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갈대 > [퍼온글] 2.바둑과 삶에서의 ‘맛’..
바둑에서 고수가 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맛’을 잘 살려야 한다.‘맛’..이럴 때 보면 한국말이 참 어렵다.
‘맛’ 이란걸 정의해보면 이렇다.간단히 말해 여지를 둔다는 것.지금 당장에는 아무 쓸모가 없으나,나중에 무슨 수가 날 확률이 있다는 것.이것은 주위 돌의 배석이나,작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으므로,두는 사람 입장에서는 훌륭한 작전을 펼 수 있는 매개체이고,반대로 막아야하는 상대방 입장에서는 늘 신경이 쓰이는 물혹 같은 존재.
바둑이 오묘한 것은 바로 이 ‘맛’ 때문이다.죽어도 죽은 것이 아니요,살아도 산게 아닌게 된다.상전이 벽해되며,남의 집이 내 집이 되고,내 집이 남의 집이 되고,살았던 돌이 죽고,죽었던 돌이 부활한다.장기나,체스,혹은 스타크래프트는 이런 묘미가 없다.
우선 이 맛을 만드는 방법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가는길에 들여다 봐놓기,사석작전,하나 끊어놓기,하나 먹여쳐두기,한 번 응수타진.(이런 용어들에 대해선 나중에 설명할 시간이 있으면 하기로 한다.)
쉽게 말하면 전쟁을 칠 때 침투조를 몇 명 보내는거다.상대편 입장에선 그 숫자가 얼마 안되니 바쁜 전쟁와중에 침투조 몇 명에 신경쓸 틈이 없는 것이다.그러나 훗날 보면,그 침투조가 자기 본군과 연결되며 훌륭한 디딤돌 역할을 해낸다.
이 맛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남의 집에 들어가서 살기,축머리로 사용하기,패를 만들기,승부가 불리할 때 상대방 돌을 끊어서 몽땅 다잡는 승부수를 날릴때..등등 활용방도가 높다.결국 이 ‘맛’은 고도의 전략,전술..앞의 수를 내다보는 혜안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맛을 막는방법은 없는가?..물론 있다.바둑이 유리하면 이 맛을 없애는데 주력해야 한다.부자몸조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차체에 여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이런 맛들을 내 입장에서는 없애야 하고,상대방에겐,자꾸 만들어서 여지를 남겨두는 것,그것이 고수로 가는 지름길이다.
바둑이 아닌 일상생활에서 ‘맛’ 을 만드는건 어떨까.나는 아주 좋다고 본다.그것은 위험분산을 의미할 수도 있고,철저하게 일을 이중삼중으로 해내는 가외성으로 연결되기도 한다.무엇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맛이라는 건 다 잘하지는 못해도 다 조금씩은 알고 있어 어디가서 빠지지는 않는,소외되지는 않는 팔방미인을 만들어준다고 본다.무엇보다 맛을 중요시하는 사람들은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본다.또한 그네들에게선 노력하는 만큼의 운도 어느정도 따라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관계에서의 ‘맛’은 어떨까.보통 인간관계를 함수관계라고들 한다.인간관계에서의 맛은 부정의 의미로도,긍정의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고 본다.맛이 있다는건 그만큼 인간관계의 폭이 넓다는 것이다.다만 그것이 얕고 넓을 때 문제가 있다.또한 인간관계에서 중요한건 바로 금전거래이다.금전거래에서 맛을 남긴다는 건 신뢰를 잃는 지름길이다.마지막으로 남녀관계에서의 맛은 어떨까.이 부분도 긍정과 부정의 의미가 있을 수 있다.잘되면 좋은데,부득이하게 헤어지거나 파경의 경우가 있을 수 있다.내 개인적으로는 깔끔하게 정리하는게 좋은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다.질질 끌거나 한다면 모양새가 좋지 않다고 보는 것.결국 맛을 없애는 것.그러나 어른들 말씀처럼 인간관계라는게 무 자르듯 싹둑 잘라지는건 아닌 것 같다.공백기를 거쳐서 서로에 대한 오해를 풀고,다시금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것,그렇다면 그 인간관계에서의 맛은 윤활유처럼 그 분들에게 좋은 쪽으로 작용한 것이다.
사실 바둑도 어렵지만,삶에서의 ‘맛’을 선택하는건 더더욱 쉬운게 아니다.결국은 상황상황,만나는 사람사람,그 때 그 때의 내 기분,뭐 그런 것들이 선택을 좌우한다.가장 좋은 건 냉철한 현실판단으로,지금 이 맛을 살릴지,아님 그대로 갈건지를 빠르고 정확하게 결단내려야 한다.그러나 삶이라는 것은 바둑보다 훨씬 더 큰 변수가 존재하기에,늘 어려운 숙제를 내어주는 법.결국 어른들 말씀처럼 경험이다.살아봐야 안다는 말씀.그 말이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강하게 다가온다.