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석하셨습니다

 

 

오전에 교육이 있어서 나가려고 하다 왜 전날 교육 알림 문자가 안 왔지? 하는 생각에 폰을 확인했어.

 

결석하셨습니다.”

 

출발도 안 했는데 결석이라니. 교육은 일주일 전에 있었어. 생각해 보니 지난주에 주말이 바쁘다고 친구에게 말한 기억이 나. 그런데 어쩌다 문자는 확인을 못 한 걸까? 어째서 지난주에 주말이라고 한 그 주말이 기억 속에서 제멋대로 이번 주말로 바뀌어버린 걸까? 뇌의 굴곡을 오르던 계획과 기억이 어느 비탈에서 숨이 차 주저앉아 버린 걸까?

 

이럴 수도 있지, 하면서도 황당하고 허전해. 이렇게 허술해진 나에게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닌가 봐. 오늘은 나만의 일이지만 다른 사람과의 약속이었으면 마음이 더 불편했을 거야. 이제 일정마다 알람을 해야겠어.

 

입은 옷을 벗기도 그렇고 이렇게 잠깐 앉았다 도서관에 가서 책이나 반납하고 올까 해. 모처럼 아이들이 아람단 활동하러 가고 없어서 늦잠을 잘 수도 있었는데 아깝다.

 

 

 

분더캄머*

_오은

 

과거는 왜 항상 부끄러운가?

미래는 왜 항상 불투명한가?

 

방문을 열면

얼굴이 화끈

뱃속이 발끈

 

허기를 참지 못하고 또다시

너를, 너희들을 소환한다 오늘

 

누구나 소유할 수 있지만,

아무나 소유하지는 않는

 

새로운 친구가 왔단다

 

너희들은 서로 인사를 하지 않는다

지분을 배정받은 공유자처럼

묵묵하고 꿋꿋하다

우정 따위의 지나친 욕심은 부리지 않는다

 

너희들이 더 많아질수록

너희들이 더 다양해질수록

나는 더 작아지고 적어진다

 

재능이 넘치면 노력이 부족해

시작이 창대하면 끝이 미약해

 

어떤 경지에 오르려다

어떤 지경에 이를 수도 있지

 

현재는 왜 항상 불완전한가?

 

뱃속을 다 채우면

나는 예정대로 구역질을 한다

신물 나는 완벽함을 향해

 

빛나가면서 빗나갈 때

뒤쳐지면서 뒤처질 때

 

놀랍게도

나는 방 안에서 놀라워진다

내 방을 누가 들여다볼까 봐

밖에 나가기가 두려워진다

 

눈을 감아도 네가 보인다

너희들이 빤히 보인다

 

, 대체 나는 어디에 발을 들였단 말인가

내 앞에 도래하는

백지상태의 내일 앞에서,

새로운 친구같이 어색하기만 한 나는

 

 

*독일어로 놀라운 것들의 방이라는 뜻. 카메라가 발명되기 전, 특별한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에 물건을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방을 분더캄머(Wunderkammer)라고 불렀다.

 

 

-오은,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문학동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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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10-21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톡이나 문자가 들어오면 아주 잠깐 확인만 하고 넘어가는 버릇이 있어요. 그 속에 있는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아요. 그러면 진짜 중요한 내용이 적힌 문자를 보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생겨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생기는 나쁜 습관인 것 같아요.

2019-10-21 21:4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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