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간다. 일찍 핀 목련은 벌써 낡은 듯 떨어졌다. 작년 이 벚꽃이 떨어질 때 아들이 와서 소리쳤다. 엄마, 꽃 좀 보세요. 눈이 되었어요. 경이로 가득찬 눈빛.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다. 지는 꽃이 7살 아이에게 남긴 기쁨은 어떤 것일까. 내 인생이 질 때 아이가 축제처럼 기쁠 수는 없을까. 벌써 해가 지고 있다. 해가 져도 환한 꽃들 사이를 달린다. 지는 해는 왜 또 아름다운가. 꽃이 아름다운 것이 벌과 나비를 부르려 하는 것이라면 지는 꽃과 지는 해와 지는 잎들이 아름다운 까닭은 뭘까. 이렇게 환히 핀 꽃에서 지는 모습을 보는 나는 너무 쉽게 늙어가고 있는 걸까. 벚꽃이 환하다. 피거나 지거나 환한 꽃. 갔던 길을 돌아서 다시 달린다. 기분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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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16-04-0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가 너무 좋아서 또 읽고 또 읽어요. 지는 꽃처럼 지는 사람도 아름다울 수 있겠지요. 환한 봄입니다

이누아 2016-04-03 19:12   좋아요 0 | URL
반가워요. 잘 지내시죠?!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는 생각법˝이라는 부제에 끌렸다. 그런데 생각법이라는 게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라는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충고였다. 정답이 하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버리고 얻을 수 있는 건 글로벌 인재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책의 후반부에는 글로벌 인재가 되기 위해 영어를 공부해야 하고, 발음도 신경쓰라고 한다. 철학적 사고를 하게 하는 책이라기보다 철학적 사고를 하기 위한 생각의 전환을 조언하는 책으로 느껴졌다. 내 기대와는 다른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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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에 앉아 시집을 읽는다. 조금 쌀쌀하다. 일기예보는 낮에 20도가 된다는데 어째서 어제보다 추울까. 매화며, 목련이며, 벚꽃이 모두 피었거나 피고 있다. 은근히 다가오는 만남은 구식이라는 걸까. 하나씩 펼치지 않고 한꺼번에 쏟아지는 꽃들이 찬 공기와 어색하게 서 있다. 허기진 사람처럼 새로운 단어를 찾아도, 새로운 것은 낡은 것이 되기 마련이다. 너무 쉽게 허무를 말하는 건 삶에서 달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달아나도 삶의 한 자리일 뿐인데.

꽃들이 피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람이 사는 게 무슨 깊은 뜻이 있겠는가. 차가운 제단에 꽃을 꽂으며 신성을 불어넣는 성가처럼 새로운 의미를 퍼올리며 목을 축인다. 마셔도 목마른 것은 물 탓인가, 메마른 마음 탓인가. 갈증에 마실 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목마르지 않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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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 엘리트문고 11
서머셋 몸 지음 / 신원문화사 / 1993년 7월
평점 :
절판


그라는 인간은 남의 호감을 살 만한 위인이 못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위대한 인간이었다고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p.250

 

위대한 인간이란 어떤 인간일까? 스트리클랜드는 영국의 가족을 버리고, 자신의 길을 택한 것이 스스로의 결정이라기보다는 견딜 수 없어서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한다. 그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고. 사실 이 소설에서 그림을 그리는 그의 모습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문둥병에 걸린 그를 찾아간 의사가 그가 그리는 걸 봤다고 한 말이 다였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의 그는 체스를 두고, 돈을 빌리고, 아프고, 친절을 베푼 스트르브의 아내와 욕정을 해결한다. 아주 당당하게. 스트르브의 아내가 자살했을 때도 그녀가 못나서 마음의 균형을 잃은 탓이지, 자신의 탓은 없다고 말한다. 타히티에서도 아타가 그의 생계를 책임진다. 자본주의의 눈으로 본다면 무능하고, 뻔뻔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그가 위대한 사람일까? 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 그림에 대한 것이라면, 그래서 그의 그림이 예술, 그 자체라 할지라도 그것이 그를 위대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에게서 위대함을 찾으라고 한다면 나는 바로 타인의 시선과 인정을 받으려는 욕구를 뛰어넘은 것, 그 한 가지를 꼽을 것이다. 그 한 가지면 족할까? 내 시선은 자꾸만 스트르브에게 향한다.

 

스트르브는 스트리클랜드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작품이 위대하다고 말한 유일한 사람이다. 남의 작품은 잘 보면서 자기 작품은 형편 없는, 돈을 빌려주고도 빌린 사람에게도 비웃음을 당하는 바보 같은 사람. 친절을 베풀고, 그 친절을 받은 사람에게 자기 아내를 빼앗긴 사람. 그런데도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사람. 그의 말대로 그는 애초부터 자존심이란 게 없었던 것일까. 그도 스트리클랜드가 그림을 그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힘에 이끌렸듯이 곤궁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힘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던 걸까?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인 네덜란드로 떠나는 그가 오래도록 남는다. 천재를 알아본 사람, 예술을 사랑한 사람, 한 여인을 자기보다 더 사랑한 사람. 그래도 그는 마음의 균형을 잃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구도 미워하지 않고, 스스로를 해치지도 않았을지도. 형편 없는 그림을 그렸지만 위대한 그림을 알아본 사람. 천재는 아니었지만 천재를 알아보는 사람. 비웃음을 당해도 웃을 수 있는 사람. 정말 바보였을까. 어쩌면, 정말 어쩌면 이 소설에서 가장 위대한 인간은 스트르브가 아닐까.

 

고등학교 때 읽었던 책인데 처음 읽는 듯했다. 그때 이 책을 읽으라는 이상한 꿈을 꿔서 사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심심한 책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 까맣게 잊었을까? 그때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었을까? 읽는 내내 궁금했다. 이삼십 년 쯤 지나서 혹시 다시 읽게 되면 오늘처럼 그때 무슨 생각을 했나 궁금해하지 말라고 여기 잠깐 적는다.

 

세상은 냉혹한 곳이더군. 우리는 왜 태어났는지도 모르고 이 세상에 태어나서 또한 아무도 모르게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지. 그러니 우린 겸허하지 않으면 안 돼. 조용한 생활의 아름다움을 알아야 한단 말일세. 운명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아무도 모르는 일생을 보내야 한단 말야. 그리고 단순하고 무지한 사람들의 사랑을 구하는 거야. 이들의 무지 쪽이 우리들이 가진 지식보다 월씬 거룩해. 그들처럼 말없이 구석진 행복에 만족하는 겸손하고 너그러운 인간이 되는 거야. 그것이야말로 인생의 지혜란 말야.(다크 스트르브)-p. 208

오직 한 가지 확실한 것을 말한다면-물론 그것조차 공상에 불과하지만- 그가 자기를 꽉 움켜쥐고 있는 힘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필사적으로 발버둥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과연 그 힘이 무엇인지, 또 그 해방이 어떤 방향을 취하고 있는지, 하는 데 미치면 역시 알 수가 없었다. 이 세계에서는 우리는 모두 외톨이다. 청동의 탑 속에 깊이 갇혀 오직 약간의 기호로 서로의 마음을 전달할 수 있는 데 불과하다. 더구나 그 기호들도 하등의 공통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고, 따라서 그 의미도 애매하고 불안정하기 짝이 없다. 더욱 우스운 것은, 우리는 각기 자기가 가진 비보(秘寶)를 어떻게든 타인에게 전하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전해 받아야 할 상대는 그것을 받아들일 만한 힘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도 마음은 따로따로 떨어져서 상호간에 남을 이해하지 못한 채 각기 고독의 길을 걷고 있다.-p.239

그는 더듬더듬 그쪽으로 가 보았다. 얼마 전까지도 스트리클랜드였던, 지금은 다만 흉칙하고 모습이 일그러진 보기만 해도 섬뜩한 고깃덩어리. 그는 이미 죽은 것이었다.-.p.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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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3-14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과 6펜스 오랜만에 보네요.
 

비가 온 다음 날. 무언가 씻겨 내려간 듯 개운하고 상쾌함. 내 느낌과 달리 일기예보는 황사. 실재와 느낌 사이를 생각한다. 뱀인 줄 알고 놀라 보니 끈이었다는 얘기처럼 그 실체가 무엇이든 내가 믿는 대로 느껴진다. 끈이라는 걸 확인하지 못하고 멀리 달아났다면 달아난 사람에겐 그 끈이 영원히 뱀으로 기억되고, 끈을 본 장소는 꺼리는 곳이 될 것이다. 비가 내렸다거나 가늘고 긴 것을 보았다는 게, 그것을 보고 알게 된 것이, 그 앎으로부터 생긴 느낌이, 그 느낌으로부터 생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삶을 뒤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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