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퍼온글] 인간은 근본적으로 혼자이다.

그대가 혼자되는 것을 피하면 피할수록, 그대가 느끼는 외로움은 더 커진다.  만일 그대가 홀로됨을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즐길 때, 모든 외로움은 사라진다.  그때의 외로움이 엄청난 아름다움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원래 혼자이다.  혼자라는 사실은 우리가 자유롭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홀로 있음은 따라서 혼자되는 법을 아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다.  이것이 사랑이 가진 역설이다. 혼자인 사람만이 사랑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혼자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만일 그대가 홀로 있음을 즐기지 못한다면, 사랑 또한 하기 힘들다.  혼자 있지 못하는 사랑은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방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진정한 사랑도, 진정한 관계도 아니다. 자신조차도 사랑하지 않는 그대가 어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단 말인가? 이처럼 이 세상에는 거짓된 사랑이 존재한다.  그대는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애를 쓰고, 또한 다른 사람은 그 자신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애를 쓰고, 이렇게 서로의 은신처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기만일 수밖에 없다.  우선은 독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독신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 그러할 때, 혼자가 되어도 즐길  수가 있다.  심지어 그대의 사랑도 이런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으로써 그대는 사랑할 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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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퍼온글] 2.바둑과 삶에서의 ‘맛’..

바둑에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맛’을 잘 살려야 한다.‘맛’..이럴 때 보면 한국말이 참 어렵다.


‘맛’ 이란걸 정의해보면 이렇다.간단히 말해 여지를 둔다는 것.지금 당장에는 아무 쓸모가 없으나,나중에 무슨 수가 날 확률이 있다는 것.이것은 주위 돌의 배석이나,작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으므로,두는 사람 입장에서는 훌륭한 작전을 펼 수 있는 매개체이고,반대로 막아야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늘 신경이 쓰이는 물혹 같은 존재.


바둑이 오묘한 것은 바로 이 ‘맛’ 때문이다.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요,살아도 산게 아닌게 된다.상전이 벽해되며,남의 집이 내 집이 되고,내 집이 남의 집이 되고,살았던 돌이 죽고,죽었던 돌이 부활한다.장기나,체스,혹은 스타크래프트는 이런 묘미가 없다.


우선 이 맛을 만드는 방법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가는길에 들여다 봐놓기,사석작전,하나 끊어놓기,하나 먹여쳐두기,한 번 응수타진.(이런 용어들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할 시간이 있으면 하기로 한다.)


쉽게 말하면 전쟁을 칠 때 침투조를 몇 명 보내는거다.상대편 입장에선 그 숫자가 얼마 안되니 바쁜 전쟁와중에 침투조 몇 명에 신경쓸 틈이 없는 것이다.그러나 훗날 보면,그 침투조가 자기 본군과 연결되며 훌륭한 디딤돌 역할을 해낸다.


이 맛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남의 집에 들어가서 살기,축머리로 사용하기,패를 만들기,승부가 불리할 때 상대방 돌을 끊어서 몽땅 다잡는 승부수를 날릴때..등등 활용방도가 높다.결국 이 ‘맛’은 고도의 전략,전술..앞의 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맛을 막는방법은 없는가?..물론 있다.바둑이 유리하면 이 맛을 없애는데 주력해야 한다.부자몸조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차체에 여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이런 맛들을 내 입장에서는 없애야 하고,상대방에겐,자꾸 만들어서 여지를 남겨두는 것,그것이 고수로 가는 지름길이다.


바둑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맛’ 을 만드는건 어떨까.나는 아주 좋다고 본다.그것은 위험분산을 의미할 수도 있고,철저하게 일을 이중삼중으로 해내는 가외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무엇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맛이라는 건 다 잘하지는 못해도 다 조금씩은 알고 있어 어디가서 빠지지는 않는,소외되지는 않는 팔방미인을 만들어준다고 본다.무엇보다 맛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본다.또한 그네들에게선 노력하는 만큼의 운도 어느정도 따라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의 ‘맛’은 어떨까.보통 인간관계를 함수관계라고들 한다.인간관계에서의 맛은 부정의 의미로도,긍정의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맛이 있다는건 그만큼 인간관계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다만 그것이 얕고 넓을 때 문제가 있다.또한 인간관계에서 중요한건 바로 금전거래이다.금전거래에서 맛을 남긴다는 건 신뢰를 잃는 지름길이다.마지막으로 남녀관계에서의 맛은 어떨까.이 부분도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잘되면 좋은데,부득이하게 헤어지거나 파경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내 개인적으로는 깔끔하게 정리하는게 좋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질질 끌거나 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것.결국 맛을 없애는 것.그러나 어른들 말씀처럼 인간관계라는게 무 자르듯 싹둑 잘라지는건 아닌 것 같다.공백기를 거쳐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다시금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그렇다면 그 인간관계에서의 맛은 윤활유처럼 그 분들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한 것이다.


사실 바둑도 어렵지만,삶에서의 ‘맛’을 선택하는건 더더욱 쉬운게 아니다.결국은 상황상황,만나는 사람사람,그 때 그 때의 내 기분,뭐 그런 것들이 선택을 좌우한다.가장 좋은 건 냉철한 현실판단으로,지금 이 맛을 살릴지,아님 그대로 갈건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결단내려야 한다.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바둑보다 훨씬 더 큰 변수가 존재하기에,늘 어려운 숙제를 내어주는 법.결국 어른들 말씀처럼 경험이다.살아봐야 안다는 말씀.그 말이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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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갈대 > [퍼온글] 상처 없는 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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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poptrash > 생활의 발견

문득 '홍상수 이야기가 사라진 영화를 발명하다'라는
홍상수식 영화미학에 대한 예찬론을 읽다가.
영화적 현실과 말그대로의 현실에 대해 생각.

이를테면 이런 것.
나는 오늘도 오뚜기에서 나온 블루베리 쨈을 먹었지.
언젠가 열어본 사무실 냉장고에 살포시 들어있던 그것을,
딱히 누가갖다 놨는지 알수도 없고 난생처음 보는
블루베리 쨈이라 도대체 무슨 맛일까 한입 물어보고는
그후로도 종종 당분이 부족할때마다 한입 한입 꺼내먹는,
여전히 먹는 이는 나밖에 없는 듯한 정체불명의, 그것.
그래, 오늘도 나는 블루베리 쨈을 먹었다.
딱히 먹고 싶지도, 그렇다고 와 정말 맛있는것도 아닌데,
단지 그것이 거기에 있고 나는 달리 할 것도 없기에
그냥 집어 먹는 것이다.
요컨대 블루베리 쨈을 집어먹는 나의 행위는
나의 퍼스낼러티에 어떠한 영향도, 또한 그것을 표지하는
어떠한 기표도 되지는 못한다는 것.
물론 그것이 내가 '아무거나 별 생각없이 집어먹을 수 있는놈'
정도라는 사실은 말해 줄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의 하루를 잔잔히 잡아준다면,
그리고 거기에서 주인공이 블루베리 쨈을 꺼내 먹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것은 그의 퍼스낼러티와 관련이 있다.
이를테면 남들이 잘 먹지 않는 블루베리 쨈을 먹을만큼
독특한 취향이라던지, 아무 이유없이 쨈을 그냥 먹을만큼
특이한 성격이라던지, 뭐 이런 것들.
것도 아니라면 여자친구가 블루베리 쨈 공장에 다닌다던지,
그의 아버지가 블루베리 쨈 공장으로 해서 벌어먹은 돈으로
그가 놀고 먹는거라던지, 등등 이루 말할 수도 없겠지.
그야말로 무한하다. 말이 되는건 물론 한정되어 있겠지만
그래도 많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에서라면 거기에는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의미는 무한하다. 하지만 의미 그 자체에서는
그 무엇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블루베리 쨈을 먹는 이유는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말그대로 자의적인 만남일 뿐이다.
그곳에 블루베리쨈이 아닌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있었다면
나는 그것을 먹었을 것이니까.
설령 블루베리쨈이 사라진다 하여도 나는 그냥
의아하게 생각할 뿐 그것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너무 말이 길다.

하지만 차라리 영화는 조금 자유로울 뿐이다.
영화는, 단 한프레임이라고 할지라도 철저히 그것을
의도대로 담을 수는 없는 일이니까.
때때로 의미를 벗어난 그 무엇이 담길 수도 있는 노릇이다.

그런데 문학은?
일찍이 체호프가 '총이 나왔다면, 그 총은 반드시 쏘아져야 한다'
는 식의 말로 천명하였듯이,
훨씬 더 의미의 그물망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작가의 손에 달린 것이므로.
취사선택의 과정에서 내가 굳이 블루베리 쨈 이야기를 쓴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녀야만 한다.

의미의 압박.
사실 의미란 것은 얼마든지 비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것은 단지 가능성의 영역일 뿐 실제적인 그 압박을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은 광대한 바다에 빠진 한마리의 파리처럼
그저 허우적대다가, 아무도 알아챌 수조차 없는 사이에
죽어가는 것이다.
문학이 죽어가고 있는건 아니다.
문학이란, 마치 바다처럼 그저 그자리에 있을 뿐이다.
사실이지 사람들이 진짜 바다를 오염시키듯 문학을
오염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정신의 영역이다. 갈수 조차 없다.
단지 문학을 하는 인간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파리처럼 작은 그들이.
아무도 알아보지 않는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무지한게
아니라, 그들이 너무 초라한거다.
아무리 인내심을 갖고 동정심을 갖고 찾아보려해도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위에서 똥파리의 반짝이는 엉덩짝,
따위를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은 누구에게도 없으니까.

원래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건 아닌데?

그래. 한가지 간과하여서는 안될 사실은,
문학이란 결국 한 개인이 모든 것을 창조하지만
때론, 아니 종종 그 창조물이 그 개인을 넘어선다는 것이다.
신비한 고대 마법의 주문을 외우는 것 처럼,
마법의 강렬함은 그 시행자를 압도한다.
물론 제대로 되었을 때 얘기다.

아무튼,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마치 홍상수의 영화가 '그래보이듯이'
이 현실을 철저하게 그저 재현할 수는 없는가 하는 것이다.
문학으로서.
이 무의미를, 이 우연을, 이 온갖 비루함을.
그저 펼쳐보이는 거다.
전적으로 무의미하게.

오늘도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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