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에서 신선처럼 사는
홍순지라는 가수가 있어. 불교 관련 노래를 주로 하는 분이야. 오래 전 포항 보경사에 갔다가 그분이 노래하는 걸 들었어. 돌아가신 둘째 아주버님이 좋아하셔서 녹음도 하시고, 녹음테이프를 우리 집에도 주셨어.
거기 “노귀재”가 있어. 그 노래 중에 ‘안덕에서 신선처럼 사는’이라는 구절이 있어. 차 안에서 노래를 듣다가 이 구절만 나오면 언덕인가, 안덕인가, 하고 남편과 궁금해했어. 발음이 애매하게 들렸거든. 포털에 다 언덕으로 가사가 나와 있어서 언덕이구나, 하고 넘어갔는데.
친정 오빠가 두 해 전에 청송으로 이사 갔어. 청송 어디로 갔나 했더니 바로 ‘안덕’이라는 거야. 오빠 집으로 가는 길에 노귀재가 나오고. 아, 안덕이구나! 언덕 아니고. 좋아하는 노래에 나오는 지역에 오빠가 살게 되다니, 참 묘해.
저번 주말에 친정 식구들과 오빠 집에 갔어. 오빠가 청송 간다고 했을 때 걱정이 많았어. 당사자보다 더 깊이 고민하는 사람이 없을 테니 잘 결정했겠지, 하면서도 자기 일이라 넓게 못 보고 결정하는 건 아닌가 노파심도 들었지. 가족이 모두 이사를 한다니 당시 중학생이었던 조카의 학업은 어떻게 하나, 그런 것도 걸리고.
엄마는 걱정이 너무 지나치셨어. 심지어 오빠가 망해서 엄마 집을 팔아야 하는 상황까지 걱정하시는 거야. 대학을 두 개나 나오고, 전문직인 오빠가 그렇게까지 망할 일도 없거니와 힘든 일이 생긴다고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할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생각하시냐고 나는 엄마를 타박했지. 당시 그런 염려 때문에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어. 이석증도 생겼고.
지금 조카는 기숙사 있는 고등학교에 다니고, 오빠 일터도 안정되고, 오빠네 가족들 얼굴도 다 좋아 보여. 그래서인지 엄마 얼굴도 많이 밝아졌어. 전에 했던 걱정이 무슨 유익이 있었는가 싶어. 만에 하나 오빠가 거기서 적응을 못 했다 하더라도 똑같이 그 걱정이 무슨 유익이 있었을까.
있지도 않은 일로 엄마가 받았던 고통을 생각해. 내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일이 어쩌면 엄마의 염려 같은 것일 수도 있어. 나의 일이나 가족의 일에 나도 모르게 지나치게 걱정한다 싶으면 엄마의 이석증을 떠올려. 실재하지 않는 일에 실재하는 고통을 심지 말아야지, 하면서.
오빠의 이사를 계기로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한다면 거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게 됐어. 청송은 산이 깊고 고요해. 오빠는 ‘신선처럼’까지는 모르겠지만 전보다 훨씬 편안해 보이는 얼굴로 안덕에서 살고 있어.
노귀재
_홍순지 노래
노귀재 넘으며 노귀재 넘으며 넘으며
노귀재 그 숨찬 가파름은
아직도 내게 묻어 따라 오는
속세의 먼지 속세의 먼지 털어 버리라고
저 아래 계곡으로 떨궈 버리라고
모조리 다 던져 버리라고
노귀재 이곳은 노귀재 이곳은
사람과의 만남에 묻혀 잊혀온
바람과 만나고 구름과 만나고
푸르름이 푸르름과 만나고 먼 산 가까운 산
모두 모두 만나고 잊고 산 것이
무엇인지 다 가르쳐 주고
노귀재 지나면 노귀재 지나면 지나면
도시의 답답함이 싫어
빌딩 숲 사이에 숨어 사는
비루한 개 같은 시궁창 쥐 같은 삶이 싫어
안덕에서 신선처럼 사는 친구 있어
술잔 놓고 기다려 종일토록 날 기다려
*안타깝게 노귀재 노래를 못 찾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