을 건네는 것보다 조금 급하게 보이는 일들이 있었어. 사실 급한 것도 아니었지만.

 

다시 겨울이야. 한 해 동안 무슨 책을 읽었나 생각해보니, 딱히 생각나는 책이 별로 없어. 주로 시집을 읽어서 그런가 싶어. 산문은 읽으면 쌓이는데 시는 흘러가는 느낌이랄까.

 

잔잔한 시, 격렬한 시, 슬픈 시, 웃긴 시, 난해한 시... 그런 걸 서정시와 현대시라고 딱 잘라 말해야 할까. 시가 이렇게 불통이어서 되겠냐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고, 미래파야말로 우리 시의 미래라는 목소리도 있어. 난 어려운 시는 못 읽겠다,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읽혀. 이해할 수 있는 시만 읽겠다고 고집하면 우리나라 유명 출판사에서 나오는 시집의 반 이상을 못 읽을 것 같기도 하고.

 

뭐든 이해하고 싶지. 하지만 우리 아들 마음도 이해 못 할 때가 있는데, 아니 내 마음도 이해 안 될 때가 있는데 뭐든 다 이해하고 살 수 있나 싶어. 교과서 시들을 다 이해해야 하는 공부를 너무 오래 해서 이해가 안 되면 답답하고, 머리 아프고, 읽기를 그만두게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체한 것처럼 읽어 내려가기 힘든 시도 있어. 그러다가 간혹 이해는 안 되도 좋아하게 되는 시도 있고. 모르겠다, 모르겠다, 싶은 시가 머릿속을 확 뒤집고 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어. 앎이 다가 아니긴 해. 특히 시는.

 

간혹 이런 생각이 들어. 많은 시인들이 소통을 원하지만 어떤 시인은 자기 시를 독자가 잘 알아듣지 못하기를 바랄 수도 있겠다. 그런 시는 알아듣지 못해도 이미지와 리듬이 있으니까 읽히기는 읽히겠지. 몇몇은 숨은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겠지. 그러나 모른 척해 주기를 바랄 수도 있겠다. 모른 체 하면서도 공감하는 사람들이 그의 시를 다시 찾을 수도 있겠다, 하는.

 

시인이 아니라도 우리는 뭔가 말하고 싶어 해. 그래서 나도 이렇게 중얼중얼 하는 건지도. 기슭아, 너는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니? 내가 엿들어도 알아듣지 못할 다른 나라의 말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피의 책

_하재연

 

 

너는 피의 책이다.

네 눈의 뜨거운 신경다발은 목구멍까지 이어져 있다.

얇은 낱장들이 내게서 펄럭였다.

한 권의 책에는 어떤 사건도 담기는 법.

너는 육신으로 기록한다.

내 몸의 모래 알갱이들,

발바닥을 찌르는 빛나던 유리잔 ,

토마토의 차가운 속살,

네 피는 붉고, 너를 서서히 채우고,

그리고 식는다.

바람은 어디에서든 잠깐, 불어왔을 뿐.

네게는 너의 현재가 읽히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무 일도 도모하지 않기 위해

다른 나라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언젠가 피로써 번역되기를 바라면서.

 

-하재연, 라디오 데이즈(문학과지성사,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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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를 보다가

 

 

 

시간이 빨리 간다, 빨리 간다, 벌써 한 해가 간다, 는 말을 하기도 많이 하고, 듣기도 많이 들어. 우리가 20대에도 이런 말을 자주 했던가?

 

크리스티안 예이츠라는 교수가 마음 시간이란 걸 계산했다고 해. 우리가 감지하는 시간은 우리가 이미 살았던 기간의 비율에 좌우된다는 거야. 그러니까 10살 아이에게 1년은 자신의 삶의 10%이고, 20살 청년에게 1년은 자신의 삶의 5%.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5~10살이 5년 동안 겪는 경험이 40살부터 80살까지 40년간 겪는 경험과 같은 셈이라고.

 

우리 아이가 사는 1년과 내가 사는 1년이 서로 다르게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해. 그렇다면 내 시간은 이제 짧아지는 것만 남은 걸까? 기계적으로만 장수하는 것이지, 알고 보면 앞으로 40년을 더 살아도 마음의 시간으로는 내 아이의 마음 시간 5년 정도만 사는 걸까?

 

마음 시간이라는 말 대신 주관적 시간이라는 말로 왜 어떤 시간은 빨리 흐르고, 어떤 시간은 그렇지 않은가에 대해 쓴 책을 본 적이 있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책 제목이 생각이 안 나. 거기에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친구 집을 찾아가는 예가 나와. 갈 때는 시간이 길게 느껴지고, 돌아올 때는 짧게 느껴진대. 갈 때는 낯선 길이지만 올 때는 이미 익숙한 길이잖아. 새로운 걸 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고, 익숙해지면 시간이 빨리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거지.

 

주관적 시간마음 시간처럼 연령대를 설정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우리가 유추해볼 수 있지. 아이들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 어른보다 몇 배는 더 많으니까 그들의 마음 시간이 더 천천히, 길게 흐를 수 있지 않을까. 주관적 마음의 관점에서 보면 나이와 상관없이 새롭게 사는 사람, 새로운 경험을 하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더 천천히 흐를 수 있겠다. 여행하고, 도전하는 사람들이 더 젊게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싶어.

 

이런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을 어떻게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과학적 소양이 달려서 뭐라 할 수 없지만 열 살에, 스무 살에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 요즘 시간이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자주 나. 나이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편하기도 하지만 내가 새로운 걸 시도하고,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 까닭 같기도 해.

 

장자에도 수명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 옛날에 대춘이라는 나무가 있었는데 그 나무에게는 8천 년 동안이 봄이고, 다시 8천 년 동안이 가을이래. 그러니까 수명은 그보다 훨씬 길겠지. 장자 시대에 700살 넘게 산 팽조라는 사람이 장수로 유명한데, 이 나무에는 비길 수가 없다는 거야. 근데 대춘 나무와 팽조 중에 주관적 시간으로는 누가 오래 살았는지 알 수 있을까? 너무 차이가 크게 나서 예로 들기 뭐한가?

 

기계적 시간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렇지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하는지를 알아차리면서 살 수 있다면 자신의 주관적 시간의 길이도 달라지지 않을까. 어찌보면 그보다 시간에 끌려다니지 않고, 시간을 쓰면서 살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시간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거실 시계 돌아가는 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려. 착착, 척척, 턱턱.

 

기슭아, 네 시계 소리는 어때?  

 

 

 

  시계

  _송승언

 

 

   그 집 대문 앞에는 시계와 의자가 있었다 시계는 멈춰 있었고 움직이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의자에 앉은 늙은 시인은 종일 아무것도 없는 거리 멈춰 있는 시계를 보다가 대문 안으로 사라지곤 했다 그 집 대문 앞에는 시계와 의자가 있었다 이제 늙은 시인은 없고 의자는 비어 있다 나는 조심스레 빈 의자에 앉아 내가 가스를 마시며 뛰어다녔던 그 거리를 본다

 

-송승언, 사랑과 교육(민음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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